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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전환 (행3-19)
2026년 8월 20일 (목요일)
찬양 : 내가 매일 기쁘게
본문 : 사도행전 18:1-23절
☞ https://youtu.be/RSuIG4ze15U?si=GY1K1yo5oOIi9SLh
어제 한마음 기도회가 은혜롭게 마쳤다. 수고하신 박종오 목사님과 김성일 목사님께 감사를 전한다. 아울러 찬양 인도로 식사로 수고하시고 참여하신 모든 동역자들 위에 하늘의 충만한 은혜와 평강과 축복하심이 넘치시기를 기도한다.
3일간의 심방 예배에 동역자를 위해 달려와 함께 기도해 주신 귀한 동역자들의 섬김이 참 아름다웠다. 참으로 주님의 사역을 위해 헌신하신 모두에게 주님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사도행전 18장은 2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과 3차 전도 여행의 출발을 담고 있다. 오늘은 그중 2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피날레와 같은 곳인 고린도 사역을 중심으로 묵상하려고 한다. 이곳에서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무려 1년6개월이란 긴 시간을 체류하며 복음을 전하게 된다. 2-3절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아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사도행전에는 고린도 지역에서만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한 것처럼 보여지지만, 바울은 이전 사역지에서도 이미 생업을 병행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살전2:9절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렇게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였을까?
첫째는 현실적인 이유다. 파송 교회인 안디옥 교회의 후원금을 가지고 출발은 했겠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송금이 가능한 은행 시스템이 없었기에 오랜 기간의 전도 여행을 감당할 막대한 금액을 다 들고 다닐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유대 랍비들의 전통 때문이다. 유대 문헌인 탈무드에는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바울의 고향인 다소는 염소 털로 짠 거친 천으로 천막을 만드는 산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바울은 랍비 교육을 받으면서 어릴 적 이 기술을 습득해 두었을 것이고, 이것을 활용하여 선교 현장의 굶주림과 어려움을 스스로 감당해 낸 것이다.
셋째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복음의 순수성 때문이다. 당시 헬라 사회에는 돈을 받고 지식이나 궤변을 파는 떠돌이 철학자(소피스트)들이 아주 많았다. 만약 바울이 고린도 광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돈을 요구했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얄팍한 소피스트 중 하나로 취급했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가 돈으로 매도되지 않도록 기꺼이 땀 흘려 일하며 복음을 전했다.
결론적으로 바울의 이러한 자비량 헌신은, 갓 개척된 연약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재정적인 짐을 지우지 않음으로써 교회를 건강하게 든든히 세워가는 과정에 가장 강력하고 유익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오직 복음과 교회를 세우려는 열정이 만든 선택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의 사역자들이 이중직 목회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복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업을 위해서 선택한다는 점이다.
목회가 부르심이라면 방식은 무엇이어도 핵심은 복음을 위한 선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하려는 열정으로 이런 선택을 하였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이곳 고린도에서 바울은 애타게 기다리던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나게 되고,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붙잡히게 된다. 5절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하니’
<붙잡혀>라는 헬라어 동사 '쉬네코(συνέχω)'는 본래 '함께(σύν) 꽉 누르다, 에워싸다, 압박하다, 강제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어떤 강렬한 힘이나 목적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 정도로 전적으로 몰두(wholly absorbed)하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고린도에 혈혈단신으로 도착해 극심한 재정적 궁핍에 시달리던 바울은 아굴라 부부와 함께 평일에는 '천막 만드는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바울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5절에서 마게도냐에 남겨두었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내려와 만난다. 이때 이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이때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 성도들, 특히 빌립보 교회가 모아준 '풍성한 선교 후원금'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마게도냐 성도들의 헌금 덕분에 바울은 생계를 위해 천막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육체노동에 쏟던 그 귀한 시간과 에너지가 확보되자, 바울은 즉시 텐트 만드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주중이나 주말이나 밤낮없이 오직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집중한 대상이 바로 유대인들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6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분명 말씀에 붙잡혀, 그러니까 집중해서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했는데 대적하여 비방을 당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매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포기가 아니라 바울은 완전한 방향 전환의 기회로 삼는다.
그는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포하며 이방인에게로 갈 것을 선포하며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향해 돌아선 것이다. 바울은 이때까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자기 조국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돌아오게 하려는데 힘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바울의 애씀을 완전한 실패라 말하지 않는다. 8절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중요함을 배우게 된다. 비록 바울이 느끼기에 철저한 실패처럼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성경은 유대인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는 실망한 바울에게 환상 가운데 말씀하신다. 9-10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두려움이 생기고 그 자리를 피하려는 속성이 있다. 아마 바울도 고린도에서 의욕적인 출발이 이렇게 좌절되어 입술로는 당당하게 내가 이방인에게로 간다고 선포했지만 그 마음속이 상처로 얼룩져 그곳을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 밤에 환상 중에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하여 말씀을 증거 할 것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이 함께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고 이곳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음을 알려주며 긴 시간 이곳에 머물러 복음을 전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고린도 사역도 후에 고난을 당해 법정에 서는 일까지 겪으면서 그는 그곳을 떠나 에베소에 잠시 머무른 후에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2차 선교여행을 마치게 된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바울의 고린도 사역은 한 편의 파노라마와 같다. 물질적 궁핍 속에서도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천막을 꿰매던 거친 두 손, 동역자의 헌신으로 생계의 짐을 벗자마자 다시 '말씀에 사로잡혀' 달려가는 열정, 그리고 거센 배척 앞에 무너진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주님의 따뜻한 위로의 음성. 바울은 그 음성에 힘입어 일어나 1년 6개월을 버티고 서서 당당히 복음을 증언하다가 훗날 또다시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섭리의 여정을 걸었다.
목회와 인생의 여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때로는 스스로 생존의 짐을 져야 하는 광야를 걷기도 하고, 사람들의 비방 앞에 깊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필요할 때 반드시 아굴라와 같은 동역자를 예비하시고, 가장 어두운 밤에 찾아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다.
오늘 묵상을 통해 목회 후반전을 걷는 나의 심령과 훈련받는 모든 사역자의 가슴에 '말씀에 사로잡히는 야성'과 '주님의 동행하심을 향한 확신'이 다시 한번 뜨겁게 타오르기를 기도한다.
무엇보다 바울에게는 가장 빨리 떠나고 싶었던 곳, 고린도가 가장 오랜 기간 사역하던 곳으로 바뀌는 현장이었음을 본다.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진정 성령이 이끄시는 삶과 사역이 되어야 함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 아침이다.
오직 성령님께 이끌리어 오늘이란 자리를 살아가기를 다짐하고 기도한다. 상처에 반응하고, 상황에 이끌리며, 사람의 반대와 호응에 감정을 지배당하는 어리석음을 내려놓는다. 주님, 나의 후반전이 오직 성령께 이끌려 순종되는 삶과 사역이 되게 하소서. 오직 주님의 뜻만이 서게 하소서.
한줄 묵상 :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두려움의 자리는 내 삶과 사역의 방향을 나에게서 성령께로 완전히 전환하는 자리입니다.>
적용 질문 :
1. 바울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땀 흘려 일하는 수고를 감당했습니다. 오늘 나는 생존이 아닌 복음을 위한 선택이 되고 있습니까?
2. 지금 내 삶에 막힌 문 앞에서 사람에게 상처받아 좌절하기보다, 새롭게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하나님의 방향'은 어디입니까?
3. 최근 사람들의 시선이나 상황 때문에 두려워 피하고 싶었던 자리는 어디이며, 그곳에서 들은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