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혁
최정례 선생님 죽었을 때
아주 잠깐인데 그냥 나도 죽을까 생각했어요
친한 적 없는데 언젠가 대학로 어느 술집에서
지금 아내랑 우연히 최정례 선생님한테 인사했거든요
저희 결혼합니다, 이쪽이 잔디예요, 아시죠?
했거든요, 그런데 다짜고짜 아내더러 너는 왜
이런 애랑 결혼을 하니, 하고 웃으시는데 아무래도
진심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결혼 안 할 건 아니라서
그러고 크게 웃으시니까 기분이 나쁜 게 아니었고
속으로 맞는 말 하시네 싶더라고요, 사람 잘 보네?
싶어서 저도 같이 웃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했어요
그분 시를요 나중에 「동쪽 창에서 서쪽 창까지」 읽다가
울겠더라고요 정말 나중에 꼭 이런 거 써야지 했거든요
얼마 전 읽은 황인찬 시에 이승훈 선생님이 나오길래
용기 났어요 저도 써봅니다 최정례 선생님 죽었을 때
집에서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어쩐지 발 주무르면서
혼잣말로 아이구, 아이구 했거든요 그래서 죽은 사람
시집 만지는데 글자 하나 문장 한 줄이 아까운 거 있죠
표지도 귀하고 표지 그림도 귀해서 저린 발 만지듯
했거든요 동네서 술 마시는데 앞에 앉은 누나가
토지문화관에서 귀신 봤다 하더라고요 그래요?
내가 어린애처럼 정말 누나, 귀신이 세상에 있어요?
취하지도 않았는데 거듭 물었더니 있지, 왜 없니
하는데 좋더라고요 사람 죽으면 다 끝이고 먼지다
알고 살지만 보세요 선생님 저 잘 살고 있습니다
잔디도 선생님 시 좋아하고 갑자기 아이도 낳았거든요
친한 적 없는데 사람 잘 보는 선생님 덕에 제가
매일 조심하며 지내고 있다 말씀드리고 싶었거든요
ㅡ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2023, 8월호), 이달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