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스승들 “영원한 스승이고 주님이자 친구이신 예수님”
2026.5.15.금요일 성 파코미오 아빠스(290-346/347) 기념일
사도18,9-18 요한15,9-17
노인은 많아도 어른은 없고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없다 하는데 오늘은 선생조차 사라진 시대 같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가르침이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참된 스승은 제자를 통해 다시 배운다. 고전의 가르침을 통해 제자와 함께 자란다.”<다산>
비단 스승이 아니라도 평생 겸손한 배움의 자세로 살아가는 평생학인의 삶은 참 아름답습니다.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되니 스승은 할만하다.”<논어>
삶의 스승이 되고자 노력하는 삶도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자 성군이라 일컫는 위대한 스승 세종대왕 제629돌 탄신일로 법정 국가기념일입니다. 세종대왕 평전 표지의 소개 글만 봐도 그가 얼마나 시공을 초월한 지혜로운 스승인지 잘 드러납니다.
“세종은 비굴한 사대주의자도 아니고 배타적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를 배합시킨 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다시 말해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와 개방적인 자세로 교류하여 공동번영을 꿈꾼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 바로 그 자리에 그는 우뚝 서있다.”
그대로 오늘날에 통하는 위대한 스승의 모습입니다. 성군 세종대왕의 평전을 보면 그가 얼마나 백성을 사랑했는지, 또 다방면에 걸친 불가사의의 천재인지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사도행전의 바오로 사도 역시 믿은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불세출의 스승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이 제자 바오로를 사랑했는지 선교 방향을 환시 중에 제시하고 격려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새삼 영원한 참 스승인 파스카 예수님의 면모를 봅니다. 믿는 이들의 생명은 하느님 손안에 있으니 말 그대로 인명은 재천입니다. 새벽에 본 멋진 노년의 삶의 세 조건, “active-interest-enjoy, 활동-관심-즐김” 역시 배움의 여정에 좋은 참고가 됩니다.
오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공주수도생활의 아버지라 일컫는 성 파코미오 아빠스 기념미사를 봉헌하며, 제 사랑하는 후배이자 전임 원장이었던 파코미오 수사의 영명축일이기도 합니다. “왕의 독수리”란 이름 뜻대로 성 파코미오 아빠스 역시 수도승들뿐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은수적인 수덕생활이 보장되면서도 상부상조하는 사도행전 2장 42절에 기반한 ‘코이노니아’ 공동체적 이상적 수도생활을 실현시킨 그의 전성기 때 수도원에 속한 수도자들은 무려 약 5000명에 달했다니 그의 리더십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짐작이 됩니다. 파코미오 수도생활은 수세기 동안 이집트에서 확산되어 1000년까지 지속되며 그의 규칙과 영성은 서방 수도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수도생활을 이끄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서로 성서를 강조했으며, 교회내의 어떠한 카리스마나 수도생활도 성서와 성전에 기초한 교회의 보편정신 안에서만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수도생활은 교회의 정통성을 옹호했고, 영성적인 요소와 더불어 성사적 생활과 전례에 충실한 수도영성이었습니다. 한결같이 수도생활의 위대한 스승들은 성서의 사람들이자 교회의 사람들이요 예수님의 사람들임을 봅니다.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레오14세 교황 역시 종파를 초월한 훌륭한 스승입니다. 어제 로마의 사피엔자 대학교를 방문해 주신 “참 평화의 장인들이 되십시오”라는 제하의 내용도 참 풍부하고 유익했습니다. 시대의 스승다운 레오 14세 교황의 처방이었습니다.
1.젊은이들과 진리의 탐구
2.성 아우구스티노는 큰 과오를 범했으나, 결코 지혜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3.우리는 ‘알고리즘(an algorithm)’이 아니다.
4.우리 자신이 되기(Becoming ourselves).
5.우리는 어떤 세상을 남길 것인가?
6.군사적 소모와 재무장에 대한 경고
7.‘전멸의 소용돌이’(a spiral of annihilation)에 대한 경고
8.피조물 보호
9.믿는 이들의 통찰
10.애덕의 형태로서의 가르침
11.새로운 교육적 동맹
저 또한 훌륭한 스승을 꿈꾸다 수도원에 들어왔기에 지금도 환갑이 넘은 초등학교 제자들의 방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10년전 제자가 정성껏 써서 액자에 넣어준 <스승의 은혜> 노래 가사가 생각납니다. 매해 5월이면 방문해 불러주는 노래입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말로 다 할 수 없는 선생님 은혜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신우초등학교 1회 6-1반 임혜정, 2016년 5월씀>
바로 여기 해당되는 유일한 스승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자주 불러보는 노래입니다.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요 도반이자 친구인 예수님뿐입니다. 참 스승인 예수님의 참 좋은 선물이, 믿는 이들의 신분증인 파스카의 기쁨입니다. 세상 어떤 스승도 이런 기쁨을 선물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한결같은 기쁨입니다. 바로 성인들은 고통중에도 언제나 주님이 주신 이런 내적 충만한 기쁨중에 살았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진통의 고통후에 이은 출산의 기쁨 같은 것이다. 지금 너희는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은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기쁨은 진통의 고통 후에 이은 출산의 기쁨 같은 것입니다. 눈물로 씨부리던 이들이 기쁨으로 수확하듯 결코 값싼 기쁨은 없습니다. 이미 우리를 통해 실현된 영원한 파스카의 기쁨, 신록의 기쁨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우리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향기로운 빛을 발하는 이런 참기쁨입니다. 바로 스승이자 친구이자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 참 기쁨이요, 겸손히 찬미와 감사로 응답하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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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스승인 예수님의 참 좋은 선물이,
믿는 이들의 신분증인 파스카의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