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11. 2. 토요일.
소설가 한승원의 딸 '한강' 202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10월 10일 보도되었다.
한강 소설은 아마도 20종류는 될 것이다.
그중 소설책과 수필집을 내 큰딸이 사서 아비인 나한테 선물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제주 4.3/경산 코발트 광산) 소설
<소년이 온다>(광주 5.18) 소설
<디 에센셜 : 한강> > 수필
위 소설 책을 거듭 몇 차례 읽었어도 이해를 하지 못해서 결국에는 책을 덮고 말았다.
1970년 11월생인 한강은 해방전후의 역사에 관해서 직접 체험한 바가 전혀 없어서, 간접적으로 남한테 듣은 상태에서 상상으로 소설을 썼다. 때문에 현실감이 거의 없다라고 나는 판단한다.
나는 1949년 1월에 태어났기에 해방전후에 전개된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컴퓨터를 켜서 해방전후의 국내 사건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간접적으로 겨우 조금만이라도 이해했으면 싶다.
인터넷으로 '양민학살'이라는 용어로 검색하니 아래 자료가 뜬다.
1945. 8. 15. 일본식민지로 벗어난 직후에 좌우세력 갈등,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리승만대통령의 정치....
국내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이다.
모두 원인이 있을 터.
1945. 8 .1 5 광복 이후 좌우 정치세력은 독립국가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좌우진영 간의 대립은 1946년 10월 대구 10ㆍ1 사건을 계기로 점차 폭력적인 양상을 띠게 되고,
1948년 초 단독 정부수립을 전후해서는 급기야 상대 진영에 대한 무력적 말살로까지 비화하였다.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전국 도처에서 보도연맹원 집단학살, 군경토벌에 의한 학살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인 학살 피해가 잇달았다.
[출처] [ 연구논문]6.25전쟁 전후 시기 민간인 학살 연구*-
양민학살 사건 :
제주도 제주 4.3 사건 (1948-1950) : 민간인 3만여 명 학살 추정
전남 여수 순천 사건 (1948) : 민간인 7천여 명 학살 추정
경북 문경 양민 학살 사건 (1949): 민간인 86명 학살 추정
보도연맹 학살 사건 (1950) : 민간인 20만여 명 학살 추정
경남 거창 양민 학살 사건 (1950) : 민간인 719명 학살
제주도 제주 섯알오름 학살 사건 (1950) : 민간인 210명 학살
전남 함평 양민 학살 사건 (1950) : 민간인 524명 학살
충남 대전 형무소 학살 (1950) : 1차 1400여 명, 2차 1800여 명, 3차 1700여 명 학살
충북 청주 형무소 학살 (1950) : 1200여 명 학살
경북 대구 형무소 학살 (1950): 1400여 명 학살
경남 부산 형무소 학살 (1950): 1500여 명 학살
경남 진주 형무소 학살 (1950): 1200여 명 학살
경남 마산 형무소 학살 (1950): 717명 학살
경북 김천 형무소 학살 (1950): 650여 명 학살
경북 안동 형무소 학살 (1950): 600여 명 학살
서울 수복 후 부역자 55만 명 검거 (1950): 867명 학살
학도병 양민학살
수사반장 1958년 양민학살
리승만 양민학살
* 전국 곳곳에 양민학살은 무척이나 많았다.
위 자료는 대표적인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충남 대전 6.25 전쟁 중 대전형무소(현재 대전광역시 중구 목중로 34, 출입국 관리사무소 위치)의 수감자들을 상대로 일어난 학살.
첫 번째 학살은 1950년 6월에서 7월 사이에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발생했고,
두 번째 학살은 1950년 9월에 조선인민군에 의해 발생하였다.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별칭이 있으며 최소 4천여 명에서 많게는 7천여 명까지 학살돼 묻힌 곳으로 6.25 전쟁 시기 대한민국 내 단일지역 최대 규모 희생지다.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 (대전 식장산 남쪽 아래에 위치):
1950년 7월,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어 제주 4.3 및 여순사건 관련자 등 정치범과 대전·충남 지역 인근 민간인들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끌려 집단 학살돼 묻힌 비극의 현장
[출처] 역사 탐방 프로그램 <대전 산내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북한 공산집단은 경기도 지역에선 1950년 7월 말부터, 충청과 전라 지역에선 대개 8월부터 본격적으로 각 郡·面別 인민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점령지 행정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학살이 무차별이었다는 것은 학살 규모와 대상이 입증한다.
총 5만9932명의 학살자 명단을 보면 全南 4만3511명 全北 5603명, 그리고 충남 3680명인 것에서 보듯 선별적 학살은 분명 아니었다 (「표 1」 및 「표 3」 참조).
전체 학살자 중 여성이 1만 6000여 명으로 전체 피해자의 27%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全南 영광의 경우 한 郡에서 무려 2만1000여 명의 학살이 이루어졌고, 영암에서 7000여 명, 장성에서 40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무차별 학살의 진상을 대변해 준다.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무단 게시를 용서해 주실 게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
찬찬히 조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