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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만물은 천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천지(天地)는 음양 짝으로서 하늘은 아버지이고, 땅은 어머니이다. 그래서 천지 부모라고 한다. “만물은 천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천지는 인간과 만물의 큰 부모다.”” 하늘도 조물주요, 땅도 조물주다. "천지는 생명의 근원, 진리의 원형이다. 진리라는 건 하늘과 땅에서 시작해서 하늘과 땅으로 끝난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하늘땅 공부로 시작해서 하늘땅 공부로 끝나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시원 역사에 대한 깨달음은 곧 하늘과 땅에 대한 깨달음에서 온다. ‘이것은 진리의 틀을 보는, 진리의 틀을 깨치는 핵심 과제인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깨달음 가운데 특히 우리 동양 문화에서 우주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보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다. 그런데 그동안 수많은 인류가 하늘땅이 뭔지도 모르고 죽어갔다.
우주의 본성이 대광명이다.
수행공부가 어느 경계로 들어가면 눈을 감고 있는데도 해가 뜬 것처럼 밝다. 생명의 본성, 인간 마음의 본성은 광명이다. 삼신(三神)이 바로 대우주 광명의 실체다. 동양에서는 이 삼신(三神)이 스스로 현현(顯顯)해서 하늘과 땅과 인간이 나왔다고 한다.
『천부경』에서는 이 하늘과 땅과 인간을,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이라고 한다. 천지인(天地人) 모두가 하나(一)의 자리에서 나왔으며, 도의 본원이 같다는 말이다. 이렇듯 삼신三神이 자기 현현하여 하늘과 땅과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천지인 모두가 조물주 삼신의 생명과 신성과 지혜와 광명을 가지고 있다.
삼신의 생명, 지혜, 숨결은 우리 몸속에도 다 들어있는 것이다. 이 우주만유 속에 삼신의 숨결이 살아 있고, 온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이 삼신의 생명은 우리 몸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이걸 생각해 볼 때, 인간의 창조적 신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또 진리를 제대로 깨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기만 하고 살아도 인간의 품격이 전혀 달라진다.
그러면 삼신三神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인간 몸속에 깃든 삼신(三神)의 3가지 손길은 하늘의 조화(造化), 땅의 교화(敎化), 인간의 치화(治化)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삼신은 만물을 낳는 조화신(造化神), 만물을 깨우치고 기르는 교화신(敎化神), 그리고 만물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치화신(治化神)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늘의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의 삼신(三神)이 인간의 몸에 내려와 성性,명命,정精 삼진( 三眞)이 되었다.
내 몸속에 있는 조물주의 마음性과 생명命을 회복하는 것이 종교의 1차 사명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천지, 조물주의 신성이 내 몸 속의 생명 속에서 실제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이런 내용을 모르고 마음만 닦으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조물주의 마음(性)과 생명(命)을 함께 닦아야 한다.
그러면 마음과 생명을 어떻게 닦는다는 말인가?
그 모든 의혹을 푸는, 진리의 관문을 통과하는 열쇠가 바로 性命精에서 셋째, 정精이다. 조물주의 마음과 생명은 실제로는 내 몸속의 정(精)에서 이루어진다.
내 몸에 있는 모든 기관, 머리털 하나에서 손톱 끝에 이르기까지 다 정精을 끌어다 쓴다.
정精에서 조물주의 신성이 발동되고, 생명이 확보된다. 따라서 현실적인 인간의 문제, 즉 나의 마음을 닦고 내 몸 속의 생명을 닦는 것은 실제로는 생활 속에서 정精을 확보하는 것, 精을 수렴하여 간직하는 것이다.
정精은 조물주의 창조의 원질이요, 내 몸의 생명의 진액(essence)이다. 우리 몸의 오장에서는 신장(腎腸)의 수기(水氣)가 바로 정(精)이다. 여성들이 아이 낳고 생리하고 하는 모든 생명 운동이 정精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호르몬 작용, 생리 작용, 의식 작용, 사물에 대한 인식 등 인간 삶의 모든 활동 에너지가 신장腎腸의 수기水氣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신장의 수기가 약해지면 피부가 금세 노화되고 주름살이 생기며, 머리털도 뻣뻣해지고 허옇게 세고 쉽게 빠져 버린다. 또한 몸의 근기가 쇠약해지고 천 가지, 만 가지의 병이 신장의 수기가 고갈되는 데서 비롯된다.
수행은 성(性)과 명(命) 자체를 닦는 것이 아니라 우리몸의 정(精)을 관리하는 문제다.
정(精)을 근본으로 해서 닦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음란문화는 인간의 정(精)을 파괴하고 분열시킨다. 수행의 근본은 정(精)을 굳히고 맑히는 가의 문제로 떨어진다. 정(精)을 순화해야만 공부가 된다.
천지일월이 나를 만들어주고, 나에게 생명을 내주는 그 모든 열매가 정(精)이다. 정기를 잘 간직해야 여기서 힘도 나오고, 생명력도, 지혜도 나온다. 모든 것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정(精)이다. 수행을 통해서 본래의 성(性)과 명(命)이 하나였던 그 경계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 생명력이 우주와 더불어 하나인 영원의 경계, 그 자리는 무한의 광명 그 자체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인 상태다.
그럼 성(性)과 명(命)은 무엇이 다른가?
밝은 모습 자체는 성(性)이고, 그 모습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 그것을 하나의 생명력으로 표현할 때 명(命)이라고 한다. 수행이 아니면 내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내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수행은 내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이다. 유형의 정(精)과 무형의 마음(心)을 닦아 생명의 본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 닦는 공부로 떨어진다. 마음을 바르게 가짐으로써 정(精)이 변화된다. 정(精)이 굳어지고 맑아지고 승화된다. 그러면 그만큼 높은 성(性)과 명(命)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수행의 궁극은 생명의 본성인 성(性)과 명(命)을 회복하는 것이다.
생명(生命)의 원래 말이 성(性)과 명(命)이다.
인간은 왜 사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내 생명의 밝은 모습(性),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생명력(命)을 회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나의 생명을 회복하는 과정, 이것이 우리들 삶의 목적이다.
인간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본래 모습, 성(性)과 명(命)은 하늘땅과 같다. 어머니 뱃속에서 천지와 더불어 호흡할 때는 성(性)과 명(命)이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 인간적인 호흡을 시작하게 되고, 본래 우주와 하나인 성(性)과 명(命)이 분리된다.
눈을 뜨고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적인 어둠에 휩싸여 그 이면의 세계를 전혀 못 보게 된다.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만큼 밝은 내 생명의 본래 모습, 내 마음의 근원인 성(性)이 후천적인 성(性)으로 바뀌면서 어둠의 세계로 떨어진다.
또한 하늘같은 무한의 생명력인 내 명(命)이 불과 몇 십 년 살다가 병들어 죽는 유한의 명(命) 자리로 떨어진다. 온갖 인생의 시련과 역경, 고난의 파도를 만나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다가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을 함으로써 어머니 뱃속에서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성(性)과 명(命)을 회복한다. 천지와 같은 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내 생명의 기반인 성명정(性命精) 3가지 요소를 닦는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인 작용 요소로 보면 심기신(心氣身)이다. 마음(心)과 기(氣)와 몸(身)을 닦는 것이다. 내 몸(身)을 닦는 것은 구체적으로 정(精)을 닦는 것이고, 마음(心)을 닦는다는 것은 원래의 생명력(性)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의 기(氣)를 닦는다는 것은 하늘땅의 무한의 생명력(命)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天一, 地一, 太一 이것은 태고시대 인류가 천지인을 어떻게 인식 했는지 보여주는 소중하고 경이로운 진리 주제어이다.
그러면 성(性)이란 무엇인가?
성性은 마음의 본래 실상, 내 마음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은 변화막측하다. 수시로 바뀌고 변덕스러워서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마음의 본래 모습은 가을 하늘의 순수한 모습처럼 불변지체(不變之體)다.
성性은 심心방 변 옆에 낳을 생生 자를 쓴다. 문자 그대로 만물을 낳는 마음이다. 하늘땅과 인간과 만물을 낳아 주는 조물주의 마음, 대자연의 마음이 바로 성性이다.
성性은 마음의 본체, 마음의 본래 모습, 본마음이요, 다른 말로 도심(道心), 천심(天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인간의 총체적인 의식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불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마음은 본래의 마음(本心), 진리의 마음, 도심道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 수행의 핵심으로 말하는 ‘명심견성(明心見性)’도 궁극으로 내 마음을 밝혀서 성性을 본다는 것이다. 命은 내 몸에 들어와 있는 삼신의 생명을 말한다. 명命은 목숨이요, 생명이요, 천명天命이며, 궁극으로는 조물주의 생명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인간의 육체는 얼마 살다 땅속으로 들어가 썩어 버리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삼신의 성령의 생명은 영원하다. 그 불멸의 생명력이 내 몸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불멸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게 수행이다. 하늘에서 인간을 내보낼 때 내려 준 명이 천명(天命)이다.
천명天命에는 삼신의 마음과 생명과 지혜와 신성 등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인간의 몸은 삼신의 모든 신성과 지혜와 생명이 한순간에 전달되는 일종의 광케이블로서 거대한 우주 생명의 도로다. 이를 통해서 모든 기운이 내려오고, 지혜가 열리고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성性과 명命!
사실 모든 종교의 결론도 성명학(性命學)이다. 유교도 성과 명을 닦는 것이 목적이다. 중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요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중용(中庸)』)
조화신(三神)이 나에게 내려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 바로 삼신의 본래 마음. 性이다. 내 마음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요, 천지의 마음이다. 하늘로부터 천명으로 받은 위대한 신성神聖! 그 본성을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道)이요, 인간이 가야 할 궁극의 길이다.
하늘의 조화신(造化神)이 내려와서 바로 나의 본래 마음, 인간의 본성이 됐다.
이 성性이라는 것은 심心방 변 옆에 날 생生자를 썼는데. 우리 마음이 생하는, 태동하는 그 바탕, 우리 마음의 본체, 심체, 우리 마음의 본원은 수행을 통해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나라고 하는 이 색신色身, 몸은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 법신法身이 된다. 그게 바로 성性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법성法性, 불성佛性과 같은 경계이다. 따라서 인간은 천지와 그 생명성, 신성이 동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체계적인 해석을 한 인물이 고려 공민왕 때 행촌 이암선생이다. 그는 ‘신神의 세 가지 본성이 바로 조화신,교화신, 치화신, 조교치(造敎治) 삼신이다.’라고 했다.
즉 신神은 창조적 손길로 만물을 끊임없이 지어내는 하늘의 조화신(造化神)은 만물을 낳고, 만물을 기르는 땅의 교화신(敎化神)은 만물을 가르키고,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인간의 치화신(治化神)은 만물을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다가 늙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이 작은 몸뚱아리, 색신色身이 아니고, 이 우주 자체인 우리들의 본래 몸뚱아리 법신法身은 조화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우리의 본성(性)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마음의 본성자리性는 바로 조물주 신성 그 자체다. 이건 엄청난 사실이다.
하늘天 아버지父의 신성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성性이 되고, 조화지신(造化之神)은 강위아성(降爲我性)하고, 땅地 어머니母 지구의 신성, 교화지신(敎化之神)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명命이 되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 불멸의 생명이다. 그래서 이 선사상(仙思想)이라는 것은 바로 성명정(性命精)에서 이 지구의 어머니의 신성을 근본으로 해서 선도仙道가 나왔다.
그다음에 만물을 다스리는 치화신(治化神)은 바로 인간의 몸에 들어와서 정(精)이 되었다. 이것을 성명정性命精. 하늘의 조화신, 땅의 교화신, 사람의 치화신. 사람은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 있는 3가지의 참된 것. 이것을 하나님의 마음(性),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命), 그리고 만물을 다스리는 생명의 동력원 정기(精)를 서양 사람들은 essence로 번역하는데 우리가 의학으로 보면 신장腎腸의 정수精水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신장腎腸의 정수를 축적해서 그걸 굳히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수도공부의 핵심인데, 지금은 남녀가 정(精)을 성을 즐기는데 쓰고 그러니까. 대부분 소멸당하는 것이다.
지금도 밤이 되면 보름달이 떠 있을 때 아, 낮처럼 환하네. 신수가 환하군요. 그 환(桓) 자를 쓴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에 자천광명왈(自天光明曰) 환(桓)이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광명은 환(桓)이요, 자지광명왈(自地光明曰) 단(檀)이요. 땅 어머니 지구로부터 내려오는 광명은 단(檀)이다.
환단(桓檀)은 바로 천지 부모의 조화광명이다. 이 광명의 실체가 무엇인가? 바로 그게 신(神)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神)이 자기를 현상 우주에 드러낼 때는 반드시 3수(三數) 원리로 사물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온 우주도 하늘(天)과 땅(地)과 인간(人)으로 자기를 드러낸다. 극미의 원자 소립자 세계로부터 극대우주 자체까지 모든 사물은 3수(三數)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몸도, 의식의 마음의 구조도, 三의 구조를 가지고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삼신(三神)은 조화,교화,치화의 신의 3대 본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삼신(三神)의 덕성과 조화의 신성과 생명과 광명이 하늘에도 그대로 깃들어 있어서 천일(天一)이라고 한다. 그 때의 일(一)이란 우주를 낳아준 신성을 말한다. 또한 땅에도 그대로 깃들어 있기 때문에 지일(地一)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지의 열매, 천지의 꿈인 인간 속에도 이 우주 삼신의 신성, 조화 광명의 생명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
그런데 인간은 온 우주의 거룩한 생명을 다 받아 나와서 천지부모의 뜻을, 우주의 뜻을 실현하는 진리의 중심적 존재다. 즉 천지의 모든 뜻을 이루는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인간이 천지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주체이기 때문에, 하늘땅보다 더 큰 자리라는 진리의 소식을 담아서 태일太一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명 자리, 그 신성이 바로 태일太一이다.
인간의 몸속에는 이 우주를 낳아준 삼신三神의 신성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늘도 땅도 인간도 똑같이 바로 조물주 하느님의 덕성과 신성과 광명과 무궁한 지혜를 다가지고 있다. 이게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가장 위대한 선언, 이걸 제대로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하늘에는 삼신(三神)이 있고, 땅에는 삼한(三韓)이 있으며, 인간 몸속에는 삼진( 三眞)이 있다.
삼진三眞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삼신( 三神) 이 우리 몸에 들어와 생긴 3가지 참된 것‘이 곧 성명정(性命精) 삼진( 三眞) 이다. 조화신, 교화신, 치화신이라는 삼신이 들어와 성(性)-명(命)-정(精) 삼진( 三眞)이 된다.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造化神은 내 생명의 근원, 내 마음의 뿌리 자리, 성( 性)이 되어 자리를 잡는다. 만물을 양육하는 敎化神은 나의 명命 , 순수한 우리말로 목숨이 된다.
목숨을 영어로 옮길 때, 수명(lifespan)으로 흔히 이야기하지만, 여기서의 명命은 수명, 생명, 그리고 천명( 天命) 사상까지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만물의 생명 질서를 바로잡는 치화신治化神은 내 몸의 정(精)이 된다. 내 몸속에서 삼신의 마음(性)과 생명(命)이 발동되는 것은 실제로는 내 몸의 정( 精)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속의 참 마음(性)을 닦고 내 속의 참 생명(命)을 키우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精을 잘 확보하는 것에 달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조화신이 내 몸에 들어와 성性이 되고, 교화신이 들어와 명命이 되고, 치화신이 들어와 정精이 된다. 이는 내 몸 속에 삼신 하나님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내 몸속에 우주의 생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이것이 삼신문화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전해주는 깨달음의 한소식이다.
性,命,精 삼진三眞은 인간이 진리를 깨달음에 있어서 어떻게 그 길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말해준다. 그래서 진리를 성취한 인간이 되고자 할 때, 삼진三眞은 우리에게 삼관三關으로 작용한다.
관關이란 무엇인가?
여행에서 뜻하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다. 그렇듯 성명정性命精을 지키는 것이 내 안에 내주한 삼신의 생명과 신성을 온전히 지켜 진리를 성취한 인간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선가와 불가의 수행자들이 이 삼관三關을 굳게 지키지 못하여 한순간 정신에 빈틈이 생기면, 바로 그 순간 천지에 가득 찬 마魔가 범하여 그간 쌓은 수행의 공력을 허물어 버린다. 수도승들이 깎아지른 절벽 위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性,命,精 삼진 三眞은 육체,몸을 뒤집어쓰면서 심기신 心氣身의 삼망 三妄으로 운용된다. 인간의 마음心 과 기氣와 몸身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3가지 허망한 것이라 불린다. 하지만 삼망三妄은 다름 아닌 삼진性,命,精이 인간의 하루 생활을 통해서 발현된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이고 나쁜 것이 아니다.
心氣身 삼망三妄은 학문을 닦고, 가정을 이루고, 출세를 하는 등의 모든 인간 삶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현실적 요소다. 실체가 없이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라 해서 삼망 三妄을 망령된 것, 거짓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창생들의 하루하루 고달픈 생활 속의 기쁨과 슬픔, 밝음과 어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등이 다 뭉쳐져서 인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이 삼망三妄을 달리 삼방三房, 3가지 방房이라 부른다.
방房이란 사람이 들어가 편히 쉬는 평화의 보금자리 이듯이, 평화와 안정, 행복과 조화로운 삶은 심기신心氣身을 잘 다스리는 데에 달려있다.
요컨대 造,敎,治 삼신이 우리 몸에서 그대로 화한 것이 곧 성명정 性,命,精 삼진이며, 그 삼진이 우리 몸에서 작동이 될 때 심기신 心氣身 삼망三妄이 된다. 즉 삼진과 삼망은 체용體用관계에 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性)이 작동을 한 것이 마음(心)이고, 인간의 목숨(命)이라는 것은 기(氣)로 발현되고, 정精은 몸(身)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심기신心氣身이 사물과 접해서 좀 더 감각의 차원에서 용사(用事)하는 것이 감식촉 感息觸의 삼도三途이다. 감感은 느끼는 것, 식息은 호흡하는 것, 촉觸은 촉감을 말한다. 인간의 마음心은 감정感으로써 표현되고, 기는 호흡息을 통해서 작동되고, 몸身은 촉감 觸을 통해서 느낀다.
이 삼도三途는 신神의 조화 세계에 들어 갈수 있는 3가지 문호(門戶), 즉 삼문三門이 된다. 대부분의 창생들은 감식촉感息觸에 끌려 타고난 기질대로 살다가 인생을 마친다.
그에 반해 삼신(三神)의 도를 아는 철인들은 감정感을 다스리는 지감止感, 호흡息을 고르게 하는 조식調息, 촉감觸을 금하는 금촉禁觸으로써 삼도三途를 잘 다스려, 궁극에는 자기 안에 내재된 삼신 三神을 발현시켜삼신의 조화 세계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감止感 , 조식調息, 금촉禁觸은 수행의 3대 요체이다.
신라 시대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던 원효대사나 화엄종을 확립한 의상대사도 이를 수행의 대의로 삼았다고 한다. 그들은 바로 삼신문화의 수행 원리로 도를 닦았던 것이다. 성명정 性命精 삼진 三眞 , 심기신心氣身 삼망三妄, 감식촉感息觸 삼도三途 이 모두의 상호관계를 이해할 때, 환단고기가 밝히는 인성론(人性論)을 종합적으로 깨쳤다 할 것이다.
삼신사상은 조물주 신의 정체에 대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동서문화의 본질적 차이를 보여준다. 삼신사상에 의해 동양과 서양의 신관, 우주관, 인간관이 확연히 구별된다. 유목문화에서 태동한 기독교 중심의 서양의 시각에서 볼 때, 신은 창조자로 하늘과 땅과 인간 위에 군림하는 초월신이다.
반면에 농경문화의 동양 사회는 천지인 삼재를 삼신의 자기현현自己顯現(self-manifestation), 즉 삼신이 현실계에 자기를 드러낸 것이라 본다. 따라서 천지인은 피조물이 아니다. 하늘도 신이요, 땅도 신이요, 인간도 신으로서, 천지인은 모두 살아 있는 삼신이다.
때문에 하늘 땅 인간 속에 삼신의 생명과 신성과 지혜와 광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이러한 천지인의 관계를 수리(數理)로 표현한 것이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모두 하나의 근원자리에서 나왔음을 한 일一 자로 표현하였다. 즉 천지인은 삼위일체적 존재이다.
하늘은 신神이고 땅은 귀鬼다. 지금은 서양사상이나 과학 등의 영향을 받아 ‘귀신’ 하면 아주 저급한 신명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천지가 신神이다. 천지가 귀신이란 말이다. 인간은 천지 부모의 가장 위대한 작품, 우주의 명품이다. 옛 사람들은 하늘을 ‘천일(天一)’, 땅을 ‘지일(地一)’ 인간을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정의했다.
마음은 동하기 전의 본래의 근원 모습인 본성과, 구체적으로 사물에 동화되어 작용할 때의 감정(情, emotion)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심통성정心統性情”, 즉 “마음은 성性과 정情을 통섭한다.”고 말한다.
수행을 통해 우리 몸의 천지 기운이 밝아지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물의 내면과 본성을 보기 시작한다. 수행을 하면 모든 생명의 본성인 신성(divinity)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본성이란 마음이 주변의 사물에 동화되기 전 단계, 근원 마음이다. 그것을 성性, 본성이라고 한다. 본성이란 ‘본래 성품’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본래 성품은 같은 경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짐승들이나, 돌멩이나, 흙덩어리나, 흐르는 물이나, 타오르는 불이나, 저 태양과 달, 은하계 별들이나, 그 본성은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본성은 열려있는 우주생명 의식이다. 대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돼 있는 환한 광명, 그러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의식이 평온해지는 대광명의 경계다. 천지만물과 하나가 된 일심 경계, 그런 절대 평등의 경계, 절대 순수 의식에 돌아가 머물러야 한다. 그 경계를 불가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수도修道의 궁극의 목적은 세속적인 말로 도통道通이다. 불교의 도법은, 오로지 견성見性을 하려고, 부모형제도 세상도 다 등진다. 도통을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심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명칭이야 참선이라 하든, 수도, 수련이라고 하든, 뭐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다 一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직 일심으로써만 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수도를 하다 보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水氣가 척추를 통해 올라온다. 그러면서 이 얼굴에서 만의회집지상(萬蟻會集之像)이 일어난다. 만의회집지상이란 일만 마리의 개미가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의회집지상이 되면 개미가 얼굴에 기어다니는 것처럼 섬섬대서 못 배긴다. 그런데 이건 피부 밖에서 그러는 게 아니고 피부 속에서, 살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가려워서 도저히 못 배긴다. 그게 바로 水氣가 순환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만의회집지상은 아주 미세한 세포에까지 수기가 올라오면서 기혈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그게 얼마 지나면 완전히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 개선이 된다. 그 경지에 가면 그런 현상이 다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주 피부도 말쑥해지고, 눈도 유리알보다 더 반질반질하니 광채가 난다.
수도하는 사람은 눈을 보면 안다. 또 한편으로는 인당印堂이 얼음을 갖다 얹은 것 모양 시원하다. 육체적으로 수승화강이 돼서 체질이 완전히 변화되면, 청명한 맑은 기운이 하늘까지 꽨다. 체질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변화한다.
그런데 무형인 정신은 ‘망형망재(忘形忘在)’가 된다. 자연하고 내가 합치되어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광명(光明)이 어느 정도까지 열리게 되느냐 하면, 저 십 리 밖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솔잎 갉아먹는 것까지 환하게 보인다. 그렇게까지 광명이 열린다. 그러면서 자꾸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다른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까지 간다.
그런데 수도 공부를 하려고 보면, 쉽게 얘기해서 무슨 마魔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자꾸 낀다. 간혹 수행공부하는 사람들 중엔 공부도 못 하고, 입 삐뚤어지고 눈 삐뚤어지는 구안와사口眼?斜 같은 병이 걸리는 사람이 있다. 또 여러 백 대 내려오면서 조상에서 남에게 원한을 맺게 해서 보복하려는 그런 크고 작은 척신들이 있다.
하나 예를 들어 수 년 전, 일주일을 한도로 해서 수련공부도 시키고 했는데 박선경이라는 사람이 한 5일쯤 돼서 초통이 됐는데 공부하다 말고 “왁!”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왜 그랬냐?” 하고 물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그의 큰아버지 얘기다. 강원도 산골짝에 갈 것 같으면 나무뙈기로 얽은 삽짝문(사립문)이 있어서 밤에는 그냥 닫아두고 낮에는 열어 놓는다. 거기는 도적도 없다.
하루는 그 큰아버지가 볼일을 본다고 어디를 갔다. 그 일정이 거리로도 그렇고 한 사흘 걸려야 일을 마치고 돌아오게 됐다. 그런데 그날은 얼마 가다가 아는 사람도 만나고 해서 술 몇 잔 먹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얼큰하게 술에 취해서 밤중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가 제 집에 돌아와 보니까 토방에 자기 마누라 신발하고 알 만한 동네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있다.
그걸보고 그 사람이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래서 욱 하는 생각에 헛간으로 달려가 도끼를 들고 연놈을 찍어 죽인다고 뛰어 들어갔다. 하니까 벌써 그 마누라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동네 사람만 그 도끼에 찍혀 죽어 버렸다.
이유야 어떻든지 그의 큰아버지는 사람을 죽였으니 철창엘 간 사실이 있었는데, 그때 박선경이 도통을 하려고 하니까 그 죽은 신명이 도끼를 가지고 찍으러 달려붙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가 유부녀 보다가 도끼 맞아죽었으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제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죽었기 때문에 복수를 하려고 한다. 신명세상도 그렇고 인간 세상도 저 잘못한 것은 전혀 생각을 안 한다. 그런 것이 척(隻)이다.
수행하려고 눈을 감으면,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안식(眼識)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또 몇 미터 이상만 떨어져 있어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냄새도 일정한 거리 이상이 되면 맡지 못한다. 이것이 보통 중생들의 몸이다. 그런데 수행을 통해 수승화강(水昇火降)이 되면서, 내 몸의 음양 기운이 개벽되어 율려도수를 회복하기 시작하면, 혼탁한 음양이 순수음양으로 정화된다. 그렇게 되면, 눈을 감아도 영적인 신神의 경계가 환히 보인다.
또 깊은 밤 주문(만트라,mantra)을 읽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귀에서 뚝 소리가 난다. 귓밥이 스스로 파헤쳐져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또 아주 먼 곳에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산에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춤추면서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내 의식의 경계가 천지의 대생명과 하나가 되어, 내 생명이 온 천지의 생명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체득하게 되는 경계가 있다.
정신이 확 깨져서 수행을 잘 하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없어진다. 내 몸뚱아리가 온 우주 생명 자체라는 열려있는 의식의 경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첫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한민족의 주문(呪文,Mantra)수행법
철인(哲人)은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의 한뜻으로 수행하여 망령됨을 고치어 참사람이 된즉 큰 신神의 기틀을 발하고 내 성품과 우주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여 천지의 뜻을 이루게 된다[삼일신고三一神誥)].
즉 위대한 성현들은 감식촉(感息觸)을 다스려 수행함으로써 신神을 통하고 우주를 통했다는 것이다.[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
감식촉(感息觸)은 3가지 문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통수행법인 삼신수행법에 나오는 개념들이다. 성현들은 이러한 수행의 경지를 통하여 심신에 통하고 우주에 통하는 삶을 체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 배달국시대 때의 수행법을 알아보자.
擇三七日(택삼칠일)하사 祭天神(제천신)하시며 忌愼外物(기신외물)하사 閉門自修(폐문자수)하시며 呪願有功(주원유공)하시니라. 3·7(21)일을 택하여 천신(상제님)께 제사지내고, 바깥일을 조심하고 삼가며 문을 닫고 수도하셨다. 주문을 읽어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하셨다.[삼성기전 상편三聖記全 上篇]
熊氏諸女 (중략) 每於壇樹下群聚以呪願 웅씨 제녀들은 (중략) 고로 매양 신단수 아래에서 무리를 지어 지극히 소원하는 주문을 외웠다.(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
[雄 (중략) 乃以呪術 換骨移神하실새 先以神遺靜解로...
환웅께서 이에 신령스런 주술로써 환골케 하여 정신을 개조시킬 때, 먼저 삼신께서 전해주신 정해법(靜解法)으로 정화시키셨다.(삼성기전三聖記全 下篇) 이와 같이 환웅천황이 웅족 교화의 기본 틀로 삼은 수행법은 주문수행이었다.
주문수행을 하면 특별히 호흡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호흡이 저절로 안정되어 복식호흡을 하게 되고 묵념정심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정신을 통일시킨다. 이런 수행의 전통이 있었기에 그후 5대를 전하여 태우의(BC3511~BC3419)환웅 때에 이르러 묵념 청심 조식 보정법으로 체계화 되었다.
句茶國本艾蒜所産也(구다국본애산소산야) 艾煎腹以治冷蒜燒食以治魔也(애전복이치냉산소식이치마야)
12 환국 중 하나인 구다국(句茶國)은 쑥과 마늘의 본산지이다. 쑥은 다려먹어 냉을 치료하고 마늘은 구워먹어 병마를 퇴치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환국본기)
한민족 고유 수행법 태을주(太乙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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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주 들어보기: http://bit.ly/taeulju
하늘과 땅과 인간을 수학으로 나타낸 것이 천부경의 天一, 地一, 太一이다.
사마천 사기 봉선서(封禪書)를 보면 전부 천지에 제(祭)를 올리는 그런 내용인데, 한나라 무제 때 궁궐의 동남방에다 태일전을 짓고 태일신(太一神)에게 천제를 올렸다.
전에 “용의 눈물” 드라마를 보면 태종 이방원이 비를 내려주옵소서 하면서 태일전(太一殿)에서 천제를 지내는데,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까지도 태일신(太一神)에게 천제를 올린 것이다. 그 용의 눈물 드라마 세트장이 전주에 그대로 있다.
사람은 천지의 열매로서 천지의 이상을 성취하는 주역이다. 그래서 인일人一이라고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따라서 태일太一은 천지의 주인인 인간 생명의 근원자리를 말하는 것이면서, 실제로는 천지와 인간과 신명이 태어난 본래 생명의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일太一을 영적, 신도(神)적인 경계로 말할 때 태을太乙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동방의 신교문화와 선가에서는 태을천太乙天이라 불러왔다. 도교의 경전 『도장道藏』을 보면 태을太乙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고려시대 때는 복원관(福源觀)에서, 조선시대 때는 소격서(昭格署)에서 태을제(太乙祭)를 지내 왔다.
世宗 6卷, 1年(1419 己亥 / 명 영락(永樂) 17年) 11月 24日(甲子) 2번째기사
○臺諫詣闕請曰: “ 從茂 罪之首而罰輕, 於國家萬世之典何? 李順蒙 受 金訓 馬, 豈得無罪?” 尹淮 對以“ 今日太乙醮禮齋也, 不敢以聞。” 臺諫退。 時, 政府、六曹以啓事詣闕, 將退, 上曰: “醮禮爲一身也, 敢不聽國家之 政?” 遂御便殿視事。【영인본】 2책 346면
대간이 궁궐에 나와서 청하기를 종무는 죄의 우두머리인데 벌이 경하니 국가 만대의 법에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순몽은 김훈의 말馬을 받았으니 죄가 어찌 없을 수 있습니까. 하니, 윤회가 오늘은 태을太乙 초례醮禮의 재계齋戒날이므로 감히 아뢰지 못한다고 말하여, 대간이 물러갔다.
성종 258권, 22년(1491 신해 / 명 홍치(弘治) 4년) 10월 13일(병진) 2번째기사
○傳曰: “ 《太一醮靑詞》 云: ‘冬至前近甲子’何也? 其問于直提學 金應箕 。 書啓曰: 十一月初一日甲子朔旦夜半冬至, 卽曆元也。 自冬至前近甲子至冬至日, 卽曆法所謂氣應也, 氣 應分齊, 則又爲甲子朔旦冬至矣。由是觀之, 則甲子朔旦冬至, 卽爲曆元, 而冬至前近甲子, 亦爲一歲紀數之始。甲子又爲支干之首, 太一天神之尊者, 故以是日醮之。”【영인본】 12책 101면 전교(傳敎)하기를,.... 태일(太一)은 천신(天神) 중에서 높은 神이므로, 그 날에 초제(醮祭)를 지내는 것입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소아과편(小兒科篇)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服梅花 可免出痘 十二月 收梅花 不拘多少 陰乾爲末 煉蜜丸 如實大 每一丸好酒化下念 太乙救苦天尊 一百遍 妙不可言
‘太乙’이란 모든 생명을 낳아준다는 ‘태생’(胎生)의 의미가 있다. 동서양 깨달음의 역사를 보면 깨달은 자들이 그 깨달음의 경계나 도의 궁극적 차원으로 태을(太乙)을 증언하고 있다. 태을신을 선불지조(仙佛之祖), 모든 신선과 부처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러면 하늘땅 천지는 인간 역사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삼신(三神)은 일신(一神)으로 3가지 손길로 창조 작용을 하며, 그 셋은 본래 하나다. 하나가 현실적으로 드러날 때는 음과 양, 둘로 나타난다. 그것이 하늘과 땅이다(天一과 地一). 그런데 하늘과 땅은 손발이 없다. 소리도 못 지른다. 순수 객관 세계다. 진리의 바탕, 진리의 원형이요, 만물의 생명의 뿌리다.
천지 부모의 손발이 되어 그 깊은 뜻, 높은 대 이상을 완성하는 자가 천지의 아들딸인 인간이다. 인간은 천지 부모의 뜻을 완성하는 자요, 천지의 궁극의 대 이상을 인간 역사 속에 실현하는 주인공이다. 때문에 너무도 지극하여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클 태太 자를 써서 ‘태일(太一)’이라고 했다.
“인간은 태일太一이다!” 인간은 천지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다. 우주를 창조한 원 조물주 삼신三神의 신성과 생명과 지혜와 광명이 인간의 몸속에 그대로 다 들어와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인간 삶의 3대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놀라운 가르침이 들어 있다. 진선미의 발원처가 다름 아닌 삼신(三神)의 3가지 덕성이라는 것이다. 삼신三神이 낳은 천지인의 덕성이 각각 진선미眞善美이기 때문에, 진선미는 삼신三神에서 발원한 영원불변의 가치이다.
上界主神은 其號曰天一이시니 主造化하사 有絶對至高之權能하시며 無形而形하사 使萬物로 各通其性하시니 是爲淸眞大之體也오.
하늘은 ‘청정과 참됨을 본질로 삼는 지극히 큰 본체(淸眞大之體)이다. 하늘은 언제나 맑고 참되다. 다시 말해서 하늘의 본성은 참(眞)이다. 그래서 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거짓된 세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지 대자연이 얼마나 넓고 신비로우며 무한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지 느낄 수 있다면 참의 세계, 진리의 세계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
下界主神은 其號曰地一이시니 主敎化하사 有至善惟一之法力하시며 無爲而作하사 使萬物로 各知其命하시니 是爲善聖大之體也오.
땅은 ‘선함과 거룩함을 본질로 삼는 지극히 큰 본체(善聖大之體)이다. 땅은 선하고 성스럽다. 때문에 박테리아에서부터 바다 속의 어족들, 공중을 나는 새들, 들판을 뛰노는 짐승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가 이 지구상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땅의 덕성, 선善은 마음씨가 착하다는 윤리적 의미의 선善이 아니다. 모든 것을 수용해서 어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낳아서 기르는 어머니 대지의 덕성을 일컫는 것이다. 뱀도 있고, 송어도 있고, 미꾸라지도 있고, 물방개도 있는 큰 연못, 택국澤國을 생각하면 선善의 덕성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中界主神은 其號曰太一이시니 主治化하사 有最高無上之德量하시며 無言而化하사 使萬物로 各保其精하시니 是爲美能大之體也시니라. 인간은 ‘아름다움과 지혜로 지극히 큰 본체(美能大之體)이다. 인간은 아름다움(美)를 추구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먼저 천지의 덕성인 참眞과 선善을 체득하고 생활화 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천지의 꿈을 이루는 태일太一이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천지의 광명과 신성, 지혜를 체득하여 천지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역사의 주인공’인 태일太一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 아름다워지려면 천지를 알아야 하고 천지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인간을 아름다움의 창조자요, 지혜의 주인으로 일컫는 미능대지체(美能大之體) 이 한마디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극치의 표현이자 진리에 대한 최종 정의라 할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항구불변의 가치인 진선미도 다름 아닌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일체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천지와 하나가 될 때, 우리 몸에서 진선미가 발현될 수 있다. 인간 삶의 제1의 가치인 진선미眞善美의 소자출所自出까지 밝혀주는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진정으로 한민족과 인류의 태고 역사를 기록한 역사경전일 뿐만 아니라 동서 종교와 철학에서 탐구해 온 여러 진리 주제에 대한 명쾌한 깨달음을 열어주는 철학 경전이요, 문화경전인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인간이 하늘과 땅의 참됨과 선함을 체득하여 마침내 아름다움을 실현한다’는 것이 [환단고기桓檀古記]의 진선미眞善美 사상이다.
11세 ‘도해 단군(BC1891~BC1835)’의 염표문念標文은 당시의 국민교육 헌장이었다. 염표念標, 항상 마음으로 헤아리고 그 가르침을 언제 어디서나 내서 쓸 수 있고 실천해야 되는 하늘의 글이란 말이다.
<하늘,땅,사람의 창조 정신과 목적>
其念標之文에 曰,
天은 以玄默爲大하니 其道也普圓이오 其事也眞一이니라
地는 以蓄藏爲大하니 其道也效圓이오 其事也勤一이니라
人은 以知能爲大하니 其道也擇圓이오 其事也協一이니라
故로 一神降衷하사 性通光明하니 在世理化하야 弘益人間하라“ 하고 仍刻之于石하니라.
천天은 이현묵위대以玄默爲大하니...”. 천天은, 하늘은 말할 수 없는 고요함으로 장대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수행을 통해 고요히 침묵을 해야 자연의 도와 합일이 되는 것이다. 동정動靜 법칙이니까, 정靜이라고 해서 죽어있는 고요함이 아니고 온 우주가 하나 되어 가지고 살아있다는 말이다.
“천天은 이현묵위대以玄默爲大하니 기도야보원其道也普圓이라” 하늘의 도라는 것은 보원(普圓)이다. 넓고 원만하다는 것이다. 하늘은 모든 만물을 포용하고 다 담고 있다. “기도야보원其道也普圓이요 기사야진일其事也眞一이니라.” 하늘이 하는 일이란 “其事也眞一기사야진일”, 참됨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참 되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늘의 정신과 하나가 되지를 않는다. 수행을 해도 광명이 열리지 않는다. 개안開眼이 안 되는 것이다. 거짓행위를 하고, 마음이 분열돼 있으면, 앉아 있어야 다리만 아프지 수행이 안 된다는 말이다. “기도야진일其事也眞一이다.” 참 진眞자 한 일一자라는 게 해석이 무궁무궁한 것이다. 거기에 태일太一사상도 있는 것이고, 바로 우주의 본성자리 속에 들어가는 비밀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天은 以玄默爲大하니 其道也普圓이오 其事也眞一이니라 하늘(天)은 아득하고 고요함(玄默)으로 광대하니, 하늘의 도(天道)는 두루 미치어 원만(원융무애)하며, 그 하는 일은 참됨으로 만물을 하나 되게 함(眞一)이니라.
地는 以蓄藏爲大하니 其道也效圓이오 其事也勤一이니라.
땅(地)은 하늘의 기운을 모아서(蓄藏) 성대하니, 땅의 도(地道)는 하늘의 도를 본받아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쉼 없이 길러 만물을 하나 되게 함(勤一)이니라.
人은 以知能爲大하니 其道也擇圓이오 其事也協一이니라.
사람(人)은 지혜와 능력이 있어(知能) 위대하니, 사람의 도(人道)는 천지의 도를 선택하여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서로 협력하여 태일太一의 세계(協一)를 만드는 데 있느니라.
故로 一神降衷하사 性通光明하니 在世理化하야 弘益人間하라“
그러므로 삼신(三神)께서 참마음을 내려주셔서(一神降衷) 사람의 성품은 삼신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性通光明) 수행을 통해 삼신의 천지광명을 회복하여 삼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弘益人間) 하라.
사실 모든 과학자들이 ‘이 우주의 꿈이 무엇인가? 우주의 뜻과 목적이 뭔가?’ 이것을 알고 싶어한다.
『신과 천문학』을 쓴 과학자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한평생 망원경을 가지고 우주를 더듬어 보니, 깊은 밤에 이런 의문이 들더란다. ‘야, 우주는 왜 이렇게 광활하냐? 이 우주는 왜 수많은 별들을 자꾸 지어내느냐?’ 하고 말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우주의 목적은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신학자나, 천문학자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왜 그런가? 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살아 있는 대도의 답을 전해주는 것이 <환단고기>밖에 없다.
태초에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 에서 우주와 인간은 자발적 창조(spontaneous creation) 과정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우주와 인간은 신의 개입 없이 자체의 자연 질서에 의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자들이 깨달음을 얻는 결정적 순간에 자신들이 받은 신적 계시를 고백한 일화들을 많이 알고 있다.
예로부터 인간은 대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주된 근거로 신을 이야기해 왔다. 그 신을 신교에서는 삼신이라 부른다. 이때의 삼신은 얼굴 없는 하나님으로 모든 존재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원신元神(primordial God) 이다. 그런데 삼신만으로는 인간과 만물이 태어날 수도, 현실 세계가 출현할 수도 없다.
삼신의 조화와 삼신에 내재된 자연의 이법을 직접 주관하여 천지만물을 낳고 다스리는 또 다른 신이 있다. 그 신이 바로 삼신일체상제 三神一體上帝 , 삼신과 한몸이신 상제님, 또는 삼신즉일상제 三神卽一上帝 , 삼신은 곧 한 분 상제님이신데 줄여서 삼신상제님 또는 상제님이라 부른다.
삼신상제님은 무형의 삼신과 달리, 사람의 형상을 하고 천상 보좌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유형의 하나님으로 주신主神(governing God) 이시다. 원신 元神(primordial God) 인 삼신이 만물을 낳았지만, 삼신의 작용과 창조 목적은 한 분 상제님의 손길을 통해서 실현되고 완성된다. 이것이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 또는 삼신즉일상제 三神卽一上帝 의 참뜻이다.
그러면 조물주 신을 삼신이라 부르는 것은 서로 다른 세 분의 신이 존재한다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한 분이신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성이 3 가지 손길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이 3수의 원리로 만물을 창조하며 변화를 열어나가기 때문에 삼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신神의 세 가지 손길은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 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삼신은 만물을 낳는 조화신, 만물을 깨우치고 기르는 교화신, 그리고 만물의 질서를 잡아나가는 치화신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은 하나 속에 셋이 들어있는 일즉삼一卽三, 삼즉일三卽一의 이치이다. 하나의 손가락이 세 마디로 나누어져 있듯이, 하나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작용하려면 셋으로 열려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물주 삼신이 홀로 자연과 만물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삼신이 먼저 우주에 충만한 하나의 조화기운(一氣)을 발동시켜 만물을 태어나게 한다.
조화의 이 황홀한 순간을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는 유인출만물(有引出萬物)이라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氣가 신神에 앞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신神과 기氣는 언제나 일체관계로 존재한다. 이 만물 창조의 핵심 원리에 대해 환단고기는 명쾌하게 집일합삼(執一含三) 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집일執一의 일一이 곧 우주의 일기一氣이고, 함삼含三의 삼三이 조교치 (造敎治) 삼신이다. 일기一氣를 잡으면, 즉 일기一氣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이루어지면, 그 속에서 삼신三神의 세 가지 손길 (造化,敎化,治化)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삼신사상은 인류의 원형문화인 신교가 밝히는 신의 세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다. 한마디로 동북아 신교문화의 정수가 바로 삼신사상이다.
주문(呪文,Mantra)수행이란 무엇인가?
참선에 빠져서, 참선만이 진짜 수행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문(만트라, mantra) 수행공부를 좀 우습게 아는 경향이 있다. 주문呪文의 세계를 잘 몰라서,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우주의 본성은 빛과 소리다. 그렇다면 주문呪文이란 무엇인가?
주문의 조화세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말(word)과 말씀(The Word)’의 차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내가 하는 ‘인간적인 말’이 성경신(誠敬信)이 충만하여 진실하고 정의로우면 ‘내 몸과 마음, 또는 내 몸과 우주 사이에 다리를 놓아 하나 되게 하는 신(神)의 도구가 바로 생명의 근원 말씀인 주문이다.
기독교의 『성경』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그 말씀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생명의 소리다. 신(神)의 소리다. 그 소리를 언어로 상징화시킨 것이 주문이다. 영어로는 ‘만트라(mantra)’라고 한다. 주문(呪文)에서 주(呪)는 빨 주(呪)자인데, 입으로 소리를 냄으로써 생명의 근원 에너지를 빨아들인다는 뜻이다.
주문(呪文)을 반복해서 읽으면 그 주문의 파동을 타고 그에 상응하는 우주의 신성한 에너지와 연결되어 그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다. 마치 코드를 꽂으면 그 즉시 전기가 통하고, 특정 TV 방송에 채널을 맞추면 그 방송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주문(呪文)이란, 내 몸과 마음, 나와 우주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어 나와 자연, 나와 우주를 하나 되게 하는 가장 신령스런 도구이며, 가장 신성한 신(神)의 언어이다. 수행은 우리 몸을 통해 우주 생명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또한 우주 생명 에너지를 흡수하는 일이다.
소리(Sound)의 힘
수행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소리를 내서 하는 사운딩 메디테이션(sounding meditation)과 소리를 내지 않는 사일런트 메디테이션(silent meditation)이 그것이다. 참선이나 단전호흡 같은 것은 사일런트 메디테이션에 속한다. 그리고 주문을 읽으면서 하는 수행은 사운딩 메디테이션에 속한다.
주문수행을 하면 특별히 호흡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호흡이 저절로 안정되어 복식호흡을 하게 되고 묵념정심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정신을 통일시킨다. 동서양 수행과 음악세계 등을 총체적으로 연구한 결과, 수행문화의 최고 결정체는 ‘소리’라는 것이 밝혀졌다.
좋은 소리,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이 더욱 잘 자란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임상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좋은 음악을 들려준 식물은 그렇지 않은 식물에 비해 눈에 띄게 생장이 촉진되었다. 이는 음악소리의 파장이 식물의 세포들에게 영향을 주어 세포가 활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을 들은 식물의 잎사귀에서 생기는 분비물을 살펴본 결과, 해충에게 해로운 루틴(Rutin)과 가바(Gaba)성분이 검출되는 등 농약을 뿌려준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음악을 들음으로써 자체 면역력이 향상된 것이다.
또 최근 일본에서는 소리와 글자의 파동이 물에 미치는 영향을 촬영했다. 음파 뿐 아니라 글자의 파동에도 물이 반응을 한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두 개의 컵에 물을 담고 한쪽에는 일본말로 ‘빠가야로(바보 멍청이)’라고 쓰고 다른 한쪽에는 ‘아리가또(감사합니다)’라 써붙이고 하루를 놓아두었다. 그리고 영하 20도로 순간 냉각시켜 물의 결정모양을 관찰했다.
‘빠가야로(바보 멍청이)’라고 쓴 물의 결정은 몹시 파괴되고 혼돈스러운 형태로 나타났다. 반면 ‘아리가또(감사합니다)’라고 써붙인 물의 결정은 아름다운 육각형으로 나타났다. 좋은 음악, 좋은 소리는 모든 생명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도태생 수도승이자 종교인 스리 친모이(Sri Chinmoy)는 자신이 쓴 책『The Source of Music』에서 ‘음악은 수행이다(music is meditation)’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구가 내는 소리 훔吽
Source of Earth's Hum Revealed, Space Symphony Possible By Robert Roy Britt
Senior Science Writer posted: 10:18 am ET 26 March 2000<우주의 교향곡, 지구의 "훔吽"소리의 이유가 밝혀진다>
Competing with the natural emissions from stars and other celestial objects, our Earth sings like a canary -- it drones on in a constant hum of a gazillion notes.
별과 다른 천체의 물질들과 비교해볼 때 지구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방사하는 소리는 마치 카나리(새의 일종)가 노래 부르는 것만큼 아름답다- 이 저음의 소리는 끊임없이 "훔吽" 소리를 계속한다.
If it were several octaves higher, and hence, audible to the human ear, it could
probably drown out the noise from a hundred TV talk shows.
만일 이 지구의 "훔"소리가 몇 옥타브 더 높았다면 우리들의 귀에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는 100여개의 텔레비젼 쇼 프로그램을 동시에 틀어놓아도 텔레비젼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들렸을 것이다.
But what causes the hum, which researchers call the background-free oscillation, has been a mystery.하지만 과학자들이 말하는 모든 진동 소리의 배경이 되는 "훔吽" 소리가 왜 나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불교 사전에서 정의하기를 ‘훔吽은 불신(佛身)이다.’라고 했다. 이 우주 만유가 태어난 생명의 조화 세계, 그것이 ‘훔吽’이다. 팔만대장경의 모든 가르침이 ‘훔吽’에서 나왔고 그 결론이 ‘훔’으로 귀결된다.
부처의 모든 장광설은 곧 ‘훔吽’의 도심, 인간 마음의 본체, 법신(法身) 자리, 그 생명을 체득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삼신의 본체 마음, 생명, 신성이 바로 ‘훔吽’이다. 인간이 성숙되어 우주와 하나 되었을 때, 그 우주 생명의 핵 속에 바로 ‘훔吽’이 들어있다.
티벳 만트라의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에서 ‘옴唵’은 모든 소리의 씨앗이고 ‘훔’은 모든 소리의 열매를 뜻하는 것이다. 또한 우주의 만유 생명의 열매인 ‘훔吽’은 또한 모든 소리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요약하면 ‘훔吽’은 모든 소리를 머금고 있는 소리로서 소리의 열매,치유의 소리다.
New Notes in Earth's Hum
Scientists discover more complex oscillations in planetary symphony
(Newser) - Scientists have discovered a new dimension to the sub-aural sound emanating from our planet’s crust, dubbed “Earth’s hum.” Researchers have known about the hum, detectable only by seismometers, for a decade, though its ultimate cause is unclear. They expected to find hidden oscillations, but the amplitude... More ≫ 출처: http://www.newser.com/tag/21631/1/earths-interior.html
Earth's Hum Sounds More Mysterious Than Ever Earth gives off a relentless hum of countless notes completely imperceptible to the human ear, like a giant, exceptionally quiet symphony, but the origin of this sound remains a mystery.
Now unexpected powerful tunes have been discovered in this hum. These new findings could shed light on the source of this enigma.
The planet emanates a constant rumble far below the limits of human hearing, even when the ground isn't shaking from an earthquake. (It does not cause the ringing in the ear linked with tinnitus.) This sound, first discovered a decade ago, is one that only scientific instruments ? seismometers ? can detect. Researchers call it Earth's hum.
출처: http://xeno-lovegood.blogspot.com/2008/04/earth-hum-sounds-more-mysterious-than.html
질병을 치유하는 ‘훔吽’ 사운드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이나 스탠포드(Stanford)대학에서는 소리가 인체의 질병치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인도출신의 하버드대 의학박사이며, 1900년대 대체의학의 황제라 불리우며『양자 치료법』,『사람은 늙지 않는다』 등의 책을 썼던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훔’이라는 소리는 병치유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훔’이란 ‘홀리스틱 사운드’(holistic sound, 인간 몸속의 생명을 통일적으로 치유하는 소리)이다. ‘훔吽’은 인체의 모든 세포를 동시에 진동하게 한다.
영국의 한 과학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시험관에 암세포를 넣어 ‘훔吽’ 소리를 쏘아준 결과 암세포는 진동 후에 터져버렸고, 인체의 보통 세포를 시험관에 넣고 ‘훔吽’소리를 쏘아주었더니 더욱더 건강하게 잘 자랐다.’
일본에서 출간된 『훔자의吽字義』는, ‘훔’의 조화정신에 대해 쓴 책인데, 거기를 보면 ‘훔吽’ 자를 분석해서 ‘훔’은 ‘아·하·우·마’라는 네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훔’은 이 우주의 법신과 화신과 응신의 기운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부처의 팔만사천법문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언어가 ‘훔吽’이라는 말이다.
도교의 경전에 정통 『도장道藏』 외에 전해 내려오는 판본이 몇 가지 있다. ‘훔치吽치’는 선지체(仙之體), 곧 영원불멸한 선의 생명의 본신[體]이다.”라고 하면서, ‘훔吽’ 자 ‘치哆’ 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창조가 형상화되는 소리, ‘치哆’ 자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신神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문에서는 치(哆)를 대정불변야(大定不變也), 곧 하나가 되도록 크게 바탕을 정해서 변치 않는다는 뜻이 들어있다. ‘꼭 그렇게 되도록 크게 정한다’는 의미다. 중국 당나라 때의 팔신선八神仙 가운데 한 사람인 여동빈이 ‘훔치(吽哆)’를 붙여서 주문을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훔리치야도래(吽哩哆㖿都來) 훔리함리사파하(吽哩喊哩娑婆訶’)는 과거 도교나 불교에서 부분적으로 읽은 것이다.
첫댓글 ★봄꽃들이 예쁘게피고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4월의 첫주일입니다 ♥
★봄~!가벼운 옷차림과 가벼운 마음으로 활짝 핀 꽃들을 보며~づ^0^)づ
★새로운 달을 기분 좋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마음 따뜻하게 곱고 향기가득한
편안한 시간 되셔요
오늘하루도 수고 만으셨씀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고운방문 감사 드립니다
고운밤되세요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