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잘할 수만은 없습니다.
승이 있으면 패도 있겠지요.
안 풀리는 경기든,
언론매체의 혹독함이든
모두 제 앞에 놓인
‘상대’일 뿐입니다.
제 자신이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면
극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해외 진출 허락한 한화 구단에
감사하며 메이저리그에 도전장
류 선수, 마곡사 불사에 동참
마곡사는 대광보전 대법당에
정성모아 성공기원 연등 달아
투구할땐 평정심 유지에 최선
야구! 한국에서는 스포츠고, 일본에서는 문화다. 야구의 본 고장 미국에서는? 삶 그 자체다. 연간 7000만 명 이상이 경기장을 찾고, 월드 시리즈 경기엔 미국 내 1억 명 이상이 TV를 통해 세계 최고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 수놓는 화려한 경기를 시청한다. 말 그대로 미국인들에게 야구란 삶의 일부분.
괴물 투수 류현진이 미국인들의 삶 일선에 뛰어들었다. 한국프로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 계약기간 6년에 연봉 총액 3600만달러(약 390억원).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일도 없다.
류현진. 그는 19살의 나이로 2006년 한화이글스에 입단해 18승 6패, 방어율 2.23이라는 신인답지 않은 괴력의 신기록을 달성한 장본인이다. 타자들은 그의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다. 볼카운트 접전, 한 방 노림수도 통하지 않았고, 연타조차도 허용치 않았다. 결국 타자들은 그에게 ‘괴물’이라 혀를 내두르고 타석에서 물러섰다. 6년 연속 10승 이상의 쾌거가 그의 지난 여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제 광속구와 체인지업을 무장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한화이글스에 약 280억 원을 선물하고 메이저리그로 떠나는 류현진 선수. 그가 LA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은 뒤 신문사와는 처음으로 단독인터뷰에 응했다.
“우선 저를 응원해 주신 야구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를 믿고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의 정성이 없었다면 이 자리 또한 없었습니다. ‘떠남’을 허락해준 한화이글스 구단에도 감사드립니다. 더 큰 꿈을 이뤄보라는 구단의 뜻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LA다저스에서도 그의 등번호는 99! 구단이 류현진 선수를 믿는다는 방증일 것이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부터 10승 이상, 2점대 방어율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몇 선발이든 최선을 다할 겁니다. 분명한 건 커쇼와 그레인키 보다 더 좋은 선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거라는 겁니다.”
다저스 1,2 선발을 책임질 커쇼와 그레인키는 한 시즌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수상한 선수들이다. 장차 그들을 뛰어 넘겠다는 당찬 의욕을 표출한 것이다. 호언장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로 만든 소가 사자의 포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그 어떤 타자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메이저리거라도 말이다.
미국 서부 끝인 캘리포니아에 위치해 있는 LA다저스는 한 시즌동안 이동거리만도 6만5000여 km. 한국에서의 이동거리 비하면 무려 6배. 관건은 체력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겁니다. 5선발 체제 속에 들었다 해도 등판 일자는 들쑥날쑥 합니다. 저녁 경기 등판했다가 다음 경기에서는 낮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도 다반사일 겁니다. 저만의 해결법이요? 잘 쉬는 것, 그 뿐이죠.”
모든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체력, 등판’문제를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한마디로 풀어내고 있다. 담대함이 전해져 온다.
모든 면모에서 자신감 넘치는 류현진 선수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영어!’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지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뭐, 이제부터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하하!”
호쾌한 웃음과 함께 기우를 단박에 긍정으로 바꿔버린다. 구단주 그룹에 속해있는 전설적인 NBA 스타 매직 존슨은 류현진 선수의 소통 문제에 대해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문제없다’고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이지만 일리 있다. 그에게 당장 필요한 건 마운드에서 뿌리는 ‘공 하나’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친형과 함께 지낼 예정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형 덕분에 당분간은 일상 소통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한국에서처럼 선수들과 함께 농담도 섞으며 함께 호흡하는 정도가 그의 목표다.
류 선수는 자신의 기사가 나오면 빠짐없이 다 챙겨본다. 하지만 ‘악성 댓글’은 유념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역시 ‘강한 남자’스타일. 하지만 미국 언론의 ‘류현진 흔들기’는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그들 눈에는 ‘루키’아닌가.
“항상 잘할 수만은 없습니다. 승이 있으면 패도 있겠지요. 안 풀리는 경기든, 언론매체의 혹독함이든 모두 제 앞에 놓인 ‘상대’일 뿐입니다. 제 자신이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면 극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는 어려움이 생길 때일수록 더 강해지는 타고난 마초 기질의 남자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성격이기에 가까운 지인조차도 그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때문에 그 해결책으로 자기개발서 등의 서적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지인의 권유로 읽었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아 참 좋았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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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진 선수가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지는 모습을 이제는 미국무대를 통해 지켜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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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종교 색을 드러내지 않았던 류 선수와불교와의 인연은 지난해 초부터 시작됐다. 불교신자로 잘 알려져 있는 한화이글스 4번타자 김태균 선수와 최근 은퇴한 박찬호 선수를 보며 좋은 일에 함께 동참하겠다는 의지로 마곡사에 1000만원을 선뜻 보시한 것이 인연의 계기가 됐다. 류 선수의 보시금은 마곡사 5층 석탑 앞에 세워질 배례석 조성불사 동참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사실 류 선수는 2006년 입단 후 큰 고비 없이 승승장구하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달려왔지만 2012년 시즌 초는 예년과 조금 달랐다. 그 불운이 바로 마곡사와 그를 인연 맺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이후 마곡사 주지 원혜 스님은 감사의 뜻으로 달마도를 선물하고 류 선수의 부모님도 아들의 선발 경기가 있어 대전야구장을 찾을 때면 마곡사에 들러 아들의 선전을 기원했다. 최근 마곡사는 류 선수가 미국에서도 마음껏 ‘엄마표 김치’를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스님들이 직접 키운 유기농 배추를 절여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마곡사는 지난해 11월 말 류 선수의 메이저리그 성공 기원을 발원하며 대광보전에 대형 연등을 달았다. 류현진 선수를 향한 국민들의 응원과 염원을 담은 연등이었다.
경기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화두를 타파하는 선사와도 같다. 집중력과 평상심은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20대 청년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면모다. 그의 경기 운영은 마치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나오는 ‘완급약조금(緩急若調琴)’을 떠올리게 한다. 거문고 줄을 고를 때 줄을 너무 세게 조이거나 너무 느슨하게 조여서는 좋은 소리가 나지 않듯 그의 투구 역시 ‘완급’의 최절정을 보여준다.
“투수로서 상대 타자에게 ‘내 마음’을 노출 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위기가 와도 불안에 떨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듯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긴장됩니다. 저도 사람인걸요! 여기서 맞으면 어쩌지? 하는 경우 많습니다. 하하하! 다만, 다양한 투구 패턴 변화를 통해 빠름과 느림을 조절하려 애쓰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죠. 더 노력할겁니다.”
이제 우리는 TV앞에서 류현진 선수를 기다린다. 150Km의 광속구에 체인지업이 빛을 발할 것이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깊은 밤 마음 졸이며 볼 하나에 움찔하고, 스트라이크 공 하나에 주먹을 불끈 쥐고, 삼진 하나에 짜릿한 환호성을 지르며 꿈과 희망을 키우게 될 것이다.
‘99 RYU’ 의 괴물이 보여 줄 투구는 ‘느림과 빠름’, ‘부드러움과 강함’의 절묘한 조화가 빚어내는 예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가 선사하는 야구미학에 빠져들 준비가 되어 있다. 코리안 특급의 명맥을 잇는 괴물 99 RYU. 비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