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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 6:1~4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상전과 종의 윤리 6:5~9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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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자녀들은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다. 아버지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종들은 주님께 하듯 상전에게 순종해야 하며, 상전들도 하늘에 상전이 계시니 종들에게 위협을 그쳐야 합니다. 각 사람은 선을 행한 대로 주님께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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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 6:1~4
자녀는 부모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는 삶’을 부모와 자녀 관계로 확대합니다(5:21). 자녀가 부모 앞에서 기억할 명령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순종하라’입니다(1절). 자녀는 부모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 ‘공경하라’입니다(2절). 자녀는 부모를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과 공경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3절)라는 약속이 주어진 계명입니다(출 20:12; 신 5:16). 한편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훈육해야 합니다(4절). 자녀의 잘못을 다룰 때 감정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존중과 배려는 부모와 자녀를 하나로 결속시킵니다.
● 더 깊은 묵상
자녀는 부모를, 부모는 자녀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나요?
부모와 자녀가 성경의 교훈대로 서로에게 행한다면, 그 관계는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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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과 종의 윤리 6:5~9
바울은 ‘상전과 종’의 관계를 교훈합니다. 당시 교회 안에 노예 신분의 그리스도인이 있었기에 주인과 종의 관계에 적용되는 도덕적 지침이 필요했습니다. 상전에게 순종하는 종의 태도는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이고, 순종의 기준은 ‘그리스도께 하듯’입니다(5절). 바울은 특히 상전을 기만하는 행위를 경고합니다. 종들도 영적 신분은 그리스도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6절). 각 사람은 자신의 행위대로 주님으로부터 대갚음을 받습니다. 한편 상전들은 종을 위협하는 태도를 그쳐야 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는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9절). 주인의 우월감과 종의 적대감은 대립을 초래합니다. 화평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종은 상전을, 상전은 종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나요?
비록 작은 일이지만 내가 주님을 섬기듯 기쁨으로 섬길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 사랑과 지혜로 다음 세대의 마음을 읽고 보듬어 주는 어른이 되기를 원합니다. 부모는 헛된 욕심으로 자녀를 훈계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약속된 복을 누리게 하소서. 참주인이신 주님을 신뢰하며 기꺼이 섬기는 종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49 예수 따라가며)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1절-9절, 아름다운 관계를 지키는 방법
바울은 에베소서를 마무리하면서, 먼저 아름다운 관계에 대해 말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종과 상전과의 관계에 대한 권면을 통하여, 서로를 존중하고 질서를 지키며 의무를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같은 믿음을 가졌다고해서 서로를 업신여기거나 신분이나 나이로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자녀들은 순종하고 부모는 주의 교훈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또, 종은 상전에게 그리스도께 하듯이 복종하고 상전은 총들을 차별하지 않고 대해야만 합니다. 그런 자세가 아름다운 관계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아이에게 성 내지 말고, 좀 더 참고 인내하면서,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길러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성실한 마음으로 감당해 나가기 위해 매일매일 열심히 노력하고, 집중하도록 하자
주변의 사람들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자가 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들을 실천해 나가도록 하자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의 부모와 자녀들에게 그리고 상전과 종들에게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부모와 자녀들에게 준 가정수칙은 성경에 근거한 가르침으로,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며 부모는 자녀들에게 주의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다음, 종들과 상전들에게 준 사회수칙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근거한 가르침으로, 종들은 상전을 그리스도께 하듯 섬기는 것이며 상전은 하늘에 상전이 있으므로 함부로 종들을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자녀들에게 주는 권면, 부모들에게 주는 권면, 종들을 향한 교훈, 상전들을 향한 교훈 등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자녀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권고의 말입니다. 근거는 신명기에 있는 십계명 중 제 오계명입니다.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입니다.
여기서 첫 계명이라고 한 것은 십계명 중의 첫 계명이 아니고, 약속을 동반하는 첫 계명이란 뜻입니다. 부모를 공순히 섬기면 주어진 수명을 다하고 죽을 것이라는 말로,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에서 ‘순종하다’라고 번역된 원어는 ‘경청하다’, ‘엎드려 듣다’의 뜻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경청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양육하라는 말입니다. 노엽게 한다는 것은 자녀를 모질게 대해서 분노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자녀들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행동이나 말 등을 삼가고 비합리적인 요구나 부모의 권위 남용 등을 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자녀를 화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잘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이나 원리로 자녀들을 양육하라는 것이지, 부모의 철학이나 방법으로 그리고 소원하는 것을 강요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 ‘아첨하는 사람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라’라는 말입니다. 그 당시 종들은 주인의 눈가림만 할 정도로 성실치 않게 일을 한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태도들을 지양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상전을 그리스도께 하듯 섬기라고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육신의 상전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은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이 누누이 말한 바와 같이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서는 날 선한 행위를 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쁜 마음으로 주께 하듯 하라고 한 것입니다.
배경과 묵상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 ‘종이든 자유인이든 누구든지 선한 일을 하면 주님에게 그만한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이는 초대교회에 있었던 신분의 격차에서 빚어진 것으로, 주인이든지 종이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한 몸으로 그것에 대한 상급은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시대와 나라와 민족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에도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 땅을 밟은 ‘사무엘 무어(모삼열)‘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상놈도 성도로 받으니, 양반들이 항의합니다. 복음 안에는 차등이 있을 수 없다고 선교사는 단호히 말합니다. 그러자 발끈한 양반들이 따로 나가 양반들만 구성된 교회를 세웁니다. 어떻게 양반이 상놈과 함께 예배를 드리냐는 것입니다. 1911년 장로 투표 결과 ‘박성춘’이라는 분이 초대 장로가 됩니다. 그러자 또 양반들이 교회를 나가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합니다. 딴 이유 없습니다. 그가 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조덕삼’ 장로님은 자기 머슴인 ‘이자익’이 먼저 장로가 되자, 그를 즉시 ‘영수’라고 부르고 평양신학교에 보냅니다.
그리곤 목사가 되자 담임목사로 청빙해 극진히 섬깁니다. 이자익 목사님은 실은 조덕삼 장로님에게 사정사정해 마부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조선말 우리 개신교 초대 교회사의 이야기이지요. 로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 시대 로마 인구 중에 종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개 1/3 ~ 1/2 사이로 봅니다. 그 숫자는 당시 로마가 노예 경제라는 것을 대변해 줍니다. 노예들은 전쟁에서 잡아 온 포로들, 죄수들, 세습 노예 등으로 충당됩니다. 로마인들은 노예들을 후하게 대접해 주니, 그들 중에는 요리사, 이발사, 의사 등의 전문직을 갖고 있던 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 특히 서신서에는 노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초대교회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노예들이 많았다는 말입니다.
에베소 공동체의 문제도 주님을 영접한 주인과 종이 함께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믿는 노예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논리로, 주인의 권위를 무시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노예를 더 핍박하는 불 상사도 생깁니다. 더욱이 믿는 노예들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교회 장로가 먼저 된 자들도 있었다고 하니 그 문제는 자못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바로 그런 문제들을 타결하기 위하여 오늘 말씀을 해 준 것입니다. 노예들은 주인에게 순종하기를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주인들에게는 진짜 주인은 하늘에 계시니, 그분을 보아서라도 협박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말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합당하다고 봅니다. 상전을 주님 대하듯 하면 싫어할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직장 상사뿐만이 아닙니다. 직장 동료, 거래처 사람들, 배우자, 부모님, 더 나아가 친구와 이웃들에게 그렇게 하면 도무지 환영받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관계의 만능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실천한 사람이 양반보다도 장로가 먼저 된 노예, 상놈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전에는 육신의 종으로 상전을 섬겼지만, 주님의 사랑을 알고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모든 사람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 섬김을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직하게 투표 결과로 나왔던 것이지요.
아브라함 시대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최초로 인신매매된 사람입니다. 하필 팔려 온 곳이 이집트의 시위 대장 집입니다. 그가 주인을 얼마나 잘 섬기는지, 주인은 소유를 다 그에게 맡깁니다. 하지만 누명을 써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러자 그곳에서도 전옥을 얼마나 잘 섬기는지, 죄수와 그의 모든 사무를 전옥은 다 그에게 맡깁니다. 누명이 풀려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곤 바로를 얼마나 잘 섬기는지, 바로는 아예 그에게 나라를 맡깁니다. 요셉입니다. 그는 주께 하듯 하면 범사에 하나님의 형통이 넘치는 사람의 본보기가 됩니다.
나라까지 맡기게 하라! 우리는 가정과 직장과 더 나아가 사회와 나라와 시대를 맡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주께 하듯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셉에게 함께 했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들에게도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요셉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구원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즉,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의 관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천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로 가득했던 부부관계, 자녀관계, 이웃관계가 사랑과 존경의 관계로 회복된 자리가 바로 천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그렇다면 정말로 관계가 회복되었는지 아는 척도는 뭘까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는 보이는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영의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육신의 아버지를 멸시한다면 위선이고, 보이지 않는 영의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육신의 자녀를 학대하는 것도 위선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사랑과 존경으로 바로 세우라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1~4)
또한 모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모든 회복된 관계의 중심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이든지 이웃이든지 누구에게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하듯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6:5~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는 무엇입니까?
➲ 주님 안에서 순종하는 자녀여야 합니다(1~3절).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권면했던 바울은 이제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모든 판단의 기준이나 가치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모 공경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2절)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를 대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되는데, ‘...잘 되고 땅에 장수하는’(3절)것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 3:20)... 부모 공경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유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대개는 하나님도 잘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잘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믿을 때,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모리아산에서의 이삭은 120세가 넘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잡아 제단 위에서 바치려 할 때, 충분히 자신의 손으로 그런 아버지를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이삭은 순순히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삭의 일생에 복을 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내 자신의 인간 된 도리이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표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주님 안에서 양육하는 부모여야 합니다(4절).
바울은 이제 부모에게도 자녀를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4절). ‘노엽게 하지 말라’는 자녀를 모질게 대해서 화나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주의’라는 표현을 통해 주께서 주신 방법과 원리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부모들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대였기에 바울의 이러한 권고를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럼에도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울은 부모 된 자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고, 자녀들과의 관계를 주 안에서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즉, 자녀들은 부모인 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들이고,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점에서 자녀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나 교육학자의 방법이나 철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방법과 원리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겠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옳은 삶의 밑바탕에는 ‘주 안에서와 오직 주의’ 즉,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의 갈등이 해소되고, 그리스도인의 가정답게 행복한 가정, 행복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주님 안에서 인정하는 관계여야 합니다(5~9절).
바울은 계속해서 종과 주인의 관계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선 종을 향해서는 그리스도에게 하듯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할 것(5절)을 권면합니다. 잘하는 척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되,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기쁨 마음으로 섬길 것(6~7절)을 당부합니다. 더불어 주인에게도 종을 위협하지 말고 그들에게 선을 행할 것을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
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뭔가 달라도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주님의 구원의 빛을 받아 그 빛을 세상 가운데 다시금 비추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매번 불평이나 하고, 불만만을 토로하고, 조식의 규율을 깨뜨려 버린다면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직급과 일이 어떠하든지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피고용인은 고용주를 대할 때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듯이 충실하고 정직하게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고용주는 피고용인을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게 대우하고, 그의 인격 또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기에 무엇보다 서로 존중하고 섬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나 일상의 모든 삶의 자리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장소요, 하나님이 그분의 나라를 확장해 가시는 장소임을 잊지 말고, 서로를 인정하며, 존중하는 그러한 관계로 만들어 가기를 힘쓰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가정과 사회의 질서가 깨어져 상처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위로와 평안으로 격려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태도와 마음으로 우리의 가정과 직장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엡 6:1~3)...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은, 부부관계로부터 부모와 자식 관계, 그리고 일터에서의 상하관계로 확장됩니다. 즉 신자의 일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상을 무시하고, 예배당 안에서만 거룩한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의 거룩은 예배당 밖, 그의 일상에서 결정됩니다.
자녀들에게는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권면합니다(1~3). 부모들에게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책임을 강조합니다(4). 당연히 이것을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이것은 앞서 5장에서 말한 대로, 성령의 충만을 입고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부모는 서로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일터에서의 상하관계는 어떻습니까? 신앙은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일터에서도 나타납니다. 종들은 주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5). 겉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섬기고 일하라는 것입니다(6). 섬기는 주인(상전)이 그것을 어찌 다 알아주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억울한 심정이 든다면 주님께서 나중에 갚아주실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8). 이렇게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렇게 일하는 것이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실히 일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일터가 하나님의 성소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한편, 상전들은 종들을 위협하지 말아야 합니다(9). 상전이든 종이든 그들의 주인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1절 :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피차 복종'(5:21)의 원리 아래, 성도 간의 복종이 겸손이고 부부 사이의 복종이 사랑이라면, 자녀가 부모에게 해야 할 복종은 순종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께서 부모에게 주신 권위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단, "주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백성으로서 주의 통치를 받으며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가 주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요구할 때는 더 큰 권위에 근거하여 거절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이제는 부모님 다 떠나시고 안 계시지만 제대로 순종하지 못한 모습의 후회는 남아 있다.
물론 겉으로는 순종하는 모습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큰딸로 자라면서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마음에서까지 동의하며 순종하지 못한 모습은 너무도 많다.
이제는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도 못할 부모님!
부모에게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할 것이다.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 하심을 잘 깨달아야 한다.
부모님 말씀이라고 죄 된 일을 시키는 것까지 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 안에서 순종하는 모습을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도 잘 가르쳐야 한다.
2,3절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는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약속이 있습니다(출 20:12). 이 계명에만 특정한 약속이 딸려 있을 만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부모 공경은 안식일 준수와 함께 약속의 땅의 질서를 유지하고 복을 누리는 근간이었고,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님의 복을 공급받는 통로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자녀는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복을 받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에 유념한다.
자녀 된 도리를 할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말씀은 영원하다.
자녀들이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길 바란다.
4절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피차 복종'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소장품 정도로 취급되던 시대에 바울은 자녀의 감정까지도 섬세하게 배려하라고 파격적으로 명령합니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소유의 인격체로 대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자녀이니 부모의 욕망이나 이 세상의 가치를 따라 교육하지 말고,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왜 그러지 않느냐고 부모는 자녀를 다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자녀들의 몫이고 그럴 수 있도록 잘 지도함이 필요할 뿐이다.
부모도 자녀를 향해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며 자녀를 소유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잘 양육할 책임만 있는 것이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더 유념하자.
이제는 장성한 자녀이지만 그들에게 해야 할 부모의 의무는 주님 말씀 안에 있음을 명심하자.
5-8절 :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맥락 안에서, 바울은 '피차 복종'의 원리를 종과 상전 사이에도 적용합니다. 종은 상전을 대할 때 그리스도의 종이 그리스도를 대하듯 해야 합니다. 일편단심으로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드는 것처럼 행동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는 절대 주인이 볼 때만 잘하거나 환심을 사려는 마음으로 일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은 몰라도 주께서는 우리 마음속 의도까지 다 아시고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하신다.
모든 기준은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다면 모든 자의 화합과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일하는 자들은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야 한다.
속임수와 자기 생각으로 주인의 뜻을 거스려서는 안 된다.
인과응보라는 말을 떠올린다.
부메랑이라는 말도 있다.
내가 행한 대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누구를 대하든지 그리스도께 하듯 한다면 서로의 관계가 더 아름다울 것이다.
때문에 주님께 전심으로 섬길 수 있는 자세가 먼저다.
전심으로 주를 향하여 살 수 있길 소망한다.
9절 :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상전도 종을 대할 때 그리스도께 하듯 인격적으로 대하고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면 법을 앞세워 힘없는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출처 : 매일성경 9/10월호
윗사람은 또한 윗사람답게 행동해야 한다.
좀 가졌다고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
아랫사람을 하대해서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위협을 그치라 하셨다.
누구에게든지 자기보다 윗사람이 있는 것이다.
자기가 받고 싶은 대우를 부하 직원들에게 행함이 마땅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때 이 사회는 더 밝아질 것이다.
그 일을 바로 오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내일이 아니다.
오늘 이 시간이다.
모든 것을 주님의 기준으로 행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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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능력의 하나님, 태초에 세상을 만드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질서를 통해 그 선하신 뜻을 선포하였음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보혈에 의지하여 날마다 공경과 섬김의 삶을 쉬지 않고
위로부터 허락된 참 복을 체험하며 나아가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창고를 열어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