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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염색을 하였습니다. 아버님을 닮아서 일찍 머리가 하얗게 되었고 아직은 젊은 나이였기에 염색을 시작하였습니다. 염색을 하지 않고 지내는 동창신부들도 있었습니다. 염색을 해야 하는 이유도 찾으면 많고, 염색을 하지 않는 이유도 찾으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적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외부의 일정이 대부분 취소되면서 20년 동안 하던 염색을 그만두었습니다. 오랫동안 가려졌던 하얀 머리카락을 보았습니다. 조금은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습니다. 지인들도 좋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염색을 하는 것도, 염색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며 기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문도 새롭게 지면을 개편하곤 합니다. 최근에 평화신문은 지면을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정민 베르나르도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사보다는 야사가 흥미진진하듯이 정민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한국 교회사의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김혜경 세레나 연구원의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도 있습니다. 교회사의 큰 사건을 그림으로 보면서 해설을 읽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분도회의 박재찬 신부님의 ‘토머스 머튼 영성 배우기’가 끝났고, 작은 형제회 호명환 신부님의 ‘프란치스코 영성’배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성인(聖人)은 업적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인은 삶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낸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오늘은 도미니코 사제 축일입니다. 동창 중에는 두 명이 도미니코 본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신부님은 운동을 아주 잘 하셨습니다. 테니스, 농구, 축구와 같이 공으로 하는 운동을 잘 하였습니다. 다른 신부님은 음악을 잘 하셨습니다. 전체 회식이 있을 때면 우리 반을 대표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두 분 신부님 모두 한번 마음먹은 것은 꼭 실천에 옮기는 성격이었습니다. 한분은 운동만으로 20킬로를 감량하였습니다. 그것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감량도 중요하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신부님은 악기를 손에 잡으면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하였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동창 신부님들을 생각하면서 문득 생각합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실천이다.’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정작 실천을 할 때는 주저하곤 합니다. 실천을 하다가도 며칠 하고 그만두곤 합니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금연을 하겠다고, 금주를 하겠다고,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은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어머니에게서 난 자녀들도 각기 재능과 성격이 다르듯이 한 못자리인 신학교를 나왔지만 저마다 다른 재능으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있습니다. 축일을 맞이하는 동창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전에 이런 격언을 배웠습니다. ‘Rome was not built in a Day!'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텃밭을 가꾸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있습니다. 여린 모종이 잎을 내고, 줄기를 세우며 꽃을 피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꽃이 지는 자리에는 방울토마토, 고추, 오이, 호박이 열렸습니다. 물을 주고, 지지대를 세워주고, 거름을 주면 텃밭은 좋은 결실을 맺습니다.
예전에 주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를 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말씀 역시 신앙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태산이 높다고 하지만 하늘 아래에 있는 뫼’일 뿐입니다. 오르지 못할 산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믿음은 인내와 성실함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조재형신부)
2020년 가해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산을 옮길 믿음이 있다면 삽부터 산다>
복음: 마태오 17,14ㄴ-20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간질병 마귀에 걸린 아이를 치유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타볼산에서 변모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내려오시는 중이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안 계시니 먼저 제자들에게 이를 청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그 마귀를 쫓아낼 수준까지는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실 때 제자들도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있는 가운데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에 제자들이 못 쫓아내는 마귀가 없고 못 고치는 병이 없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매우 암담합니다. 우선 우리 안에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때 제자들은 시도라도 해 보았습니다.
저도 본당에 있을 때 아프다고 안수해 달라고 오시는 분들이 제일 겁났습니다. 어차피 제 믿음으로는 안수해 줘 봐야 치유가 안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고서도 “병원 가보셔야죠!”, “수술 잘 받고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음 안에서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열매로 주어질까요, 씨앗으로 주어질까요?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을 옮기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만약 복권에 당첨될 믿음이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먼저 복권을 살 것입니다. 한 번에 안 되면 또 살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들이 맞아가며 정말 믿음이 성취될 수 있음을 더 확고하게 믿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엔 반드시 당첨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이 자라나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자들이 예수님께 꾸중을 받는 것은 “그동안 왜 믿음을 성장시키지 못했느냐?”인 것이지, 믿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한자성어를 잘 압니다. 중국의 어느 마을에 ‘우공’이라는 사람이 죽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을 앞에 있는 큰 산 때문에 외지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산을 옮길 계획을 짭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어디서부터 옮길 것인가를 궁리하고 삽을 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못하면 내 아들이 이을 것이요, 아들이 못하면 손자가 이을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게 한 노인이 산을 옮기기 위해 매일 산을 파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자, 이에 감복한 임금이 산을 옮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인도에서 ‘다쉬라트 만지히’라는 농부가 바위산을 뚫은 일이 있습니다. 그가 살던 마을은 바위산으로 갇혀있어 다른 마을로 가려면 70km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다쳤을 때 그 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 그가 산을 파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는 염소를 팔아 망치와 정을 사고 그것으로 22년간 돌을 깨서 110m의 길을 만듭니다. 이로 인해 70km가 5km로 단축되었습니다. 인도 정부에서 그에게 상을 주려고 했을 때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만든 길을 포장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길이 완성된 것입니다.
현대에 이렇게 치유의 기적이 부족한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은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씨로 뿌려집니다. 살이 빠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식사량을 줄이기 시작하고 운동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믿으면 옮겨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삽과 곡괭이를 사야 합니다.
재테크 크리에이터 주언규 씨가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왔습니다. 그의 수익이 한 달에 1억 8천이 넘을 때도 많다고 합니다. 180만원 월급쟁이에서 어떻게 100배의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재테크 비법 때문입니다. 비법은 간단합니다. 우선 삽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쇼핑몰을 만드는 데는 그리 큰 비용이 안 든다고 합니다. 물론 잘 안 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안 되는 카페도 한 명은 손님이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매일 한 개씩, 수백 개의 쇼핑몰을 만드는 것입니다. 잘 되는 쇼핑몰이 하루 10개를 판다면 그는 100개의 쇼핑몰을 만들어 하나씩만 판다고 합니다. 결국, 다 합치면 한 달에 엄청난 수입이 들어옵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키워나가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몸이 아프다고 안수해 달라고 하는 분들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나에게 치유할 능력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크게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산 성당에 있을 때는 미사가 끝나고 나면 항상 수십 분의 신자분들이 머리를 숙이고 계셨습니다. 100명 안수해 드리면 2~3분은 몸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볼 때 감기가 낫는 정도인 것도 있고 조금 신기한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본당 평일 미사 중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치유의 미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분께 병자성사를 드리면 한두 분은 분명히 치유되는 분이 나올 것입니다. 병자성사는 돌아가실 분들만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성사입니다. 그 좋은 것을 돌아가시기 직전인 분들에게만 주기 위해 묵혀두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키울 때야 주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이 꾸중을 듣지 않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전삼용신부)
2020년 08월 08일 토요일
[백]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스페인 북부 지방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덕을 쌓는 데 몰두하던 그는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도미니코 사제는 1206년 설교와 종교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우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강조하였다. 1221년에 선종한 그를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입당송
집회 15,5 참조
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본기도
주님,
복된 도미니코 사제는 주님의 진리를 전하는 훌륭한 설교자였으니
저희가 그의 성덕과 가르침으로 도움을 받고
그의 전구로 보호를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하바쿡 예언자에게, 뻔뻔스러운 자의 정신은 바르지 않으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를 한탄하시며 마귀 들린 아이를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 하바쿡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2─2,4
12 주님, 당신은 옛날부터
불멸하시는 저의 하느님, 저의 거룩하신 분이 아니셨습니까?
주님, 당신께서는 심판하시려고 그를 내세우셨습니다.
바위시여, 당신께서는 벌하시려고 그를 세우셨습니다.
13 당신께서는 눈이 맑으시어 악을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잘못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시면서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바라보고만 계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이를 집어삼켜도 잠자코 계십니까?
14 당신께서는 사람을 바다의 물고기처럼 만드시고
우두머리 없이 기어 다니는 것처럼 만드셨습니다.
15 그는 사람들을 모두 낚시로 낚아 올리고
그물로 끌어 올리며 좽이로 모으고 나서는
기뻐 날뛰며 16 자기 그물에다 제물을 바치고 좽이에다 분향을 합니다.
그것들 덕분에 그의 몫이 기름지고 음식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17 이렇게 그가 줄곧 그물을 비워 대고 민족들을 무자비하게 죽여도 됩니까?
2,1 나는 내 초소에 서서, 성벽 위에 자리 잡고서 살펴보리라.
그분께서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내 하소연에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보리라.
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
3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4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8-9.10-11.12-13(◎ 11ㄱ)
◎ 주님, 당신을 찾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나이다.
○ 주님은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심판하시려 어좌를 든든히 하셨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심판하시고, 겨레들을 올바로 다스리시네. ◎
○ 주님은 억눌린 이에게 피신처, 환난 때에 피난처가 되어 주시네. 주님, 당신을 찾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니, 당신 이름 아는 이들이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
○ 너희는 시온에 앉아 계신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업적 백성들에게 전하여라. 피 갚음하시는 분이 그들을 기억해 주시고, 가련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잊지 않으신다. ◎
복음 환호송
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4ㄴ-20
그때에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15 말하였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코린 2,1-10ㄱ)와 복음(루카 9,57-62)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 기도
주님,
복된 도미니코의 전구로 저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어주시고
이 제사의 놀라운 능력으로 주님의 은총을 베푸시어
신앙을 지키는 모든 이를 보호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복된 도미니코를 기념하며 천상 성사에 참여하였으니
그의 설교로 더욱 빛나게 된 주님의 교회가
그의 전구로 도움을 받고
성체의 힘으로 경건한 신심을 키워 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지체하지 않는다. ……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오늘 독서에서 하바쿡 예언자는 민족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비록 유다 왕국이 잘못하여 바빌로니아를 하느님의 도구로 삼으신 것을 인정하지만, 악인이 의인을 처벌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로 번민하다 하느님께 따졌던 것입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는 모두 스러질 것이며, 오직 의인들만이 ‘성실함’을 통하여 살게 되리라고 답하십니다.
이처럼 믿는 이의 삶에 근거가 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의인의 성실함은, 화답송의 시편 저자가 노래하듯 “당신을 찾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성실함에서 비롯됩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하바쿡에게, 겉모습은 그렇지 않게 보여도 분명히 실재하는 당신의 성실함에 관한 환시를 주십니다. 따라서 믿는 이들은 정해진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지 못하여 의인의 성실함 대신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낸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쉬움을 토로하십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갈라 5,22 참조). 우리의 인내가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으로 드러나도록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인내가, 바로 의인의 성실함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며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께서는 변치 않으시는 분, 인내가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 하느님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아쉬움 없고,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도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첫댓글 인도에서 ‘다쉬라트 만지히’라는 농부가 바위산을 뚫은 일이 있습니다. 그가 살던 마을은 바위산으로 갇혀있어 다른 마을로 가려면 70km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다쳤을 때 그 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 그가 산을 파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는 염소를 팔아 망치와 정을 사고 그것으로 22년간 돌을 깨서 110m의 길을 만듭니다. 이로 인해 70km가 5km로 단축되었습니다. 인도 정부에서 그에게 상을 주려고 했을 때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만든 길을 포장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길이 완성된 것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