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게 손을 내미네
당신의 손은 물결처럼 가벼우네
(중략)
당신의 손이 길을 만지니
누워 있는 길이 일어서는 길이 되네
당신은 슬픔의 살을 만지니
머뭇대는 슬픔의 살이 달리는 기쁨의 살이 되네
아, 당신은 죽음을 만지니
천지에 일어서는 뿌리들의 뼈
(후략)
강은교 시인의 시<당신은 손. 중의 일부 구절이다.
이병주 선생이 말했던가, 햇볕의 손길이 닿으면 역사가 되고,
달빛의 손길이 스치면 신화가 된다. 길가의 돌맹이도 거장이 손을 내밀면 예술이 된다. 농부의 따뜻한 손길이 닿은 곡식이 잘 자라고, 주인이 얼마나 따뜻한 손길로 꽃밭을 가꾸느냐에 따라 꽃의 색깔과 향기가 달라진다.
사람도 그러하다. 어떤 이의 손길이 닿으면 꿈과 신화같이 춤을 추는 존재가 되고, 어떤 이의 손길이 닿으면 멀쩡하던 사람도 악인이 된다.
손은 언어다. 우리는 반가움의 표시로 악수를 하고, 약속의 표시로 손가락을 건다. 공감하고 사랑한다는 표시로 어깨를 어루만지고, 헤어질 때는 손을 흔든다. 따스한 손길이 한 번 스쳐갈 때마다 몇천 마디의 말이 교차한다.
마이더스의 손은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었다. 결코 좋은 손이 아니었다. 만지는 것마다 사랑의 꽃이 피는 손이 좋은 손이다.
손이 참 아름다웠던 분이 있다.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나병에 걸린 사랑하는 이들과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몸에 손을 대셨다. 쓰러진 야이로의 딸을 손을 잡아 살려주셨고, 열병에 시달리던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으며, 검푸른 바다로 빠져들던 베드로의 손을 잡아 올려주셨다. 그의 손이 닿은 곳마다 생명이 깨어났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눅 4:40
최첨단 시실을 자랑하는 서울의 어느 건물에서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너는 왜 여기서 커피를 사 먹어? 로봇이 배달하지 않아?"
"응, 커피만큼은 사람이 직접 내려준 것을 먹고 싶어서 말이야!"
그 사무실에서는 로봇이 서류를 배달하고, 커피까지 서비스해주나 보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려고 하니 왠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주는 정이 그리운 것이다.
우리는 하이테크 시대에 살고 있다. '하이테크'는 컴퓨터, 반도체 로봇, 스마트폰, 바이오테크놀로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고도의 첨단기술을 의미하는 '하이테크놀로지'(High-Technology)의 줄임말이다.
하이테크는 물질적 번영을 가져다주는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다. 동시에 사람들을 기술의 울타리에 가두어 기술 중독중에 걸리게 하고, 인간 정신과 영혼을 왜곡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하이테크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해 《메가트랜드》로 유명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자신의 딸 도리스 나이스비트와 함께, 작가 더글러스 등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을 인터뷰하여 《 하이테크 하이터치》 (High Tech, High Touch)를 저술했는데, 그 결론은 "하이테크 사회에서 하이터치(high touch)가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하이터치'는 직역하면 '고감도'라는 뜻인데, '하이테크'의 반대 개념으로 인간적인 감성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인간미 넘치는 접촉, 하이터치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인간의 얼굴을 가진 기술자, 인간의 마음을 품은 경영자, 조직 관리자, 마케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감동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논리성과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 때문이 아닐 것이다. 우리를 공감하시는 그 사랑의 마음, 우리를 어루만져주시는 그 사랑의 손,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랑의 진실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 : 규장
지은이 한재욱
첫댓글 주님의 하이터치
생명 손길의 하이터치
당신의 손이 길을 만지니
누워있는 길이 일어서는 길이 되네
아. 당신은 죽음을 만지니
천지에 일어서는 뿌리들의 뼈
주님께서 하십니다.!!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