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인근의 사찰(1) - 鳳鳴山 多率寺
부처님 생신날 뒷 날 인근의 다솔사를 찾았다.
보통날은 절간은 돌아보지 않고, 산(봉명산)만 올랐다가 내려오기 일쑤엿는데...
초파일 뒷 날이라 오래만에 절집을 살펴본다.
오늘은 매번 보던 다솔사와는 달라 보인다.
절은 그대로인데... 관심을 가지고 보면 또 다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무릇 사물이 다 그러할진대...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러하리!!!
금방 50장 사진이 꽉 찬다. 남은 사진도 있는데...
절 마당 오르기 전에 올려다 본 큰 법당.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사찰은 큰 법당이 '적멸보궁'이다.
오랜 절집임을 보여주는 주변의 울울창창한 나무들..
다솔사는 들어오는 입구의 노거수 長松들을 둘러보는 맛이 일품이다.
오랜 세월 절집과 함께하는 노거수 장송들의 기품을 바라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
多率寺란 이름이 어쩐지 "솔(松)을 많이 거느리는 절" 과 같이 느껴짐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만큼 절로 드는 입구의 장송들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이 소개했던 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대양루'..
대양루에서 내려다 본 계단과 주위 樹木..
대양루의 편액 글씨
오래된 애기단풍나무 古木
가을이 되면 애기단풍의 빠-알간 단풍이 장관이다.
부처님 감로수
불탄일 뒤 날의 큰 법당 마당..
줄을 서서 매달린 여러개의 봉축등..
'등이 꽃이요 꽃이 등'이다.
불을 밝혀 길을 찾는 꽃등불이다.
큰 법당 축담위에서 내려다 본 대양루..
수련도..
노랑어리연도..
양귀비도..
모두 부처님 꽃인가?
스님들도 꽃을 사랑하시나??
예쁜 꽃을 더 사랑하시나???
편안히 누워 계시는 큰 법당 부처님..
뒤쪽 등이 보이는 곳이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에도 부처님은 누워 계신다.
부처님 진신사리 108 과가 봉안된 적멸보궁 전탑..
큰 법당 옆의 백화등... 이도 燈이네..
꽃이 만발하여 단향이 그윽하다.
대왕산신각을 짓는다고 또 산을 파헤쳤다.
그대로 두는 편이 훨씬 나은데... 하기사 즁생이 부처마음을 알랴마는...
다솔사 창건 당시의 초기탑(흔적)
그랬다.
불과 5-6 전(?)만 해도 큰 법당엔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상이 계셨고,
좌우 입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계셨는데...
대웅전이던 큰 법당 이름도 진신사리로 인해 '적멸보궁'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부처님의 눈..
산으로 가면서 본 큰 법당 서쪽면 모습..
다솔사 녹차밭
효당스님(속명-최범술)은 대처승으로 이 절의 주지였다.
하기에 당시에는 이 절이 조계종 사찰이 아니었다. 아무려면...
이판사판(이판승사판승)인데 뭐....
나와 같은 배불뚝이 포대화상.. 우리앞에 다녀가신 미륵부처님의 化現...
봉명산
鳳鳴山은 봉황이 울음 우는 산이다. 봉황새를 볼 수 있는 산이다.
봉황은 간데 없고, 산새들의 노래소리와 산객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누나.
정상의 높이는 408m로 야트막하나 큰 절 다솔사와 서봉암, 보현암, 봉일암의 세암자를 거느린 참 좋은 산이다.
입구의 장송 말고도 산 아래엔 각종 활엽수가 울창하고, 산정에는 오래된 노송들이 자리하며,
산 뒤쪽으로는 소나무로 된 숲길이 걷기에 아주 좋다.
다솔사를 둘러보고 봉명산에 오르면 정상에 올랐다가 뒤쪽 소나무지대로 하산하여
평길을 따라 내려오면 1시간 남짓이면 된다.
보현암에 가서 석굴암과 석불을 보고 오면 2시간여..
멀리 서봉암을 돌아 내려오면 3시간 정도가 걸린다.
새로 조성된 '물고뱅이둘레길'까지 걷고 오면 4시간여가 걸리고,
마주 보는 이명산을 거쳐 북천쪽으로 내려와도 4시간정도가 소요되니 각자의 힘에 따라 택하면 된다.
오름길의 노린재나무 꽃
머루도 꽃 피울 준비를 하네...
봉명산 표지석
상층부로 밀려 온 소나무..
이들의 운명은 ??
전망대에 올라서면 삼천포와 남해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줄나비도..
애기풀의 꽃도..
땅비싸리도..
편백을 심어 놓고..
노란 안테나 비슷한 것이.. 무슨?
소나무숲과 편백숲의 하부 비교..
소나무숲 아래에는 잡목들이 잘 자란다. --- 소나무의 운명이다.
그에 반해 편백숲 아래에는 잡목들이 자라지 못한다. 진한 피톤치트(식물살상)를 내뿜기 때문이다.
운명적으로 소나무는 천이에 의해 사라지지만 편백은 세세손손...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빛..." 운명이야..
녀석 세줄나비네...
그래 '너도 밤나무'해라.
너도밤나무
참나무는 제 몸을 백화등에게 내어 준다. 보시하는 것인가?
해우소 부근의 울창한 나무들..
내려와서 집에 오가는 길의 노란 금계국..
밥은 해서 묵었고..
초파일 뒷 날의 절집을 였보려고 갔던 다솔사인데 절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고,
대양루도 다시 보이고, 울울창창한 숲길을 걸어 기분도 상쾌해졌다.
몇 년전에 중국 사천성의 어느 큰 절에서 불전함을 개봉할 때
그 장면을 사진으로 담다가 돌중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 그 중은 필시 땡초였으리...
절만 보고 중은 보지 못한 초파일 뒷 날..
다솔사도 보고, 봉명산도 걷고...
몽이가..
첫댓글 예전에 불교대학 다닐 적에 강사로 모셨던 양자물리학을 전공한 서울대 출신의 모주지 스님 말씀이 시주는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돈을 다 쓰고 그래도 남으면 시주를 하는데 5000원 이상 하지말라는 말씀과 자기가 승적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절집에 있으면 선수행만 하고 있어도 밥을 먹여주기 때문이라는 말씀과 이판승으로서의 선수행만 하고 싶은데 억지로 떠밀려서 사판승인 주지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 뇌리를 맴돕니다.
부와 권력에 맛을 들인 스님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는 절에 가면 1000원만 시주를 하고 주변인들에게도 1000원만 하기를 권합니다.
탤보
못살고 열심히 수행하시는
절에는 마이 조도 된다 쿠더라
내또 모(의곡사)주지한테 그날
같은 자리에서 들었다
마이마이 시주하세요
탤보야..
그럼 중밥은 누가 멕여주며, 포커는 멀로 치노?
이판사판 아이가?
괴기도 묵어야 되고, 루무싸롱도 가봐야제..
니 단디 해라.
요새는 부처님이 벼락 내린다 쿠드망..^^
삼정산 도봉 성님(승님,스님)처럼 밥대신 곡차로 대신하면 됩니다.
사견인데 스님도 사람인지라 심하지 않은 범위내에서 술과 고기는 어느정도 묵인을 하겠지만 오입과 노름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엄슴. 오입과 노름은 몽이랑 영구기랑 내 것도 모자란데...
초파일날 영구기는 열시미 절에 갔다 오고 나는 원격연수 출석 떼우느라 절 구경도 못했는데 훌라 치로 가서 영구기는 돈 다 꼻고 나는 25마넌 땄다.
엥구기 갔다 온 절..
문제있나 본데 수사의뢰해라..ㅋㅋ
'다솔사'란 절이
서기 503년(신라 지증왕 4년)에 창건되었으면
서기 527년(법흥왕 14년)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받기 이전이니
정말 역사가 깊은 절이다.
아마도 바다가 가까워
외래인(緣起祖師)의 접근도 용이했으리라 짐작된다.
몽아..
덕분에 구경 잘했다.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절이다..^^
서바 이건 사리가 아니고 다만데
고~뢰애..??
나는 사린줄 알고 올렸는데..ㅉㅉ
서방님 몸에 사리 나왔나!~아닐끼다 다말끼다 단디 봐라 다말끼다!
어! 세아보니 108개다!
다솔사....
우리가 고딩때 자주 놀러 갔던 다솔사...
그러니까 곤양 다솔사는
가야국 때에
인도로 부터 남방불교가 직접 전해져 온 곳이라 이른다.
(...츨처: 삼국유사...가야국기...김수로왕편...허 왕후 이야기)
그래서 절 집 배치와 모양도
북방불교(고구려를 경유하여 전해진)가 주류인... 일반 절 집에 비해 다른 점이 많다.
몽이가 소개한 비석도
지금 김해에 있는 [파사석탑-사진]과 석질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파사석탑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고, 인도 아유타 지방에서 생산되는 석질이라고 한다.
이런 유서깊고 그윽하고 기맥히 출중한 가람이
우리...가까이 있다는 것은 ... 분명, 큰복이다...
다솔사 주지와 해인사 주지를 오랫동안 하고
제헌국회 의원을 역임하신 최범술 스님은
일제 치하
진주 육거리에 해인중고(...지금의 동명고)
해인사에 해인대학(...지금의 경남대학교)를 설립하였다.
3.1 만세 운동, 형평운동을 주도하고 (주로...진고 뒤 의곡사에서 만났다.)
잊혀졌던 차茶를 복원하여 대중화 시키셨다.
(그래서 다솔사에 차밭이 많다...하동 쌍계사 부근이 차재배에 적합하다고 재배장려)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발굴(?)하여 차문화를 부흥시키신 분이시다.
둘째 부인은 이화여대 출신인데,
10년전에 뵈었을 때까지는 정정하셨지만...지금은 아마도 돌아 가셨을 듯 하다...
어릴 적 들은 이야기인데,
"최범술은 도술도 부리고, 결혼도 하고 첩살이도 한다"쿠더라.
그때는 참 신기했다.
도술보다도 중이 우찌 결혼하는지가...
비구도 대처(주로 일본승려)도 모를 때니까.
해방되고 한참후..
사찰에 자리잡고 있던 대처승들은 종단의 주인이 된 조계종단의 비구승들에게 대부분 쫓겨났다.
대처승들은 머리를 깎고 비구행세를 하며 사찰에 남아 법란을 수차례 일으키기도 했다.
아침에 숙소 주변에서 노란 꽃을 보았는데 그 꽃이 금계국이었네. 몽이의 가는 길을 보면 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