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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력을 신앙 |
속성을 수행 |
사은, 사요 |
삼학, 팔조 |
우리가 일원상 진리의 위력을 신앙하고, 그 속성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위력을 신앙하는 것은 사은 사요로써 밝혀주었고, 그 속성을
내가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삼학 팔조로써 밝혀주셨습니다. 그 삼학
팔조를 일상 수행의 요법 9가지 조항으로 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일상
수행의 요법을 읽고 외우는데 실천하려고 했더니 연습이 안되어서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사은, 사요, 삼학, 팔조를 하려고 했더니 단련이 부족한 것입니다.
습관과 업력을 떼어내어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기질 변화가 되려면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훈련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기
훈련으로 기간을 정해서 오롯하게 삼학 수행 11과목을 수양 연구가
주체가 되어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시 훈련입니다.
상시 훈련은 우리가 직업 생활이나 학교 생활을 해야 하므로, 상시에
우리가 삼학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자타력을 병진하는 것입니다.
상시 훈련은 동정간에 또는 직장과 사회에서, 진리의 위력을 얻는
신앙에서 힘을 얻고 복록을 쌓고, 또 내게 본래 갖추어진 속성을
회복해서 전인적인 인간, 어디에서나 쓸모 많은 인간, 지•정•혜.
세 방면에서 막힘이 없는 삼대력을 갖춘 사람, 센스 있고, 지혜 있고,
창조적으로, 주인이 되어서 살 수 있으려면 제대로 삼학 수행이
필요한데 그것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상시 훈련입니다.
훈련 정기 훈련 상시 훈련 < 자력 -정시- 수양과 연구가 주체 -동시- 취사가 주체 타력
정기 훈련은 정시로 수양과 연구가 주체입니다. 상시는 동시로 취사가
주체입니다. 그리고 상시 훈련에는 자타력이 들어 있습니다. 상시
훈련법은 자려과 타력을 같이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자력은 지난 주까지
공부했던 상시 응용 주의 사항입니다. 그러면 타력을 잘 활용하는 법,
즉, 내가 동지와 스승님들의 법맥을 잘 타서 줄 맞는 공부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 할까요? 그것은 바로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입니다.
< |
자력: |
상시 응용 주의사항 |
타력: |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 |
오늘 공부는 내가 자력으로 공부하는 중에 타력이 필요하고 그 자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함입니다. 타력의 도움이 없이 참자력이 있을 수 없고,
타력을 벗어난 참자력도 없는 것입니다. 어중간한 바보들이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타력을 받지 않습니다. 참자력은 타력을 하나로 하는
것이어서 빌릴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물을 수 있고, 때로는
얼마든지 의지 할 수 있고, 때로는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타력을 하나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분리하는 것입니다.
엄마와 아들은 각각 둘입니까? 하나잖아요.. 하나니까 따질 것이
없습니다. 하나가 아니니까 부모 학력 따지고 자식 학력 따지는
것입니다. 자력과 타력도 마찬가집니다. 하나가 되면 타력이 자력이고
자력이 타력입니다.
미국에는 퀘이커라는 무교회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타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일종의 알러지 반응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크게 되지
못합니다. 사실은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대단하지만 이왕이면 타력을
입으면 효과가 크다는 것입니다.
7살짜리가 ‘엄마 내가 자력으로 다 하고 경험해서 팍팍 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상관하지 마세요’ 라고 하면 쓰겠어요? 그 아이가
훌륭하게 될까요? 당연히 타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은 결국에는 상시 응용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상시 응용에서 배우고 써먹으면서 다시 교당에 옵니다. 그래서 상시
응용 주의 사항을 잘 하지 않은 사람은 교당에 와서 의문 거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당에 와서 멍 때리고 있는 사람은 응용이 안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멍 때리면 안 됩니다. 말을 좀 순화해야 하는데..
- ㅎㅎㅎ
몰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심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입니다.
- ㅎㅎㅎ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미련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네 시간 자면 어디에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네 시간 자면 떨어집니다. 낮 시간에 얼마나 몰입해서
활용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일차적으로는 낮에 얼마나 시간을 썼느냐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낮에 얼마나 실속 있고 알뜰하게 몰입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몰입의 핵심이 수양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하나로써 일심 관계가 되면 나중에 큰 경계에도
툭툭 법문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종사님 당대에도 대산 종사님에게
‘그냥 일심으로 들어라. 나중에 네가 다 생각이 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산 종사님은 나중에 다 생각이 나셨다고
합니다.
‘나는 바빠서 수양할 시간이 없다’ 는 사람은 수양과 일심과 집중을
통해서 기억 저장이 자동으로 되는 맛을 모른 것입니다. 시간만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초월해서 기가 막힌 효과를 내는
것이 수양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열심에 집중이 들어가야
합니다. 집중과 반복입니다. 반복만 해도 안 되고 일심이 들어가서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극치의 기쁨과 맛이 느껴지면서
비로소 성공하는 것입니다. 원불교에 다니는 사람은 그 맛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일원상과 내가 하나가 되고, 몸과 마음이 둘 이었다가
선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극치의 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대종사님과 하나가 되고 내가 스승님과 하나가 되고
내가 교법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법을 들을 때 하나가 되는 것을
삼매. 일상 삼매, 일행 삼매라고 합니다.
10 삼매에 대해서 이야기 한번 해야 하는데, 삼매는 열 가지가 있다.
청법에도 삼매가 있습니다. 번뇌가 많으면 안 됩니다.
하나가 탁 되어야 합니다.
돋보기로 초점만 맞추면 종이가 타버리잖아요. 그와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체험들이 아마도 꽤 있을
것입니다. 그 체험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대단한 줄 모릅니다.
그러나 급하거나 생명의 위협일 있을 때에는 기가 막힌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공부할 때 남자는 수염에 불 난 듯 하고,
여자는 머리에 불 난 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일심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씩 하겠습니다. 먼저 1조를 읽겠습니다.
1)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공부하는 중 어느 때든지 교당에 오고
보면 그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하는데 주의할 것이요.
맨 처음에 ‘어느 때든지 교당에 오고 보면..‘ 이라고 했죠? 그랬죠?
그 앞에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공부하는 중..’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시 응용 주의 사항과 연결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실행을 한 것을 바탕 해서 교당에 온다는 말입니다.
예배만 보고 사회 생활은 전혀 예배와 상관이 없고 법회만 보고 사회
생활은 전혀 법회와 상관 없이 하다가 법회 때만 딸랑딸랑 오는 사람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공부하는 중으로 해야지
문답도 있고 감정도 있어서 해오를 얻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교당에 갔더니 어떤 이가 ‘교무님 제가 30년을 교당에
다녔는데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참 겸손하십니다.’ 라고 하려다가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하십니까?’
라고 딱 한 마디 묻고 더 이상 안 물었습니다.
교당을 30년 다녔다는 것은 말이 30년이지 30년 마음 공부 한
것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무결석일 경우입니다.
보통 교도를 말해 볼까요? 한달 동안에 법회 몇 번 와요?
내가 천도재를 참 잘 지내주면 고마워서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무님 제가 한 달에 2번은 올게요’ 그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내지
두 번 오다가 사라집니다. 그 소리는 나는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마음을 내보고 법에 대한 투자는 시간 나면 오겠다는 것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오면서 지각은 60% 합니다.
제가 사종의무 강연할 때 말씀 드렸는데, 경종 치기 전에 법회 공덕의
50%가 끝납니다. 경종 친 후에 오는 사람은 이미 50%에도 못 미칩니다.
설교 전에 법회 공덕의 80%가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끝난 다음에
10인 1단의 단회가 있는데, 법회가 끝나자 마자 팽하니 사라집니다.
이 사람이 과연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할까요? 상시 응용 주의
사항은 원불교도의 일과표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수양하고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참회 대조하자고 했는데, 이것을 하겠어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정기 훈련을 날까요? 법회 반 타작하는 사람이 정기
훈련을 몇 %나 걸 것 같아요? 법회 60% 지각하는 사람이 정기 훈련을
몇 %나 날 것 같아요?
결국은 시간은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 따라? 마음 따라.. 자기의 마음
따라 시간은 만드는 것입니다. 거리도 필요 없습니다. 아까 안산도 필요
없잖아요? 물론 객관적으로 바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수양회에 들어야 수양하고, 수양회에 안 들면 너희들이나 하라고
합니까? 들었다고 해서 들은 것은 들은 것도 아니고 안 들었다고 해서
안 들은 것은 안 들은 것도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수양회가 있으나 없으나 원불교인이고 신앙인, 수행인이죠?
그렇죠?
먼저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공부하는 중.’ 이라고 했습니다.
‘하는 중’ 이라고 했습니다. ‘~ing’ 입니다. 그 다음에 ‘어느 때든지
교당에 오고 보면..’ 일요일이든지 평일이든지 4축 2재 때든지 ‘교당에
오고 보면 그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하는 데 주의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1조. 문답.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하라.
2조도 읽어 보겠습니다.
2) 어떤 사항에 감각된 일이 있고 보면 그 감각된 바를 보고하여
지도인의 감정 얻기를 주의 할 것이요.
2조. 감정 입니다. 감정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에 감정을 하는 직업이
꽤 있습니다. 부동산을 가격을 감정하는 감정 평가원이 있습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르다’ 의 감정과는 다릅니다. 보석 감정사는 이것이
큐빅인가? 다이아몬드인가? 골동품이 1억짜리인가? 50만 원짜리인가?
이런 것을 감정하는데…
원불교에서는 무엇을 감정한다는 것이죠? 써 있듯이 감각된 것. 일에
대한 감정보다는 감각에 대한 감정입니다. 자성 계발에 대한 부분이고
이치에 대한 것입니다. ‘이치에 대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일에 대한 감정도 있는데 일에 대한 감정은 사전에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꼭 다 저지르고 엎어놓고 와서 감정을 받으려고 하면
갑갑합니다. 그런 경우를 제가 많이 봅니다. 그래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습니다. 진작 와서 물어 보았으면 간단히 해결 될 것을
다 저질러 놓고 와서는 손해는 많고 속은 다 뒤집어지고 돈은 돈대로
깨지고 집안은 파탄이 나면 와서 ‘어떻게 해요?’ 라며 웁니다.
참 답답합니다.
또 잘난 친구들은 ‘교무님이 말한 것, 대종사님이 말한 자성자리가
이것이겠지..’ 라고 자기 혼자 알고 있어요. 상시 응용 주의 사항에 경전
법규를 대강 마친 사람은 의두 연마를 하라고 했죠? 의두 연마를 했으면,
그 다음 단계가 감정을 얻는 것입니다. 그대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충고를 두려워한다고 하는데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을 세우고,
치심을 가지면 공부와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공부를 하고
영생에 성불제중의 서원과 이 법이 대도라는 신이 있는 사람에게 무슨
치심이 있고 무슨 계교심이 있고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공부하면 문답 감정 거리가 깨 쏟아지듯이 쏟아집니다.
아직도 제가 미안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우리 양산님에게 밤에 9시간을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기 3달 전이었습니다. 저녁에
못 자게 해서 죄송합니다. 12시간까지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침까지
날 새도록…
제가 소개 해드렸죠? 좌산님이 정산 종사님 시자로 있을 때 하도
물어보니까 옆 사람들이 ‘네가 정산 종사님 전세 냈냐’ 고 시비했다고
말씀 드린 적 있죠? 저는 간사 때 어른 들이 오면 물어보고 싶어서
방문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 갑니다. ‘주물러 드릴까요?’ 주무르는 것은
도움을 드리는 것이고 실지로는 내가 한마디 물어보려고 한 것입니다.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경전 법규 연습을 하고 미리 연마를 하고 의두
연마를 하고 일기를 기재하고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를 하고 염불과 선을
하다 보면 궁금한 게 쏟아집니다. ‘어떻게 선을 해야 합니까? 염불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 일기를 이렇게 기재하는 것이 맞습니까?
의두 연마를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 경전 법규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 왜 이런 질문 거리가 없겠습니까?
제가 원불교학과 1학년 때 지금의 교정 원장님에게 물었습니다.
‘전산님 경전 공부를 어떻게 할까요?’
‘상시 응용 주의 사상에 보면 3조가 경전 법규 연습이고
4조는 그것을 기본으로 한 사람은 의두 연마를 하라고 한 것이니,
경전 공부를 그렇게 해보소.’
딱 그 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탁 필feel이 꽂힌 것입니다.
‘그렇다. 경전 공부는 이미 상시 응용 주의 사항에 나왔다’
‘계속 연습을 하다가 그것을 내것화 하기 위해서는 의두 연마를 하라는
것이구나.. 경전을 내것화 시키려면, 남의 것이 아니라, 스승님 것,
교전의 내용, 대종사님의 것이 아니라, 내것화 하려면 의두 연마를
해야만 한다.’ 고 필이 탁 왔습니다.
제가 상시 응용 주의 사항을 안 읽어보았겠어요? 그 질문을 하니까 상시
응용 주의 사항이 팍 들어오는 것입니다. 물어봐야 합니다. 저는 한문
모른 것이 있으면 한문의 대가인 금산
제가 출가해서 금산님에게 전화로 물어본 것이 50번은 넘을 것입니다.
또 불교학에 대해서 모른 것이 있으면 다른 분에게 전화해서 물어봅니다.
우리 정전에 대해서 막히는 것이 있으면 우리 법타원님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봅니다.
물어봐야 비로소 줄 맞는 공부가 되고 스승과 법맥을 타는 것입니다.
깨침도 의문으로 깨치지만 더 들어가면 신심으로 깨치는 것입니다.
종교가의 생명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스승과 하나가 되지 않고
공부가 과연 될 것인가?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을 한다는 것은 스승과
줄 맞는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3조로 넘어가겠습니다.
3) 어떠한 사항에 특별히 의심 나는 일이 있고 보면 그 의심된 바를
제출하여 지도인에게 해오 얻기를 주의할 것이요
특별한 일이 있으면 해오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일단 자신이 찾아보고
감을 잡고 ‘이것이 맞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 해오입니다. 그냥 사전
찾아보면 될 것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제출하라는 것은 기재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강연 원고를 들고
옵니다. 그러면 저는 ‘메일로 보내고 문자로 넣어주세요.’ 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미리 읽어보고 만났을 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잖아요.
원고를 들고 오면 언제 읽어보고 언제 말을 합니까?
서로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1. 연습
2. 감정
3. 해오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1, 2, 3조는 1: 1 카운셀링입니다.
그리고 4, 5조는 10인 1단 및 대중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4조를 읽어보겠습니다.
4) 매년 선기에는 선비를 미리 준비하여 가지고 선원에
입선하여 전문 공부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선원에서는 혼자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같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년 선기에는 선비를 미리 준비하고 했습니다.
선비만 준비하라는 것이 아니고 일정까지 조절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선기에 외국에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제가 미리 달력을 만들어 드립니다. 그런 소리 안 하시도록…
4조는 정기 훈련과 같이 맞물리죠. 정기 훈련과 상시 훈련이 계속
맞물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것이
행복인가? 어떻게 마음 공부를 해야 하는가? 에 대한 해답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관계성에 대한 해답을 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종교의
역할 중의 하나입니다. 사회성, 즉, 사은 사요의 인간 관계입니다.
이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이 관계성입니다. 관계성이 약한 사람은
교당에 오기를 꺼려 합니다. 조용히 있다 가려고 합니다. 단회를 안하고
늦게 와서 구석에 앉아있다가 갑니다. 그런 사람은 관계성이 약합니다.
현대 사회는 관계성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임이 너무 많아도 안 되지만 모임이 너무 없어도 안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사. 집. 회사. 집… 그리고 친구 한두 명…
이런 사람은 행복한 장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교당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진짜 영산의 옛 인연 아닙니까? 이 안에서 수 많은
시비이해와 각종 정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5조를 읽어보겠습니다.
5) 매 예회날에는 모든 일을 미리 처결하여 놓고 그 날은
교당에 와서 공부에만 전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예회는 정례법회의 준말입니다. ‘정’자와 ‘법’자가 빠지고 예회라고
말합니다. 정기법회나 정례법회나 똑 같은 소리입니다. 항상 정해진
법회라는 뜻입니다. 딱 고정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매 예회날에 모든 일을 미리 처결하여 놓는다는 것은 법회를 회상으로
놓는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대종사님은 <모든 일>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첫째, 천재지변, 둘째, 생사의 문제, 셋째,
꼭 제생의세에 필요한 것. 이것은 예외 사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잔치, 생일잔치, 동문회, 동창회.. 이런 것들은 아닙니다. 그것은 미리
준비를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교도 중에 무결석을 이십 몇 년을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결혼식이 있으면 전날에 그 집을 찾아가서 ‘낼 결혼식이 있는데 내가
멍청해서 딴 일과 겹쳐버렸는데 그 일이 미리 약속 되었다’ 고
말한답니다. 사실은 그 일이 법회입니다. 당사자가 원불교인이면
법회여서 그런다고 하고, 원불교인이 아니면 다른 약속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리 가서 만나니까 그 사람이
너무 좋아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하지 않고 싶은 사람은 이렇게 처리합니다. 나중에 만나서
봉투를 주면서 ‘그때 미안해 바빠서 못 갔어..’ 그사람은 이미 판 깨지고
나서 하니까 똑 같이 봉투를 쓰면서도 또 같이 봉투를 쓰면서도 훨씬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리고 법회를 빠지고 결혼식장에 가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얼굴
본둥만둥 하고 밥 먹고 사라집니다. 차라리 미리 가면 더 가까워지고
사회 생활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교무님 이십 몇 년 무결석한 사람은 가정이 있어요?’
‘있는데.. 여자인데… ’
‘그 사람은 직장이 있어요?’
‘있는데’
‘자식 있어요?’
‘둘인데..’
그 사람은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고 직장도 있고 집은 서울인데
청주 사람이어서 청주에 맨날 애경사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현실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제 말이
조금은 억지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생과 인과를 바라보는
진리적 가치관이 있는 사람은 제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교무님 그래도..?’ 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은 그래도.. 입니다.
미리 준비에는 기가 막힌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아침에 수양하고
법회에 참석하는 것이 동정간의 삼학 공부인지 증명하려고 합니다.
아침에 좌선이 중요하고 일요일에 예회가 중요합니다. 그렇죠? 좌선을
하려면 저녁에 일찍 자야 하고, 저녁에 일찍 자려면, 낮 시간에
미리미리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법회도 마찬가집니다. 일요일에 법회를
보려면 토요일 저녁에 TV를 안 보고 일찍 자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미리 처결해야 합니다.
미리 처결하는 것은 낭비 시간을 없애는 공부입니다. 그 시간에 삼학
공부를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동정간에 끊임없는 삼학 공부를
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좌선 시간과 예회 시간을 바빠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매일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루가 25시간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똑 같은 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좌선 시간과 예회 시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못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미리 처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더 들어가면 법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있고
없음에 차이입니다.
직업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어도 다른 대책이 다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쩔 수 없으니 안
하겠다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고 만들어서 하는
사람은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2조와 3조에는 지도인이라는 단어가 있고 1조에는 없습니다.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 1조는 수평적인 관계로 인간 대 인간으로 누구나
만나라는 말입니다. 교당에 와서 교무님만 쳐다보거나 법신불만
쳐다보지 말고, 옆의 동지와 단원들과 묻고 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보 교환의 장이 되어서 내가 궁금한 것 또는 내가 의심 난
것을 말하고 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평적인 관계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2조와 3조는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지도인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도인은 교당에 항마위 이상 올라가신 교도님이나 또는
단장님이나 중앙님이나 교무님이 해당될 것입니다.
4조와 5조는 같이 어울려서 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타력을
다양하게 입게 만들었습니다. 타력을 동지간에는 수평적으로 입고
지도인과는 수직적으로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대일로 타력을 얻고
또는 대중과 함께 얻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법회 때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해 보셨어요?
5조를 좀 더 자세히 보면 교당에 오고 보면 공부에만 전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이 들어 있으면 보통은 틀린 답일 확률이 높은데…
대종사님 당대에 교당에서 법회를 보는 날 하루 품 삭을 받으려고
논에서 일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대종사님이 그때 제자들에게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데 별수 없잖아요?’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대종사님은 ‘진짜
법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을 꼭 법회날에 해야 하겠느냐?
나머지 6일 동안 준비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 하셨습니다.
천록입니다. 우리가 이 맛을 잘 모릅니다. 대종사님이 하라고 하는
방향으로 가능하면 하겠다고 하는 신심으로써 하다 보면 묘하게 되는
이치가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상상하지 못할 천록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자신
있게 모든 일을 미리 처결하고 공부에만 전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치적으로 보고,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가져다 놓고 봐도 일과
이치입니다. 그것이 마음인데, 그 마음을 공부하는 것 보다 더 큰 것이
어디에 있냐? 는 것입니다.
청법의 도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 하겠습니다. 제가 원남 교당에 발령을
받아서 갔는데 큰 교무님이 훈련을 가셨습니다. 내가 두 번째 교무였고
밑에 교무가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법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강단에 탁 나서서 ‘오늘 주전선수가 어디를 가셔서
제가 대타로 나왔습니다. 홈런을 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우스갯소리로 살짝 말했습니다.
마침내 설교가 끝나고 밖에서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교도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어떤 교도님이 나한테 ‘교무님 오늘 홈런 쳐 부렀어~’,
또 어떤 사람은 ‘교무님 자~알 하데..’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팍 상했습니다. 내가 법회를 잘 못 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칭찬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빴습니다.
지금 우리 진타원님이 여기 앉아 계신데, 제가 설교를 진타원님
영감님이 아니라 진타원님에게 하고 있죠? 나는 앉아 계신 교도님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설교를 하였는데, 교도들은 교무가 설교를 잘하나
못하나 평가를 하거나, 혹은 자신들의 집안 식구 누군가가 들어야
한다면서 설교를 반사를 시킵니다. 진리의 빛인 대종사님의 말씀을
받들지 않고 도리어 거울로 교무에게 반사시키거나 다른 이에게 반사를
시킵니다. 그것은 청법의 도가 아닙니다. 청법은 내 생활과 대조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었던 말을 또 들어도 새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듣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무님 그건 옛날에
썼던 예화인데요?’ 그러면 교무를 해 먹겠습니까?
- ㅎㅎㅎ
어제께 한 얘기를 오늘 또 해도 새롭게 들어야 교무도 해 먹을 맛이
나지. 대종사님도 사실은 그렇게 했습니다. 대종사님도 해제 때 똑 같은
말을 하셨는데, 주로 ‘너희들 소를 지붕에다가 매라면 매겠느냐?’
그 예화를 맨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앉아서 대종사님은 또
저 예화를 쓴다고 했답니다. 대종사님도 그것을 알고는 제자들에게
들었던 말 또 들었다고 너희들 뭐시기 하지 마라. 마음이 새로우면 달리
들린다고 말씀 하신 것이 수행품에 나옵니다.
설교를 제대로 들으면 정말 좋습니다. 설교를 아무나 하는 것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이라도 무책임하게 강단에 서질 않습니다.
보통 5분 동안 말을 한다면 5분 곱하기 20~30배의 시간을 연마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동안 엄청나게 공부해서 축척 된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하는데 딴 생각을 하거나 거울로 다른 데다
반사를 시키면 안 됩니다. 공부에만 전심하라는 소리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면 아주 재미있고, 참회도 되고, 기쁨의 눈물도 나오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말이 어눌하거나 예비 교무가 와도 제대로 듣다 보면 그 안에
반드시 건질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하네 못하네 하면서 평가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분별성이라고
합니다.
6조를 읽어 보겠습니다.
6) 교당에 다녀갈 때에는 어떠한 감각이 되었는지 어떠한 의심이
밝아졌는지 소득 유무를 반조하여 본 후에 반드시 실생활에
활용하기를 주의할 것이니라.
대종사님은 앞의 1~5조를 갈 때까지 챙겨버린 것입니다. 법회 끝났다고
경전을 탁 덮어버리고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갈 때 삼성 교도가
은빈 교도에게 ‘나는 오늘 법회에서 교무님 이야기를 듣고 자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네, 잘해줄게’ 이렇게 소득유무를 반조하는 것입니다.
그 한 주일은 그 교문의 설교에 바탕 해서 유무념으로 잡아서 살아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교무님이 어떤 것에 대해서 설교를 하면 단회에서
단장과 중앙도 그것에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예전 어느 교당에서 단장이 워낙 똑똑해서 나는 신용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그 단장은 유무념을 공부해서 단회 때 단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다음해에 바로 잘렸습니다. 하나로 통해져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요 안 그래요? 궁짝이 맞아야 뭘 해 먹죠?
그리고 그 다음 법회에서 단회를 할 때에는 설교를 들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난 주에 무엇이었는데 무엇이 되었다고 말해야 맞습니다.
여러분 내가 솔직히 고백하는데 어떤 설교가 잘 한 것인지 보세요. 얼른
볼 때는 제목 딱 잡아서 서론, 본론, 결론 하면 잘한 것 같죠? 이것은
일회용으로는 좋으나 매주 하는 설교가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설교한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한 주에 세 개씩 네 번했는데, 네가
설교한 것 다 아느냐?’ 설교한 사람도 모릅니다. 그런데 앉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 알겠어요?
체계 있고 짜임새 있게 보여주려고만 하지 말고, 자기 마음에 대조하게
만들고 그 중에 하나를 확실하게 잡아서 갖고 가게 해야 합니다. 앞으로
원불교 설교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설교는 심플해야
합니다. 오늘 집에 돌아갈 때도 교당 내왕시 하나만 가지고 가면 됩니다.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내가 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개선 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유무념으로 체크하면 되는 것입니다.
6조에서 대종사님은 반드시 소득 유무를 반조해서 실 생활에 활용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법회 끝나고 자기 전에 반드시 반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도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은
원불교 교도가 교당을 다니면서 타력을 입어서 상시 응용 주의를 하고
도인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단체나 어떤 세계에서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아까 1, 2, 3조는 내가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면서
일대일로 카운셀링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직장 선배에게 문답 감정을
얻어보고 학생이 교수에게 해서,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이 직장 내왕시
주의 사항, 또는 학교 내왕시 주의 사항으로 해 보라는 것입니다.
학생은 반드시 장학금을 받습니다.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으로 하면
반드시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더 쉽게 말하면 예습, 복습의 원리입니다. 미리 처결은 다 예습하면
됩니다. 소득 반조는 복습 하라는 소리입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해요.
예습이 더 중요합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은 예습 잘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습해서 서울대 갔다고 하지만, 그 학생이 예습을 했으면
하바드를 가고 남을 것입니다.
예습을 하면 수업 시간에 기억 저장이 끝납니다. 그리고 모르면
확실하게 물어 볼 수가 있습니다. 자신감이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예습을 하지 않으면 그제서야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복습이라는 것은
명료하게 다시 기억 저장해서 완전하게 끝내는 것입니다. 예습하고 그
순간에 일심하고 복습을 하면 7~8배의 공부가 됩니다. 그런데 공부
못하는 사람은 그 순간에 한 번 보는 것으로 끝납니다.
시간 차이도 별로 나지 않습니다. 예습과 복습을 해서 8배의 공부를
하는데 공부 한번 한 사람보다 8배의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쓸 뿐입니다. 그런데 효과는 몇 배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을 하신다면 미리 읽고 ‘내가
강연자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는 연마를 하고 왔어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이라면 만약에 오늘 미적분을 배운다면 미리 미적분을 공부해서
내가 강의를 한다면 이렇게 하겠다. 또는 나는 시험 문제를 이렇게
내겠다는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 사람은 만점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질문해주세요.
n 질문과 답변 =========================================
Q_황원공 : 교무님께서 하셨던 질문을 구체적으로 한두 가지 알려주시면,
질문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알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질문을
알려주세요.
A_교무님 : 육도윤회의 실상, 수라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묻고 그랬다.
또는 어떤 영혼 천도재를 지낼 때라든가. 양산 법사님은 천도재
지내다가 영가를 혼내기도 하셨거든요. 구체적인 것을 물었습니다.
자존심 세울수록 성불하고는 멀고, 비워버려야 성불이 되는 것입니다.
아까 도훈 교우가 이야기 잘 했는데, 순간의 치심과 영생의 행복.
그것 좀 적어 놓아라. ^^
Q_오선허 : 자기가 설교를 듣고 나서 내용을 바탕으로 유무념을
잡으라고 하셨는데, 저는 유무념이 너무 많아져서 다 실행을 못해서
이도 저도 안 되는 게 많았습니다. 어떻게 대중을 잡아야 할지요?
A_교무님 : 기본을 유무념을 잡아놓고 그 한 주에는 그것을 대조해서
한 번 해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신용에 대해서 설명했다면
선허 교우가 한 주일 만큼은 신용에 대해서 특별히 유념해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법회가 쭉 이어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오늘 진공의 세계에 대해서 설교를 했다면 일주일간
진공의 세계를 대조해서 쭉 가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타이핑:
편 집:
950413_화공_51_제2장_제2절_2 교당 내왕시 주의 .doc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요즘 교당내왕시 주의사항 6조에 더욱 주의해보려고 하는데.. 아직도 잘 안 되네요. 후기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교당 내왕시만 잘 되면 성불은 시간 문제... ? ^^b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