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열을 머금은 아스팔트는 도심의 6월을 무심하게 달궈 놓는다. 이럴 땐 문 밖을 나서는 일조차 부담스럽지만 하늘을 가릴 만큼 쭉쭉 뻗은 가로수길과 드넓은 초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의 여유가 기다리는 흙길은 도시의 길에서 지친 걸음을 쉬게 해준다. 멀리 떠날 필요도 없다. 지하철 삼송역에서 출발하는 서삼릉누리길은 짙은 그늘과 서늘한 바람으로 당신을 맞아줄 것이다.
서삼릉누리길 찾아가기
지하철 3호선 삼송역 5번 출구에서 041번 마을버스를 타고 서삼릉에서 하차하거나 한 정거장 전인 농협대에서 하차해 가로수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서삼릉과 원당종마목장, 원당허브랜드를 둘러본 후 원당역 방면으로 걷기 시작하면 서삼릉보리밥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원당역 근처의 배다리술박물관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마무리하면 하루코스로 알차다.
초록빛 힐링
원당종마목장
서삼릉 바로 옆에는 원당종마목장이 자리하고 있다. 각종 CF와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높은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초지와 하얀색 울타리가 빚어내는 목가적인 풍경이 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선사한다. 흑갈색 갈기를 휘날리며 푸른 초원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말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싶을 만큼 이국적인 분위기도 느껴볼 수 있다. 입구부터 아름다운 은사시나무와 미루나무가 가로수길을 이루고 초록빛 언덕 사이로 산책로도 잘 다듬어져 있어 그야말로 도심 속 힐링이 따로 없다. 최근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위한 기승체험과 마방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색다른 볼거리가 된다.
본래 이곳은 우수한 종마들을 보호,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시설로 지난 1997년에야 일부 지역을 일반에 공개했다.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공원이 아니다 보니 입장료도 무료라 더욱 부담이 적다. 그러나 말들의 안정을 위해 소음을 피하고 가지고 간 쓰레기는 되가져오는 등 책임 있는 관람태도가 필요하겠다.
왕가의 기품을 만나다
서삼릉
일산 신도시가 위치한 고양시는 서울과는 지하철로도 연결될 만큼 가까워 여행지로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 알고 보면 6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의 도시다. 고구려의 남진기지이자 신라가 한강유역을 방위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곳은 조선 태종 때 이르러 고봉과 덕양현을 합친 고양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이후 행주대첩 등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공간으로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의 무덤인 서삼릉과 서오릉이 자리해 의미를 더한다. 서삼릉누리길은 지하철 삼송역에서 내려 서삼릉을 끼고 걷는 아기자기한 길로 다양한 볼거리가 매력이다.
서삼릉은 본래 중종의 정릉을 중심으로 아내인 장경왕후의 희릉과 아들 인종의 효릉이 자리했던 곳이다. 그러나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일찍 세상을 뜬 장경왕후를 이어 왕비의 자리에 오른 이가 그 유명한 문정왕후였으니,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왕비로 평가되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묻히기 위해 정릉을 지금의 자리로 이장시키고 만다. 결국 남편과 아비를 잃고 외로이 두 능만이 남은 이곳에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철종의 예릉이 더해지며 서삼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임금 혹은 왕비로 당대 최고의 지위에 올랐지만 그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이들이 묻힌 곳이기에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서삼릉은 짙푸른 녹음과 왕가의 기품이 어우러져 고요히 사색을 즐기며 걷기 좋다.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7-1 문의 031-962-6009 개방 시간 6~8월 06:00~18:30 / 9~10월·2~5월 06:00~18:00 11~1월 06:30~17:30(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상큼한 허브향기원당 허브랜드
서삼릉 입구에 자리한 원당허브랜드는 허브농장과 허브숍, 허브카페 등으로 구성된 허브관광농원이다. 허브농장에서는 로즈마리와 라벤더 등 100여 종의 허브가 한자리에서 자라고 있고, 허브숍에서는 이들을 재료로 활용한 다양한 허브용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또 허브카페에선 향긋한 허브차와 허브쿠키도 맛볼 수 있다. 허브를 화분에 옮겨 심거나 허브향초를 만드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1-4 문의 031-966-0365 개방 시간 3~10월 09:00~19:30, 11~2월 09:00~19:00 입장료 무료대통령도 반했다배다리 술박물관
1915년부터 5대째 술도가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곳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즐겨 마셨다고 하여 잘 알려진 배다리막걸리가 탄생한 곳이다. 우연히 근처 주막에 들렀다 배다리막걸리를 맛보게 된 전 대통령은 그 깊고 깔끔한 맛에 반해 이후 청와대에서도 찾아 마시면서 '대통령 전용 막걸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유명세를 전해들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 "박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막걸리의 맛이 궁금하다"며 청해 마셨다 하여 '통일막걸리'라는 애칭도 얻었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배다리막걸리는 깨끗한 물과 좋은 쌀에 대대로 내려오는 양조비법을 더해 감칠맛과 청량감이 뛰어나다. 단맛과 신맛, 떫은맛 등 다양한 맛의 조화도 훌륭하고 탁주 특유의 입 트림이나 숙취도 적은 편이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배다리 술도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술박물관은 전통 양조법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함께 갖가지 양조기구도 살펴볼 수 있는 알찬 공간이다. 박물관 1층에선 이곳 술도가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막걸리와 전통주도 맛볼 수 있어 짧은 여행의 여운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1동 470-1 문의 031-967-8052 개방 시간 10:00~18:00 입장료 무료건강한 밥상차림 보리밥에 코다리서삼릉 보리밥
서삼릉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서삼릉보리밥은 주말이면 길게 줄이 늘어설 만큼 일대에선 손꼽히는 맛집이다. 보리밥에 신선한 제철나물과 구수한 된장찌개를 함께 내는 소박한 상차림이지만, 직접 농사를 짓거나 일대에서 생산된 로컬푸드만을 이용해 건강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별미인 코다리구이는 부드럽고 쫄깃한 코다리에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양념장을 발라 숯불에 구워낸 것으로 담백한 보리밥과 환상궁합이다. 정겨운 고향집 어머니의 손맛이 절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