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최근에 나온 번역책을 교보문고에서 검색하다 찾았다. 실제 받고 보니 책이 너무 작아서 놀랐다. A5(210mm x 140mm)보다도 작았다. 200여 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을 만오천원 주고—10% 할인해서 만삼천오백원이지만—샀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저자는 고노스 유키코라는 일본 번역가다. 일본어로 쓰인 책을 김단비씨가 번역했다. 일본책 원제는 <<飜譯ってなんだろう? あの名作を譯してみる.>>로 번역하면, “번역이 뭘까? 저 명작을 번역해 본다"이다. 저자가 12개월간 번역 강의를 하면서 실제로 경험한 수강자들의 번역과 토론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저자를 일본말로 찾아보면 번역한 책이 꽤 많이 나온다. 그리고, 2019년인가에 노벨 문학상을 탄 마거릿 에트우드(Margaret Atwood)의 책을 다수 번역했다.
열 개의 소설이 있는데, “빨간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등대로(To the Lighthouse)”, “피그말리온(Pygmalion)”, “연애 사건의 종말(The End of the Affair)”,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등이다. 이런 고전에서 약 150-200 단어 정도의 지문을 발췌했고, 각 장은 소설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시작한다. 이어 ‘지시문’이 나오는데, 저자가 수강생(책이니 독자도 되겠다)에게 번역을 하는 데 주의할 점, 살려야 하는 포인트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다음에 영어 지문이 나오고, 해설이 뒤따르는데, 당연히 해설 부문이 제일 길지만, 전체 지문을 번역한 경우는 없다. 수강생의 번역을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을 덧붙이는 식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열 개 소설에서 특색을 잡아 지시문이 나오고, 각각의 특징을 살리도록 번역을 한다는 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말장난(portmanteau)을 살리고, “호밀밭의 파수꾼” 지문은 청소년인 주인공의 말버릇을 주의해서 번역해야 하며, “어셔가의 몰락”에서는 작가 포의 ‘아라베스크’식 문장에서 긴장감을 더해가는 순서를 고려해야 하는 식이다.
우리말 제목 “일기로서의 번역”은 책의 내용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단조로운 일본 제목보다, 원문을 잘 읽어서 원저자의 의도, 등장 인물들의 성격과 태도를 번역에 반영해야 한다는 저자의 취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부재인 "영어 명작소설 깊이 읽는 법'은 일본판 제목과도 상응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책에 있는 저자 소개에는 고스노 유키코씨는 이전에도 두세 권의 번역에 관한 책을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번역된 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중급 정도의 번역 실력을 가진 독자에게 맞추어져 있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을 하는 걸보고 놀랐다. 일본의 번역 역사가 우리보다 길다는 것은 김욱동씨의 책, “번역의 미로”에서도 꽤 상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고민하는 차원이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번역에 관한 논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채식주의자” 한영 번역을 둘러싼 논쟁은 제외하더라도, “어린 왕자”,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를 놓고도 누가 승자라 할 수 없는—애초에 번역을 놓고 하는 싸움에 승자가 있을 수나 있을까?—논쟁이 있었다. 영-일 번역에서도 이런 사례가 일본에 있었을까 궁금하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고노스씨 정도의 고민을 하면서 기간 내에 번역을 마쳐서 출판사에 제출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우리 나라보다 번역가가 대접을 잘 받는다고 말하곤 한다. 결국 영어를 좀 하더라도 일반적인 영어 능력이 떨어지는 일본에서 번역가의 지위가 더 높은 건 당연할 수도 있다.
저자가 다룬 열 개의 소설 외에 다른 소설을 더 포함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에서도 참고가 될만한 내용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번역 문답”이라는 저자의 책이 있는데, 아직 번역서가 나오지는 않았다. “읽기로서의 번역”이 어느 정도 팔리면, 그 책도 번역이 되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첫댓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추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좋은 책이네요,,,! 꼭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