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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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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대단한 친구다.
저놈은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 나쁜 건 결국 좋게 만들고 마는
마력 같은 힘이 있었다.
이제 새로운 직장에 대해 이야기 할 차례다.
이야기의 맥을 끊는 것은 노크와 함께 들어온 대단한 술상 이였다.
젊은 남자 두사람이 잘 차려진 큰 상을 양쪽에서 들고 방안으로 들어와
나와 기삼이 사이에 사뿐히 내려놓고 나가고
뒤이어 한복 입은 접대부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나와 기삼이 옆에 동석 하여 앉고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예전에 송 마담이 그랬다.'
제일 촌스러운 게 이런데 와서 여식들 이름 물어 보는 것' 이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손님들이 먼저 입을 떼기 전에는
그녀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분부만을 기다렸다.
잘 훈련된 그녀들은 섣불리 먼저 입을 떼는 실수 따윈 하지 않았고
손님들의 대화가 마무리되기를 잠시 기다려 주는 배려를 하곤 했다.
역시 먼저 입을 열어 지시를 하는 건 기삼이 였다.
"오늘은 친구와 둘이서 조용히 마실 테니까 니들은 나가 봐라.
그리고 나중에 송 마담 들어 오라고 하고… "
참 괜찮은 친구다.
내가 워낙에 여자들 에게 숙맥인걸
'조용히 마신다' 라는 이유로 모두를 물러가게 만든다.
나는 친구와 이렇게 둘이 마시는 게 편했다.
기삼이 말처럼 나는 정말 '포장마차 소주팔자'가 맞는 모양이다.
"자 친구야 한잔 하자.
오늘은 중국 요리를 시켰다. 소주가 25도 아니냐?
사실 이거 독한 술이거든. 그리고 너와난 제일 좋아 하는게 탕수육 이였고…
부자가 되면 항상 술안주 는 탕수육으로 하자고 했고 넌 짜장면 예찬론자 이었으니까.
오늘은 옛날의 우리로 돌아가서 한잔 하자.
내가 특별히 짜장면도 조금씩만 만들어서 맛을 볼수 있게 해달라고 해 놨다.
짜장면 예찬론 그거 기억나?"
그랬다. 우린 항상 가난했다.
정확히 말하면 기삼이는 그렇게 가난 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기삼이는 시골에서 보내온 돈을 책이나 또 다른 특별한곳에 사용 했다.
법전 이외에도 수많은 책을 사서 읽곤 했다.
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또 다른 특별한 용도는 난 알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는 가난한 법대생 이였다.
가끔 내가 받는 과외비는 그에게 있어 유일한 외식의 기회 였고
그럴 땐 우린 항상 자장면을 먹곤 했었다.
"기삼아 자장면 이게 말이야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세 가지 축복 음식중 하나다.
계란, 우유 와 더불어 신이 주신 특별한 세 가지 음식…
난 그중에 짜장면이 최고라고 생각 한다.
계란, 우유도 무공해의 천역식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짜장이 최고다.
우선 따장(중국식 검은색 된장),이게 순전히 콩 아니냐?
그리고 짜장면의 재료가 거의 양파로 되어 있어서 피를 맑게 해주는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값이 싸잖아?
원래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주위에 가장 흔한 음식을 많이 먹으라고
좋은 음식들은 값을 싸게 책정을 했거든, 공기, 물 이런 건 아예 돈 없어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주위에 흔한 것들은 모두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드셨다고 나는 생각 한다.
요새 특별히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떠들어 대지만
열대 지방에 과일이 많이 생산 되는 거는
그 동네 사람들은 당분이나 수분이 많이 필요 하니까 그렇게 하셨을 거고,
쉽게 말해서 우리 주위에 있는 흔한 음식이 우리한테 맞단 이야기다.
짜장면. 이거 이거…. 신이 주신 축복의 음식 아니냐?"
항상 나는 그렇게 자장면을 예찬 했고,
그 나이에 그 형편에 우린 그렇게 서로를 위안 하곤 했었다.
그 어렵던 시절…
남들이 탕수육에 빼갈(白酒,중국의 독한 술)이라도 먹는 모습을 볼 때면
서로가 쳐다보고 웃기만 했었다.
오죽 했으면 대학을 졸업 하고 내가 처음 생일을 맞았을 땐
탕수육에 초를 꼽아서 생일 케이크를 대신 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예전의 자장면 예찬론을 오늘 새삼스럽게 기삼이는 기억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오늘 중국 요리에 술 한번 취해 보자.
근데 기삼아 술 먹기 전에 내 직장 이야기는 마무리를 짓고 시작 하자 "
"자식… 급한 척 하기는… 술부터 한잔 하자"
"뭐 급할 건 없다. 며칠 쉴 수도 있고 해서 좋기도 한데 …."
기삼이가 몸 앞으로 잔을 올리는걸 신호로
가볍게 나도 잔을 들어 올리고 소주를 한잔 마셨다.
항상 나는 한잔을 완전히 비우는 스타일 이고
기삼이는 첫잔은 반씩 나누어서 마시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한잔을 다 털어 넣었다.
그리고 말없이 탕수육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먹었다.
그리고 내 잔과 자기 잔에 또 술을 채웠다.
"건배 한번 더하자. 우상아."
속으로 '이 자식 이거 뭔일 있나?' 했다
. 그러면서도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잔을 또 들었다.
"내가 언젠가 너한테 한 말인데…
우상이 너라는 놈한테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그랬지?"
"야-! 너…너무 폼 잡고 이야기 하는 거 같다. 무슨 대단한 직장 인데 그래?"
내말에 기삼이도 멋쩍었는지 킥- 하고 웃는다
"그래 인마. 나도 감격스러워서 그런다.
오늘 같은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너와 함께 일 할 수 있는 그런 날… 많이 참고 기다려 왔다.
대학 다닐 때는 나는 죽어라 공부만 했고, 넌 내 뒷바라지 한다고 한 세월 다 보냈잖아.
심지어 연애 까지 네가 대신 해서했을 정도 이었으니까…
넌 영원한 내 파트너잖아.
잘 알겠지만 대한민국의 법대생들, 그리고 의대생들…
대한민국의 엘리트 집단은 다 미친 새끼들 이야.
그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팝 음악 한번 제대로 못 듣고
남들 다 하는 데모 한번 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자신의 욕정 까지 절제 하면서 골방에 틀어 박혀 책만 파고 앉아 있었던 놈들…
그런 놈들이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한다는 거 좀 웃기는 이야기 아니냐?
그런 놈들이 어떻게 서민들의 삶의 애환 같은걸 알겠냐?"
"왜? 늦게라도 거리로 뛰어 나가 보고 싶어서? 아이고. 왜이래 오늘?"
"씨답지 않게 내가 나라 걱정할 형편은 아니지만
평생 순대나 떡볶이 한번 안 먹어 봤다는
그런 새끼들이 판사나 검사로 앉아 있으면서
지금 대학생들이 하는 데모 같은걸 이해하겠냐는 이야기지.
자 일단 한잔 더 하자"
이번에도 기삼이는 한잔을 다 털어 넣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도 한잔을 마셨지만
그는 내가 잔이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사법 연수원에 있을 때 이야기 인데…
미래의 앞날을 책임질 판사, 검사를 양성 하는 곳에서도 분실 사고가 나거든,
난 첨에 이해가 안 되던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그걸 과감하게 폭로를 한 거야.
`이런 곳 에서도 도난사건이 생길 수 있는 거냐고'
수업 전에 앞에 나가서 떠들어 댄 거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나중에 그곳을 나올 때 가장 낮은 순위로 성적이 나오게 되고
결국 연수원을 나오자마자변호사 개업을 해야만 했으니까…
그걸 보고 있던 교수가 인상이 자주 바뀌고 쓴웃음으로 냉소 하는걸 내가 봤거든…
그 교수 생각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떠들어 대는 그런 사람이
자기들과 같은 동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했겠지.
이 바닥의 생리가 그런 세계다."
"ㅎㅎㅎ 오늘 네가 술 마시는 게 좀 불안 하다… 뭔 일 있어? "
"최소한 판, 검사를 하려면 우리처럼 짜장면이 고맙고 좋은 음식 이라는 것 정도는
이해를 해야 제대로 된 판결을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다.
이야기 해놓고 보니까 내가 좀 흥분 했네…
어쨌든 너랑 나랑은 최소한 배부른 부르주아 는 아니었단 이야기다."
"그놈 참 중국요리 하나 시켜 놓고 별 이야기 다 하네.
내 직장 이야기부터 해 봐라. 궁금 하다 "
"급할 거 없다. 파트너 "
"파트너? 너 자꾸 의미심장한 이야기만 할래?"
"ㅎㅎㅎ 그건 나중에 자연히 알게 될 거니까.
며칠 쉬면서 잘 숨고르기 하고 있어라.
조만 간 내가 연락 할 테니까 바로 출근 하면 된다.
이럴 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야 하는 게 파트너다."
또 말없이 내 잔과 자기 잔에 술을 부어서 채웠다.
오늘은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언제나 사무적이고 일어설 시간이 정확했던
친구의 느슨한 모습에 오늘은 좀 많이 마시겠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시간에 쫓기지 않는 나 같은 잡지사 기자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하게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측은함이 오늘은 보였다.
대학 시절의 이야기며 해묵은 기삼이 연애 시절의 이야기로 또 몇 잔을 마시고
서서히 취기가 오를 무렵에 기삼이는 한 번도 꺼내지 않던 자신의 직장 이야기를 했다.
"내가 왜 이런데 근무 하는 줄 알아?
내가 원래 소속이 외무부 소속인데…
지금 이곳은 일종의 파견 근무 거든?
내가 이곳에 근무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국가를 경영 하는 여러 부서에서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기관은 있거든.
뭐랄까 통치권자들의 암묵적인 인계인수랄까?
비자금이나 또는 다른 특수한 임무 까지도 대통령 인수인계 할 때 모두 넘겨지는데…
그중의 한 프로젝트 사업이 외무부 관활 인게 있다."
"너…혹시 날 공무원으로 만들 그런 흉측한 계획을 꾸민 건 아니겠지?
빨리 대답해라 "
"이야기 다 듣고 질문해라.
근데 너도 알겠지만 외무부는 사법권이 없단 말야.
그래서 내 가 이곳에 와서 일을 한다.
어차피 나는 경찰력을 뛰어 넘는 힘이 있어야만 무엇이든 집행 할 수가 있으니까.
그곳의 슬로건이 뭔지 알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양한다.' 바로 그거다.
김종필 씨가 만든 그곳의 모토가 이렇게 거창하다.
더 쉽게 설명 하면 음지에서 사람을 때려죽이더라도
그런 게 올바른 양지로 이끌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겠단 이야기다.
이 얼마나 무소불위의 휘황찬란하고 대단한 휘호(揮毫)냐.
어떤 때 나는 큰 돌덩어리 에 새겨진 이 말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내가 그런 곳 에서 일을 한다."
"그래도 항상 맘은 편치 않다면서?"
"너 같으면 편하겠냐?
법대를 수석으로 나온 놈이 애초부터 판사, 검사가 싫어서 이 짓 하고 있는데…
이 짓도 몇 년 하다 그만 두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네가 날도와 준다고 생각하고 잘 좀 해 봐라."
"자꾸 날 네가 있는 시궁창에 끌고 갈 생각 말고 시원스럽게 이야기 좀 해봐라."
"오늘은 술만 마셔라.
다만 앞으로 몇년 동안 나와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고,
그 대신 일이 잘 끝나면 그 이후에는 내가 또 평생 네 신세를 지고 살지도 모른다."
좀 애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나보다 항상 생각이 깊은 너 이었으니까…. ‘
그렇게 생각하고 말없이 앉아 있을 때 기삼이는 박수로 사람을 불렀다.
"오늘 송 마담이 많이 바쁜 모양이지? 왜 오늘은 코배기도 안보여 주네. "
"아닙니다. 이야기 끝나면 들어오시겠다고 대기 중입니다.
모셔 드리겠습니다."
젊은 사내는 손을 가지런히 앞에 모으고 송 마담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대기중? 빨리 짜장면 들고 오라고 그래라. 짜장면 세그릇 가져 오라고 그래. 셋이서 먹 게."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송 마담이 넓은 쟁반에 자장면 세 그릇을 받쳐 들고 들어온다.
첫마디가 재미있다.
"기삼이 오빠.
내가 물장사 수년 동안 짜장면 비벼 달라는 손님은 또 첨이네.
그래도 우리 주방장이 이게 되니까 하긴 했는데
잘못 했으면 중국집에 배달시킬 뻔 했잖아."
"너희 집은 뭐든지 된다면서?"
"그래 웬만 한건 다 된다고 보면 되는데…그래도 짜장은 좀 그렇다. 안 그래? 우상이 오빠?"
송 마담은 항상 말꼬리를 나에게 연결시키려는 버릇이 있다.
내가 말수가 별로 없는 탓도 있겠지만 그런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은 술 취한 기분에 나도 말이 좀 하고 싶어 졌다.
"그럼 느집에서 떡볶이 돼?"
"…………."
"순대는? "
"오빠들 갑자기 왜 그래?"
"기삼이가 그러는데… 그런걸 먹어봐야 이 나라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그런다…"
어이없다는 표정의 송 마담을 보고 있던 기삼이가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우상이가 순대나 떡볶이가 먹고 싶은 모양이네.
오늘 장사 때려치우고 명동이나 신촌으로 모시고 나가서 좀 사드려라.
다 된다고 그랬으면 책임을 져야지…안 그래 송 마담?"
갑자기 송 마담 눈에 미소가 흐른다.
"우상이 오빠 진짜? 그거 먹고 싶어? "
"짜장면 먹어 보고 생각하자. 이거 퍼지면 맛없다."
"딴 소리는…."
옆에서 시중드는 송 마담의 눈이 이글이글 타는 것 같아 조금 불안 했다.
기삼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정말 맛있게 자장면을 먹었다.
송 마담은 가져온 자장면을 비벼 놓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
내가 먹고 있는 모습만 지긋이 쳐다볼 뿐이었다.
입에 한입 물고 있는 자장면과 젓가락에 들려 있는 자장면을 보면서
한손으로 보지 말라고 손으로 얼굴을 가려 봤다.
그런 내손을 잡아 내리면서 그녀는 한마디 했다.
"오빠. 이 짜장면이 나보다 좋아? 짜장면하고 나 하고 둘 중 어떤 게 좋아?"
"짜장면!."
거침없이 대답 해 주었다.
앞에서 자장면을 먹고 있던 우상이가 크게 웃는 바람에
우상이 입에 있던 자장면이 내 앞까지 튀어 왔고,
송 마담의 한복 치마에 까지 날아왔다.
송 마담도 크게 웃으면 물수건으로 내 앞을 닦아 주고 자신의 한복 치마도 닦았다.
"내가 이 장사 오래 하면서 봐온 중에 아직까지 제일 가난한 사람이 우상이 오빠인데…."
그 말을 받아서 기삼이가 못을 박는다.
"그래- 그건 잘 봤다.
저놈 진짜 아무것도 없다.
벗겨 놓으면 달랑 지 불알 두 쪽이고, 뒤집어 놓으면 째진 똥구멍뿐이다.
근데 그런 가난한 필부(匹夫)를 넌 뭐가 좋다는 거냐?"
송 마담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상위에 있는 내 담배를 한 개 빼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여 길게 한 모금 빨아서 연기를 허공에 날리고 그 담배를 나에게 주었다.
"난 사실 돈은 좀 벌었는데…
돈을 제대로 쓰는 남자를 많이 보질 못했거든?
근데 어느 날 우상이 오빠가 와서 술을 마시는데 술이 취하지 않았는데도
재떨이에 있는 꽁초를 주워서 불을 붙여 피우더라고?
우리 집은 담배는 달라면 언제든지 서비스로 나가는데….
그때 내 생각에 …
'이 남자와 살면 돈은 많이 못 벌어 와도 벌어 놓은 돈은 헛되이 쓰지 않겠구나.
'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상하게 그 뒤로 담배만 보면 우상이 오빠 생각이 나는거야.
그래서 항상 오빠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래서 오빠 양말이 빵꼬 난거 신고 왔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너 지금 프러포즈 하는 거야? 중신애비 앞에 두고 직접 프러포즈 하는 것 같은데?"
"오빠 나도 술 한 잔 줘봐."
옆에 있는 잔을 들어 내 코앞에 들이 밀었다.
나는 말없이 소주를 부어서 잔을 채워 주었다.
송 마담을 술을 한잔 입에 털어 놓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물장사 하다 보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겪게 되고,
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보게 되는 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 척 보면 대충 점수가 나오거든?
돈 많은 사람들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있고 힘 있는 사람들 겁주면 다 되는 줄 알지만
그게 그렇지 않거든…
우리 애들 더러 돈 많은 영감들이 아파트나 하나 사주면
덜컥 살림 차리고 들어앉으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잖아?
나이 먹은 영감 떨어져 나가고 젊은 혈기에 기둥서방 잘못 만나면
물장사 판에서 놀다가 결국 냄비장사 판으로 옮겨서 비참해 지는 게 뻔한 통수잖아.
어쩔 땐 나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몸서리 쳐 질 때가 있으니까.
나는 죽어도 그렇게 살진 않겠다고 이를 앙당 물고 이 장사 시작 했고....
이제 뭔가 좀 되었다 싶으니까 이젠 나도 관리를 해야 되겠다 싶드라구…
이런데서 굴러먹은 년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도 써 왔고…
그러면서 사람들 마다 각각 점수를 달기 시작해 봤는데…
처음에 100점을 주고 실수를 하거나 뭘 잘못 하면 점수를 깎아 내려가는 식으로…
근데 우리 집에서 몇 년 동안 100점을 그대로 유지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내 코앞에서 폼 잡고 앉아 있는 가난한 잡지사 기자 안.우.상. 뿐이더란 거야."
"어? 그래? 그럼 나는 몇 점인데?"
"기삼이 오빠는 점수표도 없어.
장가갔고 젊은 여자 있는데 무슨 점수표?
100점주면 그럼 나하고 살 거야?"
"그건 그렇기는 하네.…ㅎㅎㅎ"
기삼이는 오늘 많이 즐거운 모양이다.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사업에 날 끼워 넣은 게 기분이 좋았고
그리고 송 마담의 그런 입담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불안하기만 했다.
송 마담의 표현은 좀 애절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슬퍼하거나 자신감 없는 표정은 결코 아니었다.
송 마담은 자기가 마셨던 잔을 내 앞에 두고 술을 따라 주면서 특유의 넋두리를 계속한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일단 난 우상이 오빠가 좋아.
언제든지 오빠가 프러포즈하면 받 아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내가 이 장사 때려치우는 날이 우상이 오빠가 나한테 프러포즈 하는 날 이야.
불상한 여자 하나 구제 하겠단 생각이 아니고 정말 내가 좋아 지면 항상 연락해.
평소에 말수가 적은 오빠니까 죽어도 말로 표현은 못 할 테고
어느 날 갑자기 꽃이라도 한 송이 들고 나타나면 그걸 프러포즈로 생각할게.
우상이 오빠 나는 이제 할 말 다 했어. 이제 공은 오빠한테 넘어 간 거니까 알아서 해."
거의 협박 수준이다.
'술장사 계속 시킬 거면 좋다 나는 할 거다' 하는 무언의 책임감을 떠 넘긴 것 같았다.
이럴 때 분위기는 항상 우상이가 주도를 한다.
"거참… 널 좋아 한다는 여자가 다 있고…
물건은 잘 골랐다만… 저놈이 꽃 같은걸 살만한 그런 용기는 없을 건데…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나는 둘 다 이해를 못하겠다.
저렇게 가난한 총각을 좋아 하는 송 마담도 그렇고,
능력 있고 예쁜 여자가 자기를 좋아 한다는데도 쥐뿔도 없는게 튕기고 있는
우상이 저 자식도 그렇고… 저놈 저거 고자(鼓子) 아니야?"
"친구야 악담을 해라…ㅎㅎㅎ "
"너 아직도 총각이지?
좀 창피 한줄 알아라. 임마 첫날밤 서로 갈라서는 게 남자 탓 인 경 우도 있다 너… ㅎㅎㅎ
송 마담 확인 하고 뭘 해도 해야 될 거다…"
조용히 있던 송 마담은 웃기만 했다.
서서히 류화 에서의 만찬도 끝나 갔다.
술잔이 몇 번 더 오가고 그리고 내 입에서 '아침이슬' 노래가 나올 때 즈음
송 마담은 서둘러 우리를 돌려보낼 채비를 했다.
정치인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이 요정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술도 많이 취했다.
이제 하숙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좋아 하는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 몇 잔으로 마무리를 하면 그만 이였다.
김민기라는 사람이 아침이슬 이라는 노래를 작곡 할 때는 정치적 연관성이 없었다고 한다.
단지 시위대 들이 많이 불러서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태양이 희망을 상징 한다거나 묘지가 어두운 이 시대를 암시한다는 건
단지 그들의 해석일 뿐 그 가사와 무관하게 시위대들은
그 노래를 좋아 했고 결국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 노래가 좋았고 이집은 그런 노래를 부르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다.
기삼이와 함께 현관까지 내려오자 송 마담이 마중을 하고 대문을 나와 택시를 타기 전에
기삼이가 서류 봉투 하나를 준다.
"잘 보관해라. 나중에 필요한 거다. 또 연락할게 "
손을 흔들어 보이고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택시를 타라는 송 마담의 권유를 뒤로 하고 큰길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 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순간은 항상 긴박감이 있다.
내가 타야할 버스가 왔는지 항상 시선은 왼쪽에 고정 하고
먼 곳에 버스가 정차 하면 뛰어 가야 하고 가끔씩 내 앞에 정확히 서는 때에도
차가 좀 지나쳐 서지 않을까 하는, 순간적인 걱정이 든다.
어차피 나는 택시비가 있어도 버스를 타야 하는 소시민일 뿐 이였다.
버스를 타고 나면피곤에 찌든 일상의 서민들 모습이 완연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그날을 정리 한다는 그럴듯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나 역시 마찬 가지다. 더러 손에 과일이나 케이크 같은걸 들고 타는 사람의 모습에는
평소에 내가 동경 하지는 않았지만 행복 할 것 같은 가정 이라는 모습이 상상 으로만 보일 뿐이다.
그 가정 이라는 조합이 만약 송 마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러 상념이 뒤엉킨다
일단 송 마담은 내가 꽃을 보내기만 하면
모든 걸 포기 하고 정말 가정 이라는 걸 꾸며 보겠다고 그랬다.
빈말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날 좋아 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어머니가 나에게 전화 했을 때 '넌 애인도 없어?'
그 대답에 '예 조만간색시 얼굴 보여 드릴게요' 했었다.
‘그 색시가 송 마담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혼자 가볍게 웃어 봤다.
그래… 나 같은 놈이 그런 여자와 결혼 한다면 그것도 장안 에서는 큰 사건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 그건 큰 사건이다….
달리는 차안에서 보는 서울의 밤거리는 여전히 바쁜 사람들의 모습과
밤 문화를 이루는 또 하나의 무리들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 이였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