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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1) 정성과 공경심으로 빚는 색향미
좋은 차엔 좋은 물이 있어야
차가 제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속이요 건강에 좋은 음료라 할지라도 우선은 입에 맞아야 가까이 할 수 있다. 그러자면 차를 제대로 우릴 줄 알아야 한다. 색과 향과 맛(色香味)을 합한 것이 차의 맛이라면 세 가지가 다 풍부하도록 차를 우려야 한다.
흔히 중국은 향기(香)를, 일본은 색깔(色)을, 우리는 맛(味)을 중시한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음다풍(飮茶風)의 우수함을 대변해 주는 적절한 말이다. 향기는 좋아도 마시지 못할 것이 있고 빛깔은 훌륭해도 향기나 맛이 부족할 수 있지만 뛰어난 맛이란 향기와 빛깔을 반드시 동반하기 때문이다.
좋은 차맛을 얻으려면 좋은 차가 있어야 하고 무색무취(無色無臭)의 좋은 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정성을 다하는 자세이다.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차를 우리면 "중품(中品)의 차로도 극상품의 맛"을 낼 수 있으며 색향미의 멋드러진 어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차에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투명한 비취빛 색깔, 봄내음같은 풋풋한 향기, 은은하고 달콤한 여운을 주는 감미로운 맛 등 제대로 드러난 색향미를 만나게 되면 흔연(欣然)함을 느끼게 된다.
다구(茶具)의 준비
차생활 도구를 총칭하여 다구(茶具)라 부르고, 차를 우리는 데 필요한 그릇, 즉 다관(茶罐:차 우리는 그릇) 숙우(熟盂:물식힘 사발) 잔(盞) 등은 다기(茶器)라고 하는 데 도자기 제품이 좋다. 어울림도 어울림이지만 도자기가 가지고 있는 흡습성(吸濕性)이 차의 성품에 맞기 때문이다.
옛 풍습에 "다기는 사람과 사람을 인연지어주는 신성한 기물"이라 하여 주방용품과 같이 두지않고 따로 다실에 두었다. 요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만 지나치게 진열하듯이 두었다가 특별한 경우에만 꺼내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응접실이나 서재나 사무실의 한 공간에 두어놔서 언제든지 물만 끓이면 차를 마실 수 있도록의 상태가 좋다.
다기는 보통 주전자 형태의 우림그릇, 물식힘 사발, 잔 5개 등으로 되어있으며, 그외 차상(床) 잔받침(托:오동나무) 수저(匙:대나무) 수건(巾:세마) 차호(壺:도자기) 뚜껑받침(竹제품) 버림물사발(退水器) 깔개와 청홍보(靑紅褓) 등을 갖추면 훌륭한 차석(茶席)이 된다.
다섯개의 잔이 말해주듯 보통은 5인용, 즉 다섯이 함께 차를 나눌 수 있는 용량의 세트다. 요즈음은 1인용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널리 애용되고, 3인용, 또 2인용 부부다기도 선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기본은 5인용이다. 5인용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음양오행과도 관련이 있지만 "우리를 명상으로 인도하는 오묘한 마력을 지닌 차"는 사람이 많으면 한적하게 그 아취(雅趣)를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사람이, 혹은 세사람이 차를 마실 때가 있다. 이때 다섯사람용 주전자를 쓰면 어떻게 될까. 큰 그릇에 차를 조금만 넣고 우리는 격이니 맛도 향도 필요 이상의 공간에 흩어져 참 맛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고 비싼 차를 다관 크기에 맞춰 많이 넣는다는 것도 낭비가 된다.
이런 저런 때를 대비해서 차주전자만은 크고 작고 중간쯤 되는 것을 구해 두는 것이 지혜다. 2인용 3인용 하는 것도 결국은 차주전자의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차 우리는 순서
이제 다음에 열거하는 순서대로 차를 우려보자. 우선 물을 끓인다. 물을 끓이면서 다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가를 꼼꼼이 살펴본다. 부족한게 있어 차를 내는 도중 자꾸 일어나게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함께 차 마실 사람의 수를 생각하여 적당한 크기의 다관을 선택한다. 물은 천천히 오래 끓어 잘 익은 상태가 좋다.
준비가 되었으면
(1) 먼저 모든 다기에 예열을 준다. 끓인물을 숙우(물식힘사발)에 붓고, 숙우의 물을 다관(차주전자)에 넣고, 다관의 물은 다시 잔에 옮겨 예열을
주며, 동시에 필요한 물의 양을 가늠한다.
(2) 숙우에 물을 담는다. 이번에 담는 물은 차를 우릴 물이다. 다음 빈다관에 차(차잎)를 넣는다. 그리고 숙우의 물을 넣는다. 이때 물의 온도는 70도C
내외가 이상적이다. 연구 결과 이 온도에서 차의 여러가지 성분이 가장
조화롭게 우러난다. 너무 뜨겁게 하면 비타민 등 좋은 성분들이 파괴된다.
(3) 차가 다관에서 우러나는 동안 예열을 위해 담아둔 잔의 물을 하나씩 버린다. 이때는 웃사람의 잔을 나중에 비운다. 귀한 분의 잔일수록 오래 예열을 주는 섬세한 배려이다.
(4) 2,3분 정도 지나 차가 잘 우러났다고 생각되면 이제 잔에 나누어 따른다. 이때 주의할 점은 색향미를 고르게 하는 것이다. 따르는 순간에도 농도는
자꾸 짙어지기 때문에 차례로 잔을 채워가면 처음 것은 엷고 나중 것은 진해진다. 그러면 안되니까 처음에는 반쯤 따르며 갔다가 돌아오며 잔을
채우도록 한다. 우에서 좌로, 다시 좌에서 우로 옮겨가며 채우면 된다. 차석에서는 이렇게 평등(平等)과 우애(友愛)를 나눈다.
(5) 잔을 주고 받는 것이 예절의 하이라이트다. 어느만큼 공손히 내밀고 또 정중하게 받는가가 개개인의 품위를 대변한다. 대접할 때의 자세와 몸가짐,
대접받을 때의 자세와 몸가짐은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같다. 또한 이것은 일상에서 늘 반복되는 생활예절의 기본이니 잘 익히도록 한다.
(6) 차가 다 나누어지면 주인이 "드십시오"한다. 이는 정성을 다했는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표현과 같다. 상대의 정성이 담긴 것이니
어깨를 펴고 자세를 바로해서 제대로 음미하도록 하자.
마실 때는 먼저 색을 감상하고 가까이 가져가면서 향기를 취하고, 그리고 한모금 입에 넣어 맛을 음미하도록 한다.
다시 숙우에 물을 담아 약간 식힌 뒤 다관에 붓는 식으로 반복하여 2번차 3번차를 우린다. 보통은 세번 정도 우려 마시는데 좋은 차는 일곱번을 우려도 그 색향미가 처음과 같다. 옛 다인들은 1번차보다 2번차의 맛을 더 진미로 여겼다.
차 우리기를 이렇게 글로 풀어 쓰다보면 다소 번거로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느낌일 뿐이다. 연습해서 몸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간편함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왜 꼭 이렇게 우려야 하나?"하고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 차츰 차와 친해지고 이웃에 권할 정도가 된 뒤, 뜻밖에도 자신에게 가르쳐준 사람보다 더 엄격하게 행차(行茶:차 우리기)를 소중히 여기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 속에 멋과 아름다움이 출렁이기 때문이다.
입문(2) 성분과 효능
사람에게 매우 좋은 음료
차는 약으로 시작하여 나중에 음료가 되었다. 그러나 우려서 마시는 것으로 치료의 효과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다만 예방적인 차원에서 그 효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특히 "흐린 것을 맑게하고 굳어진 것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이뇨(利尿) 강심(强心) 해독(解毒)에는 다른 어떤 민간처방보다 그 효과가 빠르고 분명하다. 다경(茶經)에 적힌 차의 효능은 다음과 같다.
...차(茶)는 사람에게 매우 좋은 음료이다. 갈증을 없애고, 음식을 소화시키고, 담을 제거하고, 잠을 적게하고, 소변에 이롭고, 눈을 밝게 하고, 머리가 좋아지게 하고, 걱정을 씻어주며, 비만을 막아준다. 사람에겐 본래 하루도 차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식사가 끝났을 때 진한 차로 입안을 가시면, 기름기가 말끔히 제거될뿐 아니라 뱃속이 개운해진다. 잇새에 낀 것도 차로 씻어내면 모르는 동안에 없어지기 때문에 번거롭게 이를 쑤실 필요가 없다. 이의 성질에는 쓴 것이 좋기때문에 자연히 이가 튼튼해져서 충과 독이 저절로 없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품이나 하품의 차로서 이러한 효능을 얻는다...
옛사람들이 전하는 것은 대개 경험에 의한 기술일테지만,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현대의 과학적 분석이나 임상실험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연구결과 차에는 조혈작용, 이뇨, 정신상쾌, 괴혈병과 빈혈방지, 성장촉진, 살균, 각기병 예방, 체액조절, 골격형성 등을 돕는 성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복잡한 현대생활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큰 효과를 보인다. 특히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식후에 차를 한잔 마시고, 일이십분쯤 쉬는 것이 건강에 매우 좋고 소화에도 크게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성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생엽(生葉)은 70% 내외의 수분과 30%의 고형물로 되어 있으며, 고형물에는 탄닌, 아미드, 단백질, 그리고 당 전분 섬유소 펙틴 등 탄수화물, 색소와 향기 성분인 정유, 비타민 등이 고루 함유되어 있다.
차가 특히 일반 식물과 구별되는 점은,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고 탄닌함량이 많으며, 무기 성분으로 망간과 불소, 옥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성분들은 방사능 오염방지, 심장강화, 니코틴 해독, 동맥경화 예방, 안질치료, 항암작용, 미용효과 등에 약리적 효과까지 지닌 것으로 나타나 주목받고 있는 데, 자체에 함유된 상태에 그치지 않고 더운 물로 우려내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합성이 이루어져 그 신비성을 더하고 있다.
효능이 이러할진대, 시인묵객의 노래가 없을 리 없다. 육당 최남선은 이 차로서 백성의 흐린 정신까지 맑게하자는 노래를 남겼다.
만고의 무등산이 수박으로 유명터니
홀연이 증심작설 고개를 들었네
이 백성 흐린 정신 행여 맑혀줍소사
또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차에는 사람을 사색의 숲으로 인도하는 마력이 있다. 차는 지성인의 영원한 반려이다"
시성(詩聖) 이태백의 달 예찬, 주성(酒聖) 류백륜의 주덕송(酒德頌)과 격을 같이하는 당(唐) 시인 노동은 칠완다가(七碗茶歌)에서 차 여섯잔에 신선이
되고있다.
一碗喉吻潤 二碗破孤悶 三碗搜枯腸 惟有文字五千卷 四碗發輕汗
平生不平事盡向毛孔散 五碗肌骨淸 六碗通仙靈 七碗喫不得也
惟覺兩腋習 習淸風生 蓬萊山在何處 乘此淸風欲歸去
첫 잔을 드니 목과 입술이 부드러워지고,
둘째 잔에 고독과 번민이 스러진다.
세째 잔이 마른 창자까지 적셔주니
오직 오천권의 문자만 남는구나.
네째 잔에 평생 불평스럽던 일들이 땀구멍으로 흩어지고,
다섯째 잔에 뼈와 살이 맑아지니,
여섯째 잔에 선령에 통하는구나.
아아, 일곱째 잔은 마실수가 없구나.
양겨드랑이에서 시원한 바람 나오니 봉래산이 어디 있느냐.
이 맑은 바람 타고 가련다)
차 여섯 잔에 신선이 되어 봉래산(理想鄕)을 찾는 노동이 남겨놓은 일곱째 잔은 우리의 다산(茶山) 정약용이 마신다. 강진 유배생활 중에 사귄 혜장으로부터 차생활을 익힌 정약용은, 어느 날 차를 마시고 싶으나 차통이 비어있자, 임금님에게 올리는 소(疏)의 형식을 빌어 혜장에게 차를 구(乞)하는 편지를 쓴다. 그것이 유명한 걸명소(乞茗疏)다.
나그네는 근래 차 버러지가 되었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있오.
차 가운데 묘한 법은 육우의 다경 삼편이 통달케 하니
이에 취한 나머지
다인 노동조차 마시지 못한 일곱째 잔을 마르게 했오.
정력이 쇠퇴한듯 하나 기모경의 말을 잊지 않았고,
막힘을 풀고 흉터를 없애기 위해 이찬황의 차 마시는 버릇을 얻었오...
아아, 윤택할진저, 온 누리가 환해지니...(후략).
차의 오공육덕
차가 사람의 생명과 생활에 주는 공덕을 다 열거할 지면은 없다.
주다론(酒茶論)의 말미에 결론지었듯, 수미(須彌: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를 혀로 삼아 아승기겁(阿僧祇劫: 끝없는 시간) 논한다해도 그 덕(德)을 다 찬(讚)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 성종 연간에 차를 아끼던 이목(李穆)이란 선비가 있어 차의 공덕을 5공과 6덕으로 축약해 노래로 남긴바 있으니, 이 이목의 다부(茶賦)로서 성분과 효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차에 다섯가지 공이 있으니
첫째 갈증을 해소하고 둘째 울분을 달래주고,
세째 이웃과 정답게 대화를 나누게 하고, 네째 인체에 유해한 삼충(三蟲)을
몰아내고, 다섯째 주독(酒毒)을 풀어준다.
또 차에 여섯가지 덕이 있으니,
오래 살게하고, 병을 낫게하고, 기운을 맑게하고, 마음을 편안케하고,
예의롭게 하고, 나아가 신선처럼 살게 한다...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에서 또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古來聖賢俱愛茶 茶如君子性無邪
옛부터 성현이 차를 가까이 하였나니,
차는 군자와 같아 사악함이 없기 때문이다.
입문(3) 차는 세계인의 음료
우리 생활에 깊숙히 배어있는 문화어 중에 '차'가 있다. 식후에 한 잔 마시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말도 있고, 흔히 겪는 일을 밥 먹고 차 마시듯 한다 하여 '일상다반사'라 이르고, 손님 접대시 내어놓는 음식상을 '다담상'이라고 부른다. 뿐인가, 웃어른이나 조상께 예를 갖추는 것을 차례 지낸다 하고, 담배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이를 '연차'라 불렀을 정도로 차는 우리네 생활 속에 다정한 용어였다. 차가 그만큼 뿌리를 내린 것은 우리 생활 문화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차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상징했다. 차차 설명이 되겠지만 차생활로 거친 심성을 순화시켰고 예절을 익혔으며 멋과 풍류가 있는 사회를 이룩했다.
소박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심미안으로 자신의 미를 가꾸고 다듬었다.
덕분에 우리 민족은 언제 누구에게서나 단정하고 예절 바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공자도 '군자의 나라'라 칭송하면 건너와 살고 싶어했다.
그런데 근세에 와서 차생활이 사라졌다. 생활문화의 중심을 잃으면서 사회는 건조해지고 심성은 거칠어졌다. 쉽고 편하고 간단하고 빠른 것만을 선호하게 되면서 한국적인 멋과 풍류의 정서를 멀리하게 되었다. 우리 땅에 살면서 우리다운 모습을 잃게 되었고, 보다 이기적이고 가벼운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현상을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이해가 충분치 않다. 차생활이 사라지면서 생각하는 생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조화로운 자세를 함께 잃은 것이다.
멋있는 생활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을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한다. 그럼 건강하고 직업도 안정된 사람들이 다음 차례로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멋있는 생활'이다. 멋은 '무엇'의 준말이다. 멋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 생활이다.
'무엇'에는 어떻게 접근할까. 참다운 멋은 형식 보다 내용에 있다. 따라서 사유하는 것으로 접근할 수 있다. 즉 생각하는 생활이다. 그런데 쉽고 간단하고 편한 생활에서는 '생각'이 쇠퇴한다.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해 본 시간이 있는가? 아름다움은 만인의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러자면 스스로 아름답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을 가꾸고 다듬는 노력 속에서 상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심미안'은 열린다. 매사에 정성을 다하고 한결 같이 진실을 모색하는 섬세한 자세에서 마음의 눈 '멋'을 보게 된다. 사유의 가장 훌륭한 반려는 '차'다. 차생활을 통하여 생각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멋있는 인생에 접근할 수 있다. 동양에서 생산되는 차가 세계인의 음료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차'는 고유명사
그러면 차란 무엇인가. 근세 역사의 격랑으로 차생활 습속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차가 무엇인지조차 혼동하게 되었다. 커피도 차의 일종이라 여길만큼 차를, 그저 마시는 음료의 대명사 쯤으로 여긴다. 이는 차에 대한 모독이라 할만큼 부끄러운 일이요, 문화민족 역사에 먹칠하는 무지가 아닐 수 없다.
차는 고유명사다. 한국의 다성 초의선사는 동다송 첫 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한울님께서 덕을 지닌 아름다운 나무를 전하니 곧 차나무이다'
차나무는 상록활엽관목으로 키 작은 동백나무와 비슷하다. 강우량이 많고 안개가 자주 끼는 남쪽 산간지대에서 자란다. 이 나무의 잎에 머리를 맑게하고 소화를 도와주는 성분이 가득하여 잎을 그대로 가루내어 뜨거운 물에 풀어 마시거나 더운 물에 우려 그 성분을 취하는 것이다.
쓰고 떫고 시고 짜고 달고의 다섯 가지 맛이 있는데 처음 입에 닿는 맛은 쓴맛이지만 맨 뒤에 남는 맛은 향기로운 단맛이다.
우리 몸의 70%는 수분이다. 때문에 물을 가려서 마시지 않으면 금세 병이 난다. 체질이 약한 사람은 여행 중에 물이 바뀐 것만으로도 큰 병을 얻는다. 그 정도로 물은 우리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이다.
차는 그 뛰어난 성분으로 흐린 물을 맑게 하고 탁한 것을 정화하는 효능을 갖고있는 은혜의 생명수다. 중국이나 십수질이 나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차를 필수 음료로 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좋은 물이 있으면 더욱 좋은 차를 우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는 인간관계를 훈훈하게 하고 생활문화를 진보시키는 중심수단이 된다.
생각해 보자. 너나 없이 우리는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차 한 잔 하자' 라고 말하지 않는가. 상대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 수록 우아한 장소에서, 예쁜 잔에, 색향미 훌륭한 일품의 차를 대접하고 싶어한다. 감미로운 음악이 있으면 더욱 좋고, 싱싱한 꽃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가 된다.
이러한 차를 비서나 남 시켜 대접하지 않고, 손수 우려 대접한다면 상대의 기분이 어떨까. 주인이 직접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성을 다해 우린 한 잔 차를 대접 받는 손님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감동적이지 않을까.
이런 정도로만 짚어도 한 잔의 차를 중심으로 다듬어지는 예의범절과 심성, 훈훈하면서도 격조 높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문화의 향기를 피부로 느낄 것이다. 멋은 생활 속의 예술이요, 차는 분명한 그 중심인 것이다.
입문(4) 커피 세례식과 차의 종교색
차는 불교인의 음료?
차문화를 논하기 전에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종교색이다.
한낱 음료에 종교색이 있을리 없건만 많은 사람들이 "차는 산사의 스님들이나 마시는 음료" 라고 말하며 외면하는 사례가 있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사회에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유는 차나무 재배가 주로 사원 주변에서 이루어졌고, 또 참선하는 스님들이 즐겨 마셔왔다는데 있다.
그것은 이 땅에 배어있는 불교의 색깔이지 차에 담겨있는 종교의 색깔일 수 없다. 우리에게 가톨릭은 2백년, 기독교는 1백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그 이전의 역사는 유불(儒佛)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고, 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교였다. 궁정에서 차가 중요한 예폐물이 되고, 사원에서 수도용 음료가 되고, 선비사회에서 풍류로 즐긴 것은 문화와 역사의 색깔이지 종교의 색깔일 수 없는 것이다.
차가 불교의 것이라면 커피는 회교의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10세기말 이디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된 커피는 적어도 5백년간 회교승들 사이에서 애음되었다. 커피의 효능도 차와 같아 잠을 쫒아주고 정신을 맑게해주니 수도용 음료로 적격이었다.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회교 성지 메카에서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회교승들에 의해 문을 열었다. 그들은 순례자뿐 아니라 일반인, 상인에게까지 커피를 나누어주었다.
동서가 본격적으로 만나는 지구촌의 교류는 16세기에 시작되었다. 그 이전 로마제국이나 몽골제국이 세계국가로서 큰 발자국을 남기긴 했지만 대륙의 큰경계를 넘지는 못했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세계화의 물꼬를 튼 것은 포르투갈 스페인으로 대표되는 신대륙 발견의 대항해와 네델란드 상인들의 동서 해상무역로 개척 등이 결정적인 동기였다.
16세기 아라비아를 침략 지배한 오스만제국(터키의 전신)은 회교승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콘스탄티노풀(지금의 이스탄불)로 수입해갔고, 이곳에서 다시 전 유럽으로 번졌다. 그런데 교황청이 "커피는 회교승들의 음료"라는 이유로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커피는 악마의 피(커피 악마설)"라는 설은 그때 나돌던 것이다.
커피를 맛 본 사람들은 그 향기에 매료되어 계속 마시기를 원했지만 밀수의 수단 밖에 는 없었다. 특히 상류층 귀부인들 사이에 유행한 커피는 교회가 금하는 바람에 "은밀한 모임"으로 발전했고, 부인들의 "은밀한 외출"이 잦아지자 남편들은 술집으로 흘러 가정이 파괴되는 일까지 생겨났다.
금하는 것을 계속할 때 강제가 발동되는 것은 고금이 마찬가지인지 급기야 콘스탄티노풀에서는 커피를 마신 사람의 혀를 뽑고 커피 밀무역자는 커피포대에 넣어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극형이 행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는 더욱 번져 콘스탄티노플에는 물론, 베를린, 빈, 함부르크, 파리, 런던, 옥스퍼드, 마르세이유 등지에 속속 커피하우스가 생겨났고 많은 루머와 논쟁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교황의 결재를 다시 받게 되었다. 이때 처음 커피를 마신 교황 클레멘스 8세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악마의 음료라는 것이 이렇게 향기롭고 맛있는가? 이런 훌륭한 음료를 이교도들만이 마신다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로다. 내가 커피에 세례를 줄 터이니 앞으로는 모든 기독교인이 편하게 마실지어다"
며칠 후 로마에서의 커피세례식은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이후 유럽의 생활문화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분다.
이와같은 커피 일화는 "차는 불교적인 것"이라고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가슴 뭉클한 여운을 준다. 커피는 유럽의 산물이 아니기에 커피 이전의 유럽문화를 논할 수 없지만 차는 우리의 산물이기에 우리 생활문화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차를 외면하는 것이나 무지한 것도 문제지만 조선시대의 "억불숭유"는 더욱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은 도덕이 제일이요 물질생활은 천시하던 청빈의 시대였다.
이는 차생활에서 가르치는 중정(中正:中庸思想)이나 "매사에 정성을 다하고, 덕을 쌓되 검소하게 쌓아야 한다(精行儉德)"는 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에, 차생활을 통하여 사유(思惟)를 반려 삼고 심성(心性)을 수련하는 것이 더 널리 보편화 되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쇠퇴일로를 걷다가 중엽에 이르러 단절된 느낌까지 주는 것은 도덕보다는 척불(斥佛:抑佛)이 우선했고, 척불로 인해 사원이 주도하던 차 생산이 급격히 감소한데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지적했듯 차는 불교의 승려들이나 마시는 "그런 음료"로 인식하여 의식적으로 멀리함으로서 우리 문화의 색깔까지 혼돈스럽게 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입문(5) 차의 기원과 달마 이야기
무릇 사물에는 기원이 있다. 예절에도 시조가 있다. 손님이 왔을 때 차를 먼저 대접하는 것은 관윤(關尹)에게서 비롯되었다. 관윤은 함곡관에서 철인(老子)을맞을 때 언제나 차(茶)를 먼저 올렸다.
차의 기원에는 대략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BC3000년대의 신농씨 발견설이다. 신농씨는 농사짓는 법을 백성에게 알려주어 신농(神農)이며, 불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하여 "염제(炎帝)"라 불린다.
또 약과 의술을 관장하여 산과 들에 있는 만가지 약초를 일일이 씹어보고 그 성분과 효능을 일일이 기록하였는데, 하루는 독초를 씹어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 때 한 나무가지가 너울너울 춤을 추어 그 잎을 따 씹으니 온몸에 퍼졌던 독이 풀리더라는 것이다.
신농씨는 이를 풀도 나무도 아닌 것이 사람을 감싸고 기운을 되찾게 했다하여 풀 초와 나무 목 자 사이에 사람 인을 넣어 차(茶)라 이름하고 특히 해독(解毒)에 효능이 있다고 기술하였다.
다음은 중국 전국시대 명의(名醫) 편작(扁鵲)에 얽힌 설이다.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명의 편작은 8만 4천가지 약방문을 알고 있었는데, 너무 유명한 것이 화근이 되어 진나라 의사인 태의령에게 암살을 당했다. 제자들이 전수받은 것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4만가지 뿐이었다.
졸지에 스승을 잃은 제자들은 무덤 앞에서 슬퍼하며 미처 전수받지 못한 나머지 처방을 아쉬워했다. 그러자 무덤에서 한 나무가 솟았는데 그 나무를 잘 연구하니 그 안에 신비한 성분과 효능이 가득하여 스승으로부터 미처 전수받지 못한 처방의 대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차나무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달마(達磨)대사 이야기다. 달마대사 이야기는 하도 많아 일일이 옮길 수도 없는데 하나만 소개하면, 참선을 하는데 자꾸 졸음이 오자 "이는 눈시울이 있어 자꾸 눈을 덮기 때문"이라면서 눈시울을 뚝 뚝 떼어내 뒷뜰에 던져버렸다. 얼마후 뒷뜰에 나무가 솟았는데, 그 나무잎을 씹으니 잠이 멀리 달아나더라는 이야기다.
세가지 기원설 중에서 신농씨 발견설과 편작에 얽힌 설은 내용이야 어쨌든 "차는 해독과 살균에 탁월한 성분이 있고, 또 잠을 쫓아주고 심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처음에는 약용(藥用)이었다가 차차 음료가 되었다"는 주장을 훌륭하게 뒷받침해준다. 차도비서(茶道秘書)에 "차는 약초라고 하지만 병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다만 예방이나 식독을 없애는 효능은 뛰어나다"고 한 것으로 보아도 약용에서 음료가 된 변천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숙제는 달마설이다. 일반적으로는 달마대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차의 기원에 관련된 달마는 인물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다도(茶道)에서 차는 중정(中正:中庸)이요 "질서(秩序)의 근본"임을 강조하는 것은 달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마를 다르게 해석하면 "인간생활에 질서를 주는 법 또는 관념"이 된다.
인도의 고어 산스크리트어(梵語)에서의 dharma는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다른 모든 존재를 활동하게 하는 질서의 근거"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처음에 이 용어를 번역한 지나(支那:中國)의 학자들은 음(音)을 따서는 달마(達磨)로 적고 뜻은 법(法)이라고 옮겼다. 따라서 베다시대(BC1200년경)의 달마는 "하늘의 질서로서 나타나는 리타 브라다"와 함께 형이상학적인 용어로 이해되었었다.
브라마나시대(BC800년경)로 넘어오면서 달마는 신격(神格)에서 인간 쪽으로 더 가까와지는 변화를 보인다. 아무리 약자라도 달마를 지니면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식의 영험한 존재인 동시에 만물이 그 힘의 정도에 구애없이 공존할 수 있는 질서의 진리가 또한 달마였다.
불과 백년전만해도 달마 이야기는 전승설화로 취급되었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돈황에서 발견된 어록에서 뜻밖에도 달마의 행적 기록이 발굴되면서 그는 실존했던 인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소림사에 있을 때, 후일 소림의 제2조가 되는 혜가가 찾아와 답을 구하는 대화도 그 안에서 나왔다.
참선(參禪)을 수행의 으뜸으로 여긴 달마가 수마(睡魔)와 싸우는 처절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전해지는 이야기 그대로 눈시울을 떼어 버릴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눈시울 버린 자리에서 차나무가 솟았고 그 잎을 먹으니 머리가 맑아지고 잠이 달아나더라는 이야기는 기원(起源)이기보다 기원(祈願)일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 우리에게 보다 친근한 기원설도 있다.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꿈의 계시를 받고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예폐물 중에 차씨가 있었다는 설이다.
차나무는 직근성으로 뿌리가 곧장 밑으로만 뻗기 때문에 옮겨 심으면 죽는데, 여자가 시집을 갈 때 차씨를 가져가 뒷뜰에 심는 것이 같은 뜻이다. 이제 옮겨살지 못할 시댁 귀신이 된다는 뜻이다.
식물학적으로 접근하면 자생설도 있다. 차나무는 은행나무와 같이 고생대 식물에 속하는데 고생대 식물이 자생할 수 있는 토양이 우리나라 지리산 일대라는 것이다.
차의 기원이나 차나무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이외에도 많으나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 해독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거나 잠을 멀리 쫓고, 심신을 맑게하여준다는 공통점을 담고 있다. 차나무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은 산삼(山蔘)이나 은행잎의 성분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듯, 우리 차의 성분이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