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한 삶의 태도 ♣
제자들 사이의 서열 다툼 문제는 공관복음에서 다섯 번 나옵니다. 오늘 복음은 단순히 서열시비를 언급하기보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룹니다. 오늘 복음은 큰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작은 자는 쫓겨난다는 결론에 따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말해줍니다.
제자들이 누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18,3)고 하십니다. 당시 어린이들은 가난한 이들처럼 대접을 잘 받지 못했고 주장할 권리도 없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첫째 조건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은 어린이의 순진함과 천진난만함, 그리고 겸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써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곧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 가난한 자 되어, 새로운 눈으로 모든 사건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늘 나라에서는 어린이처럼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 하십니다(18,4). ‘낮춘다’는 것은 비굴하고 수동적인 복종이나 거짓 겸손이 아니라, 하느님을 주인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을 그분의 피조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비워 낮추지 않고 하느님을 뵐 수 없고 영적 성숙에 이를 도리는 없지요.
자신을 낮추는 것은 내적 만족을 위한 폐쇄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낮추는 까닭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과 피조물들과의 거룩한 관계를 더 깊이 더 폭넓게 맺기 위해서입니다. 서둘러 자신을 낮추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장 보잘것없는 미소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다운 모습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18,5) 자신 전체를 하느님으로 채우고 예수님과 온전히 일치한 사람이 곧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그런 자세와 마음의 지향을 지님으로써 모든 피조물을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형제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겠지요.
우리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는 하늘 나라를 지향하고 하느님의 선을 추구하며 그분의 자비를 주고받으며 살아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특히 신앙공동체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오히려 우선선택해야 합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18,14).
하늘 나라를 반영해야 할 신앙 공동체에서도 가장 큰 사람의 기준은 신분이나 지위, 재물 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보잘것없고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 사회적으로 힘없는 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로 받아들이는 소명을 충실히 사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 하십니다. 사랑과 겸손이 많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인 셈입니다.
우리도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먼저 남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회개하고 새로워져야겠지요. 그리고 부유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자신을 낮추어, 그 누구도 멸시하지 말고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여 사랑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요 우리가 지니고 살아가야 할 복음의 지침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옵션(option)이 아니라 기본(Basics)
마태오복음사가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업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산상설교"(5-7장), "파견설교"(10장), "비유설교"(13장), "공동체설교"(18장),
"종말설교"(25장)로 엮었다는 것은 이미 누차 밝혀두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공동체설교의 첫 부분이다.
공동체설교는 교회 안에서 신자들간에 지켜져야 할 규범을 담고 있어 "교회규범"이라고도 한다.
이는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작은 교회로 통하는 가정교회의 규범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으로 시작되는 공동체설교는 당장 예수님 주위의 제자들에게 향하기보다는
마태오복음공동체를 포함한 초대교회를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마태오의 편집의도가 많이 첨가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복음의 공동체설교는 세 가지의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라는 것"(1-5절)이고,
둘째는 "보잘것없는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10절)이며,
셋째는 "율법상의 죄인들과 윤리상의 죄인들을 소외시키지 말라"(12-14절)는 것이다.
물론 오늘 복음에서 제외된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6-9절)는 규범도 있다.
첫 번째 규범의 도입부에 마태오는 제자들이 예수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1절) 하고 물었다고 하지만,
마르코는 제자들이 도상(途上)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하고,
루카는 제자들이 서열을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고 한다.(마르 9,33-34; 루카 9,46)
잃은 양 한 마리를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의 비유는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온정과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예수 어록집에서 따온 것이다.
루카는 이 비유와 함께 다른 비유들을 한데 모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루카 15장)
마태오복음 공동체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 교회공동체 안에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성직자와 수도자들 사이에 권위주의와 서열다툼이 팽배하고,
형제적 사랑이 부족하여 후임자가 전임자를 마구 흠집 내는 일도 많다.
"미사예물 단가가 비싸서 미사봉헌 한번 제대로 못하는"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신자들은
소외 받고, 혼인법상 조당(阻 )에 처한 신자들을 마치 중죄인 취급하며,
조그만 잘못도 부풀려 입에 담아 회자하고, 나서서 단죄하기를 즐겨하는 신자들도 종종 있다.
뿐만 아니라 남을 죄짓게 만들고, 스스로도 죄지을 기회를 피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일도 있다.
오늘 예수께서 내리시는 공동체 내규는 옵션(option)이 아니다.
여러 개를 놓고 여건을 고려하여 마음가는 대로 고르는 선택사향이 아니라,
기본(basics)에 속한다는 것이다.
기본은 곧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부산교구 박상대 신부
첫댓글 오늘 복음은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어떤 그림을 떠오르게 하는데....제목도 모르고 화가도 기억이 안 나네요...
지상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나간듯한 아이를 걱정하는 듯, 경멸하는 듯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아이만이 하늘나라를 똑바로 손짓하며 바라보고 있는 그림인데요...
어쩌면 겸손을 가장하고, 속으로는 똑똑하다고. 다 잘 안다고, 잘났다고, 맘 속으로 생각하는 우리는,
사팔뜨기에 정신 나간 것 처럼 보이는 어린아이가 보는 소중한 것들은 볼 수 조차, 볼 마음조차 가지지 못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가 아닐까...
그리스도님, 불쌍한 저희를 저버리지 마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