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는 대자연에 대한 횡령입니다 / 보광 스님
기축년 새해 들어 저는 ‘소욕지족으로 살자’는 발원을 했습니다.
적은 것이든, 작은 것이든 만족한 마음을 갖고 살자.
부자는 만족했을 때 되는 것이지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마음이 헐떡이게 마련입니다. 지금 세계 경제는 어려워졌고 실업률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는 곰이 동면하듯 추위를 버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동물은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을 알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고 추위가 찾아오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므로
동굴 속에 들어가 숨만 쉬며,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비시키며 겨울을 견딥니다.
산천초목을 떨게 하던 곰이 꼼짝도 안하고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식물도 가을이 되면 겨울 준비를 합니다. 겨울에 끌고 가기 어려운 것들은 떨어뜨려 버립니다.
나뭇잎을 놓아버리지요. 여름에는 일부러 따려고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 잎이
가을에는 저절로 다 떨어집니다. 최소한의 것만 남겨 놓는 것입니다.
족함 아는 것이 바로 불교
그런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넉넉할 때 살던 생각을 어려울 때도 못 바꿉니다.
그러니 만나는 사람마다 죽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 해도 60년대 살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살만합니다.
60년대에는 하루 세 끼 밥 못 먹는 사람이 수두룩하지 않았습니까.
그때에 비교하면 소득도 높아졌고 우리 사는 것이 얼마나 윤택해졌습니까.
그때는 의식주 자체가 해결되지 못해 보릿고개를 견뎌야 하는 절대 빈곤이었습니다.
지금은 어쨌든 간에 먹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영 안 되면 국가에서 먹을 것은 주지 않습니까.
삶의 질의 문제지 절대 빈곤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때보다 더 죽겠다고 합니다.
저는 금년에 우리 불자들이 소욕지족의 마음을 갖고 살자고 당부하고자 합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는 이때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욕먹습니다.
그래서 소욕지족의 마음으로 살자고 당부합니다. 우리의 빈곤은 상대적 빈곤입니다.
누가 더 갖는냐, 덜 갖는냐, 좋은 것 갖느냐, 덜 좋은 것 갖느냐,
넓게 사느냐 좁게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그전에는 방 하나에 3~4명 형제들이 함께 자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방 하나씩 다 차지합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는 소비를 줄이고 근근이 연명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설아나율팔념경』을 살펴보면
아나율 존자가 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시며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서목산(誓牧山) 구사(求師)나무 밑에 계셨다.
현자 아나율(阿那律)은 그 선공택(禪空澤)에 앉아 생각했다.
‘도법(道法)은 욕심이 적은 것이요, 욕심이 많은 것은 도가 아니다.
도법은 족함을 아는 것이요, 만족할 줄 모르면 도가 아니다.
도법은 숨어 사는 것이요, 대중을 즐기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법은 정진하는 것이요, 게으름은 도가 아니다.
도법은 마음을 제어하는 것이요, 방탕한 것은 도가 아니다.
도법은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요, 생각이 많은 것은 도가 아니다.
도법은 지혜요 어리석음은 도가 아니다.’ ”
불교에서 소욕지족을 대표하는 인물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분인 가섭존자와 아나율 존자입니다.
그리고 훗날 천안을 얻은 아나율이 선정에 들어 생각한 것이 이 경전의 내용입니다.
‘도법(道法)은 욕심이 적은 것이요, 욕심이 많은 것은 도가 아니다.
도법은 족함을 아는 것이요, 만족할 줄 모르면 도가 아니다.’
여기서 소욕지족이 나옵니다. 만족할 줄 모르면 도가 아니니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99만원을 가지면 1만원을 채워 100만원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만원이 부족한 상태가 됩니다. 990만원을 가져도 마찬가지로 10만원을 채워서
1000만원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항상 부족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남과 나눠 쓰지 못하고 베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도 한 푼 못쓰고 죽습니다.
방탕한 것은 道가 아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사제관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검은 바지를 입고 나오셨는데 바지 위에 뭔가 하얀 것이 묻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추기경님, 바지에 뭐가 묻으셨네요”하고 보니 묻은 것이 아니라
오래돼 낡은 바지에 구멍이 나서 하얀 내의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존경받는 추기경님도 그렇게 살더라고요.
‘아, 이분이 존경받을 생활을 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도입니다.
특히 물질에 대한 우리의 불만족은 끝이 없습니다.
‘도는 숨어사는 것이요, 대중을 즐기는 것은 도가 아니다.’
도를 닦는 사람은 자기를 감추고 살아야지
자기를 내세워서 떠벌리고 선전하는 사람은 또한 도가 아닙니다.
인도로 구법순례를 했던 중국 현장 법사의 비에 보면 ‘무익장비(無翼長飛)’라.
도라는 것은 날개가 없어도 멀리 날아간다.
광고하고 선전해서가 아니라 도가 정말로 무르익으면 사방에 그 이름이 널리 퍼진다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이 서울 한 번 올라오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해인사에 계셔도
온 나라에 다 알려지듯이 보석은 숨겨놔도 그 빛으로 인해 다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도법은 정진하는 것이요, 게으름은 도가 아니다.’
도라는 것, 진리를 구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해도 해도 끝없는 것이 정진입니다. 부처님 성도재일에 백일기도 회향하며 삼천배를 했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상관없이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정토사 창건 이후 매년 성도절에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삼천배를 했습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혼자하면 게을러질 수 있으니 함께하는 것입니다.
매일 108배를 하며 평소에 꾸준하게 정진하다 보면 삼천배를 할 수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삼천배를 하지만 그 한 번을 위해 1년 365일 꾸준히 108배를 해온 사람이
순일하게 삼천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꾸준하게 닦아야 합니다.
‘도법은 마음을 제어하는 것이요, 방탕한 것은 도가 아니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뭐든지 나쁜 것에 솔깃하기가 쉽습니다. 좋은 것은 귀에 잘 안 들어옵니다.
좋은 것을 하려면 몇 번을 망설여야 하는데 나쁜 일에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리고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이 스릴 있고 재미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자기 마음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도법은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요, 생각이 많은 것은 도가 아니다.’
한 가지에 일념하는 것이 도입니다. 도라는 것을 우리말로 이야기하면 오직 할 뿐, ‘뿐’입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을 뿐, 밥 먹으면서 신문보지 않고,
밥 먹으면서 애들 문제로 싸우지 않고 밥만 먹는 것입니다.
위빠사나라는 것은 오직 할 뿐입니다. 밥 먹을 뿐, 잠 잘 뿐, 법문 들을 뿐이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도를 닦는 사람은 생각이 많으면 안 됩니다.
생각이 많으면 그것이 번뇌입니다.
‘도법은 지혜요, 어리석음은 도가 아니다.’ 지혜라는 것은 연기법을 잘 아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경전에서는 “또 욕심이 적다는 그 뜻은,
마치 왕에게 가까운 신하가 있어 여러 장롱과 상자에 가득 찬 비단 옷을 맡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추하고 더러운 옷을 즐겨 입는 것처럼 하면, 욕심이 적어 족함을 아는 것이니라.
숨어 살며 꾸준히 힘쓰고 마음을 제어하고 뜻을 고요히 하며 지혜롭게 집을 버리고
교만하게 유희하지 않고 어긋나지 않으면, 반드시 안온한 사람으로 니원문(尼洹門)에 이르게 되리니,
이것이 여덟 가지 대인의 생각이니라.”고 설하셨습니다.
근검을 수행 삼는 한 해 돼야
소욕지족이라는 것에 대해 비유하기를
‘마치 왕에게 임금을 보좌하는 신하가 있어 임금의 많은 옷을 장롱 속에 넣어 놓고서
자기는 허름한 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신하가 옷 없다고 해서 임금의 옷을 꺼내 입으면 안 되듯이
은행 직원이 내 주머니에 돈 없다고 해서 은행의 돈을 꺼내다 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소욕지족이라는 것은 이와 같아서 우리가 대자연이 주는 것을
내가 잠시 보관하고 맡고 있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맡아 놓은 것을 제 마음대로 쓰는 것은 은행 직원이 은행 돈을 마구 갖다 쓰는 횡령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자연의 것을 마음대로 횡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소비하며 막 쓰면 어떻게 됩니까.
우주는 부증불감이라. 있는 것을 내가 쓰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못쓰게 돼 있습니다.
우리도 이 어려울 때 한 단계 낮춰서 살아야 합니다.
70년대를 생각하면 이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습니다.
70년대에는 가정조사라고 해서 집에 텔레비전이 있는지
냉장고가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만 요즘엔 없는 집이 없습니다.
이 어려울 때는 아껴 쓰세요.
자본주의가 극대화되다보니 상황이 어려운데도 소비를 부추깁니다.
어떻게 해서든 생산해서 팔려고만 하지 자원이 고갈로 되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금년에는 화두를 ‘소욕지족으로 살자’로 삼고
아끼고 근검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이 법문은 2009년 1월 4일 청계산 정토사 극락전에서 봉행된
만일염불결사회 일요법회에서 ‘소욕지족의 삶을 살자’를 주제로
정토사 주지 보광 스님이 설한 2009년 신년기념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보광 스님은
1970년 경주 분황사에서 동헌 스님을 계사로, 도문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80년 범어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보살계를 수지했다.
재단법인 대각회 대성사 주지, 부산 금수암 주지, 재단법인 대각회 감사를 역임하고
현재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 재단법인 대각사상연구원 원장,
청계산 정토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정토학회 회장, 법보신문 논설위원 등으로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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