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옥(趙仁沃)은 여러 번 옮겨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가 되었다. 우리 태조(太祖, 이성계)께서 〈위화도에서〉 회군(回軍)하자 윤소종(尹紹宗)이 품에 지니고 있던 「곽광전(霍光傳)」을 바치니, 태조가 조인옥으로 하여금 그것을 읽게 하여 들었다. 조인옥이 이로 인하여 왕씨(王氏)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극력 진술하였는데, 〈이 일로 인하여 조인옥을〉 전법판서(典法判書)로 임명하였다.
창왕(昌王)이 즉위하자 조인옥이 동료들과 함께 상소하기를, “불씨(佛氏)의 가르침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고 속세와 절연하는 것을 종지(宗旨)로 삼는데, 이는 천하국가(天下國家)를 다스리는 방도가 아닙니다. 근세(近世) 이래로 승도(僧徒)들은 스승의 욕심을 적게 하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지 않고 토지의 조세(租稅)와 노비의 몸값을 부처에게 공양하지 않고 승려 스스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은 과부(寡婦)의 집에 출입하여 풍속을 오염시키고 권세 있는 집안에 뇌물을 바쳐 큰 절을 희구하니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속세와 절연한다는[淸淨絶俗] 가르침이 어떠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이제부터 행실이 올바른 자를 뽑아 여러 사원의 주지(住持)로 삼고 그 전조(田租)와 노비의 몸값은 소재지의 관청으로 하여금 이를 거두어 여러 공문서[公案]에 실어서 승도의 수를 계산하여 이를 지급함으로써 주지의 절용(竊用)을 금지하게 하십시오. 무릇 승려로써 인가(人家)에 유숙하는 자는 간통죄로 논죄하여 군적(軍籍)에 충당하고, 유숙시킨 집 또한 논죄(論罪)하십시오. 귀천(貴賤)을 불구하고 아녀자는 비록 부모의 상(喪)이라도 절에 가지 못하게 하고, 위반한 자는 절개를 잃은 것으로 논죄하십시오. 감히 부인(婦人)의 머리를 깎는 자는 죄를 더욱 무겁게 하고, 비구니가 되는 자 또한 절개를 잃은 것으로 논죄하십시오. 주현(州縣)의 향리(鄕吏)·역리(驛吏)·공사노비(公私奴婢)는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더니 이를 따랐다. 이후 밀직대언(密直代言)으로 전임(轉任)하였으며, 공양왕(恭讓王) 때 회군의 공으로 녹선되어 철권(鐵券)과 토전(土田)을 하사받았다. 곧 어떤 일로 파직되었다가 이조판서(吏曹判書)로 기용(起用)되었다. 이 이후로는 본조(本朝)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