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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관광
동쪽으로 민족의 영산으로 추앙되는 모악산(母岳山)이 있고, 그 옆 해안으로 넓게 전개된 김만경평야가 동진강과 만경강 유역에 형성되어 있어 전국 최대의 미곡생산지를 이루며, 산자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지방이다. 즉 수려한 산지와 드넓은 평야를 한꺼번에 관광할 수 있는 좋은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모악산의 금산사를 중심으로 모악산도립공원에 있는 크고 작은 사찰과, 종교중심지로서 보유한 많은 국가유산을 관광할 수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인 벽골제와 김제시의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이 있어 조상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또 광활간척지를 관광하고 심포항(深浦港)에 들러 신선한 생선회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망해사와 그 뒤의 전망대에 올라 만경강 입구 서해바다로 지는 낙조를 감상하는 것이 일품이다.
모악산도립공원 안의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경내에는 국보인 금산사 미륵전이 있고, 보물급인 금산사 노주 · 오층석탑 · 혜덕왕사 진응탑비 · 석종 · 석등 · 석연대 · 육각다층석탑 · 당간지주 등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어, 특히 벗꽃이 피는 봄철과 여름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많이 모인다. 등산로를 따라 산 정상에 오르면 김만경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악산 자락의 백운동과 인근에는 증산교의 본산이 있어 미륵신앙의 또 다른 형태를 볼 수 있다. 모악산은 1971년에 도립공원이 되었고 1980년에는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어 사하촌에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 음식점, 선물가게,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집결되어 있다. 전주 · 김제 · 정읍 등지로 연결되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귀신사의 부도 · 석수 · 삼층석탑 등 불교관계 국가유산이 많으며, 시에는 김제동헌과 김제내아가 보존되어 있다. 벽골제 제방과 수문이었던 장생거(長生渠)가 남아 오랜 미작농업의 기원지임을 말해 준다.
동진강 하구에는 광활간척지가 개간되어, 인공으로 해안간척지를 개간해 광활한 농경지를 조성한 것을 볼 수 있고, 그 공간 안의 취락들은 일자형의 열촌형태를 이루어 독특한 경관을 보여 준다. 인근의 미면간척지 · 계화간척지와 더불어 인공에 의한 농경지 개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에서는 이러한 관광자원을 이용한 지평선축제 · 벚꽃축제 · 포도축제와 같은 다양한 관광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만경강[萬頃江]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동상면과 소양면의 경계인 원등산(遠登山, 713m)에서 발원하여 호남평야의 중심부를 지나 황해로 흘러드는 강.
자연환경
만경강은 길이 74㎞, 유역 면적 1,571㎢로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위치한 운장산(雲長山, 1,126m)에서 발원하는 고산천(高山川)과 만덕산(萬德山, 763m)에서 발원하는 소양천(所陽川)이 완주군 삼례읍 동쪽에서 합류한다. 그리고 전주 시가를 관류하는 전주천과 전주시 서부의 삼천(三川)이 삼례읍 동남쪽에서 이에 합류하여 만경강의 본류가 된다. 삼례에서 서쪽으로 흘러 익산시 남쪽을 통과한 뒤, 군산시 대야면에서 탑천(塔川)과 합류하고, 군산시와 김제시 사이의 넓은 간석지의 하구로 흘러든다. 만경강은 전형적인 곡류하천(曲流河川)으로 충적평야 위를 심하게 곡류하며, 하구에서 48㎞ 떨어진 삼례 부근까지는 대조시(大潮時)에 하천 수위가 상승하는 감조하천(感潮河川)이다.
형성 및 변천
20세기 초까지 전통적 수리제도로 만경강 상류인 고산천에 보(洑)를 설치하였으며, 완주군 봉동읍 등에서는 번수제(番水制)에 의해서 순차적으로 논에 급수하였다. 또한 두레 조직 같은 촌락 공동체가 있어 수리시설을 유지 · 관리하였다. 1920년대에 고산천 상류에 경천(庚川)저수지와 대아(大雅)저수지가 축조되고, 1930년대에 만경강 제방이 축조되어 본류는 직선상 하도(河道)로 바뀌었다. 1940년대에는 대아저수지와 경천저수지의 물이 80여㎞의 대간선(大幹線) 관개수로를 통해 1919년에 완공된 옥구반도 서쪽의 미옥간척지(米沃干拓地)와 미면간척지(米面干拓地)에 공급되어 대규모의 농업개발이 이루어졌다.
현황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 일대는 새만금간척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군산에서 고군산군도와 부안에 이르는 지역을 연결하여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군산, 김제, 부안에 총길이 33㎞의 방조제를 축조해 총면적 40,100ha의 토지를 조성하는 대규모 간척사업이다. 이 간척사업은 국토의 외연적 확장과 농어촌발전 기반조성, 수자원확보, 지역종합개발, 간척농지개발 및 쾌적한 복지농어촌 도시를 건설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대규모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사업의 영향으로 인해 갯벌 생태계 파괴, 수산자원의 고갈, 해양오염의 증가 등 여러 가지 환경문제의 발생이 우려되는 문제점이 있다. 인근의 군산 서쪽 14㎞ 지점의 군산시 오식도, 비응도 부근에는 군장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는 해상매립을 통한 국토확장으로 서해안 개발 전진기지를 조성하여 군산국가산업단지와 연계한 발전을 목표로 조성되었다.
참고문헌
『금강유역조사)』 3 수리·수문조사보고서(건설교통부·한국수자원공사, 2006)
『새만금지구종합개발계획』(농업진흥공사, 1987)
『하천』(건설부, 1979)
「호남평야의 충적지형에 관한 지리학적연구」(권혁재, 『지리학』12, 1975)
「만경강유역수리관항과 농촌」(남궁봉, 『지리학과 지리교육』5, 1975)
새만금사업단(www.isaemangeum.co.kr)
한국산업단지공단(www.kicox.or.kr)
출처:[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아리랑
『한국일보』에 연재하여 1995년에 완결된 대하 장편소설.
「아리랑」은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식민지적 근대성의 형태로 왜곡시킨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야기의 진원지는 군산이다. 「태백산맥」의 경우 벌교를 그 극적인 무대로 설정했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군산은 그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열려 있는 땅이다. 바다로 열려있는 군산에서 바다를 건너면 중국이며 일본이다.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면 하와이요 미국이다. 군산이라는 무대가 지니고 있는 이 공간적 개방성이야말로 「아리랑」의 역사적 상상력이 시공의 제약을 넘어서서 얼마든지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군산은 일제에 의해 항구가 개항되고, 호남 곡창의 미곡을 수합하여 일본에 송출했던 장소이다. 군산 항구를 중심으로 하여 「아리랑」의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풍속사의 저변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적인 침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군산을 무대로 하여, 우리의 토착자본들이 어떻게 붕괴되고 우리 민중들이 어떻게 짓밟히고, 지배층이 어떻게 일제와 야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인물들이 군산을 떠나 각지로 흩어지면서 소설의 무대는 군산을 중심으로 거대한 방사체를 형성한다.
이 소설에서 토착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세력이 분화하여 일제의 침략에 대응하는 거대한 민족세력으로 확대되는 과정은 「태백산맥」의 이념적 대결구조와는 사뭇 다르다. 이 작품의 서사적인 구도는 일본의 침략과 한국민중의 대결이라는 민족적 대결구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물론 서사적인 공간의 변화에 따라 그 대결방법의 이념적인 차이가 드러날 뿐이다. 이 작품에서는 일제의 강압과 침탈에 여러 계층의 민족세력이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의 모든 장면들이 각각의 주인공들을 긴장된 대결국면에 내세우고 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민족의 광복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의 광복은 민족적인 감격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소설적인 기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광복 이후의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역사의식에 의해서 방향지워진 것이다. 물론 「아리랑」의 이야기들이 그 서사적인 확산을 다시 광복으로 집약시킨다면, 이 작품의 서사적인 구조와 그 흐름이 보여주는 결말 지향적인 특징을 이른바 대서사양식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조정래는 「아리랑」을 완결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일제 식민지 체험과 한국전쟁으로 집약되는 분단체험을 모두 대하적인 장편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우리민족의 보편적 정서인 ‘한(恨)’을 담고 있다는 노래 아리랑. 한민족의 생활 언저리에서 희로애락의 삶을 담아 나지막이 때로는 목청 높여 불려지던 노래 아리랑. 저자는 이 12권의 책에 노래 아리랑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원고지 한 칸 한 칸마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원혼이 배어 있는 느낌에 사로잡혀 펜을 놓을 수가 없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 아리랑에는 가슴 시리도록 슬프고 고단한 그러나 결코 스러지지 않는 한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숨결이 가쁘게 호흡하고 있다. 아리랑은 동학혁명 이후 10년,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된 1905년 전후부터 해방기까지 민족사의 모순과 더불어 민족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리며 투쟁한 민족의 저력과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근간으로 한 식민지 시대의 민족 수난과 투쟁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다룬 대부분의 소설들이 임시정부나 특정인물의 행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정리 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는 반면, 아리랑은 민족이란 한 덩어리가 중심이 되어 고단했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며 저항해왔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민족의 암울한 시기를 민중 중심의 각도에서 재조명함과 동시에 김제, 군산을 시작으로 하와이, 만주, 연해주,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로 그 수난과 투쟁의 현장들을 확장시키며, 민족 분단의 비극이 바로 식민지시대의 결과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일제 36년을 현재의 시간으로 다시 복원시켜 놓고 있다.
아리랑은 <1부 아, 한반도> <2부 민족혼> <3부 어둠의 산하> <4부 동트는 광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과 의병투쟁, 2부에서는 3.1운동을 주축으로 한 신흥 무관학교설립 및 재만 거주 조선인들의 항일투쟁이 3부에서는 관동 대지진과 공산주의가 4부에서는 재만 조선독립군 토벌 작전과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및 일본의 진주만 습격, 조선 정신대에 관한 역사적 사건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빚을 갚고자 하와이로 팔려간 노동자 방영근을 통해 하와이 거류민들의 삶과 모순을 알려주고 있으며, 구한말 동학군으로 참가했다가 근근이 목숨을 부지해나가던 끝에 의병으로 다시 참가, 투쟁적 삶을 살아가는 지삼출과 일진회의 지부장으로 국가와 민족이전에 개인의 한풀이와 영달을 우선시하는 아전출신 백종두와 보부상 출신 장덕풍을 통해 국가와 시대가 안고 온 그 모순의 뿌리를 재확인 시켜주고 있다.현재의 모순은 과거와 무관하지 않고, 이런 모순을 해결하지 않으면서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역사 앞에서는 한갓 공상일 뿐이라는 당연하지만 늘 망각하고 있는 진리를 민족의 지난한 고통과 수난을 통해 일깨우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바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어디서 어떻게 왔는가를 알아야 한다. 소설 아리랑은 우리에게 그 중요성을 재차 확인 시켜주고 있다. 소설은 아버지가 동학혁명에 참가 했다 얻은 병치레로 진 빚 20원을 갚기 위해 하와이 노무자로 팔려 길을 떠나는 감골댁의 큰아들 방영근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노동자로 하와이로 떠나게 된 이들의 이유는 저마다 각각이지만, 온갖 고생을 참아 가며 도착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노예와 다름없는 삶이었다.
이런 비참한 시간 속에서 혹독한 노동과 열악한 환경을 참지 못하고 사람이 죽어 나가고, 이들은 자신들이 빚진 돈이 결국은 자신들의 남은 인생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현실을 깨달아가면서 자포자기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며 현지에서 살아갈 방도를 모색해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조선에서 아가씨들을 데려와 결혼하는 이들도 생겼다. 노동의 강도와 생활이 크게 나아진 것은 없지만, 그들은 조국해방을 위하여 헌금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군사훈련을 받는 등 몸은 멀리 있으나 마음은 늘 조국과 함께하며 힘든 시간들을 견뎌낸다. 그러나, 조직의 생산적인 활동을 위해 선출한 대표들이 하는 일이란 명예욕과 권력욕, 이기심이 앞선 사심이 먼저였고, 정작 하와이 거주민을 비롯한 민족의 안위를 위한 진정한 진충보국의 정신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방영근이 떠난 후, 빚을 갚고 큰 딸 보름이를 시집보낼 생각을 하던 감골댁은 아들과 바꾼 돈이나 진배없는 그 돈은 구경도 해보지 못하고, 남편과 같이 동학운동에 참여한 이유로 조용히 숨어사는 지삼출이 대신 그 돈을 받아주려 하다가 철도 노동자로 끌려가게 된다. 철도 노동현장에서 돌아온 그는 을미사변 이후 이곳 출신 양반 송수익이 독립의병을 일으키자 망설임 없이 친구인 손판석과 함께 거기에 참여한다. 일제의 고문정치에 굴복한 고종은 의병 해산령을 내리고 의병과 백성들과의 연계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그들의 근거지인 마을의 백성들을 무차별 살상하는 등 일본의 극악무도한 탄압에 대부분의 양반 출신 의병들은 활동을 멈춘다. 그러나 송수익을 대장으로 한 지삼출, 공허 스님이 활동하는 의병대는 덕유산등 험한 산세를 의지하여 이 곳 화전민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의병활동을 해 나가지만 일본의 탄압과 점점 좁아지는 국내에서의 입지와 활동 제약에 만주로 무대를 옮긴다.
당시 만주에서는 민족주의진영의 항일 무력운동의 중심은 대종교였다. 송수익은 만주에서 독립군 대장이 되어 여러 계파의 항일 투쟁단체들과 함께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다. 또한 신흥무관 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국가의 재원이 되어 줄 인재교육을 실행하는 등 첩자와 암살자들의 위협 속에서도 재만 거주 한인들의 항일 투쟁과 의지는 꺾일 줄 모른다. 조선에서는 일제의 대대적인 토지조사 사업이 실행되어 온갖 수단을 동원해 토지를 빼앗고 일본으로 쌀을 실어내기 위해 군산항을 개발하는 등 그들의 야욕을 하나하나 실행에 간다. 이 와중에 궁내전이나 둔전 등 명목상의 국가 토지를 소유했던 소규모 자작농들이나 자, 소작을 겸했던 이들은 대부분 토지를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뿌리를 뽑히고 만다. 이렇게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들은 도회의 노동자가 되거나 부두의 막노동자 또는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일본의 간교한 감언이설에 속아 만주로 떠나기도 하는 등 민족의 고단한 삶의 역정이 끝없이 지속되나간다. 일본 현지에서는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그들의 책략적인 조작으로 재일 한국인들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무참히 살해된다.
국내외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다양한 이념의 갈래를 보이며 항일운동으로 나아가고, 온갖 위험속에 있던 송수익은 결국 관동군에 체포되고, 국내에서는 지주 하시모토의 권력과 횡포로 삶은 더욱 피폐해져만 간다. 일본군의 재만 조선 독립군 토벌 작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조선 독립군은 참혹하게 무너져가고, 재만 한인 20만 명은 짐승 같은 취급을 받으며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다. 일본군은 진주만을 기습한다. 관동군에 붙잡힌 송수익은 징역 15년을 받고 복역 중 옥사한다. 송수익이 옥사하자 그의 아들 송가원(의사)은 의업을 포기하고 광복군에 가담한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러시아는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에서 일본의 힘이 빠져나가자 중국인들은 조선인들의 농토를 빼앗기 위해 쇠스랑을 들고 몰려온다. 조선인들은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맨몸으로 그들의 위협을 막아내며 도망치듯 내달린다. 이것이 일제치하 그 고단함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찾아온 8.15 해방의 모습이었다. 만세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8.15 해방이었다. <진혼곡>무릎 꿇고 머리 조아려 하늘에 맹세하노니 다 못 이루신 뜻 정녕코 이루오리다남기고 가신 한 기필코 풀겠소이다 굳게굳게 맹세하고 뒤따르오니 어화 님이시여, 님이시여 원통함을 푸시고 절통함을 푸시고 이 거친 만주벌판 떠돌지 마시고 춥고 어두운 구만리장천을 떠돌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시는 얼굴로 백화난만한 극락으로 상춘화창한 극락으로 왕생하오시라 극락왕생하오시라 바옵나니 비옵나니 극락왕생하오시라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만경낙조전망대
개요
김제에 위치한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곳 중 첫손에 꼽히는 만경 낙조 전망대는 새만금 광역 탐방로에 있는 너른 평야 지대 한가운데 솟은 작은 언덕이다. 언덕 위의 팔각형 정자의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의 물줄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탁 트인 평야와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금빛 노을이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눈부신 붉은 해가 신비롭게 하늘을 물들이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이 그림같다. 새만금 광역탐방로는 새만금 바람길과 심포항을 찾는 관광객들의 이용이 용이하도록 탐방로를 조성하였고 새만금 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으며 가족형 관광객에게 좋은 인프라를 갖춘 관광지이다. 간척지와 들판, 바람, 갈대가 있는 자연적인 생태환경을 조망할 수 있다. 투어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외진 곳이라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꼭 들러보길 권하는 김제 여행의 필수 코스이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옛 날 옛적 옹고집 이야기
성격이 더러워서 심술이 사납고, 고집이 세어 안에서는 80노모에게 만고의 불효자이고 마을 사람들에겐 막심한
수전노(守錢奴)였는데 구걸온 도사에게 걸려 쫓겨나서 유랑걸식을 하면서 참회하고 지금은 용서를 받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전국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단체 손님들에겐 연말에 공이 있는
회원들에게 시상도 하고 한 해를 보내면서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을 잊으려는 忘年會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하는
착한 옹고집 식당을 운영한답니다. 아래 그림은 식당의 내외부 사진입니다.ㅋ
2024-12-30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