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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레위기10장12~20절
제목 : 모세의 책망과 아론의 해명
레위기에서 자주 만나는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 이십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하는 중에 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하루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어제 말씀에서 아론의 두 아들은 자기의 뜻과 자신의 뜻을 앞세우므로 비극적인 죽음을 맡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속죄제 고기에 대한 논쟁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제물 중 제사장의 몫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규정을 어긴 아론의 두 아들을 모세가 책망하자 아론이 그 이유를 해명합니다.
1. 제물 취급에 관한 명령(12~15절)
1)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제단 곁에서 먹으라고 하십니다(12절)
“[12]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제단 곁에서 먹되”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 - 일반적으로 '화제'는 속죄제, 번제 등과 같은 제사의 한 종류가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방법의 하나로 희생 제물을 제단에서 불로 태워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총칭한 것입니다.
여기서의 '화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처음 수행하던 날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준비했던 번제 제물을 가리킵니다.
이 번제 제물을 불에 태워 바칠 때 소제로 바쳐진 기름섞인 고운 밀가루의 일부를 번제물과 함께 태워 드리고, 그 남은 부분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는데 본절의 내용은 바로 이것을 지칭한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하니(코데쉬 카다쉼). 2:3 주석 참조.
'거룩한 것들 중의 거룩한 것' 혹은 '거룩하고 또 거룩한것'이란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여호와께 성별된 모든 희생 제사 예물을 지칭할 때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특별히 이 용어를 반드시 적용시키고 있는 제물의 경우는
(1) 소제물 중 여호와께 기념물로 드려지고 남은 소제물(10:12)
(2) 속죄제와 속건제 희생 예물 중 제단 혹은 진(陣) 밖에서 불태워 지지 않은 제물(6:25-29; 7:6; 10:17)
(3) 성소 북편에 비치된 진설병(24:9)
(4) 분향단에 쓰일 향(출 30:36)
(5) 그리고 특별히 구별되어 여호와께 봉헌된 모든 예물들(27:28)의 경우 등입니다.
반면 이 용어를 적용시키지 않고 있는 경우는
(1) 번제물
(2) 위임식 때 제사장이 드린 소제물
(3) 그리고 기타 '여호와의 몫'으로 하나님께 돌려지는 희생 제물의 경우 등입니다. 이처럼 이 용어가 같은 제물중에서 구분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께 돌려지는 제물의 경우 그것들은 완전히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졌기 때문에 그것들이 달리 다른 용도로 잘못 쓰여 질 가능성이 전혀 없었으나,
불살라지지 아니하고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지는 경우 그것은 규정 이외의 다른 용도로 잘못쓰여질 우려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를 주기 위하여 그와 같은 경우의 제물에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는 말로 그 제물의 구별됨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에서 먹되. - 소제물로 바쳐진 제물 중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진 것을 먹을 때는 단 곁의 거룩한 장소, 곧 회막 뜰에서 누룩을 넣지 않은 상태로 먹으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누룩(leaven, KJV;yeast, NIV)이 금지된 것은 누룩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빨리 퍼지는 속성으로 인해 누룩은 죄의 오염 또는 죄악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2) 제물은 제사장의 생계를 위한 양식이라는 사실을 재삼 강조합니다(13~15절)
“[13]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14] 흔든 가슴과 들어 올린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15] 그 들어올린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물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소득이니라”
화제의 기름과 함께 - 본 구절은
(1)기름도 함께 요제로 삼아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라는 것인지 아니면 (2) 기름을 여호와께 화제로 불태워 바칠 때에 가슴과 우편 뒷다리도 함께 요제 및 거제로 바치라는 말인지,개역 성경 자체로는 해석상 난점이있습니다.
그러나 원어적으로 볼 때나 짐승의 기름(fat)은 항상 여호와께만 불태워 바치라는 여타 성경의 규례(9:15-20)를 고려할 때 후자의 해석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아론의 불순종(16~18절)
1) 모세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합니다(16절)
“[16]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이르되”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 곧 모세가 제사장 임직시 회중의 죄사함을 위해 속죄제로 드린(9:15-21)제물의 고기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몫으로 돌려 그들의 양식을 삼도록 하기 위해 찾은 것을 가리킵니다.
제사 규례상 회중의 '범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일반 속죄제의 경우, 제사장이 그 희생 제물의 피를 성소까지 가지고 들어가 단주위에 뿌리므로
그 고기는 먹을 수 없었습니다(6:30).
반면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서 첫 직무에 임하는 날,
이스라엘 전 회중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드린 속죄 제물은
그 희생 제물의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이 속죄제의 고기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지금 바로 그 속죄제의 고기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불살랐는지라. - 여기서'불사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라프'는
'완전히 불태워 없애 버리다', '소각하다' 는 뜻으로 제단위에서 불태워 드린 것이아니라(1:9),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태워버린 것을 의미합니다(4:13).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 대제사장 아론에게는 본래 4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 장남 나답과 차남 아비후는 제사 규례를 어긴 죄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10:1, 2).
그러므로 대제사장 아론에게는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 밖에 남지 않았는데, 바로 이들이 일반 제사장이 되어 아론을 도와 제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속죄제 고기를 찾다가 그것이 없자, 이들에게 화를 낸것은 아마 이 고기를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태워버리는 일에
이들이 직접 간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Lange, Keil).
한편 여기서'노하다'란 뜻의 '카차프'는 '틈이 생기다', '쪼개지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곧 분노로 인해 쪼개지고 금이 간 심성(心性)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말입니다.
2)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17절)
“[17] 이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지극히 거룩하거늘. - 2:3 주석 참조.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 제사장이 그 고리를 먹어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제시되어있습니다.
즉 그 이유 및 목적은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서 중재자의 자격으로 이스라엘 회중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속죄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은 제단에 피를 뿌려 속죄할 뿐만 아니라,
희생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는 행위를 통하여
백성의 속죄 사역에 상징적으로 동참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한편 이처럼 제사장들이 제물을 먹는 것은 신약 시대의 성만찬을 예표합니다. 즉 성도들이 주의 몸인 떡을 먹음으로 예수와 하나 되어 그분의 고난과
이스라엘 회중의 대속 사역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 이 말은 제사장의 중재 사역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불완전하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제사장이 실제로 백성의 죄를 제거해 줄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들은 신약 시대에 와서 최종 성취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상징적으로 예표할 뿐입니다.
3) 제물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습니다(18절)
“[18] 그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는 것이었으니 그 제물은 너희가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니라”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는 것이었으니. -제사장, 곧 아론과 그 아들들이 속죄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이유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즉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시작하던 날 드린 속죄 제물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특정한 범죄를 했기 때문에 드린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정결을 위해 드린 것으로써, 그 속죄 제물의 피를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 여기서 거룩한 곳은 회막 내 뜰을 가리킵니다. 한편 이처럼 제사장이 거룩한 회막 뜰에서 희생 제물의 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도 전체 제사 내용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아론의 변명(19~20절)
1) 아론이 속죄 제물을 먹지 않았던 이유을 말합니다(19절)
“[19]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 아론과 그 아들들이 모세로부터 속죄 제물을 먹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을 듣고, 아론이 겸손한 마음으로 진솔하게 변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한편 아론이 속죄 제물을 먹지 않았던 이유로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두 아들(나답과 아비후)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도 엄중하고 생생하여 자신들이 그 제물을 먹음으로써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에는 자신의 성결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서 먹지 않았다(Keil).
(2) 갑작스런 두 아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마음의 평정을 잃은 비통한 상태에서 감히 성물을 먹을 수 없다는 겸손한 마음에서 먹지 않았다(Calvin).
여하튼 아론이 그 속죄 제육(祭肉)을 먹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고의로 어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 인정되었으므로,
그는 이 문제로 인해 징계를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랑게(Lange)는 율법의 자구적(字句的)적용을 뛰어 넘은
영적 마음의 승리라고 묘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율법시대 초기로부터 성경은 율법의 근본 사상은
'문자(文字)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상은 후일
삼상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는 사무엘의 말과
사1:13~16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사1:13-16)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
그리고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것을 원하노라"(호 6:6)는 호세야 선지자의 말 속에서 보다 분명히 나타납니다.
2)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20절)
모세가 아론의 진솔한 변명을 듣고 아론의 행위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 그의 처신을 묵인해 준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차 직무에 있어서 율법 조항을 보다 승화시키는 제사장의 독립적인 권리 및 그 책임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4. 우리가 주님 앞에 가져야 할 자세
오늘 말씀은 우리가 주님 앞에 항상 가져야 할 자세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죄를 향한 소극성입니다.
비극적인 죽음 이후 모세는 남은 제물 처리를 위해 염소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미 염소를 태운 이후였습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노하여 이르되”라고 말씀합니다.
염소에 남은 살코기를 제사장들이 먹어서 처리하는 것이 원칙적인 규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속죄제의 제물은 제사장이 먹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9절 “[19]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제사를 드렸는데도 아들이 죽었다면 만일 제물을 먹었다면 어떤 일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론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를 향한 소극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자 이후 삶에 죄가 있을까 두려워하신 것입니다.
이런 죄를 향하신 속극성은 그를 거룩하게 만들었고 결국 죄의 악순환을 끊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죄에 대한 소극성이 있는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작은 죄에 민감하고 있는지 너무 쉽게 죄를 용납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모세가 아론을 기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2) 사랑을 향한 적극성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논쟁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사랑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흔히 율법은 차갑고 문자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율법은 하나님의 인격이며 사랑입니다.
문자적인 준수를 요구하지만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수용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다윗이 진설병을 먹었던 일입니다.
아론의 경우 두 아들이 죽은 이후 어떻게 기쁘게 먹을 수 있느냐고 항변합니다.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그것을 받아 드립니다.
정죄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일찍이 어거스틴 역시 “본질에는 일치를 비 본질에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역시 사랑의 적극성이 있는지 돌아 봐야 합니다.
주변에 정죄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율법의 정신으로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이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화제로 드리고 남은 제물이 제사장의 몫이 된다는 규례를 통해,
두 아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의 특권을 상실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언하십니다(12~15절).
하나님은 성결을 단호하게 요구하시지만, 늘 넘어질 수 있는 우리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다시 회복할 길도 열어놓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성결한 제물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도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 자로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보다 가슴 벅찬 축복과 영광이 또 있을 까요?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각종 제사를 드리는 일보다 제사 후 남은 제물을 처리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사소해보일 수 있습니다(12~15절).
하지만 모세는 이 규례를 철저히 지킬 것을 지시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 중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크고 중한 명령만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거룩함은, 소극적으로 부정한 것을 피하는 것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계명을 철저하게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도 수고로운 짐이 아니라 영광스런 특권을 누리는 것이며 구원의 은혜를 고백하는 자의 마땅하고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2) 속죄제의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기에 거룩한 곳에서 잡고 아론과 그 자손들만 먹어야 합니다(16~20절).
그런데 그들은 반드시 먹어야 할 제물을 모두 불태웠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처럼 규례를 어긴 것입니다.
두 사건 모두 불순종한 사건이지만
후자의 경우 선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두 아들의 사건에서 잠잠하던(3절) 아론은 이제 입을 열어 두 아들의 죽음 이후 자신이 제물을 먹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 같아 권리를 포기한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자신의 마땅한 분깃마저 내려놓고 근신한 것입니다.
우리도 책망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달게 받을 수 있도록 늘 말씀 가운데 영혼의 촉수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징계의 고난이 닥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