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교회는 오늘 예수님께서 영광에 싸여 그 분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그 분의 옷은 빛처럼 하얗게 변모한 사건을 기념하며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모습이 변하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또 예수님이 장차 누리실 영광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미리, 그러나 그 모습의 전체가 아닌 일부를 약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 갖는 의미와 그 사건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의 말씀이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우선 오늘 독서의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은 다니엘 예언자가 환시를 통해 본 영광의 그 날의 모습을 전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옥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같았다.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다니 7,9-10)
불꽃같은 옥좌에 바퀴들이 타오르고 그 타오르는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오는 옥좌 위에 하느님이 앉아계십니다. 그런데 그 분의 옷이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양털과도 같았다고 예언자는 말하는데, 다니엘 예언자가 말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변모의 모습과 놀라운 정도로 유사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변모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1-2)
곧,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고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최종적으로는 그 분이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공적으로 만천하게 드러나게 될 것임을 오늘 복음의 말씀은 미리, 그러나 전체가 아닌 약간의 정도만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변모 사건의 이 같은 의미는 오늘 제 1 독서의 계속되는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옥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 앞에 그 분의 하나뿐인 아들이 등장하고 하느님께서 그 아들에게 모든 통치권과 영광 그리고 온 나라를 수여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3-14)
세상 모든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아들에게 주어져 모든 민족들이 그 아들을 섬기게 되리라는 예언자의 이 말씀이 오늘 복음 안에서는 하늘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음성으로 확인됩니다. 예수님의 변모의 순간, 너무 놀란 베드로가 놀란 나머지 평소 베드로의 모습 그대로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막 말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ㄴ)
독서의 다니엘 예언자가 환시 중에 보았던 전능하신 하느님의 모든 영예와 영광 그리고 권능이 아들에게 주어지는 바로 그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는 하늘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음성, 곧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 분이 바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온 메시아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신약에 이르러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기다려온 예언 속 메시아가 그들의 눈앞에 공적으로 드러나는 역사적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 파견된 메시아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제자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제자들은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을 듣고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전합니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마태 17,6)
물론 예수님의 변모의 모습이나 예수님의 곁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 그리고 하늘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음성이 갑작스럽고도 놀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모습을 모든 제자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당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이들, 당신의 모습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제자들만을 뽑아 그들에게만 특별히 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 역시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자신들이 보고 들은 모습에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제자들의 이 같은 모습,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보고서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모습을 두려워하며 거부하는 제자들의 이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대개 우리가 바라고 희망하는 바만을 하느님께 말하고 그것을 들어달라고 청합니다. 이렇게 해 달라고, 내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이 때에 이렇게 이런 방법으로 이루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바와는 다르게 일이 진행될 때, 하느님을 원망하며 때로는 나의 뜻을 이루어주시지 않는 하느님을 거부하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나의 뜻과는 배치되게 느껴졌던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커다란 계획안에서 모두 나를 위한 선이었음을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나를 위한 선하신 계획이었음을, 그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은총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하느님의 크신 계획을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하느님의 뜻을 부정하고 거절하는 모습, 우리의 그 같은 모습이 오늘 복음의 제자들의 모습으로 여실히 드러나는 듯 느껴집니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마태 17,6)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 분을 모습을 두려워하며 땅에 대로 엎드려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 독서로는 읽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독서 말씀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일러 주는 듯합니다. 베드로 2서 1장 19절의 말씀입니다.
“이로써 우리에게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2베드 1,19)
베드로서의 이 말씀처럼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고 그 완성이 우리의 눈앞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어둠 속에 머무르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에 믿음이 부족하여 그 모습을 보고서도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서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 같은 우리의 상태를 두고 베드로 사도는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2베드 1,19)
베드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때, 어둠 속에서 있던 우리에게 하느님의 밝은 빛이 비추고 그 빛이 우리 마음 속 모든 두려움과 죄 그리고 부족함이라는 어둠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오늘 영성체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변화되며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타볼산에서 하느님의 음성과 함께 거룩히 변모하신 사건은 단순히 그 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우리 역시, 하느님을 믿는 우리 역시 그 분과 같이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음을, 아니 거룩하게 변화할 것임을 미리 일러주시는 예언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과 같이 변화될 것입니다. 새 날이 밝아오고 샛별이 떠오르는 그 모습으로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환하게 빛나는 그 모습으로 우리 역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베드로 2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분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으로 매 순간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바로 그 마음과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우리가 변화될 것이라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에 들은 이 하느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여 여러분의 삶이 주님의 모습처럼 거룩하게 변모하시기를 그리하여 그 변화된 모습으로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희망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되리라.”(1요한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