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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문화 탐방-바라나시 갠지스강
2008년 9월 20일 토요일 바라나시, 갠지스강
* 인도의 철로변 풍경
새벽 3시, 일찍 눈을 떠서 창문의 커튼을 여니 동트고 있다. 어스름 불빛에 인도의 들녘이 보인다. 피난민 이동 열차 같은 느낌이다. 침대만 가득하여 좁은 창문에 여럿이 모여 밖을 보았다. 간이역도 지나고, 소와 돼지들이 철로변에서 먹이를 찾는 풍경도 지나간다. 동물만 아니라 사람들도 기차에서 버려진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다. 기차안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안내원이 창문 밖으로 던지기 때문이다. 대소변도 아무데서나 보는 진풍경도 보인다. 철로변은 아주 지저분하지만, 그곳에서 생을 엮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충분한 낙원이다.
* 야간 침대열차에서 본 인도
철저하게 드러나는 인도의 생활상이다. 도시를 떠난 전원의 인도, 그것은 차라리 원시의 귀향이라 부르고 싶다. 한국의 50~60년대를 재현하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 말한다. 내 생각으로는 이곳이 그보다 더 순수한 천연생활이다.
여명에 드러나는 인도, 우스운 일들이 벌어지는데도 당연한 일상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인도의 저 대책 없는 행정을 어찌할까. 모두들 난감한 표정이다. 이곳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해 보며 깊은 눈시울로 바라볼 때 나는 못한다고 다들 고개를 젓는다. 철로변에서 먹을 것을 줍는 것은 이해하자. 그런데 철로변에서 왜 대소변을 보는 걸까. 왜 들녘 아무 곳에서나 대소변을 보는 걸까. 아예 민가에는 화장실이 없는 듯하다.
농토와 잡초지도 보이고 부지런한 자는 물을 길어 나르고 출근하는 사람도 있다. 큰 나무가 인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드넓은 땅자락이 서서히 전개된다. 한국인에게 저 영토를 준다면 알뜰히도 운영할 텐데, 나는 부러운 시선으로 커다란 대륙의 인도를 바라보기도 했다. 많은 것을 생생하게 본 뜻깊은 여정이다.
* 바라나시 기차역 도착
아침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 바라나시 기차역은 플랫홈에서부터 복잡하다. 데모 진압 경찰도 나와 있고 인도의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으로 혼잡하다. 계단 아래에서 사는 사람도 있고, 아기를 안은 젊은 여인도 있다. 큰 짐은 포터가 이동하기로 하고, 작은 짐만 챙겨서 내려 기차역사 밖으로 이동했다.
* 바라나시 기차역 풍경
기차역 건물이 예술이다. 사원 모양으로 첨탑이고 색상도 아름답다. 역전 광장은 온갖 풍경으로 가득하다. 흰천을 파는 상인들, 노숙자들, 누운 가족들, 소, 사람, 오토 럭샤, 자동차 등으로 인도의 집합체다. 벽에는 인도 글자의 낙서가 있어 유럽을 연상케 한다. 그 담벽 아래 아버지와 아들이 다정하다. 우리의 짐을 머리에 이고 날라 버스에 실어주는 모습이 애처롭다. 많은 것은 보여준 커다란 바라나시 기차역,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 바라나시의 거리의 생활상
바라나시인들은 델리보다 가난함이 보인다. 길가에서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장사를 하기도 하고, 모여서 휴식하기도 한다. 더위로 지친 사람들은 무척 처져 있다. 거리가 도심이라는 인상을 지운다. 더러는 꺠끗하지만 많이 지저분하다. 소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델리와는 다른 생활상으로 인도의 진솔한 풍경이다.
* 바라나시 클락 호텔
매우 크고 웅장하다. 외객을 반가이 맞는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분무하고, 잘 가꾸어진 잔디 정원이 평화롭다. 내경은 더욱 아름답다. 바깥에 있는 인도와는 천지 차이다. 이곳에 머무는 것 조차 부끄러울 만큼 화려한 인도다. 클락 호텔은 인도에서도 아주 좋은 호텔이어서 더욱 그렇다.
* 바라나시 클락 호텔 앞의 자전거 택시
경계선 밖의 아우성이다. 무심코 호텔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갔는데 어디서 그렇게 알고 많이도 다가오는 지, 자전거 럭샤가 떼지어 다가온다. 요점은 자기 택시로 바라나시를 일주하라는 것이다. 무서움이 앞서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인도말을 모르니 영어로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손을 저으며 달아났다. 그들은 절대로 호텔문턱을 넘지 않는다. 도로와 호텔 영토는 선이 없는데도 그들은 철저히 모두 도로변에 서서 호텔을 바라볼뿐 한 발자국도 호텔 마당에 들여놓지 않는다. 기막힌 장면이다.
* 바라나시 도심 거리
과일을 파는 상인들이 많다. 사람과 자동차, 저전거 택시들로 복잡하다. 새파란 바나나를 작은 트럭에 실어 나르기도 한다. 한켠에 세워둔 커다란 트럭은 아름답게 무늬를 그려 꾸며서 곱다. 목화와 실크의 발달로 바라나시 거리에는 천으로 만든 제품상가가 많다. 갠지스강변의 아담한 도시다.
* 불교 성지 녹야원
인구 300만명이 사는 도시, 바라나시에 있는 불교 성지다. 2500년 전 석가모니가 최초로 불법을 전한 곳이다. 42m의 탑이 올곧게 서서 그날을 설법을 전하는 듯하다. 즉 이곳은 인도 불교의 시작점이다. 사위가 모두 푸른 녹지다. 그래서 녹야원이라 부르는가 보다. 고요한 정원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데 인도 여인들은 녹지를 다듬고 있다. 보리수 그늘에 앉으면 석가의 설법이 들릴 것 같다.
* 녹야원에서 만난 인도 학생들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인도 사람들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바깥 세상에 나가보지 않아 외부인을 만나면 사귀려고 하고 말을 나누려고 한다. 아주 호의적으로 다가온다. 이곳에서 그런 문화를 절감했다. 초등학생이든, 중,고생이든, 대학생이든 모두가 한결 같이 우리와 함께 호흡하려 다가온다. 우리는 그들을 사진에 담고, 그들은 우리를 사진에 담으며 많이 친해졌다. 인도에서 이런 학생은 최상의 신분이리라. 더러는 이 안에도 생업으로 물건을 파는 아이도 있다. 대견하여서 석가상도 사 줬다. 영어로 대화도 나눴다. 잠시지만 뜻깊은 인연이다.
* 바라나시의 바라트맛타 사원
석가모니가 해탈한 사원이다. 사원은 네 종류가 있는데 출생, 해탈 전, 해탈, 사망이다. 그 중에서 이곳은 석가의 해탈 사원이다. 아담하다. 뜨락도 사원도 녹야원에 비하면 아주 협소하다. 인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한 가족이 왔는데 아이도, 엄마도 참으로 곱다. 얼굴과 옷차림이 정갈하고 선하다. 석가모니를 만나러 들어가는 사원 안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을 관리하는 사람이 문 곁에 있어 그곳에 놓고 들어갔다. 금불상이 불교의 빛을 발한다.
* 바라나시 노변 과일상
바나나와 사과, 오렌지가 많다. 델리에서도 그렇고 이곳 바라나시에서도 그렇다. 아침 일찍 트럭에, 수레에 새파란 바나나를 싣고 가는 풍경을 종종 보기도 했다. 시장은 물론 사람이 모이는 길가에는 어김없이 과일상이 즐비하다. 더운 나라에서 주로 생산되는 과일이다. 자연 그대로의 걸르지 않은 모습들이 천진하다.
* 인도의 목조건물 건축 장면
우리의 시각으로는 부러운 현장이다. 쇠덩이와 시멘트가 난무하는 공사 현장을 보다가 얼기설기 나무로만 엮어놓은 목조건물 신축 장면 앞에서 나는 건강한 집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인간이 병드는 것 중의 한 원인이 너무 발달된 화학제품이라고 여겨지는데 조금은 거칠고 볼품없어도 나무로 집을 지을 만큼 넉넉한 자연을 허락받은 것은 신의 축복이다.
* 인도 특산 실크제품 공장 견학
실크는 인도의 특산물이다. 쇼올을 모두들 샀다. 비단으로 보드랍고 색상이 곱다. 특히 실크는 인도에서도 바라나시의 제품이 제일 좋다. 값도 적당하여서 선물용으로도 사곤 한다. 넉타이도 있다. 인건비가 저렴하여 물건값에 거품이 없다. 목화 재배도 인도에서 많이 한다. 바라나시 올 때 기차 안에서 들녘에 심겨진 목화를 보았다. 천연섬유 제품 생산을 보니 때묻지 않은 향수다.
* 인도 바라나시의 힌두교 사원
인도에는 사원이 많다. 힌두교 사원이다. 하얀 돔지붕과 허름한 종교의 집이 바라나시 도심 가운데 있다. 불교에서 파생된 여러 종교가 인도를 굳건하게 다스리고 있다. 철저한 자신의 종교를 따르며 숙명처럼 신을 의지하고 산다. 그래서 굶주려도 항상 평화로운 표정들이다.
* 바라나시 도심의 강
바라나시는 거대한 갠지스강이 있다. 그래서 이 도시를 찾아 온다. 4대 문명 발상지라고 교과서에서 수없이 외웠던 갠지스강, 그 작은 지류가 바라나시 도심을 흐른다. 서울의 한강 같은 강이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이 도시에는 더 잘 어울린다. 해가 넘어감에 낙조가 드리워 더욱 곱다.
* 인도 여인의 춤과 카페트
두 남자가 악기를 연주하고 한 여자가 30분 동안 춤을 춘다. 애절한 선율과 애련한 춤사위다. 연인사랑을 주제로 춤과 곡조가 가슴을 절저히 울린다. 인도 여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그대로 눈앞에서 전개된다. 굵은 선으로 진정한 미인이다. 연주자도 진정한 미남이다. 공연 후에는 정중한 인사를 올리고 인도 특산품인 카페트를 소개 한다. 아무도 사진 않았지만 독특한 문양의 카페트는 대단한 걸작품이었다.
* 인도문화 탐방 한국문인협회 세미나 및 시낭송
인도 갠지스강이 흐르는 강변 도시 바라나시의 호텔 세미나장에서 한국문인협회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학강연을 듣고 시낭송으로 뜻깊은 시간을 엮었다. 1부에서는 시에 대하여, 언어 구사에 대하여, 그 어려운 장벽을 넘어야 시인이라 했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고 시와 언어가 즉시 연결되는 작업을 시인은 잘 해야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끊암없이 언어에 대하여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다.
2부에서는 인도의 땅에 조국의 시를 심었다. 호텔 직원들은 큰 소리로 외치는 대한민국의 시에 눈과 귀를 열고 시청한다. 나는 [한반도], 나의시를 낭송했다. 조국을 떠나서 바라본 조국은 안에서 볼 때보다 더욱 위대하다. 행사의 마지막은 포도주 건배로 마무리 지었다. 밤 깊도록 문학의 정열을 쏟으며 배우고, 문인의 사명을 다짐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2008년 9월 21일 일요일 바라나시 출발 카주라호 도착, 카주라호 사원군
* 갠지스강 가는 새벽 거리
무어라 표현할까.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거리에서 자더라고 말하면 믿어질까. 인도에 대하여 수없이 들어왔는데, 그래도 설마 그럴까, 했는데 다 사실임이 목전에서 증명되는 인도의 새벽 거리다. 소가 길 위에서 누워 자고, 사람이 건물의 추녀 끝에서 누워 잔다. 어느 무리가 사람이고, 어느 무리가 동물인지 가뭇한 형상으로 구분 지을 뿐이다. 쓰레기더미까지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인도의 정직한 새벽을 열고 있다. 왜 그런 모습들이 밉지 않을까. 코를 막아야 할 상황인데 나는 아무 거부감 없이 신성한 그들의 터전을 응시했다.
더러는 거룩한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분주히 걸어간다. 개인 혹은 단체로 간다. 그들은 정갈한 몸차림이다. 우리는 갠지스강의 일몰과 강의 비경을 보러 가는데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신을 만나기 위해 간다. 목적은 달라도 한 지점을 향해 함께 가는 걸음이다.
* 새벽의 갠지스강
모두가 분주하다. 상인은 물건을 팔기 위해 준비하고, 뱃사람은 손님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보살피고, 걸인도 오가는 길손에게 구걸하느라 바쁘다. 새벽의 갠지스강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그 한 일원으로 동참하여 빠른 횡보로 움직인다. 강의 비경과 일출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기 때문이다. 갠지스강은 장엄하다. 강변의 건물들도 대단한 위용이다. 차츰 어둠이 가시며 서서히 갠지스강의 비경은 드러나고 있다.
* 갠지스강 비원의 꽃 띄우기
유람선을 타고 갠지스강으로 나갔을 때 한송이 꽃단을 나누어 준다. 가운데에 작은 촛대를 세우고 불을 켜서 정성스레 손바닥에 놓고는 비원의 꽃을 강물에 띄우는 의식이다. 갠지스강에서 내국인 및 외국인 모두에게 이루어지는 거룩한 하나의 종교 의식이다. 매일 매일 이렇게 행하여지리라. 인도인들에게는 신과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시간이리라. 오늘은 나도, 너도, 우리 모두 하나되어 이 나라의 예법에 따라 동일한 모습으로 소원을 빌며 소중하게 꽃단을 강물에 띄웠다.
* 갠지스강의 빨래터
인도인에게 있어 갠지스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세상을 초월한 신의 영역이다. 여기서는 모두가 거룩해지고 행하는 모든 일들이 신성하게 여겨진다. 어떤 일을 해도 신의 손길로 정화되며 맑아진다고 믿는다. 감히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인도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인도인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이 옷을 벗고 강물에 들어가 빨래를 한다. 목화 재배의 나라여서일까. 하얀 광목천을 빨아 널고 있다. 어찌보면 지저분하게 보일지 모르나 저들에게는 몸도 마음도 깨끗해지는 순간이리라.
* 갠지스강 일출
드넓은 갠지스강 위로 솟는 해, 바다 같은 강물 위 배에서 핏빛 해가 솟구쳐 오르는 풍경을 보는 것은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다. 눈부신 장관이다. 멀리 갠지스강 다리가 보이고 우리처럼 일출을 맞이하러 나온 배들이 유유히 갠지스강에 흐른다.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비경이다. 광폭한 강, 그 위에 푸른 지대가 길게 드리우고, 끝이 어딘지 모르는 우주 저 너머에서 신성한 해가 인간에게로, 인도에게로 빛을 발하며 떠오른다. 인도의 앞길에 빛이 있기를 빌었다.
* 갠지스강 유람선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우리 한국문인협회 회원은 두 척의 유람선에 나누어 탔다. 무두 32명, 그리고 가이드 2명 34명인데 배가 그리 크지 않아서 그렇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만나고 지나치고 그렇게 갠지스강 위를 흐른다. 더러는 일행을 부르며 농담을 하기도 하고 인도의 상인은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물건을 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문학이라는 동일한 감성으로 만난 문우들, 그래서 모두 뜨거운 문학의 감성으로 갠지스강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강변 한자락 평화로운 목욕탕이다. 드넓은 갠지스강은 지긋이 눈감고 이들의 행동을 허용한다. 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구분없이 모두 발가벗고 물 속에서 하나로 목욕한다. 원초적 삶이다. 이방인 내가 손을 흔드니 함께 손을 흔들어 화답한다. 부끄러움도 없다. 기도하며 가장 천연의 모습으로 평화를 선사한다. 저들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신성한 경지에 이르는 의식이다.
* 갠지스강변의 우람한 건물들
갠지스강은 상당히 넓고 길다. 이곳 바라나시에 흐르는 강물만도 끝없이 길다. 그 강변에 들어선 건물들 역시 대단히 크고 우람하다.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과는 다르다. 높이도, 외형의 아름다움도, 한줌의 빈 공간도 없이 줄기차게 이어져 있다. 외객을 의식한 건물일까. 물론 숙소도 있을테고, 식당, 상가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겠지만 갠지스강의 역사만큼 장엄한 혼이 서려있다.
* 갠지스강변의 화장터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나 갠지스강변 화장터에서 소록소록 연기를 올리며 타고 있다. 나무더미 위에 올려진 시신은 차츰 살점이 사그라들고 거룩한 영혼을 하늘 위로 올리고 있다. 신과 상면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시신을 태우는 사람들 사이로 하얀 연기가 솟는다. 석가는 회양목으로 태웠다. 보통 사람들은 망고나무를 사용한다. 재도, 뼈도 강에 버린다. 망자와 산자가 엄격히 구분되는데 누가 산자이고 누가 망자인지, 바라보는 자들의 시선은 혼돈이다. 죽어도 사는 듯, 살아도 죽는 듯 하나로 매듭지어진다. 아름답게 살아야지, 경계선의 화장터에서 굳은 서약을 한다.
* 장엄한 갠지스강
광폭의 강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길다. 바다로 보인다. 강물 색깔은 탁하지만 결코 예사로운 강은 아니다. 강물 위에 뜬 배들은 매우 많은데도 점으로 보인다. 멀리 나기지 못하고 강변의 건물 주변을 맴돌 뿐이다. 대부분 이곳의 배들은 일출을 맞이 하러 나온 외객들을 싣고 유람하는 배들이다. 용감한 인도인의 쪽배가 물살을 가르고 깊은 곳으로 간간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 조차도 아득하다. 인도의 역사를 이어가는 강, 장엄한 강이다.
* 갠지스강변의 번화가
갠지스강변에도 분명히 번화가는 있다. 그저 어설프게 지어진 건물은 결코 아니다.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는 외형은 첨탑의 사원이 많다. 목숨처럼 지켜오는 인도인의 종교가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인도의 글자라서 알 수는 없지만 꼬부랑 글자가 건물벽에 씌여 있다. 꽃처럼 고운 색상으로 건물을 치장한 것도 갠지스강의 번화가를 상징하고 있다. 인도인들의 고운 심성이 강변에 수놓아진 형상이다.
* 화장터의 나무 더미들
일출을 다 보고 배를 돌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갈 때는 화장터의 연기가 잦아들고 사람도 떠나고 나무 더미들이 빼곡이 쌓인 풍경만 보인다. 부자로 살았던 사람은 사후에 그래도 이곳 갠지스강변에서 하늘로 오르는데, 저 건장한 나무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서럽기 그지 없는데 갠지스강변에서는 가장 평화로운 정경이다.
* 갠지스강에 뜬 소의 시체
인도에서는 개고기도 먹지 않는다. 소는 당연히 먹지 않는다. 그러니 시체도 당연히 아무 곳에나 버려진다. 갠지스강에 누런 소의 시체가 떠 있다. 개의 시체도 떠 있다. 산자도 떠서 헤엄치고, 죽은자도 연기로 떠서 맴돌고 인간과 동물이 강변에서도 하나로 맴돌고 있다. 지상의 도심에서도 함께 살더니 사후에도 동일한 길을 간다.
* 갠지스강 물건 파는 배
남자 상인들이 유람선을 따라 다니며 물건을 사라고 한다. 땅에서는 여자들이 주로 파는 물건을 물 위에서는 남자들이 배를 타고 들어와 판매한다. 물건이라고 해야 수공예 공작품 정도다. 그들에게는 소중한 작품일지 모르나 기념품으로서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아무도 사지 않는데 정성들여 설명하고 배미를 좇는다. 인도인에게 갠지스강은 또 하나의 장터다.
* 갠지스강 유람선 선착장
갠지스강의 새벽은 분주하다. 강변 선착장은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배에 오를 때는 발 디딜 틈조차 없다. 허름한 배가 강변에 빼곡하게 들어와 사람들을 받는다. 바라나시 도시와 이어지는 긴 계단 곁에는 불심을 상징하는 그림과 함께 건물들이 아름답다. 이곳이 갠지스강변의 번화가다.
* 바라나시의 사람들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고 다시 바라나시로 돌아오는데 강가의 애련한 모습이 눈시울을 적신다. 구걸하는 자, 물건을 파는 자들이 진풍경으로 전개된다. 곳곳에서 아우성으로 소리치거나 달려든다. 일행이 줄을 지어 도심으로 이동하는데 조금만 틈을 벌이면 끼어 들어 손늘 내민다. 버스에 올랐는데도 여전히 유리창 너머에서 배고프다는 시늉을 하며 구걸한다. 저들을 누가 구제할까. 어디서부터 풀어야 굶주림에서 벗어날까. 소가 우리의 길에 서서 함께 걷는다. 쓰레기 더미가 주변에 널려 있고, 소똥의 역겨운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아무도 그것을 치우지 않는다. 바라나시 사람들의 가난한 아침 풍경이다.
* 바라나시 클락 호텔 출발
오전 10시에 호텔을 출발한다. 아쉬운 작별이다. 푸른 정원 깨끗하고 우아한 실내 로비, 호텔 안과 밖은 천지 차이의 세계다. 인도인들에게는 호텔에서 머무르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외국인으로 인해 관광수입을 얻겠지만 바깥 세상은 먹거리가 없어 앙상항 몰골로 다니는 사람들로 애처롭하다. 친절한 호텔 직원들이 나와서 배웅한다. 갠지스강의 인도 역사를 담아가는 소중한 여행지다.
* 바라나시 시가지 풍경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로 가기 위해 바라나시 국내선공항으로 이동하며 본 시가지 풍경이다. 역사 깊은 도심의 강과 드넓은 교정의 학교, 넓은 농토와 소들, 인디아 주유소 등 새로운 모습을 보았다. 도심을 벗어나면 초록 물결이다. 일부구간의 도로는 아주 깨끗하다. 잘 정리되어 있다. 소박한 도시, 인도의 중부 동편의 갠지스강변에 위치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바라나시다.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린다. 동물이 도심을 활보하고, 함께 굶주리고, 함께 거리에서 배회하던 그 애련한 모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 바라나시 공항
카주라호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국내선 공항이라서 한국의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수준이다. 친절한 인도 여인이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공항까지 인도인 가이드 라카를 다시 만났다. 침대 열차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다. 반웠다. 공항 직원들은 우리 일행이 주는 볼펜과 사탕을 고맙게 받는다. 한국의 볼펜은 인도에서 아주 인기다. 활주로가 광활하다. 나무도 울창하다. 우리가 타는 비행기는 제트 비행기로 아담하다. 아름다운 바라나시여 안녕, 청명한 하늘에 이별을 고하고 이륙했다.
* 바라나시 상공
비행기로 상공에 오르니 바라나시가 한눈에 보인다. 놀라은 것은 경작지가 반듯하게 잘 정비되었다는 것이다. 누가 저 땅을 인도라 할까싶다. 유럽의 어느 잘 생긴 땅덩이 같다. 흰구름도 다른 도시보다는 많이 떠 있다. 아마도 갠지스강에서 올라온 수증기 때문인 것 같다. 구름 색깔이 하얀 목화솜 덩이 형상으로 지상의 무공해 환경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인도, 눈부신 바라나시의의 창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