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양화나루와 선유봉
빼어난 선유봉 풍경, 중국에도 알려져 ~, 시인․묵객 즐겨 찾아
양화나루, 1398년 8월 1차 왕자의 난 주요 무대
양화나루는 태조 7년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의 주요 무대가 됐다. 신덕왕후 강씨 소생 형 방번과 당시 세자 방석은 강화도로 유배길에 양화도(楊花渡) 도승관(渡丞館, 종 9품직 관리가 근무하던 관사)에서(현 양평 2동) 유숙하던 중 이방원에 의해 살해됐다.
태종의 첫아들 양녕이 세자 시절 일탈 장소로 양화나루를 건너 안양천 일대에서 꿩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자주(조선왕조실록에 3번) 눈에 띄인다.
왕위를 아우 충녕(이도)에게 양보하고 명산대천을 유람하던 양녕대군도 말년에 선유봉에 영복정(榮福亭)을 짓고 여생을 마치기도 했다.
세종 때에는 삼판선(三板船)이라는 군함을 양화나루에서 건조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태종이 군사훈련을 참관했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관문과 군사요충지로서 양화나루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양화나루의 선유봉과 잠두봉(양화진 절두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한 몫했다.
선유봉은 경강(京江, 한양에 인접한 한강)에서 강화도를 거쳐 서해로 드나드는 수상 교통로의 요충지였기에 선유봉을 비롯한 양화나루 일대 한강 변 풍광은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양화나루 일대의 경치는 중국에까지 알려져 중국 사신과 유람객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는데 중국 사신 황엄(黃儼)(조선왕조실록, 태종 8년, 1408년) 등이 양화도(楊花渡)를 유람했다는 기사 및 사신 방문 시 필수 방문 장소가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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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봉의 아름다운 모습은 1741년 무렵 겸재 정선(양천 현감)이 영등포 선유도(仙遊島)의 풍광을 그림으로 남겨 놓았다.
경치 좋고 물산 번성한 양화나루
양화나루 일대의 모습을 기록한 문학작품도 여러 편 전해온다.
먼저 성종 19년(1488)에 명 사신 동월(董越)은 조선의 산천과 풍속, 인정과 물정을 ‘조선부(朝鮮賦, 부(賦)는 사물의 모습이나 자연의 풍경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서술하는 문학적 특성)’란 제목의 작품으로 남겼다.
“기내(畿內)의 경치는 한강이 제일이니(畿內之景, 漢江爲勝.)
높은 누대가 구름을 가리고 푸르른 물은 떠 있는 거울 같다. (樓高礙雲, 水碧浮鏡.)
양화(楊花)나루라는 곳은 물산이 흥성하다.(渡有楊花, 物亦繁盛.)
팔도에서 운송된 곡식이 모이는 곳이니, 일국의 요충지이다.(萃八道之運餉, 爲一國之襟領)”
*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
둘째, 민요에서도 번화했던 양화나루 일대의 모습이 나타난다.
서해로부터 수백 리 물길을 거슬러 경강에 들어오던 선원과 상인들 또한 한강에 비친 달과 선유봉의 풍경을 민요 가사에 담았다.
“에엥 차아. 저 달 뜨자 배 띄우니 … 선유봉이 비치누나.
선유봉을 지나치니 장유들 술집에 불만 켰네.
마포에다 배를 대고 고사 술을 올려 주면
한 잔 두 잔 먹어보세. 헤엥 차아.”
* 풀이 : 서해로부터 수백 리 물길을 거슬러 경강에 들어오던 선원과 상인들 또한 한강에 비친 달과 선유봉의 풍경노래
* 민요/강화군 내가면 황청리에서 채록된 뱃노래
한강의 명승 선유봉, 수많은 작품 낳아
영등포 선유봉은 한강의 절경 중의 하나였다. 조선의 문인들은 신선이 놀았다는 한강 선유봉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문으로 남겼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서명응(徐明膺)은 자신의 문집 ‘보만재집(保晩齋集)’에 한강 주변의 풍경을 ‘서호십영’(西湖十詠)이라는 10 편의 시로 남겼다.
백석한조(白石早潮) ; 흰바위에 이는 잔잔한 물결
청계석람(靑谿夕嵐) ; 청계산의 저녁 아지랑이
율서우경(栗嶼雨耕) ; 밤섬의 빗속 밭갈이
마포운범(麻浦雲帆) ; 마포의 구름처럼 떠있는 돛단배
조주연류(鳥洲烟柳) ; 새섬의 연기와 버들가지
학정명사(鶴汀鳴沙) ; 방학다리 아래 백사장
선봉범월(仙峰泛月) ; 선유봉 강물에 비친 달빛
농암관창(籠岩觀漲) ; 밤섬 앞 농바위에서 보는 파도
노량어조(露梁漁釣) ; 노량진에서의 낚시질
우잠채초(牛岑採樵) ; 와우산에서 땔나무하기
* 서명응(徐明膺)의 서호십영(西湖十詠)
* 선봉범월(仙峰泛月) ; 선유봉 강물에 비친 달빛/서호 풍경 중 으뜸
감싸고 돌아 떨어져 앉은 나지막한 모래섬 (包回錯落堯平汀)
빛도 기운도 헛된 이름이라 해가 별을 비추네 (光氣虛名日射星)
밤마다 찬 물결이 헹구고 닦고 물러가니 (夜夜寒潮淘洗出)
비로소 바다가 의지하는 맑은 자질을 알겠네(始知昭質賴滄溟)
* 학정명사(鶴汀鳴沙)/‘학이 노닐던 호수’ 샛강 일대 풍경을 읊은 시
버들꽃은 눈처럼 가득 내리고 (楊花雪欲漫)
복숭아 꽃은 붉게 타오르네. (桃花紅欲燒)
저물어가는 강 그림 그리듯이 수를 놓고 (繡作暮江圖)
서쪽 하늘에는 낙조가 드리웠네. (天西餘落照)
* 차운로의 양화석조(楊花夕照)/양화나루 주변의 석양 풍경을 읊은 시
선유봉 찾으려고 일엽편주 올라타니
한 몸이 편안하긴 천상루에 앉은 것 같구나.
날아갈 듯한 이 마음 하늘을 나는 기분일세
앞이 환히 트이니 길 잘못 들 염려 없다.
강마을 나고 들고 여기저기 보이는데
물결이 조용하니 흘러가는 줄 모른다.
사공은 연달아 양화도만 말하는 것이
바로 앞이 신선 노는 곳인 줄을 그대 정녕 모르리.
* 한말 독립운동가 임규(林圭)의 시
선유도의 어제와 오늘
선유봉은 일제강점기에 한강 제방과 여의도 비행장을 만들기 위한 채석의 목적으로 훼손되기 시작하여 육지와 연결된 드넓은 백사장의 모래는 도로건설, 양화대교와 정수장 등 각종 건설공사 등에 쓰여 육지의 선유봉은 오늘날 선유도가 되었다.
2002 월드컵이 열리던 해 선유도는 정영선 조경가의 설계로 과거의 정수장 구조물을 대부분 재활용해 11만㎡의 부지에 국내 최초로 환경재생 생태공원으로 부활했다.
선유도(仙遊島)의 관문과 교통요충지로써 역할의 역사성은 오늘날 한국의 젖줄 한강, 철도·해상 교통의 출발지 영등포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글 : 영등포투데이 김정태 논설위원 글 요약 첨삭, 사진 : 영등포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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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겸재 정선의 양화환도/양화나루 전경. 上 잠두봉(절두산), 下 선유봉/사진 영등포 투데이
2. 겸재 정선의 선유봉도/사진 영등포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