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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와룡산 문화와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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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와룡산 관광등반 후기 스크랩 와룡산(460m,안동),선비길,신선길,카투리봉,노적봉
카페지기 추천 0 조회 320 18.05.25 00: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낙동강이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해 꼬불꼬불 남으로 흐르다 용틀임하는 곳.

안동은 낙동강의 중상류에서 가장 번성한 고장이었고, 지금은 안동호와 임하호가 넓게 자리잡고 있다.

유교문화가 발달하여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등 성리학의 거두들을 탄생시켰다.

    

 이곳 안동호와 임하호를 바라보는 곳에 용이 누워 있는 형상의 두 와룡산이 있다.

안동호를 바라보는 와룡면 와룡산(臥龍山·460.1m), 아기산 남쪽 가까이의 길안면 와룡산(487.8m)이다.

그 중 국제신문 가이드에 올라있는 안동호 조망의 와룡산(460.1m)을 찾았다.


 안동호는 안동댐 건설로 생긴 인공 호수로 소양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조선시대에 낙동강은 하류의 배가 안동까지 드나들 정도로 물이 깊고 맑아 교통에도 큰 몫을 하였으나 광복 후엔 해마다 홍수의 범람으로 많은 피해를 겪었다.

이로인해 1971년 공사를 시작하여 1976년 준공함으로써 안동호가 탄생하게 되었다.

    

 '산의 형세가 천하를 평정하고 돌아온 용이 편히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하여 조선조 중기 문신학자 백담 구봉령이 수다산(水多山)에서 용산(龍山)이라

칭한 이후, 까투리봉 일대가 와룡산(臥龍山)으로 불렸다.

또한 와룡산에서 용틀임하는 황룡이 안동호의 물을 만나 천하를 평정하니 와룡은 황룡도강지(黃龍渡江地)라고도 부른다.
안동 와룡산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거석문화(巨石文化)가 발달하여 구전자원(口傳資源)이 관광자원화된 곳이다.

능선길은 옛날 이곳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곰이나 나무 혹은 돌이나 태양, 달 같은 모든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애니미즘의 현장이다.

주릉을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세워진 선돌들의 모습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조선시대에는 큰 물길(낙동강)에 가깝고 물이 많아 수다산(水多山)이라고 불렸으며, 가뭄 때엔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짧은 산행 코스(5.5km)이지만 산행로 곳곳에 인문학으로 덧입혀져 있고, 또 다양하게 꾸며진 스토리텔링이 호랑이 담배 피던 이야기로 살아나고 있다.

다만 와룡산만 산행하기에는 코스가 너무 짧아 길안면의 아기산(鵝岐山,峨岐山 591m)을 끼워 넣었다.

두 산을 잇기 위해서는 30분 가량 차량이동을 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두 산의 매력은 뛰어나다 할 것이다.


산행궤적

5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천천히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고도표

국제신문의 가이드를 그대로 따랐다.

네비엔 '용두골'을 입력하여 대형버스가 진입하기에는 다소 좁은 길을 오르다, 주차된 작은 트럭때문에 일단 버스에서 내리기로 했다.

다소 좁은 길이지만 산길입구에 올라오면 대형주차장이 반긴다. 들머리는 주차장 끄트머리 정자쉼터와 화장실 사이로 열려있어.

그 새 트럭을 다른 곳으로 빼게한 후 올라오는 우리 버스. 우리 버스는 신형으로 다른 차에 비해 조금 더 긴 편.

대형버스 댓대는 느끈히 댈 수 있는 공간.


안내판과...

와룡산의 유래도 살펴본 후...

입산.

산약초 채취금지 안내판과 야생화 반기는 반듯한 길을 오르려다...

옆에 아주 커다란 소나무가 보여 가까이 가보았더니...

350년 수령의 보호수.

인문학(人文學)이 시작된다. '용두고을 고려장'.

'불알바위 선돌'.

 인문학은 학문의 기본.  전통적인 인문학 분야인 문사철(文史哲), 즉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이 이야기들은 와룡이 고향인 출향인사가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등로 옆으로 지천으로 깔린 노오란 야생화- 애기 똥풀-.   이후 산사면을 비스듬히(선비길) 돌아...

갈림길에 섰다.

이미 되돌아 내려서는 일행들.

'주계서원' 안내판.

등산로 안내도.

와룡산의 정체성 안내판엔  안동 선사문화의 발원지로서 선비문화를 꽃피웠으며, 독창적인 거석문화로 꽃피운 뿌리문화인이란다. 미사여구의 극치.

훈민정음 와룡산 긍구당 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국보 제70호)'을 말한다.

해례본은 상주본과 안동본이 있고, 안동본은 지금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안동본은 일제강점기의 국문학자 김태준(金台俊, 1905년~1949년)의 제자였던 이용준(李容準)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밝혀졌다.

원래 광산 김씨 문중의 가보로, 이용준의 처가인 광산 김씨 종택인 긍구당 서고에 이 해례본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

한반도 전망대로 조금 내려가기 전.

조금 내려가다 안동호가 내려다 보이는 지점. 그곳은 안동호가 와룡산 산자락의 수몰로 인하여 굴곡진 모양.

살짝 당긴 모습.

산지당에 대한 설명.  와룡산 북동능 자락에 통정대부 부호군 김용묵공이 세웠다.

무속신앙으로 아주 조그만 사당이다.  영험한 산지당 산신령의 신통력으로 기자(祈者)의 소원이 이루어져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민둥묘를 지나자...

선비바위.   스토리텔링은 계속되고...

산중잡곡(山中雜曲)의 작자 '갈봉(葛峯) 김득연(金得硏, 1555∼1637)'은 서애 유성룡과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한 이다.

그는 중년에 생원 진사 양시(兩試)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시작(詩作)에만 전념했다.

임진왜란 때는 안동에 주둔한 명나라 군사의 군량미 보급에 힘썼고, 명군의 장수들과 교유하여 문장과 덕행으로 그들로부터 추앙받았다.

“용산(臥龍山)에 봄비개니 고사리 채 뎟다

석침(石枕)에 송풍(松風)이 부니 이 절로

아희야 므로 달혀라 번못기다려 노라”


 와룡산에 봄비 그치니, 고사리 순이 푸르구나/

돌베개에 솔바람이 부니 잠이 절로 깨는구나/

아이야 국물을 끓여라.더는 못 기다리니...

까투리바위. 매가 까투리를 사냥하면 이 바위에서 성찬을 했단다. 동네처녀가 까투리바위에 올라 발을 헛디뎌 그만 떨어져 죽었다.

그때부터 처녀의 넋을 달래려 이 바위에 정화수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까투리봉의 산삼 이야기와...

주계리 구선대 고인돌.

쌍근석식 안내판.

쌍근석식 선돌.

직녀암은 쌍으로 축조된 것으로서 인공으로 다듬어진 형태는 모난 기둥(角椎)모양의 2기와 인공미가 가미된 모난 넓적한 판석모양을 한 표지석 1기가 세워진 옆에

유사고인돌인 다지석식 고인돌로 여겨지는  부근에 선돌을 세운 것은 신성 공간의 영역 표시일 가능성도 있고, 또한 제의 공간을 의미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옆에 상석이 지석 위에 얹혀 있는데 덮개돌을 고이고 있는 받침돌은 자연석과 인공석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다지석식 고인돌과 기반식 고인돌이 적절이

배치되어 있다.


  선돌과 고인돌이 공존관계로 보아 이는 같은 시대에 유적으로서 피장자를 상징하는 추모적 의미에서 세워진 모표석(墓標石)과 남성과 여성을 의미한 쌍근석을

축조한 청동기 선사 인들은 당시 풍속습관으로 성기신앙을 깊이 숭배하여 표현했던 독득한 형태로 거석신앙의 대표적인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 상징물로 여겨진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인해 명나라 군대가 지원될 때에  4만의 병력을 인솔하여 들어온 이여송(? ~ 1598)은 래 강계사람으로 철령위로 도망간

이성량의 아들로서 한국인이면서도 중국의 장수가 되어 왜침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임진왜란중에 남진하였던 이여송은 삼남대로를 통해 다시 북상하며 명으로 돌아갈 때 우리나라의 산세의 풍수를 보아 큰 인물이 날 만한 자리
엔 그 맥을

잘라버리는 행위를 하여 자신의 근본을 망각하는 우매를 범하였다.

산지당 안내판.

우측 산지당 갈림길 이정표.

'용산 물굿제'는 기우제를 말하고, 바로 이곳이 기우단(祈雨壇)이다.

거북바위는 거북형상의 바위를 말하는데, 조망이 일품.

영물(靈物)이자 신물(神物)인 거북이 마을을 향하고 있어 풍요와 안녕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거북이가 한짐 가득지고 마을을 내려다 보는 이 지점이...

오늘 산행의 최고 전망포인트.

우리가 올라온 용두골이 발아래로...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대기 중이다.

주차장 탈출로.

한 쌍의 두꺼비가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두꺼비바위.

솔숲길.

물이 많은 수다산에 청개구리는 당연한 설정.

솔숲 금광굴 갈림길에서...

조금 내려섰더니 자연석 아래 자연굴.

들여다보다 안으로 들어갔지만...

박쥐는 날아가버린 듯 보이지 않고, 휑한 하늘만.

냉기가 얼굴에 확 풍기는 금광굴은 궂은 날 비박장소로 좋을 것 같지만 어쩐지 으스스.

널따란 헬기장.

여기가 와룡산의 정수리- 용두봉(460m)-  점심보따리를 풀었다. 우선 생탁~  그 시원한 목넘김.

우리가 올라온 길을 바라보니 좌측 이정표에 신선길로 탈출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와룡산의 안내판.

용두봉 헬기장에서 서쪽으로 나있는 탈출로.

이 세 사람을 주목하시라. 산야마을로 알바의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무덤가에 핀 이 하얀 꽃들은?

머리가 백발이 된 할미꽃(?).   늙으면 아이가 된다더니 이제 허리도 꼿꼿해진 듯.

솔숲길.

분내가 나서 돌아보니...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꽃.

나중에 꺾어 내려갈 신선길 이정표. 우리는 노적봉으로 갔다가 U턴하여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무덤이 있는 봉우리.

노적봉이다. 노적봉에선 말바위를 찍고 되올라와야만 하고, 계속 내려가면 '등산로 아님' 이다.

말바위가 제법 그럴사할 줄 알았지만 아주 조금만 바위라 스쳐 지났고, 장수씨와 이곳에서 만나 "이 바윈갑다" 하였다. "봐라. 앉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고, 조금 올라오다보니 안내판 사진에서 보았던 그 말바위. 올라 앉으면 득남한다는 가지신앙(祈子信仰).

다시 노적봉.

U턴하여 아까 지나왔던 신선길 갈림길에는...

북두칠성 성혈 고인돌 안내판.

나무로 휀스를 친 이정표 갈림길. 나무를 타고 넘으면...

산야마을(등산로 아님) 가는 길로 안된다는 말씀. 굳이 나무휀스를 타고 넘을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았는데, 아까 그 세사람이 나무 휀스를 넘었으니...ㅉㅉ

가지 마라,고 하면 더 가고 싶은 걸까?  에고~ 나중에 전화가 와서 산야마을이라고 한다.

"히칭을 해보고 안되면 우리 버스가 데리러 갈께" 하였는데, 다행히 용두골입구 삼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휀스 지점에서 진행방향은 신선길 오르막. 편하게 내리막으로 내려가면 산야마을로 알바.

이후 신선길은 산사면으로 산허리를 비스듬히 에두르는 길. 등로 돌무더기에 떡시루를 올려 놓은 게 보인다.

호식총(虎食塚)이다. 호환(虎患)으로 죽은 사람의 호식장(虎食葬) 무덤으로 호랑이가 많이 살았던 옛날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흔했던 양식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유골을 찾아 그 자리에서 화장을 하고 돌로 무덤을 만들었는데 대개 명당자리라고 한다.

그 다음 무덤에 시루를 뒤집어씌우고 시루 구멍에다 부엌칼을 꽂아 원귀가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호식총 안내판.

아까 정상(용두봉)에서 탈출하면 만나는 갈림길.

고인돌 안내판.

아이쿠~ 깜짝!  호래이다.

깍은 듯한 절벽의 바위를 신선대라 부르며, 신령님들이 범의 호위를 받으면서 잔치를 벌였다는 전설이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불공을 드리고, 무녀들은 산신기도를 올리는 장소로서 굴 안에는 용신암(龍神岩)이 자리잡고 있다.

옛날 용두고을 주민들이 이곳에서 불을 피우면 새터 앞산 황룡도강지 전면 마루에 연기가 나온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룡산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아주 긴 동굴이 뚫려 있다고 믿어온터라 호기심에 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다고... 

1870년까지 신선대 아래에 한 가구의 농가가 있었으나 신선대 범의 굴 호랑이들이 자주 출현하여 결국 마을로 이주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짜쓱~ 우리 동네 길고양이네.ㅋㅋ

안내판.

산길에 지천으로 깔린 노란 '아기똥풀'. 

꽃은 몰랐지만 우리에게  강아지똥 ,몽실언니라는  작품으로 많이 알려진 권정생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참에 야생화 입문이다. 잘 될런지 모르겠지만 이제 스승님을 만나 '핫라인'도 개설되어 있다.

야생화 스승님은 제비꽃을 좋아해 닉네임이 '제비꽃'이다.'

하도 잘 걸어서 그만 '제비'라고 불렀더니 '제비'이라고 강조한다. "아하~ '제비'"하고 또 농을 했더니 ㅋㅋ.  "'제비꽃'님 농담이였소이~"

'영주괴불주머니'.  이럴줄 알았으면 접사로 좀 예쁘게 찍을 걸.

산길에서 계속 스마트폰 메모를 활용하여 주섬주섬 메모하였지만 어느게 어느놈인지 도무지.

거북바위 옆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일출봉 갈림길.

배모형 특이 고인돌.

은난초(銀蘭草, 은란).

똑 같은 은란초 맞제?

꽃지자마자 탐스런 개복숭.

이정표에...

가침박달꽃.

뇌졸중 환자들이 기어 들어가서 걸어 나온다는 음이온 산림욕장이 와룡산이다.

와룡산을 덮고 있는 참솔이 '조선솔'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고 있다.

포장 농로를 따라...

주차장이 보이더니...

산행을 마친 일행들이 차량이동을 기다리고 있다. 5명이 미귀환이지만 용두골 입구 삼거리에 모두 기다린다는 전화를 받았다.

헤헤~~ '등산로 없음'하며 '가지 마라'는 데를 굳이 찾아간 사나이.

-작은 풀꽃-
후미진 골짜기에
몰래 핀 풀꽃 하나
숨어 사는 작은 꽃에도
귀가 있다.
나직한 하늘이 있다.
때때로
허리를 밀어 주는
바람이 있다.
초롱초롱 눈을 뜬 너는
우주의 막내둥이.
<박 인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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