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14호)
LG그룹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창업자와 2대의 몫이었다면 이 그룹의미래는 3대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를 놓고보면 일단은 3대에 걸쳐착실한 「경영바통」 릴레이를 펼쳐왔다.창업주가 뿌리를 내리고 타계한 지난 70년의 LG그룹의 매출액은2백60억원. 2대 회장인 구자경 회장이 줄기를 뻗던 80년엔2조9천7백9억원, 90년엔 16조2천억원으로 늘어나고 3대 회장에게경영권을 물려준 지난해엔 50조원으로 확대됐다.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연암이 경남 진주에 「구인회상점」이란 포목점을 연 것은 그가 24세 되던 1931년. 자본금은 3천8백원(圓).이어 40년에는 상호를 「주식회사 구인상회」로 바꾸었고 8.15해방과 함께 45년엔 「조선흥업사」를 설립해 미군정청으로부터 무역업허가를 1호로 따내 무역업에 손대기도 했다. 무역업에 이은 운수업도 여의치 않자 그는 「크림」사업에 눈을 돌려 상표에 「럭키」란이름을 붙였다. 크림사업을 위해 갖고 있던 땅도 팔고 구인상회도매각해 전재산을 털어넣었다.장안에 첫선을 보인 럭키크림은 한마디로 불티나게 팔려나가 대성공을 거뒀다. 덕분에 그는 47년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 근대적인 제조업체로의 면모를 갖췄다. 오늘날 LG그룹의 초석을 다진셈이다. 당시 원료를 녹여 크림제품을 만들던 가마솥 「검화조」는지금도 그룹연수원인 인화원에 모형이 소중히 보존되고 있을 정도다.
연암은 크림사업에 만족하지 않고 52년엔 치약과 플라스틱사업에진출했다. 크림으로 번 돈 3억원(圓)을 몽땅 투자해 부산 범일동에플라스틱 공장을 세웠다. 플라스틱이란 말조차 생소했던 이 땅에합성수지시대를 연 것이다.이어 53년2월 연암은 LG상사(옛 럭키금성상사)의 전신인 락희산업주식회사를 세우고 5년뒤인 58년엔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했다.59년엔 국내 처음으로 라디오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전자및 화학업종을 주력으로 하는 LG그룹의 요람을 완성했다.60년대 후반에 설립된 호남정유가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경제기획원에서 전남 여천에 일산 6만배럴 규모의 제2정유공장건설 및 경영희망자 공모를 낸 것은 66년5월. 민간주도의 제2정유공장 건설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64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유공(당시 대한석유공사)의 한해 순이익이 30억원에 달함에 따라 사업자 모집경쟁은 그야말로 불꽃을 튀겼다. 「순익 30억원의금방석」이라고까지 불린 이 사업의 허가를 받으면 재계의 판도가바뀔 것이 뻔했다. 럭키 롯데 한화등 6개사가 신청을 했고 결국 럭키쪽으로 결정됐다. 럭키와 칼텍스가 50%씩을 출자한 자본금5백50만달러의 호남정유가 제2공장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같은해11월. 이듬해인 67년에 호남정유 여천공장이 기공됐고 69년3월에완공됐다. 출범당시 6만배럴이던 하루 정제능력이 지금은 38만배럴로 늘어난 상태. 현재 여천에 4공장 신축이 진행중이어서 오는10월께는 60만배럴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50년부터 락희화학 이사로 시작해 경영수업을 받던 창업주의 장남구자경씨는 지난 70년 창업주가 돌연 타계함에 따라 2대 회장으로취임했다. 당시 그룹은 럭키 금성사 호남정유등 8개사에 매출액이2백60억원이었다.국내 재계가 모두 그러하듯 70년대엔 본격적인 외형 및 계열사 늘리기에 치중한 시대였다. 70년대초 희성산업(현 LG유통)을 설립하고 범한화재와 국제증권 등을 인수한 LG그룹은 반도상사의 종합상사 지정을 겨냥해 매진했다.「수출을 통해 조국 근대화를 이룬다. 무역업체를 정부가 지원해대형 수출전문업체로 육성해 점차 종합상사로 키우되 정부주도보다는 대기업 중심의 상사를 만든다. 종합상사와 금융기관과의 연계를강화하고 세계적 네트워크를 갖춘 대형 무역상사를 최종목표로 삼는다.」 지난 75년초 상공부가 수출 1백억달러 목표를 조기달성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한 종합상사 설립계획서의 주요내용이다. 이는 72년 당시 이낙선 상공부장관이 일본 이토추상사의세지마류조 부사장에게 요청, 일본의 「총합상사」를 모델로 만든이른바 「세지마계획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결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75년5월의 삼성물산을 필두로 잇달아 종합상사가지정됐고 76년엔 LG그룹의 반도상사가 종합상사가 됐다. 이들 종합상사는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수출확대와 함께 부실기업 인수와계열사 신설 등을 통한 영토확장에 앞장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만큼 종합상사들은 70년대 후반에 그룹의 자금줄 역할과 기업확장의 창구로 자리잡아 그룹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덕분에 지난 77년의 경우 LG그룹은 치약 비누 전화기 절연전선 연괴등 무려 46개 품목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반도체분야도 빼놓을 수 없는 주력부문의 하나이다. 지난 79년 대한반도체를 인수하면서 금성반도체를 설립했지만 영업이 부진했다.이후 89년에 금성일렉트론(현 LG반도체)이 설립되면서 지금은 계열사중 최대의 순익을 올리는 알짜배기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94년 당기순이익은 3천7백21억원(매출액 1조4천1백45억원)에달했고 작년엔 상반기만 해도 3천2백73억원(매출액1조6백7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로써 지난 87년 설립된 금성산전(현 LG산전)과 함께 전기전자분야의 전문계열화체제를 완성시켰다. 그리고선 90년초에 「고객을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모토로 하는 경영이념을선포하게 된 것이다.이어 90년대에는 계열사 통폐합과 계열분리등 사업구조 재편작업에몰두했다. 지난 93년7월 LG그룹은 54개의 계열사를 41개로 축소한다는 내용의 21세기 경영혁신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94년에 금성통신을 금성사(LG전자)에 합병시킨데 이어 지난해금성계전과 금성기전을 금성산전에 흡수합병시킨 것이 대표적이다.주요 계열사의 95년도 매출액을 보면 LG상사가 10조4천4백78억원에달했고 LG전자(6조5천9백17억원) LG화학(3조3천1백57억원)등이었고비상장사인 호남정유도 작년 상반기중 2조1천6백58억원의 매출액을올렸다.지난해 럭키금성그룹에서 LG그룹으로 새로 태어나면서 제3대 경영권을 맡은 구본무 회장. 그는 이제 매출액 50조원에 달하는 47개계열사로 이뤄진 선단을 이끌고 10년후엔 3백조원의 거대한 「항공모함」을 꿈꾸고 있다.
LG 백년 준비, '1등 아니면 없다' (70호)
90개사업 포기, 60조 구조 고도화투자 방침
『한우물을 파되 경영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면 기업도 장수할수 있다.』 경제계는 LG그룹 창립 50돌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한다.LG그룹은 화학과 전자를 양대축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서기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지난 27일 「기업 반세기」를 맞은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은 『21세기 미래 승부사업에 23조원을 집중 투자하는 등 60조원을 투입, 구조고도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승부 사업에는 차세대 반도체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차세대 전지 웨이퍼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21세기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LG의 한우물파기 경영이념은 1등을할 수 없는 사업은 과감하게 포기한다는 전략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구본무회장은 한계·부진사업은 물론 장기적으로 1등을할 수 없는 90개 사업을 선정해 철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창업 3세대로 95년 2월 경영바통을 이어받은 구본무 회장은 「도약2005」 선포(96년 3월) 등을 통해 사업구조조정의 기치를 힘차게내걸었다. LG가 제시한 비전은 기업생존원리와 선대부터 선명하게흘러왔던 기업가치를 임직원 및 국민 모두에 전달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LG의 초우량 기업정신은 사실 구자경 명예회장이 지난 88년(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 처음으로 제시했던 경영이념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회사를 세계 초일류기업으로키우는 것이 기업인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인간중시의 경영이 선행돼야 한다. 구명예회장은 『기업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 요소는 바로 사람이다. 사람을 중시하고 키우는게 기업가의 사명이다』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말했다.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정신도 구명예회장의 경영혁신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업혁신은 종착역없는 여정이고 그래야 국가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것이다. 기업수익이야 고객이 만족하면 저절로 생긴다고 여겼다.
◆ ‘기업혁신은 종착역 없는 여정’
LG의 또다른 강점은 유연하지만 집념이 강하다는 점이다. 강한 색채가 없는 듯 해도 임직원들은 한결같이 내실있는 구조조정으로2천년대 초우량기업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지난해 6월 LG그룹이 대주주로 참여하는 LG텔레콤이 개인휴대통신사업자로 선정된 것도 집념의 산물이다. 힘을 모으면 무엇이든지해낼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집념은 고 연암 구인회회장이 사업을 일으켜 세울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1931년 24세의 나이로 경남 진주에서 포목점(구인회상점)으로 장사를 시작한 연암은 무역운송업을 거쳐 45년 크림사업을 통해 제조업에 진출했다. 시중에첫선을 보인 럭키크림은 한마디로 대 히트였다. 보통 크림 1 타스에 5백원 하던 때에 럭키 크림은 1천원을 줘야 살수 있을 정도였다. 럭키크림이 잘 팔려 나가자 그는 47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세워 근대적인 제조업체의 면모를 갖췄다. 계열사 49개 62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LG그룹의 모체가 탄생한 것이다.
연암은 크림사업에 만족하지 않고 52년부터 치약과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했다. 5년간 벌어들인 3억원이라는 뭉칫돈을 몽땅 투자했다. 3백만원으로 시작한 화장품 사업으로 3억원이 넘는 자본을 축적한 셈이다. 부산 범일동에 공장을 세우고 미국(버클레이)으로부터 기계를 들여왔다. 국내에 플라스틱공업이 태동되는 순간이었다.관련지식이 태부족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연암의 투자는 적중했다.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제품인 머리빗은 날개 돋친듯팔려 나갔다. 이때부터 욱일승천의 기세로 사세를 확장했다.연암은 53년 2월 현재 LG상사의 전신인 락희산업주식회사를 세웠으며 58년에는 금성사(LG전자)를 설립, 전기전자 및 화학을 주력으로하는 LG그룹의 초석을 마련했다.연암은 장자인 구자경 명예회장에게 냉혹한 경업수업을 받게했다.바닥부터 커나갈 것을 요구했다. 기계를 알아야 한다며 초창기에는공장지기를 맡길 정도였다. 현장(공장)을 제대로 알아야 대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줄곧 강조했다.지난 70년 선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구자경 명예회장은 현장에서 행동하는 자세를 장자인 구본무회장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 환경변화를 기회로 삼는 통찰력도 필요하다는 점을 주입시켰다. 조직구성원은 변화를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LG의 21세기 구상이 구명예회장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비전을 향한 정열과 실천력을 갖고 꿈을 키워주는 리더가 필요하다고순회강연에서 피력했다.
◆ 냉혹한 경영수업, ‘바닥부터 시작하라’
그래서 구본무 회장이 취임이후 선포한 「도약 2005」는 어느날 갑자기 마련된게 아니다. 선대의 경영이념을 다듬어 구체적인 실천강령으로 다듬은 것이다. 그만큼 실천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구본무 회장 개인 스타일도 선대들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은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구회장은 무언가를 해야 속이 시원한 특성을갖고 있다. 현장을 발로 뛰며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뒷북을 치는 일도 없다. 지난해 기업들이 불황극복을 위해 명예퇴직제를 서둘러 도입했을 때도 구회장은 재빠르게 『우리가 추진하는 경영합리화는 획일적인 인원감축이나 일률적인 비용삭감 등 단기적인 임기응변책이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천명했다. 고객만족경영을 위해 상장계열사에 모두 별도의 IR팀을 두도록 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재계는 LG의 제2의 혁신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변신을 하겠다는 경영혁신의 의욕이 강해 기업부침이 아무리 심해져도 선두를 향해 뛸 것이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기업이 착실히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만큼 창립 1백년에는 더욱 화려한 미래상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LG 4개사 계열분리
그룹 후계구도 실질적 마무리 (410호)
LG전선, LG니꼬동제련, LG칼텍스가스, 극동도시가스 등 4개사가 LG그룹에서 분리된다. 이를 위해 이미 지배주주들 사이에 상호지분인수 등을 통해 LG전선이 갖고 있던 LG에너지 지분 20% 중 5.1%를 최근 LG건설이 인수했다고 LG측은 밝혔다. 이에 따라 LG전선은 LG에너지 지분율을 공정거래법상 계열분리 한도(15%) 미만으로 줄였고, 구자홍 LG전자 회장이 물러남으로써 친족계열분리 요건(상호임원겸직 금지)도 충족시켰다는 것이 LG측의 설명이다.
이번 4개사 계열분리는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재계에서는 LG의 후계구도가 이제 완전히 마무리됐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동안 구본무 회장 중심으로 그룹을 이끌어왔으나 항상 변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사촌이자 구태회 창업고문의 장남인 구자홍 회장이 과연 끝까지 LG전자를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고, 구평회 창업고문의 두 아들인 구자열 LG전선 사장과 구자용 LG칼텍스가스 부사장의 거취도 관심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계열분리로 이런 문제들이 말끔하게 정리됐다.
이제 남은 것은 그룹의 공동창업자인 고 허준구 명예회장 측근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것.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가닥이 잡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LG그룹 계열사 가운데 LG건설, LG칼텍스정유, LG유통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허명예회장 가문으로 넘어가는 것이 기정사실화돼 있다는 것이다.
이번 계열분리에 앞서 LG는 그동안 단계적으로 분가를 추진해왔다. 먼저 99년 LG화재를 구 구철회 창업고문 아들 3형제에게 경영권을 맡겼다. 이어 2000년에는 LG벤처투자와 단체급식회사인 아워홈을 각각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 회장과 구자두 회장에게 넘겼다.
향후 LG그룹에서 구본무 회장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내에서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던 경영진의 진로가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례연구 - LG
출자구조 ‘거미줄서 동아줄’로 (448호)
‘대성공’ LG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대한 재계 평가다. 그것도 ‘꿩 먹고 알 먹고’ 식이다. 구씨, 허씨의 50년 동업관계를 잡음 없이 청산했다. 조카, 삼촌간의 지분정리도 말끔하게 처리됐다. 순환출자로 서로 발목을 잡은 계열사간 관계도 깨끗하게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지배력이 더 튼튼해진 것은 물론이다. 구본무 LG 회장 등 대주주 일가가 지주회사인 (주)LG 지분을 42.79%(2003년 3월 기준)나 확보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기업사냥꾼의 표적이 될 위험은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더군다나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잘했다’는 찬사까지 듣고 있다.
LG가 지배구조 개선에 본격 나선 것은 2000년 1월. 97년 IMF 이후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구조조정에 이은 연장선상에서 출자구조 재편에 나선 것이다.
이후 2003년 3월 지주회사로 전환하기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은 계열사간 출자관계가 워낙 복잡해 짧은 시일 안에 해결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그룹의 주력인 LG화학과 LG전자를 차례로 분할한 뒤 통합한다는 3단계 전략을 구사했다. 2001년 4월 화학부문 지주회사 LGCI를 설립하며 첫걸음을 뗐다. LG화학을 출자회사인 LGCI와 사업자회사인 LG화학, LG생활건강 등 3개 법인으로 나눈 것이다. 이듬해 LG전자를 LG텔레콤, 데이콤 같은 출자지분 관리를 전담하는 지주회사 LGEI와 사업 자회사인 LG전자로 쪼갰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3월 LGCI와 LGEI를 합병, 통합지주회사인 (주)LG호를 띄운 것이다. 그렇다면 지주회사 전환 뒤 LG는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거뒀을까. 우선 복잡한 출자구조가 단순해졌다는 점을 가장 큰 성과로 회사측은 꼽고 있다. LG는 재계에서도 가장 복잡한 지분구조를 가진 그룹에 속한다. 구씨가와 허씨가가 3대에 걸쳐 동업관계를 이어온 까닭에 양가의 방대한 인맥이 출자구조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이러다 보니 한 회사가 어려워지면 계열사들이 덩달아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로 출자구조가 단순해지면서 거미줄이 몇 가닥 튼튼한 동아줄로 변했다.
이렇게 되자 사업자회사들은 출자에 대한 부담 없이 자신의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LG 관계자는 “경영투명성이 높아지고 한계사업 매각, 신규사업 진출 등 상시적인 사업구조조정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질소유권과 의결권의 괴리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알다시피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에 목청을 높이는 이유도 대주주의 실질소유권과 의결권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단지 5~10% 내외의 지분을 갖고 40조~50조원의 자산을 가진 그룹을 마음대로 ‘들었다 놓았다’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LG의 경우 ‘대주주 실질소유권과 의결권의 괴리도’(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조사)가 2.37%에 불과할 정도로 좋아졌다. 이는 S사 10.15%, H사 14.91%, 또 다른 S사 24.09% 등이 10%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크게 나아진 모습이다.
지주회사 전환
확 바뀐 지배구조… 위기 넘어 초일류로
99년 말 구본무 회장 결심… 투명성 자신감으로 사업실적도 ‘날개’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던 1998년 1월13일 오전 8시10분 국회 귀빈식당에 정몽구 현대 회장이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이건희 삼성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 최종현 선경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도착했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조찬면담을 갖기 위해서였다. 과도한 차입경영과 무분별한 사업확장 등으로 경제위기에 한몫을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던 터라 기업 구조조정의 칼을 뽑아든 새 정권 앞에 총수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예상대로 김당선자는 이날 재벌총수의 개인재산 출연을 비롯해 선단식 경영 해체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부실기업 퇴출을 선언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을 수용하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지주회사 설립을 정부가 허용해야 한다는 건의를 내놓은 상태였다. 이날 면담을 전후해 대통령인수위원회와 정부 주변에서 구조조정 실적이 우수한 기업에 우선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수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이유로 87년 금지됐던 지주회사제도가 IMF 위기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99년 4월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 지주회사 설립이 공식 허용됐다.
이 시기에 LG 내부에서는 새로운 지배구조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구본무 회장은 99년 신년사에서 “LG도 그룹의 의미를 경영이념과 브랜드를 공유하는 ‘독립기업의 협력체’로 정의했다”며 새로운 형태의 지배구조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주회사 전환 문제가 본격적으로 검토된 것은 99년 하반기부터였다. 당시 강유식 사장의 지휘 아래 한계사업 매각과 합작사업을 통한 외자유치 등 다각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펼치고 있던 구조조정본부에서 ‘지주회사’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해 12월 구본무 회장의 결심이 굳어지자 구조본 재경팀이 사전 정지작업에 착수했다.
“IMF를 겪으면서 과거의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높아져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분위기를 봐도 그렇고, 순환출자를 통한 계열사 지배는 더 이상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기 때문에 구조조정본부에서 기본방향을 정하고, 최고위층의 재가를 받아 준비에 들어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구조본 고위관계자의 회고다. 오너는 지주회사의 경영권을 갖고 자회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는 구회장의 의지도 확고했다는 전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순환출자를 해결하지 않고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성 시비는 물론이고, 과거처럼 대주주가 불과 몇 %의 소수지분으로 회사를 운영하다간 M&A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방향설정이 확고했던 반면, 제도상의 문제로 인해 외부 공표에 앞서 먼저 해결할 과제가 있었다. 일단 걸림돌은 계열사 지분 확보였다. 상장 계열사는 30%, 비상장 계열사는 50% 이상의 지분을 대주주가 소유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오랜 동업관계가 유지되고 있던 당시 LG의 지분구조는 주요 계열사 지분을 수십명의 양가 친인척이 나눠 갖고 있는 등 매우 복잡했다. 무엇보다 구회장 일가가 지주회사 설립을 위해 필요한 지분매입에 들여야 할 돈이 상당한 규모였다. 결국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밑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두 집안간의 관계까지도 손을 봐야 할 상태였다.
몇 개월간의 도상작업과 준비를 거쳐 2000년 봄부터 본격적인 지분정리가 시작됐다. 그해 5월 구회장 일가는 3,000여억원을 들여 LG전자와 LG화학의 주식을 집중 매집했고, LG전자의 경우 구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12.5%로 올라갔다. 대주주들간에 활발한 지분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LG가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졌다. 하지만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LG정보통신의 LG전자로의 합병을 계기로 온갖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고, 특히 대주주의 지분정리 과정에서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다른 계열사들이 매입한 데 대해서도 주가 산정기준 등을 놓고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더 이상 물밑작업으로 끌고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진화하기 위해 6월8일 강유식 사장이 증권거래소 기자실을 방문했다. 강사장은 “1년 안에 LG전자와 LG화학의 대주주 지분을 25%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히면서 지주회사 전환계획을 사실상 공개했다. 그리고 7월4일 LG그룹은 공식발표를 통해 “2003년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내 대기업으로는 최초의 지주회사 설립 계획이었다.
“대기업도 선단식 경영과 순환출자, 상호출자 등의 고리를 끊고 투명경영을 실현해야만 21세기에 생존이 가능합니다. 지주회사체제를 통해서 한계사업의 퇴출과 신규사업의 진출입을 자유롭게 해 지속적인 성장체제를 갖추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제는 부회장으로 승진한 강유식 사장의 당시 발언이다. 그리고 계획대로 2001년 4월과 2002년 4월에 LG화학과 LG전자가 차례로 회사분할 등을 통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고, 2003년 3월 통합지주회사인 (주)LG가 설립됐다.
“제도적 미비와 불확실성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정부에서 법제화 논의를 한 것은 수년이 됐지만, 정작 법령이 제정된 뒤에도 지주회사 설립요건과 배당정책, 과세 문제 등과 관련해 각종 제약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주회사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죠.”
LG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지주회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실험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지주회사 전환 이후 LG에 대한 안팎의 시선이 크게 바뀐 것만은 틀림이 없다. LG전자의 한 간부는 지주회사 전환 이후의 사내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지배구조나 소유구조와 관련해서 경영투명성에 자신감이 생겼죠. 소유구조나 경영승계 문제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까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일에 대한 집중도가 크게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또 과거처럼 사업 자회사가 다른 곳에 투자할 필요가 없이 자기 사업분야에만 전념하면 되니까 성과 달성도 역시 높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시장의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LG전자의 권영수 재무담당 부사장은 과거와 같이 사업 외적인 요인 때문에 투자자들이 주식 매입을 기피하는 일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시장에서 선호하는 주식이 됐다고 설명했다.
“LG전자의 경우 과거에는 경영권 확보 차원에서 순환출자를 통해 사업과는 무관한 백화점, 건설 계열사 등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계열사들의 경영상황이 나빠지면 출자를 해야 하는 등 사업 외적인 요인 때문에 회사실적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았죠. 이런 어려움이 아예 없어졌으니까 사업실적만으로 평가를 받는 기반이 생긴 겁니다.”
한국증권연구원의 빈기범 연구위원은 “한국 사정에 맞는 바람직한 지주회사제도나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있다”고 전제한 뒤 “LG가 도입한 것처럼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수직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은 기업의 소유권과 지배간의 괴리를 좁혀 대주주와 소액주주간의 이해상충을 해소하는 데는 바람직한 변화로 본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영미식 지배구조를 따를 것인지, 아시아적 상황을 수용할 것인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LG가 좋은 연구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돋보기 주가로 나타난 성과
시가총액 3배 이상 증가 ‘고공행진’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가장 큰 성과는 기업가치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영투명성과 사업실적의 예측가능성이 크게 높아짐에 따라 외국인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LG 주식의 가치를 높게 봐주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회사분할이 이뤄지기 직전인 2001년 3월28일 기준으로 LG화학의 주가는 1만2,700원이었지만 2월15일 현재 4만700원으로 3.2배나 올랐다. 함께 분할된 LG생활건강은 3만1,000원, LG생명과학은 3만9,000원으로 각각 2.44배, 3.07배 높아졌다.
이들 3개 회사의 시가총액은 LG화학이 2조6,221억원, LG생활건강은 4,842억원, LG생명과학은 6,465억원으로 총 3조7,528억원에 이른다. 분할 전 LG화학 시가총액이 1조2,397억원이었던 데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에 종합주가지수를 비교하면 523.2포인트에서 968.88포인트로 85%가 늘어난 것에 비하면 LG화학 계열사의 주가는 2배 이상의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2002년 4월1일자로 LGEI와 LG전자로 분할된 LG전자의 경우도 분할 전 주가는 4만5,000원, 시가총액은 6조9,803억원이었으나 2월15일 현재 주가는 7만4,300원, 시가총액은 10조3,727억원을 기록했다. 주가는 65%, 시가총액은 49%가 늘어나 같은 기간에 종합주가지수는 895.20에서 968.88로 8% 높아진 것에 비해 월등하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상호출자제한을 받는 29개 민간기업 총수 일가의 의결권 승수(총수 일가의 현금투입 지분과 실제행사 의결권 비율)를 비교(올 4월 기준)해도 LG가 달라졌다는 점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주요 기업들의 승수는 보통 16~19배로 높은 반면, LG는 6.5배로 낮게 나타난 것이다.
아울러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현물출자와 신주발행 방식을 통해 추가부담 없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장악할 수 있었다. LG는 인적분할을 통해 기존 회사를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만들고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장외에서 공개매수하고 대금으로 현금 대신 회사의 신주를 발행해 교부했다. 이렇게 되면 추가 현금 부담 없이 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해 지주회사 요건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경영실적도 크게 나아졌다. LG화학은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은 10.9% 늘어난 5조6,725억원, 당기순이익은 4.9% 늘어난 3,385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LG전자도 지난해 사상 최초로 연매출 20조원을 돌파하며 1조62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이처럼 경영실적이 개선된 것을 두고 오로지 지주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주가치도 높아졌다. 지주회사 전환 뒤 시가총액이 크게 늘어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지난 6월1일 기준으로 분할 후 존속법인 (주)LG의 시가총액 4조3,000억원을 제외하고도 LG화학의 경우 LG화학, LG생활건강, LG생명과학 등 3개사의 시가총액의 합이 3조7,000억원으로 분할 직전인 2001년 3월 1조2,000억원에 비해 202%가 상승했다고 한다. LG전자도 시가총액이 9조4,000억원으로 분할 직전인 2002년 3월 시가총액 6조9,000억원 대비 35%가 상승하는 효과를 누렸다.
그러나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지주회사의 횡포가 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배당수익에 의존하는 (주)LG가 자회사에 대해 과도한 배당이나 브랜드 사용료를 요구한다는 지적이다. 이은정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기업정보실장은 “자회사에 일률적으로 브랜드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횡포”라고 꼬집었다. 현재 LG전자와 LG화학이 연매출액의 0.2%를 브랜드 사용료로 지
키로 했다.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회사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LG카드 사태 당시 지주회사 체제로 인해 계열사 지원을 받지 못해 위기가 심화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LG 관계자는 “LG카드 문제는 지주회사 체제가 오히려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방화벽 역할을 했다”고 반박한다. 국내 지주회사법이 금융과 비금융부문을 분리하고 있어 LG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비금융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LG카드, LG투자증권 등 금융회사 지분을 처분했다는 것. 따라서 LG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았다면 출자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LG전자, LG산전 등이 직격탄을 맞았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
LG는 이제 지배구조만 따진다면 국내에서 가장 앞선다고 자부한다. 이처럼 앞선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도 밝히고 있다. 과연 LG가 지주회사 체제를 발판으로 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계열분리
아름다운 이별 지켜준 ‘신의’와 ‘합리’
인화와 유교적 가풍도 한몫… 분가를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활용
LG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창업자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이다. 구창업회장의 장인인 고 허만식씨와 6촌간이자 만석꾼인 고 허만정씨는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자신의 셋째아들인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경영수업을 의뢰하면서 출자를 제의했다. 구창업회장은 두 가지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동업이 시작돼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57년간 동업관계를 이어오면서 양가의 자손들이 대거 경영에 참여하며 방대한 지분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올해 초 허씨가 분가를 계기로 그 복잡하던 지배구조를 말끔하게 정리했다.
그것도 송사 한번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하며 선진경영체제를 구축한 LG는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기존의 일부 재벌들이 2대, 3대로 내려가면서 경영능력의 부재나 재산싸움으로 무너지는 것과 비교하면 모범적인 가족경영 사례로 꼽을 만하다.
비결은 뭘까. 그룹 관계자들은 ‘인화’에서 배경을 찾는다. 사전에 충분한 합의를 거쳐 원칙을 정하고 정해진 원칙을 지키며 결과에 대해서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최종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경영사학회 연구총서에서 LG의 인화정신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잘못을 해도 정으로 감싸는 어정쩡한 가족주의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상호합의한 원칙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엄정한 책임의식이 전제돼 있다’고 풀이했다.
유교적 가풍도 큰 역할을 했다. 양가 모두 자손이 많은 집안이지만 유교적 가풍에 의해 교육을 받았고 그 영향으로 엄격한 위계질서가 자리잡고 있다. 자손이 많다 보니 연상의 조카, 연하의 삼촌이 허다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조카가 자신을 ‘자네’라고 부르는 젊은 숙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이런 전통이 살아 있기에 양쪽 가문은 많은 동생과 조카들을 일사불란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69년 12월31일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타계 이후 구창업회장의 첫째동생인 고 구철회 당시 락희화학 사장은 바로 이듬해인 70년 1월6일 그룹 신년 시무식 때 “구자경 부사장을 제2대 회장으로 추대하자”며 물러난 것은 집안의 가풍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다가 양가의 오너 일가라도 경영능력을 철저하게 검증한 뒤 경영자로 육성하는 전통도 도움이 됐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회장직에 오를 때까지 18년간 현장에서 실무경험을 쌓으며 경영인으로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이렇게 훈련받은 구명예회장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실무경험을 쌓아서 능력과 자질을 키우지 않으면 승진도 할 수 없고 중책도 맡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이에 따라 구본무 회장도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부회장 등의 직위를 차례대로 거치면서 LG화학과 LG전자 같은 주력회사의 영업, 심사, 수출, 기획업무 등을 두루 섭렵하는 등 20여년간 풍부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룹분리 과정도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분별없이 나눠 갖기를 하지 않았다. 그룹분리는 철저하게 업종 특성과 시너지를 고려한 구조조정 차원에서 진행됐다.
2000년 분리된 LG화재해상보험의 경우 정부가 추진 중인 제2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정책에 적극 부응한 조치였다. 당시 구자훈 LG화재 사장은 지난 76년 LG화재에 입사한 이래 보험영업 및 업무담당 등을 두루 역임한 보험분야의 전문경영인이었다.
LS그룹의 분리도 같은 원칙이 적용됐다. 전선, 산전 등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모아서 내보낸 것이다.
허씨가의 분가도 마찬가지였다. 상호 사업연관성이 적은 전자ㆍ화학 중심의 사업부문과 에너지ㆍ유통 중심의 사업부문으로 나눴다. 이는 일반적인 국내 그룹의 계열분리 과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국내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를 도입, 복잡한 순환출자로 얽혀 있던 소유ㆍ지배구조를 단순화해 기업경쟁력과 가치를 높였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래의 LG
'전자ㆍ화학 쌍두마차 타고 대약진'
대규모 선행투자로 기술경쟁 리드… 전자 2010년 세계 빅3
'전자ㆍ화학 중심의 글로벌 리딩기업으로 재도약하자.'
GS 계열분리가 완결된 후 LG그룹은 새로운 경영비전을 이렇게 발표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전자부문과 화학부문을 두 축으로 삼고 통신서비스부문이 그 뒤를 받쳐주는 형태로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세계 일등사업 확대, 핵심인재 확보 육성, 글로벌 톱3 브랜드 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LG 그룹은 비전 달성을 위해 올 초 대대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대규모 선행투자를 통해 갈수록 첨예해지는 기술경쟁에서 앞서가겠다는 계산이다. 올해 총투자규모는 11조7,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6% 증가했다. 특히 R&D 투자 비중을 크게 늘렸다. 지난해 2조4,000억원보다 42%나 많은 3조4,00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책정했다. 시설투자비도 20% 증가한 8조3,000억원에 이른다.
'글로벌 톱3 브랜드' 육성을 위해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에 별도의 전담조직인 '브랜드관리팀'을 신설한 것도 눈에 띈다. 브랜드관리팀은 주력사업인 전자와 화학부문에서 LG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 구본무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사업모델을 확실하게 차별화하는 한편 사업과 전략에 꼭 맞는 핵심인재를 적극 확보하고 육성하는 등 경영 수준을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인 '일등 경영'을 통해 '일등 LG'를 달성"하자며 "LG브랜드 출범 10주년을 맞아 LG브랜드가 최고의 브랜드로서 세계 곳곳에서 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다같이 '일등 LG'를 앞당기자"고 주문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LG의 각오와 마음가짐은 올해 새롭게 내놓은 LG브랜드 광고에서 고스란히 보여진다. 백지 구석에 지우개 하나만 그려놓은 이미지를 내보낸 것. 낡은 것은 내보내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카피는 이렇다. '변화의 생각들로 세상을 새롭게 채우겠습니다. Think New? LG?' 새로움으로 채워나가는 LG의 미래를 살펴본다.
전자부문
3 개 사업부문 가운데 전자부문에 대한 투자가 가장 많았다. 그만큼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성장잠재력이 높다는 의미다. 총 9조3,000억원이 투자될 예정으로 전체의 82%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LG전자, LG필립스LCD, LG이노텍, LS마이크론 등 8개사가 포진해 있다.
LG 전자는 '2010년 글로벌 톱3'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비전을 공유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등 기반을 다지는 데 중점을 뒀다면 올해부터는 '강한 실행'으로 최대의 성과를 올리겠다는 것이 전략이다. 이와 관련, 지난 1월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올해는 남보다 먼저 실행하고, 성과를 내기 위한 강한 실행을 통해 전자정보통신분야 세계 5위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글로벌 톱5의 달성을 위해 LG전자는 글로벌 경영, 기술경영, 인재경영을 3대 경영지침으로 정했다. 해외 마케팅을 강화하고 R&D투자를 늘려 기술 경쟁력을 배가하겠다는 것. 2010년까지 LG전자는 총 30조원을 R&D에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인재경영을 위해 올해에만 2,500여명의 석ㆍ박사 연구인력을 채용하고 인도, 러시아의 우수인력 채용도 확대하기로 하는 등 전사적인 인재확보 운동에 나서고 있다. 현재 1만4,000명인 연구인력을 2007년 2만4,000명, 2010년 3만명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LG 전자는 디지털TV, PDP TV 등 첨단 TV와 이동단말기에 승부수를 걸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 큰데다 경쟁사에 비해 기술력이 앞서 있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PDP TV의 경우 42인치에서 100인치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갖춰 지역별 계층별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올해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부품 국산화율을 90%로 끌어올려 명실상부한 최고의 TV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는 각오다. 특히 지난해 LG전자의 디지털TV 전송기술이 미국 표준으로 선정돼 북미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휴대전화 단말기의 시장지배력도 배가할 방침이다. 지난해 세계 5위에서 2006년에는 세계 3위의 휴대전화업체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CDMA 최대 공급처인 버라이존을 비롯해 스프린트, T-모바일 등 새로운 공급처를 개척해 북미시장 1위를 확고히 할 계획이다. 지난해 4,500만대에서 올해는 7,000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GSM과 WCDMA 부문에서는 허치슨, 오렌지, 보다폰 등 세계적인 이동통신사업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을 적기에 공급, 시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WCDMA폰의 경우 올해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선다는 복안이다.
백색가전부문은 연간 20%씩 매출을 늘려 2007년 세계 1위 백색가전업체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월풀, 일렉트로룩스 등 주요 경쟁사와 달리 TV, 휴대전화 등도 다루는 종합전자업체의 장점을 내세워 차세대 경쟁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것이다.
홈네트워크, 텔레매틱스, 포스트PC,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단말기 등 신규사업 확대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DDM(Digital Display & Media)사업부를 DD(Digital Display)사업부와 DM(Digital Media)사업부로 세분했다. 신규사업 부문의 제품개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LG 필립스LCD는 올해 향후 LCD사업의 승패가 달려 있는 TV용 LCD시장 1위를 달성하고 고부가가치의 하이엔드급 모니터와 노트북용 LCD시장의 지배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질과 양 모두 확고한 글로벌 1위가 되겠다는 것. 현재 건설 중인 7세대 생산라인이 가동하면 42인치 이상 TV용 LCD에서 부동의 선두자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회사측은 보고 있다.
전자부품업체인 LG이노텍은 세계 수준에 이른 튜너, 광디스크 드라이브용 스핀들 모터의 지위를 유지하고 LCD와 카메라 모듈 등 성장성 높은 사업을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연간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사업군을 현재 4개에서 7개로 확대하는 등 글로벌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화학부문
LG 그룹 화학부문의 미래 비전은 오는 2008년까지 아시아 3위, 2013년 글로벌 5위로 도약하는 것. LG화학, LG생활건강, LG생명과학 등은 이를 위해 R&D에 과감한 선행투자를 하고 핵심 기술인재 비중도 대폭 늘린다는 전략이다.
우선 2008년까지 2조7,000억원을 R&D에 투자할 계획이다. LG화학이 2조원 이상을, LG생명과학이 3,500억원, LG생활건강은 2,200억원 등을 투자하게 된다.
국내외 우수 R&D 인력유치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현재 2,400명 수준인 화학부문 R&D 인력을 2008년 4,500명으로 크게 늘린다. 이렇게 되면 현재 30% 수준인 사무기술직 대비 R&D 인력 비중이 40%까지 높아진다.
화학부문의 맏형인 LG화학은 오는 2008년까지 매출 15조원을 달성해 규모면에서 아시아 '톱3' 화학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야심찬 비전을 세웠다. 그 일환으로 미래 승부사업에 투자를 집중한다. LG화학은 승부사업으로 전지, 편광판, PVC, ABS, 인조대리석, 표면자재 등 6개를 꼽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2차전지, 편광판 같은 정보전자소재산업에 3,600여억원을 투자하고 R&D 역량 강화를 위해 중대형 전지,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미래 성장엔진 연구개발에 2,451억원을 배정했다.
해외사업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은 전략지역이다. 올해 초 출범한 중국지주회사를 통해 '2008년 중국 톱5 화학회사'로의 도약을 목표로 뛴다.
북미와 서유럽 등 주요 선진시장도 속속 파고든다. ABSㆍEP 등 고기능 석유화학제품과 광고재, 인조대리석 등 기능성 산업재 제품, 2차전지ㆍ영상소재 등 첨단 정보전자소재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확대에 주력한다는 복안이다.
생활용품 및 화장품사업을 하는 LG생활건강은 국내 최고의 생활문화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1위인 생활용품사업은 그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고 2위인 화장품은 강한 브랜드 육성으로 1위까지 노리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사업구조 고도화, 브랜드 경쟁력 제고, 조직역량 강화 등 3대 기본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LG 생활건강은 올해 전년 대비 8.1% 늘어난 1조3,000억원의 매출과 21% 늘어난 66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LG 생명과학은 세계적인 신약을 갖고 있으며 글로벌 마케팅 역량을 갖춘 초우량 생명과학사를 향해 뛰고 있다. 올해 매출 2,300억원을 목표로 과감한 R&D 및 설비투자에 나선다.
R&D 투자는 서방형 인간성장호르몬(서서히 방출돼 약효를 오랫동안 지속시키는 호르몬), 간기능 개선제, 당뇨병 치료제 등의 개발을 중심으로 약 580억원을 투자한다.
설비투자는 불임치료제 생산라인, 서방형 인간성장호르몬 공장, 젖소 유방염 백신설비 등을 중심으로 약 240억원의 예산이 잡혀 있다.
LG 생명과학은 신약개발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마케팅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국내 내수시장에서의 확고한 위상 확립에도 주력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통신ㆍ서비스부문
통신 서비스부문은 LG그룹의 주력은 아니지만 LG텔레콤, LG CNS, 데이콤, LG상사 등 잘 알려진 기업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LG는 올해 이 부문에 1조1,500억원을 투자한다. 초고속인터넷, 인터넷전화, 방송이 결합된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네트워크 기간망과 광동축 혼합망 등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 대부분이 투입될 예정이다.
LG 텔레콤은 최근 가입자 600만명을 돌파하며 자력생존의 기반을 마련한 데 이어 매년 매출과 브랜드 선호도를 20% 이상 성장시킨다는 복안이다. 올 1월 번호이동제도가 전면 시행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지만 뱅크온, 뮤직온 같은 서비스와 합리적 가격 등 경쟁 요소를 활용하면 안정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매출 향상에 크게 기여한 데이터서비스와 부가서비스에 대한 기대가 크다.
최근 LG텔레콤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핵심 서비스는 모바일 금융서비스인 '뱅크온'이다. 현재까지 160만명의 누적가입자를 확보했으며 소비자와 금융기관 선호도 1위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음악서비스인 뮤직온도 빠르게 호응을 얻고 있다. LG텔레콤 관계자는 "뮤직온은 유료 음악 콘텐츠에 대한 건전한 소비문화를 이끌고 있다"며 "이 서비스가 성공할 경우 LG텔레콤의 신규 가입자 확보와 기존 가입자 충성도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LG텔레콤은 MP3폰 라인업을 강화해 뮤직온 서비스를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차세대 방송ㆍ통신 융합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LG텔레콤은 현재 TU미디어가 주도하고 있는 위성DMB와 방송사 중심의 지상파 DMB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최근 56개 중앙부처 자료관시스템, 범정부통합전산센터, EBS 인터넷 수능강의시스템 등 공공부문의 굵직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주목받고 있는 LG CNS의 움직임도 관심거리다. 이 회사는 '진정한 일등 LG CNS의 실현'을 모토로 내걸고 사업성과, 사업수행역량, 미래 준비 등 3개 분야에서 일등을 한다는 경영목표로 세워놓았다.
올해 LG CNS는 기존 사업에 'IT아웃소싱사업'과 '복합선제안 사업' 등 새로운 전략사업을 추가해 '경쟁시장 내 부동의 1위'를 지키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에 들어설 국내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다. 또 유비쿼터스 서비스인 'u-City(차세대 도시 모델)', 복합형 유비쿼터스 서비스 및 비즈니스 모델 개발, RFID/임베디드 컴퓨팅 등을 중심으로 차세대 IT서비스 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 진단 - 전자부문
선택과 집중… 사랑해요 '투명 LG'
분할 전 1만원이던 주가 7만원까지 급등… 지주회사 효과로 기업가치 향상
복잡한 지분관계의 단순화와 지주회사체제 확립의 최대 수혜업체로는 역시 LG전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2002년 4월에 구LG전자가 LG전자와 LGEI로 분할되면서 LG전자의 기업투명성 제고 문제는 어느 정도 상황이 종료된 바 있다. 즉 현재의 GS홀딩스 소속업체까지 포함한 구LG 계열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주회사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나타났던 영업 비관련 업체에 대한 자금지원 문제가 일단락된 것이다.
지주회사체제 정립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은 첫째 본업의 선택과 집중, 둘째 기업투명성 제고 등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은 영업 관련 자회사와만 지분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영업외 상황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감소됨을 의미한다. 지주회사체제 전환 이전에 LG전자는 LG정보통신, LG반도체 등 사업 관련계열사 뿐만 아니라 LG칼텍스정유, LG텔레콤, 데이콤 등 사업 연관성이 떨어지는 계열사에 대해서도 출자할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룹 내에서 현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LG그룹의 정보통신부문 투자가 가시화되면서 LG전자의 자금부담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이제는 IT 하드웨어 관련업체만으로 LG전자그룹군이 형성돼 설혹 자회사 출자가 이뤄지더라도 사업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본업에 대한 투자 집중으로 투자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이점도 있다. 선택과 집중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기업투명성 제고가 나타난다. 영업 비관련 계열사에 대한 투자불가 방침 천명에도 불구하고 그룹 사정에 따라 출자가 이뤄지면서 투자자의 신뢰가 저하되곤 했는데, 지주회사 출범 이후 형식적 강제에 의해 이에 대한 우려가 불식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1년 말 기업분할 공시 이후 6개월 만에 LG전자 주가는 4배 가까운 급등세를 보였다. 지주회사체제 확립으로 LG전자 가치가 영업성과에 의해 제대로 평가받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LG 전자의 사업부는 가정용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디지털 어플라이언스(Digital Appliance)부문, TVㆍPDPㆍPC 등을 생산하는 디스플레이&미디어(Display&Media)부문, 그리고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정보통신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디지털 어플라이언스부문은 최근 이익률이 다소 하락하고 있지만 국내외를 포함한 경쟁업체와 비교해 최고의 수익성을 자랑하고 있다. 에어컨 생산량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냉장고와 세탁기도 양문형 제품과 드럼형 제품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제품 시장개척의 선두에 서고 있다.
디스플레이&미디어부문은 IT경기 부진에 따라 다른 부문에 비해 수익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TV의 경우 북미식 디지털방송 방식에 대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향후 시장확대에 따라 막대한 로열티 수입이 기대된다.
PDP 도 삼성SDI와 더불어 세계 1~2위를 다투면서 일본 메이커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정보통신부문의 성장이 괄목할 만하다. 2004년 휴대전화 출하량은 4,440만대를 기록해 전년 대비 62% 증가했으며, 세계 톱5 업체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특히 3세대 휴대전화 시장의 선점을 통해 다른 경쟁업체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계열사 관계도 LG전자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갖고 이는 IT 하드웨어 업체 중심으로 재편됨에 따라 자회사 가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전세계 TFT-LCD 1~2위를 다투는 LG필립스LCD 지분 45%를 보유하고 있으며 LG마이크론, 한국전기초자 등 우량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영업성과의 호전과 우량 자회사 가치를 반영해 주식시장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분할 전 1만원에 그치던 주가는 최근 7만원을 웃돌고 있으며, 외국인 지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기본적으로 이런 평가는 실적호전에 기인한 것이지만 그런 평가를 가로막던 과거 지분구조의 해소도 재평가에 한몫을 담당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복잡한 지분구조와 계열사 지원, 그에 따른 신뢰도 하락으로 구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LG전자가 지주회사체제 확립을 통해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 진단 - 화학부문
탄력붙은 사업고도화… 점프 시동
GS 그룹과의 이별은 또 다른 기회… 글로벌화 핵심은 중국현지 직접투자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LG그룹과 GS그룹의 계열분리를 승인함에 따라 LG그룹은 명실상부하게 전자와 화학사업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그룹으로 재탄생했다.
GS 그룹과의 결별이 갖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화학사업에 그룹의 핵심역량을 더 많이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도성장기와는 달리 경쟁이 치열한 저성장기에는 문어발식 경영보다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LG그룹은 화학부문을 2008년에 아시아 3위, 2013년에 세계 5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밝혔고 그에 걸맞은 엄청난 규모의 투자계획도 마련했다. 이 장기비전은 GS그룹과의 결별로 핵심역량의 집중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달성 확률이 훨씬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LG화학이 그동안 누차 표방해 온 투명경영과 정도경영, 그리고 주주중시경영에도 진일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주회사체제의 확립으로 이미 투명경영의 토대가 마련된 상태에서 사업구조마저 단순해지면 투명성 확보 및 정도경영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고 주주중시경영의 실천을 위한 걸림돌도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LG그룹은 LG카드 사태로 인해 물질적 피해뿐만 아니라 그룹이미지에도 엄청난 손상을 경험했는데, 사업구조가 복잡할수록 유사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 운신의 폭이 줄게 된다.
GS 그룹의 핵인 LG칼텍스정유와의 계열분리로 석유화학사업의 수직계열화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으나 원료의 수급 특성상 거래관계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여 기우로 판단된다. 한편 LG대산유화(구 현대석유화학)의 계열편입은 시황이 좋은 새 사업군의 보강과 신규 자금줄(Cash Cow)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LG 그룹 화학부문의 핵심전략은 미래의 성장엔진 확보와 사업구조의 고도화를 통한 장기포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글로벌화와 미래 전략사업의 확보를 절체절명의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현지사업을 총괄하는 지주회사인 LG화학 중국투자회사를 이미 설립해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2008년까지 화학부문의 R&D에만 2조7,000억원을 투입해 2차전지, 편광판, 등 6개 제품을 세계 1등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국내 신규 석유화학플랜트의 경쟁력 약화로 생산원가와 시장접근성에서 유리한 중국 현지 직접투자는 LG그룹 화학부문 글로벌화의 핵심이다. 중국에 제2의 LG화학을 건설하기 위해 지난 1월 LG화학 중국투자회사를 설립해 8개 생산법인과 2개 판매법인, 3개 지사의 경영 전반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 1등 사업으로 선정된 PVC와 ABS의 설비투자에도 박차를 가해 2008년까지 중국 현지 생산능력을 각각 연 100t과 70만t까지 확대해 장기비전을 달성해 갈 계획이다.
LG 화학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정보전자소재사업이다. 이 부문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과히 놀랄 만하다. 그룹의 또 다른 핵인 전자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정보전자소재사업은 2차 전지와 TFT-LCD용 편광판이 주력이고 PDP필터, OLED 소재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고용량 전지, 고기능 편광판 개발, 하이브리드카용 중대형 전지, 연료전지 등의 개발을 통해 화학부문의 미래 성장엔진으로 키워갈 계획이다.
생산능력 확대속도는 LG화학의 정보전자소재에 거는 기대를 알 수 있다. 편광판 생산능력은 2001년 연 130만㎡에서 지난해 말 1,650만㎡까지 확대됐다. 2005년 중에는 일본의 선발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2,400만㎡ 규모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산요, 소니 등 일본업체의 독무대였지만 2차전지의 생산능력 확대도 가히 시장판도를 변화시킬 만하다. LG화학은 99년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전지 개발에 성공한 후 연내에 4,000만셀 규모로 확대해 세계 3대 전지메이커로 등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 그룹은 전자와 함께 그룹 핵심사업의 한축이 된 화학부문의 장기비전 달성을 위해 국내시장의 한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화로, 석유화학사업 한계는 신규사업의 강화를 통한 사업구조 고도화로 극복할 계획이다.
도전과 과제
새옷 맵시 'Good'…'울리자, 골든벨!'
지배구조 바뀐 후 그룹 전체 거듭나… 수익원 발굴, 포트폴리오 다양화는 과제
LG 그룹의 성장속도가 눈부시다. 최근의 엄청난 실적향상에 다들 놀라는 눈치가 역력하다. 역시 증권가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외국인투자가를 필두로 LG그룹 멤버사의 주가 추이에 안테나를 바짝 치켜세운 분위기다. 몇몇 세력은 이미 물량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대표우량주'로 손색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주가는 많이 뛰었다. 꾸준한 우상향 곡선으로 투심(投心)을 유혹하고 나섰다. 특히 LG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증권가 한 투자전략가는 "지난해만 놓고 보면 LG그룹 기업실적은 국내 최고수준"이라며 "반짝열기인 인디언서머로 치부하기에는 상승에너지가 꽤 탄탄한 편"이라고 전했다. 앞으로가 더 주목된다는 얘기다.
화려한 성적표의 출발은 '지주회사' 도입에서 비롯된다. 최근 종지부를 찍은 LG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은 일종의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그런데 이게 주효했다. 아직 확신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적어도 합격점 이상이라는 평가가 많다. 더구나 대규모 기업집단의 전례 없는 지주회사 변신은 한국 재계에 새로운 방향타를 제공했다는 호평까지 붙는다. 일각에서는 LG의 '새옷 입기'를 한국기업 소유지배구조의 터닝포인트로 이해한다. 애초 목표였던 핵심역량의 선택과 집중이 효과를 본 건 물론 경영투명성도 한단계 업그레이드됐다. 학문이론만 있을 뿐 현실 사례가 없었던 다소 위험한 결정이었지만, 결국 LG그룹의 선택은 옳았던 셈이다. 향후 지주회사 시스템이 안착할수록 지주회사는 투자ㆍ관리에 집중하고 자회사는 경영에만 역량을 모으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도전 앞에는 늘 새로운 과제가 따라붙게 마련이다. 가령 지주회사를 통한 소유지배구조의 변화는 마침표를 찍기에는 갈 길이 멀다. 일단 지주회사의 디스카운트 문제가 위기로 작용한다. 지주회사의 보유자산(자회사 주식)이 싼값에 거래된다는 얘기다. 이는 자칫 SK사태처럼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
감덕식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주가관리ㆍ경영권 방어를 위한 체계적인 IR활동과 M&A 역량배양, 신사업평가 역량제고, 대규모 자금조달 등 지주회사의 약점 보완책을 강구할 것"을 주문했다. 지주회사의 부실 가능성도 한계다. 지주회사는 고수익 신사업을 꾸준히 발굴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회사의 배당말고는 마땅한 수익원이 없다. 자회사ㆍ지주회사의 이중과세도 문제다.
지주회사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시민단체 등의 부정적인 시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LG그룹의 변신을 둘러싼 몇몇 논쟁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다. 일관성을 갖춘 적극적인 대응조치 없인 이들이 세운 대립각은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지주회사로의 변신은 순환출자를 끊었다는 데 의의가 있지만, 자회사의 부(富)가 지주회사로 유출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회사의 경쟁력 강화방안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만년 2등'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던지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LG그룹의 주력사업은 전자ㆍ화학ㆍ정보통신 등이다. 전자는 그나마 고무적이다. LG전자의 올해 매출목표가 30조원일 만큼 세부 사업영역이 고루 성장하는 모양새다. 단 가전부문에 과도하게 의존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한층 넓힐 필요가 있다. 향후 가전 쪽 업황이 출렁일 때에 대비한 충격흡수장치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다.
LG 화학의 미래가치는 주목해 볼 대목이다.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이렇다 할 성과물이 없다는 게 다소 부담스럽다. 최근 주가가 지지부진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주력제품인 TFT-LCD용 편광판과 2차전지 등이 강력한 미래 성장엔진으로 떠오를 개연성은 충분하다. 반면 정보통신부문은 여전히 미완이다. 사실 LG그룹이 당면한 가장 '뜨거운 감자'가 정보통신이다. 그간 각고의 공을 기울였지만 디딤돌보다 걸림돌로 치일 때가 더 많았다. 서둘러 신규 수익모델을 마련해 난관을 극복하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LG그룹을 둘러싼 공통적인 도전과제도 있다. 가령 브랜드파워 업그레이드가 대표적이다.
1 월17~22일
LG 전선그룹, LS 이름으로 새출발
LG 전선그룹이 그룹이름을 'LS'로 바꾸고, 종합 솔루션 업체로 거듭난다. LG전선그룹은 1월19일 기업이미지통합(CI) 선포식에서 새로운 그룹이름을 공개했다. 구자홍 LS그룹 회장은 "LS는 '리딩솔루션'(Leading Solution)의 약자로 그룹모태인 LG와 GS의 장점을 계승 발전해 나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앞으로 사업구조를 장치(Device) 중심에서 솔루션까지 제공하는 형태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LS그룹은 LG 브랜드를 쓰고 있는 LG전선, LG산전, LG니꼬동제련 등 주력 3개사의 사명을 오는 3월 주총승인을 거쳐 LS전선, LS산전, LS니꼬동제련으로 바꾸기로 했다. E1, 극동도시가스, 가온전선 등 나머지 LS그룹의 계열사도 향후 개별기업의 판단에 따라 LS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새 로고의 화살표 모양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강한 의지와 새 패러다임을 여는 무한성장을 나타내고 적색과 청색은 도전적인 사고 및 투명성과 건실함을, 부드러운 선은 고객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담았다고 LS측은 설명했다. LS그룹은 계열사 17개, 총자산 5조1,000억원으로 재계 15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규모다. 지난 2003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LG 분가의 역사
인화 앞세워 '조용히… 순서대로…'
희성그룹 첫 단추 꿰고 GS그룹 분리로 마무리
올해 초 57년 동업자인 허씨 가문(GS그룹)이 독립하면서 LG 분가작업이 마무리됐다.
LG 가는 국내 재벌 중 가계도가 가장 복잡한 집안이다. 구씨, 허씨로 엮어진데다 대대로 자손이 많았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10남매(6남4녀)를 뒀다. 그의 아들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6남매(4남2녀)로 다복했다. 창업 초기 구씨가에 사업밑천을 댔던 허만정씨도 슬하에 8형제를 뒀다.
양가의 자손들은 대다수가 LG그룹에서 경영에 참여했다. 이러다 보니 양가의 지분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지분관계는 복잡해도 이들간의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를 나눈 형제간에도 재산싸움으로 송사를 벌이는 일이 흔하다지만 LG가는 영 달랐다. 3대째 동업을 이어오는 동안 사소한 잡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는 유교적 가풍을 갖고 있는데다 집안의 위계질서가 워낙 분명했기 때문이다. 장자승계는 철저히 지켜졌다. 동생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딸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못했다. 재산은 집안 어른들이 가족회의를 통해 공평하게 나눴다. 어른들의 결정은 법보다 엄중했기에 이를 어기는 자손이 없었다.
그러나 늘어나는 자손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양가 문중에서는 4대, 5대째 내려갈 경우 잡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이에 90년 초부터 계열분리가 조금씩 논의되다가 95년 구명예회장이 2선으로 물러나면서 분리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그의 그룹 분할작업은 촌수가 가까운 곳부터 해결하고 먼 촌수로 옮겨가는 방식이었다.
첫 작업은 96년 1월 이뤄졌다. 둘째아들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넷째인 본식씨가 분가했다. 당시 LG그룹의 계열사나 다름없던 희성금속과 국제전선, 한국엥겔하드, 상농기업, 진광전기 등의 기업을 모아 희성그룹으로 출범시켰다.
지금의 희성그룹은 희성전자, 희성정밀, 희성금속, 희성엥겔하드, 희성화학, 삼보지질 등 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구본능 회장이 희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희성전자 지분 38.1%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동생인 본식씨가 25.4%의 지분으로 2대주주.
이어서 구명예회장의 동생들이 하나둘 새살림을 차려 형으로부터 독립했다. 직전에 구인회 창업회장의 첫째동생인 구철회씨(작고)의 자녀들이 LG화재해상보험을 갖고 새살림을 차렸다. 이는 당시 정부에서 추진 중인 제2금융권 지배구조개선 정책에 적극 부응하는 차원에서다. LG화재보험은 고 구철회 회장의 장남, 3남, 4남이 각각 명예회장, 회장,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2000 년 3월 넷째동생인 구자두 당시 LG벤처투자 회장이 짐을 꾸려 LG그룹을 떠났다. 구자두 회장은 연세대 상대를 나와 59년 럭키화학 관리과장으로 입사해 금성전자, 금성반도체 사장 등을 지낸 핵심경영인 출신. 그해 9월 셋째동생인 자학씨도 형의 우산에서 벗어났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은 그는 LG반도체와 LG건설 회장 등을 거친 인물. 그의 몫인 아워홈은 전문식당, 식재영업, 단체급식, 패스트푸드 제조업 등을 영위하는 업체다.
형제들의 분가가 마무리되자 구명예회장의 삼촌들이 독립을 서둘렀다.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등 창업고문들이 장성한 자녀들을 데리고 분가했다. 세 사람은 구인회 창업회장을 도와 그룹의 기반을 닦은 창업공신. 이들의 몫으로 LG전선, E1, 극동도시가스, 가온전선(옛 희성전선), LG니꼬동제련, LG산전 등이 주어졌다. LS그룹은 올 1월 말 현재 자산총액 5조1,000억원으로 재계 20위권에 속한다. LG전자 같은 초우량 회사는 없지만 대다수가 지속적으로 순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이다.
이렇게 구씨간의 분할이 갈무리되자 57년 동업자인 허씨 가문과 석별의 정을 나누며 그룹의 분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허씨 경영자들이 '전선이냐, 정유ㆍ유통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냐'를 놓고 고심했지만 결국 후자를 택했다. 이 과정에서 양가의 재산배분 비율인 '65대 35' 원칙이 적용됐다. 이별은 갈등 없이 조용히 마무리됐다.
2 월14~19일
GS 그룹, '허창수號' 닻 올려
LG 그룹에서 분가한 GS그룹이 홀로서기에 돌입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2월15일 새 기업이미지(CI) 발표와 함께 기자간담회를 갖고 "경영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정착시켜 GS그룹을 세계 최고의 선진기업 반열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허회장은 또 "그룹 출범 초기에는 LG로부터의 계열분리에 따라 에너지와 유통 중심의 서비스 전문 지주회사로서 위상을 다지면서 독자경영의 틀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며 "LG와의 인화 및 동업정신은 그대로 살리면서 차별화된 사업과 투자 집중화에 힘쓰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회사와 계열사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등 고객접점에서부터 고부가가치 서비스 차별화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그룹의 중장기 비전과 성장전략은 올 3월 말쯤 발표할 계획이다. 방향은 에너지와 유통의 양대 부문이다. LG의 사업영역에 진출하지 않는 등 LG와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예상된다. GS그룹은 지난해 매출이 22조원으로 추정되며, 올해는 24조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첫댓글 회의할 때, LG와 GS분리에 초점맞춰서 조사하기로 했잖아요. 자료를 이미 형이 다 찾아놔서 뭐 ㅋㅋㅋ 자꾸 겹쳐요!! ㅋㅋ
분리이유는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아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