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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 특수학교로 첫 출근한 아들에게 아침 일찍 카톡으로 기도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김충은 선생님이라고 적고 화이팅하자~~ 격려한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아마 학교 업무 중에 동료선생님들이 김충은 선생님이라고 불렀을 것인데 처음 선생님으로 불러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교회 두 분 권사님 그동안 학교 선생님으로 오래도록 교육현장에서 충성을 다하고 퇴직하셨는데 이젠 교사라는 호칭이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으로 불러줄 때는 교사라는 정체성을 인식하며 직장에 충실했는데 퇴직이후 지금 어떠습니까? 누가 교사라고 불러 주지 않으니까 왠지 공허한 마음이 들지는 않으신지!!.... 그렇습니다. 교사 뿐아니라 사회생활 중에 공동체 안에서 나름 다 직책이 있습니다.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 하나님의 자녀로써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작은 제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통해 신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신앙의 최고의 스승입니다.
우리 인생이 마치는 그 날까지 천국복음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매일 훈련 받는 작은 제자로써의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단순히 교회 등록하고 예배만 잠깐 드리고 빠져나가는 예수님 팬으로 사는 삶은 절대로 아닙니다.
카일 아이들 먼 목사가 쓴 책 “팬인가 제자인가” 신앙서적이 있습니다. 제목만 읽어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뭔가 느낌이 옵니다. 팬이란 영어를 우리말 그대로 쓰고 있는데 뜻은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축구팬, 야구팬, 노래하면 아이돌 BTS 팬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대한민국 열열한 축구팬이라면 유니폼을 입고 얼굴에 패인팅을 하고 축구장에 갑니다. 그러나 축구팬은 관람석에 앉아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입니다. 팬은 정작 경기에는 나서지 못합니다. 고함을 지르며 응원은 하지만 경기장안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희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열성적인 맨유 팬이었는데 팀이 자꾸 패하면 그렇게 좋아했던 팀에서 식어져 다른 팀 팬으로 옮겨 버릴 수도 있습니다. 팬은 어디까지나 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제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습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훈련 받고 그대로 따라합니다.
탈무드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한 율법학교 학생이 스승에게 와서 스스로 랍비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스승은 “그 자격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저는 제 몸을 단련해서 맨 땅 위에서도 잠을 잘 수 있고, 들판의 풀을 먹을 수 있으며, 날마다 채찍으로 세 번씩 제 몸을 때리며 훈련하고 있다”고 대답 했습니다. 스승은 멀리 보이는 나귀를 가리키며 말을 했습니다. “저 나귀를 보아라. 저 나귀는 맨땅 위에서 늘 자고, 들판의 풀을 먹고, 날마다 세 번 이상 채찍으로 맞는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너는 나귀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지 랍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자격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수님의 작은 제자로 살고 있는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과 대화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사람은 서기관이고 다른 사람은 제자라는 호칭을 갖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서기관에게는 우리예수님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없고 다른 한 사람 예수님의 제자에게는 너는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 것을 보면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여 하나님나라가 점점 확장되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마4:1-11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 받으셨습니다.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신 후 광야에 머물지 않고 이젠 세속의 현장속으로 들어가셔서 천국복음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이후 우리 예수님 하신 일은 갈릴리에서 고기 잡은 어부들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이제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시겠다고 부르시니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로 따랐습니다. 이후 천국복음은 식을 줄 모르고 복음의 지경이 넓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느 날도 예수님 산위에 앉으시더니 먼저 제자들을 향하여.....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 ” 설교를 시작하시고는 쉼 없이 마5-7장까지 그 유명한 산상수훈의 설교를 하시는데 하나 둘 수많은 무리들이 산에 모여들었습니다. 저들은 권위 있는 말씀 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본문 바로 앞부분 마 8: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나병환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중풍병에 걸려 있던 백부장의 하인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각색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능력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천국복음사역을 통해 18절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얼마나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던지 예수님께서는 이 자리를 떠나자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으로 시작 됩니다.
그 때 한 서기관이 무리들 사이에 끼여 있었을까요?....... 서기관이 예수님 앞에 나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19절......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서기관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왜 그 서기관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서기관은 누구입니까?......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은 율법을 필사하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율법을 해석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도 했습니다. 당시 백성들로부터 랍비(선생님)라는 칭호로 불리면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신학교 교수나 성경학자라고 볼 수 있어요 마태복음 23:6-7......당시 서기관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이처럼 서기관은 어디를 가든지 백성들의 어른으로 또 선생으로서 존경과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랍비로 존경을 받고 선생으로 제자들을 가르쳐야 할 그가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것일까?
전후 문맥을 통해서 서기관이 질문한 내용에 대해 추측 할 수 있는 것은 청년예수가 말씀을 전하는 모습이나 능력 행하는 것을 보면 자신들보다 더 권위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예수가 권위 있게 말씀을 전하는 방법이나 지혜를 배울 수만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겠다 지금까지 백성들로부터 받은 존경은 몇 곱절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서기관은 다름 이런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 서기관의 요청을 듣고 제자 되는 방법을 그 즉시 가르쳐주셨습니까?
2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이 말씀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푼다면 이런 말입니다....... ‘ 내 제자가 된다 한들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 하나도 없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에워싸일 만큼 인기를 얻는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누추한 집 한 채 없는데 내 제자가 된다고 뭔가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더 가난해지고 더 초라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도 내 제자로 나를 따르겠는가!! ~~예수님 서기관에게 이렇게 권면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제자의 삶이 좋은 것만 가득하다면 세상 누군들 예수 믿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경험 하지만 예수 믿는다고 당장 병이 낫습니까? 그렇수도 있지요!!~~ 예수 믿는다고 잘 안 되던 사업이 즉시 잘 풀립니까?~~~ 잘 풀릴 수도 있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믿었다고 우리 예수님은 그런 것들을 다 약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더 고난을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여러분!! 그래도 예수님의 제자로 모든 것 포기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말씀을 듣고 난 후 서기관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그래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을까요? 성경 말씀에는 서기관의 행동은 없지만 예수님통해 말씀을 이해하고는 내 판단은 지금 서기관으로 있는 것이 낮지 그리고 떠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서기관의 대화가 마친후 갑자기 한 제자가 예수님께 집안의 가정사를 가지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21절....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여기 한 제자는 서기관과는 다르게 가정에 매우 급한 일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여기 제자는 처음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인지 스스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사람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애로사항이 매우 딱한 사정임에는 분명합니다.
21절 말씀을 보았을 때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옵소서 라고 예수님께 부탁한 내용으로만 볼 때면 제자의 아버지가 꼭! 죽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노인으로 곧 돌아가실 분으로 주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의 요청에도 모든 형편을 다 아셨을까요? 너무나 단호하게 말씀 하십니다.
22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세상 사람들이 읽으면 기독교를 뭐라고 할까요?..... 불효막심한 종교라고 비난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도 망설여지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어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기에 어렵습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웃사랑과의 계명을 말할 때 먼저 나온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말씀합니다. 심지어는 사도바울은 딤전5:8.....누구든지 자기친족 특히 가기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니라 라는 말씀하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식의 도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죽음 앞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은 세상적인 원리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써는 주님의 가르침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메튜핸리 주석가는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비록 양친에게 대한 효심은 우리종교의 위대하고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그에 앞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예수님은 눅14:26-27.....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463장 “신자”되기 원 합니다 를 “제자”되기 원 합니다 로 부르고 싶습니다.
♪♪제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제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오오오......진심으로 오오오......제자 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믿고 살지만 우리의 생각 속에는 여전히 하나님보다 나를 먼저 앞세우며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사정이 급하다는 것 때문에주님 조금 만 뒷전에 좀 물러가 계십시오 그렇게 살 때가 많았습니다. 솔직히 내삶이 먼저요 내 사정이 먼저 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늘 기도하며 구호처럼 외치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시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승권아! 너는 “나를 따르라” 무엇보다도 나를 위한 것이 먼저요 교회가 먼저다 말씀하실 것입니다. 미국 문화를 잘 모르지만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자 먼저’라는 뜻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여자를 먼저 생각해 준다는 것입니다. 남을 배려해 주는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갓 퍼스트’(God first) 먼저 하나님 먼저 예수님 먼저 외치며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