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한번쯤 가보고 싶은 일본 북알프스.
1년전부터 계획해온 일이라 왠지모르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북알프스를 위해서 태풍속에서도 등산을했던 금수산과 관악산 팔봉과 삼성산을 이미 예행연습과 그동안 꾸준히 산행을 해온 때문이 아닐까?
일본의 지붕이라는 북알프스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는데 우리가 가는 가미고지.야리다케(3180m),오쿠호다케(3190m)지역은 북알프스중 남부이고,끝부분인 북부알프스는 다테야마,스루기봉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일본의 알프스라는 말은 1881년 영국의 <가우란드>라는 사람이 히다산맥을 보고 알프스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중 북알프스는 일본에서 3000m가 넘는산이 26곳중에 절반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유럽알프스를 연상시키는 북알프스는 이노우에의 빙벽등 다양한 문학의 무대로 등장했으며
오쿠호다케,야리다케는 매년 일본 산악 잡지에서 선정하는 일본산 1,2위를 차지 하는 인기 있는 산 이다. 이중에 오쿠호다케산은 3190m로 일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출발(2004.7.14)인천 국제 공항-→고마쯔공항-→가미고지-→고나시다이라산장
13:10분 JL994편으로 고마쯔항발.
기내점심을 준다하여 점심을 안 먹고 탑승하였으나 음료수와 일본 맥주로 배를 채우고 고마쯔에 도착하여 입국심사 후 대기하고 있던 버스로 가미고지를 향하다.
가미고지로 달리는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깔끔하게 정리된 일본의 농천 풍경과 도로변에 볼 수 있었던 나무들, 일본 특유의 주택, 그 흔한 아파트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가미고지를 지나가는데 얼마나 많은 동굴터널이 있는지, 땅속에서 군데군데 온천수의 증류가 피어오르는 협곡을 지나 얼마를 달려가니 가미고지국립공원에 도착한다. 이미 시간이 6시가 넘어 공원은 한적하기만 하다. 우리 일행이 1박할 산장은 깊은 숲 속에 드문드문 지어진 목조 건물,잘 정리된 침구, 각 5명씩 방을 배정 받아 짐을 풀고 식당으로 향하다. 점심도 굶은 터라 다들 시장하여 단숨에 식당으로 가다. 저녁식단은 돈까스. 된장국, 하지만 우리 입맛엔 안 맞는다. 대체로 싱겁다. 여지없이 준비해간 컵라면과 고추장으로 저녁을 먹다.
마침 그곳에 초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어서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첫날은 그곳에서 조용하게 잤다
★둘째 날(7.15일) 가미고지출발→야리사와산장 중식→야리다케산장
아침 일찍 아마 5시쯤 국립공원 내 산책을 나갔다.
날씨는 넘 좋다. 밤새 모닥불 피웠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공기가 넘 상쾌하다. 계곡에 흐르는 물은 어찌나 맑은지... 오늘 산행 할 야리다케산이 멀리 보인다. 오늘 우리일행이 종주해야 할 산이다. 디카 에 흔적을 남기고...
아침을 먹고 준비해준 도시락을 각자 배낭에 넣고 산행을 시작하다.
잘 보존된 등산로를 따라 원시림에 가깝도록 울창한 숲과 계곡을 끼고 걷다보니 아름드리 소나무, 전나무와 주목나무, 우거진 수림대를 지나면서싱그러운 아침공기와 함께 물푸레나무,자작나무,산수국,좀깨잎나무,풀고사리, 붓꽃, 금강초롱꽃,등등 이름 모르는 꽃들과 나무들.
요꼬산장 에서 잠시 간식을 먹은 뒤 야리사와 산장을 향해 다시 산행을 재촉하다.
4시간 30여분정도 계곡을 끼고 가니 야리사와산장에 도착 그곳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다. 휴식도 잠시 다시 야리다케를 향해 발길을 재촉하다. 갑자기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잔뜩...
일단 우비는 준비하고...가면서 비가오다 안 오다를 반복한다. 30분가면서 10분 휴식을 반복하면서 초코렛은 질리게 먹었다. 너덜지대를 갈지자 등반로를 가다보니 산 계곡에 눈들이 쌓여 있다. 7월에 하얀 눈을 보다니 꿈만 같다.
비는 계속내리고 세차게 부는 바람은 나를 날려버릴 듯...일단 바람이 불면 무조건 땅에 낮게 앉아야한다. 이제 고도가 점점 높아지니 약 2500m즘에서 이행중 몇며명은 약간의 고소증을 호소한다. 손끝이 저리고 약간의 두통이 있다고. 비와 바람 안개와 싸우며 몇시간을 오르니 야리다케 산장에 도착하다. 약 10시간이 소요 된 셈이다. 야리다케 산장 또한 너무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저녁식사후 잠을 청할려는데 일행중 1명이 소주팩을 빌려달라고 한다 왠일인가 싶어 소주팩을 들고 나가보니 일본인과 처음 만났다는 스스럼없이 산악인 특유의 어울림으로, 양주로서 오늘의 산행과 이국인과의 어설픈 대화로서 서로를 격려해줄려고 한다. 어설픈 일본어로 주절거리다가 보니 산행중 산꼭대기에서 생애중 제일 많이 양주로서 포식한것 같다. 그것도 산에서의 비싼 양주(그냥 양주라도 산에는 더 비싸고 엔화)로....
밤중에 비바람소리에 일어나보니 예삿일이 아니다 밖에서는 엄청 비가 퍼붓고 있다. 비바람이 귀신소리를 내고 있다. 내일이 걱정이다.
★셋째 날(7.16)야리다케→요꼬산장→오쿠호다케산장
5시에 눈을 뜨니 양주때문인지 고소증 때문인지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다. 밖에서는 비와 바람과 안개로 한치 앞이 안 보인다. 모두들 일정을 바꿔 서둘러 하산들을 한다. 원래는 이곳에서 바위 능선을 타고 오쿠호다케로 가야 하는데 악천후로 우리일행도 하산을 준비해야한다 하니 어제 그 고생하고 왔는데 올라온 보람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 아침밥을 먹고 떡갈나무로 말아준 도시락을 챙기고 하산을 시작하다.
일행 중 누군가 이렇게 말을 했다 “패잔병 같다고” 그렇다 포기란 없을 것이다. 그 순간 요꼬산장에서 다시 정상을 등정 하자라는 일행 리더의 말을 듣고 4시간정도 오던길로 하산 후 다시 다른 루트로 올라가야 한다.
우울한 하산길을 내려오면서 올라가면서 미쳐 보지 못했던 야생화들이나 싫컨 볼 수가 있어 다행이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한쪽에 눈과 빙하가 또 한쪽엔 야생화가 이게 자연의 조화인가?
드디어 요꼬산장까지 오는 동안도 내내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제 일행중 반반이다 갈 사람과 아예포기 하고 하산할 사람들로 나눠지려는데 모두 힘을 합쳐 가자! 힘내자! 일행 리더의 격려에 다시 용기를 내어서 산행을 시작하다. 모두들 지쳐 있었으나 누구하나 흩트러짐없이...
이쪽 능선은 어제보다 더 험하다. 비와 바람과 싸우며 날카로운 바위 능선을 오르고 또 오르고 절벽능선은 엉금엉금 네발로 기어오른다. 오후호다까다케산장을 10시간만에 도착하다. 이미 온 몸은 어느하나 안젖은곳이 없다.
산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감격의 눈물과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온 몸이 짜릿하다.
산장에서는 난로불과 수건이 준비되어 있으면서 우리일행을 반겨 주었다.
오늘 우리일행은 3000m고지 두 곳을 해낸 것이다. 우선 젖은옷을 갈아입고 산장에 준비된 건조실에서 옷을 말리는동안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처럼 밥이 맛있고 고마울 수 가없다.
이 높은 산장에도 없는게 없다. TV.오디오감상실 산악도서실,공중전화,실내세면장과 화장실특히 화장실에 변기에 까지 따뜻하게 배려해줌에 감사하며, 종업원들의 친절과 미소는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정도 부대시설이니 한화로 하룻밤이 10만원정도이다.
다른 산행인들과 오쿠호다께 비디오를 감상 했다 비디오로 보니 과연 웅장한 산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쿨해진다. 산장 매점에서 맥주로 하루의 산행을 격려하며 가벼운 피로를 풀고 잠자리에 들다.
★넷쨋 날(7.17)오쿠호다까다케 정상→다께사와산장→하동교→가미고지
5시에 기상하여 아침 식사 후 6시에 산행을 시작하다. 밖은 안개비가 오고 있다.
오늘은 이제 그렇게 오르려고 했던 정상을 가는 날이다. 이젠 안개와 바람 가랑비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간단한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하다. 약 190M 구간이다.
오쿠호다까다케산장 에서 바로 시작되는 가파른 암벽을 사다리와 쇠사슬구간을 지나 거센비바람과 싸우며 미끄러져서 줄이라도 놓치면 수십 미터 낭떨러지기로 떨어지고 말것 같은 두려움에 손, 발 그리고 마음까지도 떨린다. 앞사람만 보고 엉금엉금 기다시피하며 1시간만에 정상에 오른다. 오쿠오다까다께 정상에는 몇 명이 올라설 수 있는 작은 공간과 작은 신사가 있었다. 기념 촬영도 했다. 안개비와 바람 등 악천우로 잠시도 머무르지 못하고 힘겨운 하산을 시작하다. 돌멩이에 흰 페인트칠을 한 O 마크표시를 보면서 전진 전진, 언뜻언뜻 보이는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가파른 연봉과 너덜지대를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몇 번. 계속되는 장대비로 배낭과 등산화는 이미 빗물로 흥건했다.
낙석의 위험이 있는 급경사 하산길 을 내려가서 거대한 돌무덤 너덜지대를 구비 돌아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돌아서 고도계가 2600M를 가리키는곳을 내려오니 오리나무와 자작나무등 상록수림대가 형성된 지역에 들어 왔다.
이곳부터는 장대비는 그쳤지만 거대한 3000M산봉들은 아직도 구름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삼나무와 잎갈나무 우거진 상록수림대를 지나 울창한 숲 속에 있는 하동교에 이르니 토요일로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날은 아무도 없어 적적하던곳 이었는데...
하산을 시작한지 6시간 30분만에 이곳 가미고지에 도착하다.
무사히 북알프스 등정을 마친 것 에 대해 서로 격려하며 잠시 악수를 나누면서 기쁨을 나누며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산장에서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동경으로 출발하다.
★다섯째 날(7.18)동경→나리타공항→서울
마지막날 밤.
이곳은 동경이다. 뭔가 볼거리가 있나하여 동경 시내를 네바퀴나 돌며 헤메고 다녔지만 시간이 이미 새벽 한시를 넘은 시간이라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사람 사는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많은 아쉬움을 남긴채 잠자리에 들다.
다음날 아침 9시 나리타공항을 향해 버스에 오르다.12;30분발 JL955에 몸을 실었다.
☆마무리
산행도중 일본인과 마주칠 때마다 수없이 반복된 인사인 곤니찌와,스미마셍. 그리고 산행에서 마주친 아줌마의 욘사마 나라 사람이라는 말, 산아줌마에게도 한류가 느껴지니.
철저한 쓰레기 수거와 분리. 잘 정비된 등산로. 잘 보존된 자연 환경
고산산장의 풍력을 이용한 자가발전 시설.
고산산장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지 못한 아쉬움.
고산지대에 피어 있는 야생화 군락지.
한여름에 볼 수 있었던 눈과 얼음.
날씨에 대한 야속함.
떠난다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항상 여행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고, 버리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고, 버린후엔 추억을 가져오는 것이다.
정상은 늘 새로운 출발점이며
길이 끝나는 그곳에 또 길이 있다.
용기란 나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는 것이다.
-산악인 엄 홍길-
♡일본 북 알프스 등산기♡♥
월드튜어 관광 상품을 활용하여 국제 산악회에 편승 신중광 부부와 나, 처, 정한욱 5명이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4박 5일 동안의 등산 일정을 무사히 끝낸 것이 우리 일행으로서는 만족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외화를 사용하여 얻은 귀한 기회임을 의식하고 나름대로는 낭비가 되지 않도록 무언가를 배워와야지 하는 생각 일념으로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고 능동적으로 다녀왔다는 말을 하면서 약간의 느낌을 적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날 11시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여 전세 버스를 타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다행하게도 금방 비는 거쳤다. 중앙도로(나고야~동경)를 따라 송본(宋本) (현지명은 마츠모도) 까지 버스로 가고도 거기서 목적지 부근인 가미고지(上高地)까지는 무공해 버스로 바꾸어서 가도록 법으로 정할 만큼 자연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가는 도중에 계속 시골인 것 같기는 한데 일정한 모양의 민속2층집만 보이고, 아파트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미고지 정류장에서 숙소인 도쿠가와 엥 산장까지는 약 1 시간 30분 정도 걸려 20시 30분에 도착했다. 고지대인 산장은 서늘한 날씨가 느껴지고, 숙소는 한 방에 20명이 군부대처럼 투숙했고, 건물은 거의 전부 목조였다. 전붓대 설치는 상상도 할 수 없고, 태양열로 자가발전하고 있었고, 저녁식사는 풍부하게 잘 나왔다. 마츠모도(松本)를 지나 가미고지로 가는 길목에 낙차가 심한 계곡을 따라 좁다란 도로를 가노라니 특히 터널 속에서 우리가 탄 버스와 맞은편에서 오는 다른 대형버스 2 대가 비킬 땐 그의 서커스 수준의 묘기를 운전기사가 보여주었고 우리들은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조여야했다. 길가는 수십 미터의 낭떠러지인데, 도무지 국민 소득 3만 불 나라에서 왜 이런 도로 하나 넓히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길 옆을 보니 큰 낙차의 댐이 길게 계속되는데 간판을 보니 한자로
(東京電力 奈川渡ダム) 라고 씌어 있었는데 미쳐 무슨 뜻인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아마도 수력발전 및 용수로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청평댐 정도 인가 보다 짐작했는데 규모는 한참을 가도 또 나타나는 게 무척 커 보였다.
자고 나니 8월1 일이 되어 7시 30분 그 다음 숙소인 야리가다께 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하는 순간 거목이 우거진 삼림과 계곡의 맑은 물소리에 놀랐다. 또 하나 놀란 것은 고산의 하얀 물건이 눈이라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8월에 웬 눈이란 말인가? 반드시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계속 걸었다. 저 눈은 지금도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는데 과연 아직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것인가? 믿을 수가 없고 있다면 저 눈도 찰까? 무척 궁금했다. 저 물건이 눈이라 하는데 도무지 내 눈을 어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3017 기본앨범에 올렸음)
계속 개울을 따라 가다가 도시락을 먹고 쉬는데 일본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몇몇이 식사를 한 후 자기들이 먹은 맥주 캔을 흐르는 물로 씻더니, 발로 밟아서 튀어 나온 뽀족한 부분을 돌에 매끄럽게 갈아서 봉지에 넣어 가는 것을 보고 우리 대원 전부가 감격하는 눈치였다. 가는 도중 작은 산장(殺生小屋)을 발견 쉬었는데, 여기를 지나니 양쪽 좁다란 낭떠러지 능선이 계속되고, 전부 바위산이 계속되고, 드디어 그 다음 숙소인 야리가다께 산장에 도착했다. 여기는 해발 3천메터의 고지대라 특히 물이 귀해 손수건 축여 세수하고, 양치질조차도 눈치를 볼 지경이고, 산장 바로 앞에 있는 정상은 너무 절벽의 경사가 높아 고소증이 있어 처는 등정을 포기했다. 그 정상에는 신사가 모셔 있었고, 동전 통이 있는 대도 정상 표시부분에 동전이 많이 쌓여 있었다.
야리다께 산장에서 자고 2일 아침 7시에 호다가다께 산장을 향해 출발, 7시 50분에 中 岳(나가다끼)에 도착하자마자 계속 바위길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12시 30분에 중간 경유지 南岳(3032.7m)을 지나 산장(북적고소옥)이 하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기암 절벽과 험준한 바위산의 줄타기 계단 오르기 등 아찔아찔한 장소가 여러 번 나오므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산행을 포기해 주기 바라겠습니다. 여기서 같이 간 처는 신중광 사모님과 평지를 선택하여 다른 길로 돌아서 호다가다께 산장에 오게 되었는데, 길을 잃은 줄 알고 한참 가슴을 조려야했습니다. 오후 산행도 오늘은 계곡은 볼 수가 없고, 계속 바위만 밝고 다녀야했다. 호다가다게 산장에는 5시 경에 거의 전 대원이 도착했다. 이 산장에는 풍력을 이용한 동력도 태양열과 더불어 생산하고 있었다. 오늘은 처를 찾으려는 욕심으로 신중광 친구와 급하게 15시 30분경에 숙소에 도착했는데, 옆의 정상을 한 번 오르려다가 포기하고 이 길 저길 헤매다가 나중에 17시 10분경에 둘이 도착 전 대원이 모두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산장은 같은 방에 20명이 자는데 2층으로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서 어제보다 더 불편해서 약간 잠을 슬치기도 했다. 물 사정은 약간 좋아서 물통에 먹을 물도 담을 수는 있었다.
자고나니 3일 첫날 도착했던 가미고지 주차장을 향해 6시 출발 걸어서 내려갔다. 왔던 역순으로 가미고지에 버스로 간 후 동명고속(동경~오오사가)도로로 오오사가에 도착하여 미야코 호텔(A급 수준으로 편히 쉴 수 있었음)에 도착 여장을 풀고 모두들 피곤해서 잤다. 오는 도중 4 시간 이상을 도로를 달리면서도 좀처럼 교통체증은 느낄 수 없는 것을 보니 일본 사람들은 승용차 여행은 거의 안 하는 모양인 것처럼 보였다. 휴게소에는 생필품을 파는 슈퍼가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승용차는 운전석 옆 유리창에는 썬팅한 차가 안 보이고 뒷좌석은 거의 썬팅이 되어 있었다. 버스 기사는 우리가 트렁크에 짐을 실을 때, 전적으로 본인 이 직접 실어주는 친절함도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 느낀 점은 등산하는 도중 우거진 나무, 맑은 계곡물, 등산 길 보수에 자연재료(나무 송판, 돌등 )을 최대한 이용한 점, 계단이 필요할 때도 폭을 최소로 하여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였고, 길 표시는 ○ 및 × 및 →, ↔ 의 4 가지만으로 되어 있었고, 그것도 돌에 페인트를 사용하여 쓴 것이었고, 간혹 나무 표지판이었다. 쓰레기가 보인다든지, 광고휴지가 눈에 띄는 일, 돌에 글씨를 새긴다든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등산 길도 인위적으로 길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돌을 옮겨와서 걷도록 도와주거나 돌이 많은 곳은 원형 그대로 두고, 위에서 말한 대로 밟아도 좋은 돌에는 ○표, 밟으면 위험한 돌은 × 표를 해 둠으로서 길을 안내 하였고, 산 밑에 길도 보수가 필요한 곳은 송판을 대어서 기둥을 받쳐서 보수를 하지 시멘트를 사용한 곳을 보지 못했다. 산에는 무덤이 없고, 절이 없고, 산장을 제외한 그 어떤 건물도 보이지 않고 나무, 돌, 새, 짐승, 개울 물, 흙 등 자연 그대로 있어야 할 주인에게 인간이 최대한 피해를 안 주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죽은 나무는 쓰러진 그대로 두고, 부러진 나무도 그 상태로 두고, 다니는 길에 방해되는 것만 톱으로 잘라 그 옆에 놓아 두었다. 산장도 목조로만 되어 있었다. 개울에 큰 나무가 떠내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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