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오늘, 정오 즈음에 다 읽었다. 책과 함께 딸려온 ‘머쉬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것도 눈 오는 바깥을 흘깃거리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던 거 같다. 가끔, 지나간 과거 속, 눈과 함께 했던 로맨스를 떠올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도 눈과 함께 시작된다. 스물살의 청년이 눈오는 날, 한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과거속으로 빠져든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순수했던 한 청년이 사회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면서 일으키는 심리와 사건이다. 서스펜스하지는 않다. 다만 작가는 반전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끝을 말해줄 수는 없다. 이해하시기를.
이런 단순한 줄거리로 소설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박민규의 소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위트가 가득한 가벼운 소설이라는 이미지다. 아마 그의 소설 『핑퐁』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거 같다,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약 한 달 전 어떤 행사에서 소설 낭독을 하게 됐다. 나를 적극 추천했던 평소에 좋아하던 S선생이 자신은 시를 쓰고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하지만 다들 너무 잘된 책이라고 평가하더라고,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고 하더라면서, 읽기를 적극 권했다.
읽고 난 소감 이렇다. S선생의 말이 정확했다고.
지금, 박민규는 무섭게 진화중인 것이다.
그럼 왜 가볍지 않은 소설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현재의 가치관,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네의 시각을 단숨에 무너뜨리기 때문이라고.
소설 배경이 되는 백화점은 눈이 호강을 하는 곳이다. 끊임없이 쇼핑을 유도하고 화려함을 쫓기 위해 포장을 하는 곳이다. 뭐든지 살 수 있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돈’이 없을 경우에는 제외하고.
돈으로 평가되는 시대. 한가지 더 보탠다면 외모도 빠지면 안 되겠다. 이런 모든 것은 겉모양을 번지르게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외형으로 상대방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여자는 더욱 더 시각에 노출되어 이제는 외모가 무기가 되곤 한다. 미녀들은 어디에 가든 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 속 화자는 못생긴 여자를 좋아한다. 그것도 지독히 못생긴 여자. 자신의 어머니가 못생겨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외모 이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자 했던 게 분명하다. 같이 근무하는 요한은 이도저도 포기한 사람이다. 아픈 만큼 쾌활한 인물이기도 한다. 『데미안』의 데미안처럼 신비스럽기도 하면서, 화자(싱클레어라고 칭해도 되겠다. 하지만 완벽하게 닮은 캐릭터는 아니다.)를 챙겨주기도 한다.
이야기와 독설이 담긴 문장을 작가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정성을 들인다. 유쾌한 가벼움이 아니라 그 주인공 각자의 삶의 아픔을 깊이 들여다보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사회를 비판하는 신랄함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까지 가동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회가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라가는 쥐떼들이라고. (이 책 제목과 일치하기도 한다.) 결국은 물에 빠져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각자 개성없이 그 행렬에 참여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저들과 달라. 다르든 같든, 결국은 강물에 빠져 죽는데도 말이다. 결코 저들과 똑같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게 인간이고 그게 인간들의 삶이라고.
고대의 노예들은 노동이 전부였다.
하지만 현재의 노예들은 쇼핑까지 해야한다. (310쪽)
쇼핑에 중독된 인간, 그러면서 열심히 스타와 같아지려는 현대의 노예들이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독설가인 요한은 인간의 영혼은 필리멘트와 같다고 말한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라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185쪽)
화자는 사랑을 하는 생은 '삶'이고 그렇지 않은 생은 ‘생활’이라고 덧붙인다.
그것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 될 것이다. 불나방처럼 불꽃만을 향해 쫓아가는(돈과 외모) 것이 아닌, 그 이면의 진실된 것을 사랑할 수 있는 힘. 그 힘이 있는 인간은 피리부는 사나이를 마냥 따라가지 않은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도 있겠다. 그런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나의 사색을 작가의 말과 일치시켜본다.
사랑하시기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은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418쪽)
거울을 한번 봐야겠다, 내면의 거울을.
저자 : 박민규 (朴玟奎)
1968년에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직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 일약 주목받는 작가가 된다. 박민규는 30편의 단편을 신춘문예에 지원했지만 예심을 통과했던 것은 「카스테라」뿐이었는데, 등단 후 예전에 신춘문예에 떨어진 작품들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고 감회를 밝혔다.
첫댓글 그래두난,외면에 거울보다 내면에거울이 조금 나은것같다 ,,,주위사람들이 들여다보구 말했음,,, 좋은글 고맙습니다^^*
뭐에요 저는 아직 들여다보지 않았으니깐, 판단하기 뭣 하지만, 댓글 다는 성의로 봐서는 외면보다는 내면이 더 나을 것 같은 유추.
음, 주변에서 많이 추천하는데 저도 일종의 박민규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전혀 생각도 안해본 책입니다..그런데, 맛깔스러운 서평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아후. ..욕심만 가득가득..벙개때 오실건가요? ^^;;
'벙개'는? 잘 모르겠어요. 가고는 싶은데 요즘 엉덩이만 커져서(ㅋㅋ) 아마 변덕을 부릴 거 같아요. 당일, 문자 날릴께요. 뭐, 티켓없으면 제 돈 내지요. 정모는 꼭 갈 예정이구요, 콜레라 시대의 사랑, 오래 전에 한번 읽었으니 정모 때 맞춰 재독해야죠. 며칠 후에 못 뵈면 정모 때는 꼭!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