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루대인 지석을 살펴 보면, 계루대인의 선조가 왕을 따라 압록강 상류지역 융나라와 지금의 혼강 상류 비류소국과 싸우고 행인국을 재벌한 사건이 나오는 데, 이 사건은 비류국과 행인국 등이 기록되어 있는 추모왕때 사건으로 보인다. 계루대인은 영락 5년(AD395) 백제 진무장군부대를 대파하여 8천급을 사로잡은 패수(浿水) 전투결과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어, <사략> 및 <삼국사기는 영락4년으로 기록>와 그 내용이 똑 같으므로 그가 광개토대왕때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계루대인의 선조가 왕을 따라 파저사(波猪汜, 지류汜 지금의 혼강) 상류 비류소국의 행인국(荇人國)을 다시 쳐 벌하고 돌아와 상호간에 왕래하게 하며 관나 패자 달가를 보내 조나를 물리쳤다고 하였다. 조나를 정벌한 게 AD72년<사략 모본왕 5년>이며 직전에 혼강 상류 비류소국의 행인국을 다시 쳐 돌아오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의 왕도는 위나암성이므로 추모왕 6년 1, 2차 정벌시 도망간 행인국 잔병들을 다시 징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에 보이는 당대의 고구려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계루대인 묘에 집어넣은 지석. 이것이 1차 사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