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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지구’를 찾는다는 우주공상과학영화 ‘인터스텔라’. 영화는 주인공 우주비행사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물리학자 아멜리아(앤 해서웨이)와 함께 인류가 이주할 새 터전(행성)을 찾기 위해 먼 우주로 떠나는 탐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 미래의 시점, 지구는 산소가 점점 줄어들면서 흙먼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바뀌고, 세계 식량 시스템은 파탄이 난다. 쿠퍼는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한 채 인류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시공간을 초월한 모험을 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새 행성을 찾아 미지의 우주로 나가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며 펼쳐지는 시간여행이다.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가장 큰 화두는 ‘시간’이다. ‘인터스텔라’는 별과 별 사이, 즉 성간(星間)이라는 뜻으로, 물리학자들이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굉장히 먼 거리를 의미한다. 킵 손은 우주의 웜홀(worm hole)을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 사람으로, 영화에서 그는 철저하게 물리학에 입증해 시공간의 개념을 그렸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지구를 떠난 우주선이 토성 부근에 도착하고 이곳에 있는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로 넘어간다. 웜홀은 시공간이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연결하는 ‘지름길’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벽에 난 일종의 ‘벌레 구멍’이다. 벌레가 사과의 정반대로 이동할 때 사과 표면보다 사과의 중심에 뚫린 구멍을 통하면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었다. 우주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지구의 남극에서 북극을 가려면 지표면을 따라 반원을 그리며 가야 한다. 하지만 남극에서 지구 중심을 통과해 북극을 지나는 길이 있다면 직선이 되고, 따라서 반원보다 짧아진다. 우주에서도 공간을 구부려서 그 두 지점을 잇는 구멍이 있다면 지름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웜홀이다. 웜홀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영화에서 지구를 출발한 탐사대가 웜홀을 지나 처음 도착한 곳은 거대 블랙홀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이다. 주인공들이 온통 물로 가득한 행성에서 불과 몇 시간 정도 거대한 파도와의 싸움을 하고 우주선으로 돌아와 보니 지구의 시간은 이미 20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중력의 차이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행성에서의 1시간은 지구의 7년과 같다.
1916년에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gravity)은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킨다. 강한 중력장 속에서는 시간이 늦게 흐른다. 영화 속에서 지구에 남겨진 딸이 늙어서 할머니가 되는 동안, 지구에 있었으면 124세인 아빠는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는 블랙홀의 어마어마한 중력이 시간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중력의 사전적 의미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 다시 말해 질량을 가진 물체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지구의 인력이다. 근대물리학에서 최초의 중력이론은 뉴턴의 만유인력법칙(1687년)이다. 뉴턴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 잡아당기는데, 그 힘의 방향은 두 질점(질량 중심)을 연결하는 직선 방향이다. 이 중력 때문에 인간은 공중에 떠다니지 않고 지표면에서 생활할 수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발견한 행성들은 다행히 중력이 지구와 비슷해서 사람이 걸어 다니는 데 문제가 없다.
뉴턴 이후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질량과 에너지로 인해 4차원의 시공간이 휘어져 나타나는 게 중력’이라고 설명하면서, 중력 작용을 지구에서 우주의 시공간으로까지 확장시켰다. 강한 중력장 부근을 지나는 빛은 렌즈 속을 지나는 것처럼 휘어진다. 중력에 의해 휘어진 공간을 통과하는 것은 질량을 가진 물체든 질량이 없는 빛이든 모두 휘어진다.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할 수 있다는 이 이론이 나오자, 그렇다면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이 가능하지 않겠는지 생각하게 됐다. 일반적인 시공간이 아닌, 왜 시공간을 구부려야만 시간여행이 가능할까.
가장 쉬운 예를 들자. 시공간을 평평한 2차원이라고 생각한다. 시공간을 시간 방향으로 둥글게 원기둥 모양으로 말아본다. 시간이 1차원이고, 공간도 1차원이다. 원기둥 모양으로 만 시공간에서, 원기둥의 축방향이 공간 축이고 원기둥을 감싸는 방향이 시간 축이다. 이 시공간에서 원통을 둘러싸는 한 원을 그린다. 이 선을 따라가며 시간 방향으로 진행해 가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다. 따라서 물체의 미래가 자신의 과거가 되며 과거로의 여행이 이뤄진다. 그 굽은 시공간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웜홀이다. 웜홀은 멀리 떨어진 두 공간에 중력을 가해 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
중력은 ‘인터스텔라’ 영화 내내 주인공 쿠퍼가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궁극적 목표점이기도 하다. 인류는 중력에 대해 알게 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중력이 무엇이고 왜 중력이 생기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으로 우주선도 쏘아올리고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었는데도 말이다. 실은 뉴턴과 아인슈타인도 중력작용에 대해 수식으로만 표현했을 뿐 그 실체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계의 힘은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다. 마찰력, 구심력, 복원력과 같은 나머지 힘들은 모두 이 네 가지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자기력이나 강력, 약력은 각 힘을 전달해 주는 매개입자가 발견돼 그 정체가 밝혀졌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의 매개입자는 우리가 흔히 빛의 알갱이로 알고 있는 광자(光子)다. 강력은 글루온, 약력은 W와 Z 보존이 매개입자다. 하지만 중력의 매개입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은 중력의 매개자를 ‘중력자(graviton)’라고 이름도 붙여놓았다. 그러니까 중력자는 아직까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개념적 정의일 뿐이다.
과학자들은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을 함께 설명하는 방정식을 찾고 있다. 하지만 중력만 통합시키지 못했다. 물리학계는 물리학의 양대 산맥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중력이론)을 합치려고 지난 100여년간 힘써 왔지만, 중력과 전자기력 두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통일시키지 못했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에서 여러 번 중력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력은 전자기력에 비하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하다. 지구 전체가 작은 클립을 아래로 당기고 있어도 아주 작은 자석 하나만 있으면 그 클립을 들어올릴 수 있다. 중력이 작은 자석(전자기력)보다도 약한 탓이다.
미국 뉴욕대학의 지아 드발리 교수에 따르면 중력이 다른 힘에 비해 약한 이유는 중력의 대부분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의 리사 랜들 교수는 중력이 3차원이 아닌 높은 차원에서 오는 힘이기에 약하다고 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5차원의 개념이 나온다. 5차원에서 보낸 힘이 우리가 사는 현 세계에서 중력의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되어 중력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물리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중력이 새어나가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중력자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물리학자들은 굳이 그것을 찾으려고 할까.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공간에서의 중력파를 예측했다.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 모양의 수면파가 생겨나 사방으로 퍼지듯 시공간에서도 질량이 있는 물체가 움직이면 시공간이 일렁거려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중력파는 중력복사에너지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그 에너지를 전달하는 입자가 곧 중력자이다. 전자기파에 의해 전파되는 전자기복사에너지의 입자가 광자인 것과 같다. 만일 이 중력파를 찾아낸다면 노벨상 수상은 100%다. 따라서 중력파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 전 세계 과학계의 염원이다.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중력파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충돌할 때 생기는 강한 중력파를 검출하면 지금까지 몰랐던 천체의 구조나 질량, 거리를 알 수 있다. 137억년 전 빅뱅 때 생긴 중력파를 통해 우주팽창 속도를 알아내는 일도 가능하다.
더구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지구에 있는 모든 물체는 지구의 중심으로 끌리는 중력장의 영향을 받는다. 만일 우리가 중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공간에서 마음대로 떠다닐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중력방정식을 풀어 중력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 ‘반중력’이라 불리는 이 꿈 같은 기술은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를 찾지 않고서는, 그 매개를 찾아서 성격을 완전히 분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는 블랙홀에서 중력을 역이용한다. 지구로 돌아갈 연료도, 마지막 남은 행성으로 갈 연료도 남아 있지 않지만 SF 영화답게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을 역이용하여 간다는 어마어마한 설정을 하고 있다. 중력을 이용해 정보를 보내기까지 한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강한 중력을 이겨내고 원하는 경로로 움직인다는 것은 우주선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역발상을 한 것이다.
블랙홀은 아니지만, 실제로 행성의 중력을 역이용한 ‘중력 가속도 비행’은 가능하다. 2004년 발사 후 10년8개월 만인 지난 11월 13일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혜성에 착륙한 유럽우주국의 탐사선 로제타는 혜성에 착륙하기까지 65억㎞를 비행하는 동안 지구와 화성의 중력을 모두 4차례 역이용하면서 에너지를 절약했다.
지금 세계는 영화에서처럼 중력을 마음대로 조절할 날을 위해 중력파 검출기를 우주에 올려 주파수가 낮은 중력파를 찾으려 하고 있다. 중력파가 하루빨리 발견돼 중력의 비밀이 벗겨지길 기대한다
첫댓글 내용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