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에서 갠트리크레인 기사라는 직업은 여느 항만직종 가운데 가장 선망의
대상이다. 이런 갠트리크레인기사는 그래서 ‘부두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 만큼 항만에서 최고의 기능인력으로 대우하고 바라본다.
부두를
바라보면 즐비하게 늘어선 노랗고 빨간 대형 크레인들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갠트리크레인 기사들이 근무하는 곳이 바로 이들 크레인 위다.
갠트리크레인 기사가 근무하는 크레인 조종실은 어느 항만을 가든지 부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 조종실은 크레인의 인양능력이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지상에서 30∼50m에 위치하고 있다.
오는 12일 개장하는 남항 선광컨테이너부두(SITC) 크레인 기사들을 현장에서
지휘하는 선종화(34)팀장은 이들 크레인 기사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인물이다.
선 팀장은 현재 국내에서 공인하는 기록은 없지만
지난 2003년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갔던 동부부산컨테이너터미널에서 크레인기사로 근무할 당시 시간당 63개의 컨테이너를 실어내린 대기록
보유자이다. 갠트리크레인 1기의 일반적인 작업량이 시간당 40개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선씨의 기록은 1분에 1개 이상을 실어내린 대기록이다.
선씨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선씨의 기록은 국내 갠트리크레인 작업사상 최고의 기록이라고 입을 모은다.
동부부산컨테이너터미널은 당시
7기의 갠트리크레인 가운데 6기가 무너져 남은 1기로 작업을 해야했던 상황. 선 팀장은 “단 1개의 크레인으로 나머지 6기가 못하는 일을
어느정도 때워야 하겠다는 마음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며 “입에서 단물이 나올 정도로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내 최고의 크레인
기사라는 평을 받던 선씨가 지난 6월1일 선광에 입사하면서 인천항에 발을 디뎠다.
직책은 당시는 현장의 중견 반장이었지만 인천항에서 선씨는
전체 크레인기사를 관리하는 감독자이고 훈련교관이다. 물론 오는 12일 터미널이 개장하고 나면 과거와 같이 현장에서 작업을 하게 되지만 과거와
같이 크레인 조종에만 전념할 수는 없다. 인천항이 컨테이너 중심항을 지향하는 만큼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도 선씨가 인천에서 해야할 중요임무 가운데
하나다.
선광컨테이너터미널이 개장을 앞둔 신설되는 부두인 만큼 그의 일과는 오전 7시 출근해 퇴근시간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출근과 동시에 선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갠트리크레인기사와 컨테이너야적장 트랜스퍼크레인기사, 야드트렉터기사 들에 대한 하루의
작업일정을 짜고 근무시간내내 이들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장비를 다루는 만큼 한 순간의 방심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이어 자신의 주종목인 갠트리크레인 기사훈련을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벌인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다음 가장 늦게
회사문을 나서는 사람이 바로 선 팀장이다.
선광컨테이너부두의 갠트리크레인은 모두 2기. 선박의 폭으로 컨테이너 14열까지 작업이 가능하다.
부산항의 22열에는 못미치지만 그래도 조종실 높이는 지상에서 31m에 이른다.
조종실에 가기 위해 크레인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
31m높이에 올라가면 일반인들은 현기증을 느낀다. 그러나 크레인전문가인 선씨는 이 곳에서 폭 50㎝남짓한 좁은 길을 따라 조종실에 오른다. 역시
조종실은 바람을 받아 흔들거리고 지상에 있는 컨테이너를 들고 내리고 하다보면 흔들림은 어느새 멀미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선 팀장은
“크레인 기사는 고도의 집중력과 신중한 작업이 필요한 만큼 작업하기전 자신의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한다”고 한다. “10여년 넘은 베테랑
크레인 기사인 자신도 컨디션을 잘못조절하면 작업하다 멀미를 느끼기도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선 팀장은 그러나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이라고 크레인 기사생활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선 팀장은 크레인기사생활을 하다보면 ‘성취감’과 ‘스릴’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이런 성격탓에 고교 때 전자를 전공했으면서도 전혀 다른 컨테이너크레인 기사의 길을 가게된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국내 국지의 반도체회사에
근무하다가 부산항 크레인기사가 되기 위해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6개월여간 정부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에서 크레인기사교육을
받았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우암컨테이너터미널 개장요원으로 입사하면서 크레인 기사생활을 시작했다.
“작업을 하다보면 위험요소도 많고
놀래기도 하지만 남들이 하기 어려운 작업을 무사히 끝마치거나 자신만의 기록을 달성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은 크레인기사만이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선 팀장은 말했다.
선 팀장은 “크레인 기사가 잘못하면 육상 작업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만큼 절대 방심은 금물”이라고
주의를 말한다.
이런 선 팀장이 안정된 부산항에서의 생활을 접고 신설부두인 선광컨테이너터미널로 자리를 옮긴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왔던 그의 경력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지난 1996년 부산 우암컨테이너터미널 개장과 함께 크레인기사에 입문해 지난 2001년
동부부산컨테이너터미널 개장 때도 자리를 옮겨 컨테이너터미널 개장작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선광컨테이너부두가 개장하면 그의 크레인 기사 경력에
또 다시 세번째 신설부두 개장요원이 된다.
“새롭게 개장하는 컨테이너터미널에 가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같아 선광에 입사했다”며
“비록 지금은 할일이 많아 여유가 없지만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백범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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