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서를 통한 朝鮮이란 호칭과 명칭이 史記의 晉本記에서 시작하니 그 출원이나 연원은 시대를
많이 거슬러 올라간다.사기 진본기에 씌여진 朝鮮은 '朝光鮮麗' 의 축약으로 쓰여진다.이는 동국
여지승람의 '朝日鮮明' 의 축약과 같은 말이다.따라서 조선은 일정한 국명이나 한정된 지역 명칭이
아니라 '아침해가 대지위로 올라 올때의 日出地 광경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형용사' 격의 조광선려
인 것이다.따라서 역사에서 말하는 조선의 진의는 '아침 햇빛이 아름다운 땅,아침 햇살이 곱고도
밝게 비추는 땅' 이란 의미를 지닐 뿐이지 영토나 강역의 지정은 없다.내가 있는 위치에서 해가뜨
는 곳이면 어디든 朝鮮(조광선려,조일선명)된다.당시 표현된 글자가 漢字냐 아니냐 일뿐이다.조선
표현의 시작이 있었던 晉나라의 활동 무대는 역사의 河東이자 지금의 산서성의 남부 '永濟.晉城.
運城.解池' 등지와 하남의 북부 대평원 지역을 거점으로 했던 나라였다.지금도 진나라의 晉城은
여전히 있고 이곳의 또다른 역사 용어가 요동(하동)의 일부였던 것이지요.
2, 중국사의 하동은 조선사의 요동과 같은 장소에서 어울린다.지금의 요녕성의 요동은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요동일 뿐이다.즉 반도와 동북지역으로 조선사를 몰아넣기 위한 강자들의 곡필과 해석에
의한 것이다.즉 극동을 일본,한국,중국으로 나누면서 옮겨진 역사지명으로 20세기 初까지 지금의
요동반도는 金州반도였고 지금의 요녕성은 봉천성 이였다.하동이자 요동에는 동이의 백이와 숙제의
무덤이 있고 기자조선이 있었던 곳이 아니던가! 이보다 더 오랜 옛날의 기록인 商書大典을 보면 이러
한 '조일선명' 과 '조광선려' 의 조선 지역에 '列水.溫水.汕水란 3수' 가 흐른다고 했다.현 중국의 춘추
좌전 진세가 양공 24년 기록도 사기의 기록과 같다.
이런 아침 풍경을 형용한 東쪽(方) 지방에 대한 표현이 세월이 흘러 명사적 한자로 표기된 것이 바로
'東國.東方.東邦'이다.國이란 실질 표현도 어떤 조직을 갖춘 권력부나 집단을 말하는 것이 아닌 불특정
권역 또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봉건시대의 封地로 말할때의 國은 태수의 郡보다 하위 개념인 小守의
縣에 해당한다.지금의 열도에 아사히(朝日)란 표현도,니폰이란 표현도 모두 일출지와 동쪽이란 뜻이며,
일본이란 국명도 '해뜨는 곳의 중심지(동쪽의 중심)' 이란 막연한 뜻이다.현중국의 하북성과 산동성,
천진시과 요녕성 사이에 있는 발해만의 '渤海' 도 東海의 고전적 표기다.이렇게 보면 하와이도 일본에
서 볼때 해뜨는 중심이 되는 것이다.아주 유동적이다.
3, 우리는 흔히 조선의 역사를 말하면서 인용하는 원전이자 텍스트의 책들에는 모두 東國이란 표현이
들어간다.'동국여지승람,동국사략,동국통감,해동역사' 등등으로 쓰여지며 명사적으로 쓰이는 책명이나
지역명에는 대체로 朝鮮이란 표현은 들어가지 않거나 없다.그런데 가끔 미디어에 나와 이것은 조선시대
유품과 기록이라고 막연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말하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다만 일제때 만들어진 '조선금석총람등 몇종류의 서적' 들에는 조선이란 표현이 있다.우리가 흔히 말하
는 '조선왕조실록' 란 것에도 조선이란 국명은 없고,실질 내용에도 조선시대나 조선국이란 표현은 없다.
있다면 '聖朝와 聖上' 이란 대황제국(대왕국) 표현들은 많이 나온다.반도는 조공을 바쳐야 인정받는 말단
제후의 동반도라 하였고,한말에는 이홍장이란 淸의 북양군벌의 휘하에 놓여 있었다.이른바 민씨 세력들
이자 권문세도가들도 가문의 권세를 유지하고자 이홍장에 뇌물 바치기에 골몰 했었다.대한민국의 大韓은
'大王(대칸)' 이란 막연한 뜻이 들어가 있으니,동국이나 조선의미 보다 왕국이란 뜻인 '마한,변한,진한' 이
란 표기의 韓(칸)에서 변용한 명칭인 것이다.그런데 고구려 태대막리지 천남생의 아들인 獻誠은 지금의
하남성 개봉 일대에서 '조선왕'을 지냈고,백제의 흑치상지는 본국인 하남의 낙양으로 돌라와 '馬韓道'
안무대사를 지내다 사저에서 죽어 낙양의 망산에 장사 지냈다고 했다.낙양의 망산에서 발견된 묘지명이
이를 자세히 밝혔다.
4, 북한에서 말하는 근세조선 왕조기록을 이조실록(이씨조정 기록)이란 표현이 설득력 있는 것이지,정체
를 알수없는 아주 막연한 표현인 조선왕조실록이란 어울리지 않는다.오래전 글에서 '東方禮儀之國' 이란
표현속의 그 '東方(東邦)' 이 반도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뿐더러 '禮儀之國'이란 표현도 '儒敎之國(祭祀
之國)'이란 이면의 진실을 말했다.근거는 삼국시대부터 이씨 조선의 말기에 이르기 까지의 기록들을 보면
선조들 제사는 물론 이려니와 '종묘,사직단,명산대천과 3山,5岳,4鎭,4海,4瀆' 을 비롯해 명산 등지에 크고
작은 제사들을 수없이 지냈다.하루와 일년을 제사로 시작해 제사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물며
정부내에 제사를 지내는 전담부서까지 있었다.
이게바로 예의지국(제사지국)의 실체이고 이는 유교가 처음 발생한 중원대륙에 기원을 두고있다.반도는
단지 동방의 아주 일부일 뿐이고 유교도 대륙에서 전수받았던 하위의 위치에 있었다.20세기초 일제가 점령
하기 이전엔 겨우 동반도로 불렸던 곳이다.국명과 지명등의 탄생은 현세기 얘기다.현재의 동북3성 지역도
만주가 아닌 동북지역으로 불렸고 장작림도 동북원수로 통했다.이런 동국이자 일출지,해뜨는 동쪽지역에
대한 서양의 구분은 사뭇 다른면이 있다.세계의 역사가 서양사 기준으로 흘러가고 편집되다 보니 서양인들
은 해뜨는 동쪽을 영어로 아시아(Asia)로 부르고 또 쓴다.
5, 서양에서 말하는 아시아란 표현의 연원도 변화와 굴곡은 있었지만,결국은 해뜨는 동쪽이자 일출지의
영어 표기일 뿐이다.출원지를 찾아가면 우선 앗시리아(페니키아,기원전 700~609년) 제국에서 부터 나온다.
지금의 레바논과 시리아 일대를 본거지로 삼고있던 페니키아는 지금의 터키를 비롯한 소아시아 지역에서
풍부한 광물자원을 구해 강성해 진후,영역을 구분짓기 위해서 그리스의 에게해 동쪽지역을 '아수(Acu=
Assu=해뜨는 동방)'라 불렀고,그 서쪽을 '에레브(ereb=해가지는 땅,어둠의 땅)'으로 명명했다.당시 에레브
지역의 중심은 지금의 스페인과 포루투칼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 였다.
이때 Assu(아수)라는 지명의 최초 적용지 대부분은 지금의 터키를 지칭했는데,기원전 133년 터키의 서쪽
이자 '에페소' 북쪽에 위치했던 '페르가몬' 과 터키 일대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이 Assu(Acu=아수)에 라틴어
지명 접미사인 '~ia(a)'를 붙여 아시아로 불렀다.지금도 터키에 아나톨리아 산맥이 있지만 터키 일대지방을
그리스어로 '아나톨리아' 로 불렀다.역시 태양이 뜨는 동쪽지방이란 의미며 아시아는 곧 아나톨리아가 되는
것이다.이후 아시아 대륙의 발견이 확대되자 아시아의 범위는 현재의 극동(중국,한국,일본)까지 확대 되었다.
동쪽의 Assu(아수)이자 아시아에 대한 '독일어 표현은 ost(오스트),불어는 est(에스트),스페인어는 este(에스
테),영어로는 east(이스트)'가 된다.
6, 16세기 이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던 유럽인들은 아시아를 또 다시 세분하기 시작했는데,일찌기 정했던
지금의 '보스포로스 해협이나 다르다넬스 해협' 기준의 아시아와 유럽의 구분을 무시했다.이들은 아시아를
近東(near east),인도차이나를 동남아시아(2차대전시 미군이 정한 구분),인도 기준의 南아시아,중동의 서아시
아로 분류했다가,현재의 아시아 대륙전부를 점령하자 이제는 '근동.중동.극동(원동=far) 아시아'로 세분화 했고
현세기에 이르러서는 중앙아시아도 분리 해냈다.해가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대제국의 영국
은 자국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3가지로 구분해 동국(동쪽)을 중복시키기도 했다.
1800년대 중반 발칸반도의 '불가리아,유고슬라비아' 같은 유럽의 남동부에서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까지를 近東으로 확대했고,터키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벗어났다.또한 현재의 레바논,시리아,요르단,이스라엘
등지를 '레반트(levant)' 로 명명했는데,레반트 역시 佛語로 '태양이 떠오르다' 의 뜻이다.이어 이란과 아프카니
스탄.인도를 '중동' 으로,현재의 '중국.한국.일본' 을 '극동(원동)'으로 구분했다.이어 지금의 아프리카 북부의
모로코나 튀니지도 기독교 적대의 이슬람권으로 뭉뚱그려 중동이라고 하자 아프리카 북부도 중동의 아시아
(동국)가 되는 형국이 되었다.즉 근동과 중동의 기준도 강대국의 제멋대로 였다.
7, 1차세계 대전후 '유고슬라비아와 불가리아' 는 근동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中近東과 中東은 확장되어 터키.
이집트.수단.예멘.아프카니스탄 등을 포함 시켰고,이후 이란과 아프리카 서부의 리비아.모로코.튀니지등 이슬람
국가들로 뭉뚱거려 중동을 확대시켰다.독일이 제국을 누렸을 때의 독일곁의 오스트리아 역시 동쪽에 있는 나라
란 뜻이였고,영국이 득세 했을때 지금의 덴마크 동쪽이자 발트해 동쪽나라 북유럽의 에스토니아 역시 일출지인
東國이란 표현 국명이다.덴마크의 동쪽에 있는 발트해도 역시 독일어로 '오스트제(Ostsee)' 로써 동쪽 바다인
東海의 뜻과 같다.사우디 아라비아 반도의 남서쪽 예멘국 아덴만의 아덴이란 지명도 기독교 바이불에 등장하는
에덴의 한곳으로 그뜻은 역시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지' 란 뜻이다.
에덴동산의 최 접근지는 지금의 메소포타미아 중상류의 기름진 옥토지대를 의미 한다고 한다.이곳이 그유명한
초생달 지역의 중앙이다.또 1930년대 지금의 극동인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이
스스로 '원동(극동)에서 온 조선인이 아닌 고려인' 이라고 말하는 것의 진의는 극동에서 온 중국인이라는 뜻이다.
중국(中原之國)도 권력의 이동에 따라 수십번 만들어지고 옮겨졌다.지금의 안휘성 황산시에 있는 黃山이란 명칭
도 현 중국에서 지명을 포함해 30곳(山名만 27곳)이 넘는다는 것을 알면 역사지명 연구에 많은 참고가 된다.또한
아시아 전체를 조선사와 결부 시키려면 동국사로 접근하면 이해가 빠르다.'근동,중동,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등
지에서 한자나 한글로 쓰여진 조선의 역사와 문화의 증거들이 많이 나오면 좁혀진 견해를 만들수 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초의 오리엔트라는 지역이 지금의 중동지역이었음을 파악하고, 지리강역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중앙아시아가 명명되고, 중앙아시아의 우측이 동아시아이자 동국이 되어야 지리적 타당성이 부여받게 됩니다. 흔히 극동아시아라는 단어에 대해 마치 현 반도와 열도쪽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구한말 서구인에게 극동아시아란 대륙의 동쪽에서 바이칼호이북까지를 말하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가 인지한다면 극동이라는 단어와 지리적 개념이 바로 거대한 현 중국대륙의 우측부분을 말하고 있음을 정확히 인지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한말 조선을 방문했던 수많은 서양인들이 대륙의 거대한 조선을 극동( Far- East)이라고 표현한 사실을 우리는 올바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최초의 오리엔트는 지금의 이스탄불 까지였습니다.1차대전 중에 독일이 바그다드 까지 연결합니다.오리엔트가 곧 중동은 아닙니다.1차대전 전의 중동이란 지역은 오스만제국의 영토로 중동이란 말이 생겨날수가 없었지요.오스만 제국이 쫄망한뒤 유럽의 제국들이 오스만제국을 나눠 먹으면서 생겨난 명칭이지요.주범은 영국과 미국,프랑스 였습니다.극동이란 말도 보스포로스 해협을 기준으로 먼 아시아(동쪽)란 뜻이지요.인도의 타고르가 지금의 상하이를 방문하고서 번성한 이곳을 보고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는데 이를 조선의 등불(불빛)로 말하는 아전인수도 있었습니다.바이칼호 이북은 중앙시베리아로 구분되는 타이가 지대로 극동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적습니다.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경우는 있습니다.문제는 아시아를 극동.중동.근동,동남아시아.남아시아.서아시아 구분하고 편성하는 선도를 누가 했느냐 겠지요.
@상선거사 터키 아나톨리아의 라틴어 번역어가 오리엔트 맞습니다. 당시 터키와 이스라엘 지역은 육로로 연결되고 특히 유대교,기독교의 전파와 아울러 이 지역도 오리엔트의 개념에 포함되어 이후 강역의 변화와 더불어 페르시아지역까지 오리엔트의 지리적 개념으로 확대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중동이라는 근대적 개념이 동아시아의 좌측이 되니 넓은 개념으로 파악했습니다. 바이칼호 부근이 중앙시베리아로 구분된 것은 20세기의 일입니다. 현 예니세이강을 한계점으로 그 남쪽은 러시아의 힘이 미치지 못했던 지역이니 명확한 시대구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타고르가 1924년 방문했던 상해는 당연히 현 대륙 사천성과 귀주성의 양자강에 면한 상해였음을 또한 구분해야 겠습니다. 극동이란 말에 대해서는 구한말 조선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의 기록과 지도그림을 참고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지금의 대륙 조선의 거대했던 강역을 극동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송계 글쎄 문제는 오리엔트든,증앙시베리아든 중동이든 극동이든 그 기준을 누가 정했느냐지요? 조선이란 말과 한말이란 말은 같이 희석되지 않습니다.조선이란 역사적 용어나 실질의 사용도 반도인이 만들거나 정한게 아니지요.역사는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서양 사람들의 아전인수식 여행 기록과 지도를 절대 가치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역사의 조선은 17세기 효종때(1654,1658) 나선 정벌이라고 해서 2번이나 러시아를 원정했다고 씁니다.과연 반도에 있었던 이씨 조정이 로마노프 왕조의 알렉세이의 러시아를 원정 했을까요?이런 조선의 이씨 권력은 과연 어떤세력 이었을까요?아나톨리아의 표현이 해뜨는 동쪽을 말하는 것이고,오리엔트 역시 그러하니 그 오리엔트는 위치,길이,넓이가 고정성은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