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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2일(주일) 데살로니가전서 3:1~13 주 안에서 굳게 서라 새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나 주님의 기쁨 되길 원하네”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될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설교 제목 처럼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니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4장 1절에는 비슷한 맥락으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서 이처럼 굳게 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들이 믿음 위에 굳건히 서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에 굳건히 서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여기서 ‘굳건하게 선다’는 것은 ‘튼튼하게 서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태풍이 불 때도 나무가 튼튼하게 서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과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갖은 핍박을 하더라도 믿음으로 굳건히 서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목회자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환난 중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하고 믿음에 굳게 서도록 권면하고자 제자 디모데를 보냅니다. 그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디모데의 말을 듣고 바울은 크게 기뻐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주께서 강림하실 때 그들을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으려면,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1~7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에 실라와 함께 세운 교회입니다. 당시에는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믿음 안에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악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바울과 실라를 쫓아냈습니다. 이러한 핍박으로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갑작스럽게 떠나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베뢰아를 거쳐 아덴까지 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동안 ‘장차받을 환난’(4절)을 겪고 있을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걱정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참다 못해 그곳에 디모데를 보냈습니다((2절). 그리고 디모데를 보내 믿음에 굳게 서도록 권면합니다. 이 환난을 바울이 이미 그들에게 알려 준 것이었습니다. 6절에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소식을 바울에게 전했고, 이로써 바울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모든 궁핍과 환난 속에서 어떻게 믿음과 사랑으로 살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성가 가사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11.9(목) 다니엘 기도회에서 간증한 라오스 이재순선교사님의 간증을 보면 10남매를 낳고 키우면서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사셨다고 합니다. 요즘 통계로 한 아이를 양육하는 데 3억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10명을 낳고 키우려고 계약할 때 30억을 미리 준비하고 낳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루 하루 아이들을 키우면서 양육하는 비용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바라보면서 체험하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으면서 20년까지 앞당겨서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하시고 인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리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면 됩니다. 이에 관련된 유명한 성경말씀이지요.
마태복음 6:25-34 KRV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우리가 하루 하루 믿음으로 살려면, 오늘이 마지막날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19세기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는 28세 때에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어서 사형 선고를 받고 영하 50℃의 추운 날에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아있는 시간이 앞으로 5분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그 5분을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였습니다. 2분은 아는 사람들에게 최후의 인사를 하고, 2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1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아름다운 자연을 돌아보는데 쓰자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2분이 지났습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려고 하니까 문득 “3분 후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그리고 28년이란 세월을 한 순간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만약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순간순간을 아주 값지게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사형 집행하는 군인들의 총알 장진 하는 소리가 ‘철컥’ 하고 들려왔습니다.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이때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눈을 떠보니 멀리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말을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병사는 황제의 특사 령을 가지고 달려온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후 4년 반 동안 시베리아에서 감옥 생활을 하였지만 그는 60세에 죽을 때까지 언제나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한순간 한순간을 의미 있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까라마죠프의 형제들’ 과 ‘백치’(白痴) ‘죄와 벌’ 등 유명한 명작을 남겼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면서 세월을 아끼면서 불흐의 명작을 남겼던 것이지요.
믿음의 사람 다니엘 선지자는 모함을 당하여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여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의 친구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7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세 중의 말세라고 합니다. 요일 2장 16절에 보니 이 세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죄악이 관영하고 모든 사람의 심령이 타락해서 육신의 정욕을 쫓고 안목의 정욕과 자랑만 생각하고” 또한 디모데후서 3장 5절에요“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시대가 될 것임으로 우리가 하루 하루 믿음으로 살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나 자신도 염려의 구렁텅이에, 더 나아가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지 모름을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매일 매일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매일 매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근신합니다. 근신한다는 말은 조심한다는 말입니다. 고전10:12에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항상하는 말이 바로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조심해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들도 조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빚쟁이가 되고 맙니다. 특히 우리 주위에 이단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사탄, 뱀의 유혹에 하와가 넘어지고 그 남편 아담도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해서 나와 광야생활을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원망과 불평과 불신앙을 사주하는 사탄에게 속아 넘어져 광야에서 출애굽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고 다 죽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성도들이 주 안에 굳게 서 있지 못하게 하려고 더욱 악랄하고 간교하고 끈질기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요즘 다니엘기도회가 매일 계속되고 있는데, 참으로 다양한 강사들을 통해서 믿음의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것은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자는 다짐을 합니다. 여러분 이런 은혜받을 만한 기회에 여러분 최소한 단톡방에 올리는 찬양과 말씀 정도는 반드시 들으시면서 도전받으시길 바랍니다. 벧전 5:8 말씀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적용) 나는 매일 매일의 삶을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요즘 믿음으로 살고 있는 않은 나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2.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으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8~10절).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다보면 우리의 믿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초신자였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도 넘어지지 않고 말씀을 지키며 주 안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믿음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힘겹게 복음을 전하던 바울에게는 ‘이제는 살리라’(8절)는 활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에는 그들의 믿음이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자라야 함을 알기에 그들을 직접 보고 양육하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10절)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믿음도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에서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나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제 남을 가르칠 수준까지는 와 있어야 할텐데 아직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자라야 할 때 자라지 못하면 안타까워하십니다. 제 때 믿음이 잘 자라야 기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제 때 제대로 믿음이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이 자란다고 할 때 도대체 어떻게 자라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단계 본래 믿음이 없던 사람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무엇인가 자기를 이끄는 힘이 있음을 느낍니다. 둘째, 하나님과 상의하는 단계 하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씩 둘씩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도 믿어집니다. 셋째, 하나님을 앙망하는 단계 하나님과 교제하던 사람이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앙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바라보던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 바라보던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넷째, 하나님을 자랑하는 단계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인가 만을 생각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다 버리고 주를 따랐던 것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주를 위해 포기할 수 있게 됩니다. 전적으로 주를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주께 헌신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렇게 네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해 갑니다.
우리의 믿음은 생명체와도 같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활발하게 역사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합니다. 이 믿음은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왔는데도 믿음이 자라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믿음이 그렇게 자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교만과 편견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대하는 바리새인들에게서 이러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만 하나님을 올바르게 잘 섬기고 있다고 자부했고, 또 자기들만이 백성들의 지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권세 있는 천국복음을 선포하셨을 때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만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나는 소망 없는 죄인일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는 사실을 늘 겸손하게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가난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겸손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믿음이 잘 자랍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믿음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와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어리석고 무모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편견을 깨드려야 합니다. 편견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여야 합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전통과 신념을 성경으로 점검하고 고쳐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보며 그 말씀 위에 나의 모든 것을 세워나갈 때 우리의 믿음은 잘 자라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신통치 않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믿음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말씀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고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신앙과 인격이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우리를 영적으로 자라게 하는 양식이 됩니다. 동시에 성경은 우리가 사탄과 대적해 싸울 때 무기가 됩니다. 성경을 활용하십시오. 날마다 성경을 읽고 암송하십시오. 성경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주 안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무기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나는 내 믿음의 성장을 간절히 간구하고 있습니까? 나의 믿음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3.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으려면, 성도와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11~13절).
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리잡게 되고, 성도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전반부를 기도로 마무리 합니다. 바울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핵심은 ‘사랑과 굳건함과 거룩함’입니다. 바울은 우선 성도들이 피차 사랑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 즉 데 살로니가에서 그들을 힘들게 하는 믿지 않는 이웃까지 사랑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12절).
본문 벧전4장 8절 말씀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완전케 하는 것이 기도라면 수평적으로 완전케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뜨거운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시편 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의 사랑은 허물을 가리워 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상대방의 허물을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가리워 줄줄 아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9:20절에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수치를 보였을 때 함은 아비의 수치를 공개하였지만 셈과 야벳은 아비의 수치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그 결과, 함은 저주를 받아 대대로 저주받은 민족이 되었고 셈과 야벳 족속은 창대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외적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허물을 가려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 안에 굳게 서 있게 됩니다. 사랑은 일방적으로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상대방을 뜨겁게 사랑할 때 그 사랑은 메아리가 되고, 부메랑이 되어서, 내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내가 먼저 사랑을 받은 다음에 보내려고 합니다.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성경은 ‘주는 자가 복이 있다’(행 20:33~35)고 가르칩니다. 살려는 사람보다 죽는 자가 살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얻고자 하는 자보다 잃은 자가 얻게 될 것 이고, 지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진실로 신앙생활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도 주고, 위로도 주고, 웃음도 주고, 땀도 주고, 눈물도 피도 주는데 참 된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불신앙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할 수 없었던 시어머니를 믿음으로 사랑하여 주님께로 인도한 한 며느리 강진아님의 큐티인 간증입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강진아님의 큐티인 간증입니다.
적용) 나는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교회 지체들과 내 주위의 지인들 중 더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결론)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기 힘든 세상에서 저와 여러분들이 주안에서 굳게 서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도는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그렇게 믿음으로 살 때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하시며, 또한 믿음이 성장함으로 성도와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 성도는 주님 강림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되어 주님께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다함께 읽고 말씀을 마치기를 원합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