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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07편)
20210525
3조가 말하되 "둥글기가 허공 같아서 모자람도 남음도 없거늘 버리고 취하는 까닭에 그렇지 못하니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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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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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수행을 20~30년 이상 하신 분들 앞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저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시는 선배님들에게 늘 송구하고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요.
늘 감사드리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오늘 이야기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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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새로운 분들이 늘어서 기초에 해당하는 알아차리기 방법과 버리기 방법을 설명해 드리고 있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버리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
버리기는 새벽에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 이유는 새벽시간대가 가장 육식이 안정되어 있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모든 수행(意識)은 의식으로 하는 거랍니다.
부처님이 하셨던 알아차림 수행법도 의식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고
중국에서 전해온 간화선도 의식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고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도 의식의 힘으로 버리는 거랍니다.]
식심견성자성불도(識心見性自成佛道)에서 말하는 식(識)도 "의식(意識)을 통해 알아차린다"라는 뜻이랍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의식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질문을 해보면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점인데요.
의식을 어디에 두고 하는지 모르고 수행을 하면 어떤 수행이든지 효과가 없답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상담을 청해오시는 분들에게는 제일 먼저 시험해 보는 것이 의식 상태를 점검해보는 건데요.
그 이유는 현재 나의 의식이 어디에 두고 있느냐가 수행의 척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나의 [의식]이 [화두]나 [알아차림]에 가 있어야 수행을 잘하는 것이 되고,
깨닫고 나서는 나의 의식이 나의 마음은 물론 세상 밖으로도 비추어보고 보살들이 할 일들을 찾아서 수행을 이어나가는 것이 수행을 잘하는 거랍니다.
의식이 나에게만 가 있는 것을 소승법(小乘法)이라 한다면
의식이 나에게는 물론 세상 밖으로도 두루 가 있는 것을 대승법(大乘法)이라 할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소승법(小乘法)이란 작은 마음을 쓰는 것이라면..
대승법(大乘法)은 세상을 향해서 부처님처럼 큰마음을 쓰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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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직접 점검해 보는 방법이 있는데요.
먼저 내가 지금
[몸]과
[의식]과
[생각]과
[마음]을
잘 분리해서 알고 있는지?부터 점검을 해 보십시오.
아직은 마음은 잘 모른다 해도 최소한 의식만큼은 구분을 할 수 있어야 한답니다.
예를 들어..
[생각]과 [의식]을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생각]과 [마음]을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의식]과 [마음]을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또는
[생각]과 [의식]과 [마음]을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등입니다.
내용이 조금 길어질 것 같아 먼저 본문 내용을 간단히 끝내고 나머지 내용은 보충 설명 란에서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ㅡ♡
오늘 본문 내용은 아주 멋지게 본성 자리를 표현한 내용인데요.
참으로 맞는 말이랍니다.
둥근 원은 시작과 끝이 없지요.
그래서 중국과 한국 불교에서는 둥근 원을 불성 자리로 표현하곤 합니다.
[ ○ ]
(원 불교도 있지요.^^)
이 둥근 원을 허공과 같다 하여 우주로 표현하기도 하고,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중국 언어는 상형문자이고 뜻글자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가능하지요.
둥근 원은 아무리 돌고 돌아도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우주도 이와 같지요.
우리 본래 마음도 이와 같답니다.
원 안에는 동서남북이 따로 없지요.
우주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본래 마음도 이와 같답니다.
원 안에는 그저 텅 비어 있습니다.
우주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본래 마음도 이와 같답니다.
,
여러분들도 직접 깨닫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본래 마음은 둥근 원처럼 텅 비어있답니다.
우리의 마음(불성/성령/본성)은 그야말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오늘 본문 내용처럼 그야말로 모자람도 남음도 없이 끝없이 전 우주에 가득 차 있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내용처럼 사람들은..
버리고 취하는 까닭에 그렇지를 못합니다.
부처님과 유마거사와 원효스님은 이것(○)을 하나라고 표현하셨고..
대행스님은 이것(○)을 하나의 큰 기둥으로 비유를 하셨고..
옛 중국 선지식인들은 이것을 하나의 둥근 원(○)으로 비유를 했답니다.
어느 비유로 하든 이것은 그야말로 모자람도 남음도 없지요.
그런데 문제는
일반 사람들은 버리고 취하는 까닭에 항상 모자라고 부족해하지요.
둥근 원 같이..
허공과 같이..
있는 그대로 모자람도 남음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면 좋은데 우리는 늘 버리고 취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반복되는 윤회(輪廻)를 못 벗어나고 있지요.
그러니 늘 부족하게 생각하고 모자라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러한 형태를 보시고 애석하게 보시고 어리석게 보셨던 것이랍니다.
마음을 비우고 (○)으로 만들면 아주 큰 손해라도 보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평생 쓰고도 남을 만한 음식과 재물이 넘쳐흐르고 있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둥글게 살지를 못하고 나누지를 못하고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각을 세워서 살기 때문에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이지요.
크게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각을 세우면 국민들이 힘들어합니다.
작게는 한 가정에서 어느 누가 각을 세우면 가정의 평화는 깨지고 말지요.
둥글게 살아가면 모자람도 남음도 없을 것인데 중생들 마음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실제로 깨닫고 보면..
본래 마음은 오늘 본문 내용처럼 둥글기가 허공 같아서 모자람도 남음도 없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가 극락이요 천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버리고 취하는 마음들 때문에 늘 날이 서있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하지요.
돈이든 재물이든 버릴 만큼 쌓아두고도 또 취하고 또 취하려는 마음이 중생들의 마음이지요.
힘들게 깨닫고 나서도 다시 버리고 취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일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할까요..
오늘 내용은 이런 내용들이 담겨 있었답니다.^^
우리들의 수행 이야기가 더 중요함으로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ㅡ♡
(버리기 보충설명)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제가 했던 방법인데요.
마음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방법이랍니다.
(※)
[마음에서 버리고자 하는 대상을 바라보면서 의식을 이용해 밖으로 밀어내는 방법입니다.]
(의식의 힘으로 밖으로 밀어내는 방법을 말함. 부처님이 흑씨범지에게 버리라는 내용이 여기에 속함)
그러나 이 방법은 의식에 힘이 있어야 가능하답니다.
힘을 다른 말로 기(氣)라고도 표현하지요.
우리 인체의 모든 기관은 기(氣)로 형성되어 있지요.
의식(意識)에도 기(氣)가 있답니다
의식(意識)에도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기(氣)를 쓰고 무엇을 한다" 할 때에 그 기(氣)와 같이 수행 또한 모든 의식을 동원해 기(氣)를 쓰고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의식에 힘이 없으면 수행을 이어나가기가 힘이들답니다.
그래서 수행 중간에 많이들 포기를 하지요.
그래서 오늘은 의식에 힘을 기르는 [기공술]에 대해서도 잠깐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마음에서 버리고자 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위파사나와 간화선 등을 말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과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알아차림이 확립될 때까지 알아차리고 바라보면서 대상을 말려버리는 방법입니다. 소멸시키는 방법이랍니다.
간화선을 예로 들면 화두를 의식이 깨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화두를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간화선(看話禪)이라 하는 거랍니다.
한문 문법은 (주어+동사+목적어)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영어와 어순이 같지요.
우리말은 단어의 순서가 바뀌어도 상관이 없지만 중국 말은 순서가 바뀌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답니다.
여기서 목적어는 선(禪)이랍니다.
화두를 바라보는 동사는 간화(看話)이고요.
쉽게 말해 선(禪)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고..
이 선(禪)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간화(看話)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화두를 집중해서 보고 참구(參究) 하여 불성 자리로 들어간다는 뜻이랍니다.
여기서 참구(參究)의 사전적 의미는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이랍니다.
집중해서 화두를 알아차리고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깨어서 바라보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면 누구나 불성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위파사나나 간화선은 화두 하나에 의식을 집중 함으로 해서 의단이 됐을 때 화두 자체도 없애 버리는 방법이랍니다.
여기서 없애버린다는 화두 타파를 의미한답니다.
깨어서 버리는 것이지요.
(단점은 시간이 오래걸릴수 있다는 것인데요. 의식에 힘이 없으신 분들은 다른 방법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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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는 수행자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대념처경]에서는 이것을 [멸성제]라고 표현했답니다.
마음에 것들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법화경]과 [반야심경]을 통해서 이 방법을 배웠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유마경]에도 이런 내용들이 가득하더라고요..
다른 경전들도 내용은 비슷한 편이였답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제 경우는 경전에 나와 있는 그대로 따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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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버리기는 의식의 힘을 이용해 마음의 것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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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면 먼저 의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의식에 힘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담을 받아보면 대부분 [몸]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의식]과 [생각]과 [마음]은 모르거나 혼돈하는 분들이 아주 많았답니다.
특히 수행은 [의식]을 구분하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별로 효과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의식을 [활]이라고 비유하고 [화두]를 과녁이라 했을 때..
과녁만 알고 활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거나 활을 쏠 힘이 없거나 한다면 아무리 과녁의 위치를 잘 안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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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눈을 감고 걸어보면 금방 느낄 수 있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눈을 감고 걸으면 모든 육식의 기능들은 총 비상이 걸리게 되지요.
이때에 [몸]의 기능과 [생각]의 기능과 [마음]의 기능과 [의식]의 기능을 잘 분간해 보십시오.
잘 관찰해 보시면 [생각]의 기능은 완전히 멈추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몸]의 기능은 초긴장 상태가 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마음]의 기능은 밖의 상황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두근두근하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여기서 [생각]이라는 기능이 비상시에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아시게 될 것인데요.
우리는 그동안 이렇게 보잘것없는 [생각]의 기능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아셔야 한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극한 상황이 발생하면 머리로 그 일을 헤쳐나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아니랍니다.
극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은 두뇌가 아니라 의식이 비추어보고 본성에서 헤쳐나갈수 있는 지혜가 일어난답니다.
어떤 비상사태가 닥치게 되면 몸은 얼어붙고 두뇌는 멈추고 [의식]과 [마음]만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작동을 한답니다.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초능력이라고 하는 것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고요.
아무튼 의식이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히시는 분들은 넓은 운동장 같은 곳에서 눈을 감고 걸어보십시오..
이때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의식과 마음일 겁니다..
이렇게 [의식]과 [마음]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이루어 지게 되면 생각과 몸의 기능은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되어 있답니다.
이것을 응용한 것이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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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에는 의식에 힘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의식에 힘을 기르는 방법에는 기공술(氣功術)이라는 수련 방법이 있답니다.
요즘은 수행을 하면서 단(丹)이나 요가 등을 병행하고 있지만
아주 먼 옛날의 수행들은 수행과 함께 기공술을 같이 익혔답니다.
그리고 당시의 수행자들은 기공술을 통해 의식의 힘을 키웠답니다.
기공술(氣功術)이란 말 그대로 기(氣/힘)를 기르는 방법인데요.
[손오공]에 많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지요.
참고로 수행과 기공술에 관한 가장 오래된 역사자료는 단군시대의 [홍산문화]라고 할수 있는데요.
역사는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어도 무덤은 왜곡할 수 없지요.
수행에 관한 자료가 지금도 옛 고조선 땅에서는 지속적으로 그 당시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는 실정인데요.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이 토굴에 들어가서 마늘과 쑥만 먹고 곰은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못 견디고 뛰쳐나온 이야기도 수행에 관계되는 이야기랍니다.
호랑이는 성질이 급하고 강해서 못 견디고 뛰쳐나오고 곰은 진득하게 수행을 하고 사람이 됐다는 의미인데요.
지금 시대에도 해당되는 내용이지요..
수행은 성질이 급하고 사나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어렵답니다.
여하튼 기공술은 아주 오래전부터 수행과 함께 성장해오다가 어느 시점에서 문화가 바뀌게 되었는데요.
기공술을 같이 익혔던 관계로 당시에는 도인들이 아주 많았답니다.
이 홍산문화는 그대로 중국 문화로 들어가 미개했던 중국 문화를 개화시켜주기도 했는데요.
홍산문화는 그대로 중국 문화로 흡수되면서 제자백가 시대에 큰 꽃을 피우기도 했답니다.
이런 역사자료들은 고구려가 망하면서 불에 태워지는 바람에 우리에게는 남아있지 않지만 같은 역사를 살았던 중국에는 아직 그 시대의 역사자료들이 북경대학교 자료실에 그대로 남아있는데요.
단 한 번도 공개가 된 적은 없답니다.
<참고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제목: 홍산문화 여신상의 모습에 담겨져 있는 의미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efc823&logNo=221713415165&proxyReferer=https:%2F%2Fm.search.daum.net%2Fsearch%3Fw%3Dtot%26q%3D%25ED%2599%258D%25EC%2582%25B0%25EB%25AC%25B8%25ED%2599%2594%2520%25EC%2597%25AC%25EC%258B%25A0%25EC%2583%2581%26nil_profile%3Dsuggest%26f%3Dandroidapp%26DN%3DADDA%26nil_app%3Ddaumapp%26rq%3D%25ED%2599%258D%25EC%2582%25B0%25EB%25AC%25B8%25ED%2599%2594%26sugo%3D8%26enc_all%3Dutf8%26DA%3DBS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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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도 종류가 아주 다양하답니다.
대충 보면 [무술 기공] [호흡 기공] [의식 기공] [체조 기공] [의술 기공] 등의 건강을 위한 기공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호흡기공]이 오늘날 알고 있는 단(丹)으로 발전을 한 경우랍니다..
우리가 익히면 좋은 기공술은 [의식 기공술]인데요.
수행을 위해서는 요가도 좋고 단학(丹學)도 좋지만 제 경우는 여러분들이 의식 기공술(氣功術)을 같이 익혔으면 한답니다.
그 이유는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의식의 힘은 꼭 필요한 것이고 깨닫고 나서 오후 공부를 할 때에도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의식에 힘이 없으면 그만큼 수행은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의식기공술]은 오로지 의식(意識) 하나만을 이용해서 하는 방법인데요.
옛 분들이 주로 했던 방법은 횃불 등을 앞에 놓고 앞에 있는 횃불을 바라보면서 눈의 의식으로 그 횃불을 불어서 끄려는 방법이 있는데요.
등잔불이 나온 후로는 등잔불을 앞에 놓고 그 등잔불을 보면서 의식의 힘으로 끄려는 훈련을 했답니다.
(※ 진짜로 촛불이 꺼지는 것은 아니고요^^, 의식의 힘을 느끼고 그 의식의 힘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랍니다.)
야외에서는 나무나 바위 등을 의식의 힘으로 옮기거나 부러트려 보려고 기(氣)를 쓰는 방법도 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서 의식의 힘으로 내 앞으로 끌어오려고 기(氣)를 쓰는 기공술도 있고
하늘을 보면서 의식을 우주 끝까지 보내보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해보시면 의식에 힘(氣)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그 힘으로 마음을 비우고 버려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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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포인트는 의식에 힘을 느끼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 의식의 힘으로 마음에 들고 있는 것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를 믿고 한번 따라 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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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잘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의식에 힘을 키워보십시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제가 보기에는 다들 열심히 하시는데 결과가 없는 것은..
의식에 힘이 없어 보였기 때문인데요.
의식과 마음에 힘이 없다 보니까 꾸준히 하기도 힘들고 금방 포기를 하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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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에 힘을 기르는 방법에 핵심만 다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무거나 눈앞에 있으면 무엇이든 손오공처럼 기(氣)를 쓰고 움직여 보려고 노력해 보셔요.
제 경우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의식의 힘으로 제 앞으로 끌어오는 연습도 해보고,
달리는 자동차를 정지시켜보기도 하고,
강아지가 앞에 지나가면 의식의 힘으로 그 강아지를 두세 개로 만들어보기도 하는데요.
물론 진짜로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의식에 힘을 키우는 데에는 아주 효과가 좋답니다.
ㅡ♡
나머지 내용은 기왕 써놓은 내용이라 그냥 같이 올려 보겠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재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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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는 정말 수행이 재미있고 잘 되는 편인데요.
그 이유는 남들보다 의식이 조금 더 발달된 경우라 그런 건데요.
그 대신 머리도 나쁜 편이고 다른 일에는 저도 개으른 편이랍니다.^^
그 대신 수행 하나만큼은 뒤늦게 부처님에게 배워서 줄기차게 하고 있지요.
아주 먼 옛날의 수행자들은 밥만 먹으면 수행과 함께 [기공술]을 익혔답니다.
그 당시의 수행자들은 대부분 왕가나 귀족들 자식들이 많이 배웠고 또는 부유한 집안 아이들이 많이 배웠답니다.
아무튼..
모든 수행은 의식에 힘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만큼 수행에 힘들 수밖에 없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의식에 힘을 키우려고 [의식 기공술]을 같이 수련했답니다.
깨닫기 전에도 의식을 화두를 향해 두는 것이고..
깨닫고 나서도 의식을 사람의 마음이나.. 세상이나.. 우주 등을 향해 비추어 보면서 부처님처럼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이랍니다.
의식으로 사물을 비추어 보는 것이지요.
수행 정도에 따라 의식을 사물에 비추어보고 알아차리는 것도 차이가 있는데요..
아무튼
깨닫기 전에는 의식을 현재 이 순간에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고
깨닫고 나서는 부처님처럼 자신이 비치어보고 싶은 곳들을 비추어보면서 공부를 이어나가는 거랍니다.
다른 동물들이나 짐승들도 의식은 있지만 그 의식을 내 의지대로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것인데요.
그러나 사람은 의식을 자기가 비추어보고 싶은 곳을 비추어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본인만 마음먹고 열심히 한다면 누구나 가능하답니다.
나의 의식을 화두를 향해 깨어서 고정시킬 수도 있고..
나의 의식을 현재 이 순간에 깨어서 고정시킬 수도 있고..
나의 의식을 나에게 비추어 볼 수도 있고..
나의 의식을 상대에게 비추어 볼 수도 있고..
나의 의식을 과거에 비추어 볼 수도 있고..
나의 의식을 세상에 비추어 볼 수도 있지요.
그래서 먼저 의식이 뭔지를 확실히 이해하시고 수행을 하셔야 헛수고를 안 한답니다.
상담을 받아보면 의외로 [의식]과 [생각]과 [마음]이 같은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 이유는 그동안 이런 것에는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살아왔기 때문이랍니다.
왜냐하면 [의식]과 [생각]과 [마음]은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안 써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거든요.
그러나 수행은 다르답니다.
왜냐하면 수행은 눈에 보이는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으로 내면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관찰한다"란 "비추어본다"와 같은 뜻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몸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지요.
그 이유는
[몸]은 매일 먹여줘야지, 입혀줘야지, 씻겨줘야지 하는 것들 때문에 잘 알고 계시는 거랍니다.
매일 보고 가꾸고 있는 것이 몸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의식]과 [생각]과 [마음]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살아가고 있지요.
그러나 수행을 정말 잘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먼저 나의 [생각]과 [의식]과 [마음]이 어떻게 서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지 잘 관찰해 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헷갈려 하지 않는답니다.
수행은 수행을 통해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랍니다.
폼만 잡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런 혼돈에서 빨리 탈출을 하셔야 한답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수행을 하실 수 있답니다.
특히 의식을 잘 분리해서 볼 줄 알아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의식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의 수행은 모두 헛수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분들이 아주 많음.)
그리고
[의식]과 [마음]은 잠을 잘 때도 쉬지 않고 24시간 작용을 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생각]과 [몸]은 적절히 쉬어주지 않으면 고장이 나지요.
한두 시간만 깊이 [생각]하고 [몸]을 움직여도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고 몸이 피곤해집니다.
왜냐하면 [몸]과 [생각]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들 내면에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보물(마음)이 있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은 모른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이쪽(마음)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지요..
그러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괴로워하고 있고, 불안해하고 있답니다.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 안타깝고 어리석어 보였던 것이랍니다.
안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서 쓰기만 하면 되는데 이것을 못 보고 있고 이것을 모르고 있고 이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안타깝고 어리석어 보였던 것이지요..
이 내용은 [법화경]에서 한 친구가 곤히 잠들어 있는 친구의 안주머니에 값비싼 구술을 속옷 안주머니에 넣어주고 길을 떠나는 내용에 잘 묘사되어 있기도 한데요.
흔히 속옷 안주머니 하면 어느 위치에 있느냐 하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 부분에 위치하고 있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속옷 안주머니를 비유로 하신 거랍니다.
사람들은 이 위치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많이 느끼니까요.
그래서 마음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머리나 배가 아닌 왼쪽 가슴 쪽을 부여잡거나 두들기면서..
"너무 마음이 아파요.."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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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식 부분에 있어서 이해가 잘 안 가시는 분들은 꼭 질문을 해주셔야 한답니다.
그래야 도움을 줄 수가 있답니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위해 가명으로 상담을 원하시는 분들은 메일로 문자를 주시면 되는데요.
가급적이면 종교 이야기는 빼고 수행에 관계되는 질문을 위주로 주셨으면 한답니다.^^
메일주소: 119e@daum.net
(개인 닉네임으로 문자 주시면 제 친구나 가족이라 하더라도 저도 상대를 모를 겁니다.)
예를 들어 활을 쏜다고 했을 때..
과녁은 보이는데 활을 쏠 줄 모르거나..
활은 쏠 줄 아는데 과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분들 정말 많이 있답니다.)
그래서 대념처경과 유마경과 육조단경 등에서도 식심견성자성불도(識心見性自成佛道)와 같은 내용들이 나오는 거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식(識) 이란 [알:식]을 말한답니다.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라는 것이지요.
간화선이든 위파사나든 멍청히 보고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의식이 살아서 봐야 한답니다.
그래서 식(識) 자가 들어간 거랍니다.
이 표현 또한 부처님의 알아차림에 대한 가르침을 그대로 중국식으로 표현해 놓은 문장인데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과 더불어 이 내용 안에도 수행의 처음과 끝의 모든 내용들이 들어있답니다.
그 당시 부처님의 말씀은 본래 무지한 중생들을 대상으로 설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본래부터 단순하고 알아듣기 편하게 설하신 내용들인데요.
세월이 흐르면서 언어표현도 많이 변하고 중국의 한자 문화를 거치면서 더 어럽게 느껴지는 것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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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부처님도 바보 제자 [주리반타가]에게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라는 주문을 주면서 빗자루 하나를 손에 쥐어주셨을까요.
이 방법이 바로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고자료)
제목: [부처님 경전이야기] 제10편 주리반타가의 수행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0q4Cf1jca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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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도 주리반타가의 이야기처럼 마찬가지랍니다.
주리반타가가 "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자."라는 주문 자체가 주리반타가에게는 화두(話頭)인 것이고 위파사나인 것이고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과정인 것이랍니다.
아무리 바보라도 의식은 있거든요.
그 의식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도록 부처님은 주리반타가에게 방편력을 쓰셨던 것이고요.
주리반타가는 [주리반타가경전]이 있을 정도로 큰 아라한이 되신 분이랍니다.
이런 바보도 하는 수행을 왜 우리라고 못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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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사람들이 버리기 힘든 이유는 의식에 힘이 없거나 있어도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방법도 모르고 무작정 버리려고만 하면 그 버리고자 하는 마음에 또 얽매이게 되지요.
이 내용은 경허선사가 선문염송을 해석하다가 여사미거 마사도래(驪事未去 馬事到來)라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지요.
당나귀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벌써 와버렸으니 어쩌겠습니까?
앞에 일도 처리하기 전에 뒤에 일이 밀어 닥치는 꼴이지요.
버리기는 육신(肉身)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답니다.
육신의 힘으로 버리려고 하면 더 꼬여들기가 쉽지요.
그 이유는 버리기는 육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은 의식이 가는 곳에 [몸]도 가고 [생각]도 가고 [마음]도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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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수행이 재미없고 힘들고 어렵다고 합니다.
의식을 모르거나 힘이 없어서 그런 거랍니다.
왜냐하면 의식이 다른곳에 가있거든요..
의식에 힘이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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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에 힘은 고사하고 의식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도 의외로 많답니다.
이래서는 수행을 올바로 하기는 어렵답니다.
화두든 알아차림이든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마시고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셔야 한답니다.
그래서 [意 알: 식] 이랍니다.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답니다.
수행이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고성제와 집성제) 마음의 깃대들과 마음에 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버리는 것이 (멸성제)랍니다.
멸성제란 "소멸시킨다."라는 뜻이랍니다.
요즘 표현으로는
"내려놓는다." "버린다." "포기한다." "외면한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지요.
내려놓고 버리는 방법이 쉽게 되려면 먼저 의식에 힘이 있어야 가능하답니다.
의식을 활용할 줄 모르거나 힘이 없으면 그만큼 어렵답니다.
상담을 받아보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의식에 힘이 없어서 그렇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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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랍니다.♡
오늘은 심념처(心念處)에 해당하는 수행 방법이랍니다.
맨 처음에는 몸을 알아차리는 신염처(身念處)라는 수행 방법을 부처님께 배워보았고..
두 번째는 느낌과 감각을 알아차리는 수염처(受念處)라는 수행 방법을 부처님께 배워보았고..
오늘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심염처(心念處)라는 수행 방법을 부처님께 배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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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념처경. 09. 심념처
3 마음에 대한 관찰
다시 비구들이여,
그럼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바르게 알며,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을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라고 바르게 안다.
악의가 있는 마음을 악의가 있는 마음이라고 바르게 알며,
악의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을 악의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라고 바르게 안다.
무지가 있는 마음을 무지가 있는 마음이라고 바르게 알며,
무지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을 무지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라고 바르게 안다.
그리고 그는
침체된 마음을 침체된 마음이라고 바르게 알고,
산란한 마음을 산란한 마음이라고 바르게 안다.
확장된 마음을 확장된 마음이라고 바르게 알고,
확정되지 않은 마음을 확정되지 않는 마음이라고 바르게 안다.
더 초월할 수 있는 마음을 더 초월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바르게 알고,
더 이상 초월할 수 없는 최상의 마음을 더 이상 초월할 수 없는 최상의 마음이라고 바르게 안다.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이라고 바르게 알고,
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집중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바르게 안다.
자유롭게 된(해탈된) 마음을 자유롭게 된 마음이라고 바르게 알며,
자유롭게 되지 않은 마음을 자유롭게 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바르게 안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마음(心)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내고,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낸다.
그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고,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한
마음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낸다.
"이것이 마음(心)이다"라는 알아차림은 그에게 확립된다.
이렇게 그는 그의 알아차림을 오르지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만이 있는 단계까지 개발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내는 방법이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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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방법은 마음을 직접 대상으로 해서 수행을 하는 방법인데요.
다른 말로 조사선(祖師禪)이라고도 하지요.
제 경우는 이 방법으로 해결을 했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요..
수행 방법 중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방법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입니다.
요령은 아주 단순하고 싶습니다.
의식을 내 마음 쪽에 두는 것이지요.
그리고 알아차려보십시오.
그리고 내 마음에 들고 있는 것들을 의식의 힘으로 살짝 박으로 밀어내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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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관찰한다." 란 다른 말로 "알아차린다." 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릴 때에는 그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시면 됩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바라보시면 되고..
즐거우면 즐거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바라보시면 되고..
마음이 조급한 상태라면 있는 그대로 조급한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바라보시면 되고..
마음이 흥분된 상태라면 있는 그대로 흥분되어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면서 바라보시면 됩니다.
조사선은 일단 내 마음을 알아차리시는 것이 기본이랍니다.
왜냐하면 조사선은 마음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라 그렇답니다.
달마대사와 혜가가 그랬고 승찬이 그랬답니다.
모든 수행은 내 안으로 의식을 두고 알아차리는 것이랍니다.
밖에 있는 대상을 알아차림 할 때도 내 안으로 의식이 가 있어야 한답니다.
이것이 수행의 핵심 중에 핵심이랍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안으로 마음(心)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지내고,"
라고 하셨답니다.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우리는 부처님이 하라는 데로 그대로 하셔야 한답니다.
제 경우는 수행에 수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호기심으로 궁금해서 무조건 부처님이 하라는 데로 그대로 따라 한 것이 신의 한 수라면 한수였답니다.
여러분들도 무조건 본인들의 마음을 시간 날 때마다 알아차림이 확립될 때까지 알아차리고 바라보십시오.
오늘 내용은 이렇게 하시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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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분들의 글이랍니다. ♡
오늘도 [유마경] 내용을 들어보시면서 각자가 내가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 가늠해 보시지요..♡
아직은 유마거사의 내용은 안 나오고 서품(서론)에 해당하는 부처님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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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7~
그러한 까닳에 젊은이 들이여 불국토가 청정하기를 바라는 보살은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다스리는 일에 전념해야 하리니
보살의 마음이 얼마나 청정한가에 때라 불국토도 그만큼 청정해지기 때문이다.
23:35~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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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이 내용은 오늘 대념처경의 심염처(心念處) 내용과 똑같은 내용인데요.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마음을 알았으니 지금부터는 열심히 마음을 관찰하셔서 마음을 비우고 버려서 마음을 청정하게 다스리는 일에 전념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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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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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
《빠알리대장경》
20210518
(1)
제목: 생각이 혼란스럽고 탐욕이 짙고 아름다운 것만 찾는 사람-빠알리대장경123
담마빠다 제 24장 <갈애>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M7UI_HBWKdc
ㅡ
(내용)
생각이 혼란스럽고
탐욕이 짙고
그의 갈애는 더욱 자란다.
그는 실로 속박을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생각의 고요함을 즐기고
항상 깨어있으면서
몸의 더러움을 사유(思惟) 하는 이..
그는 실로 끝에 이르리라..
그는 악마의 속박을 끊을 것이다.
(해설)
이번 내용도 참으로 합당한 내용이 나왔는데요.^^
이 뜻을 아시는 분들은 지금 그 자리에 가까이 와 있으신 분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앞의 내용은 일반 중생들의 마음을 이야기한 내용이라면
뒤의 내용은 수행자들이 증득해야 할 마음인데요.
앞의 내용처럼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늘 생각이 혼란스럽고
탐욕스럽고
갈애가 들끓고 있지요.
그로 인해 그는 스스로 속박을 강하게 만든답니다.
(사오정과 저팔계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깨닫고 증득한 사람의 마음은 정 반대랍니다.
생각은 늘 고요하고
탐욕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그 어떠한 갈애도 없지요.
그로 인해 이들은 스스로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랍니다.
만약에 이런 모습이 안 보이는 도인이 있다면 그 도인은 의심을 해보셔도 좋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천천히 들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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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210522
《빠알리대장경》
제목: 깨달은 자는 두려움도 갈애도 없다-빠알리대장경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_nNQMux9UuY
(내용)
완성에 이르렀고 두려움이 없으며 갈애가 없고 더러움이 없고 존재의 화살을 꺾었으니 이것이 마지막 몸이다.
갈애가 없고 집착이 없으며 경전의 언어에 숙련되어 문자의 배열과 어순을 안다면 그는 참으로 마지막 몸을 가졌고 아주 지혜로워서 위대한 사람이라 불린다.
(해설)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이 지금 보고 있는 [빠알리대장경]을 처음으로 접해보고 있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깊이 있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고 있네요..
오늘 내용에서
[경전의 언어에 숙련되어 문자의 배열과 어순을 안다면..]
이란 내용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학식이 높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깨닫지 못하고서는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문자의 배열과 어순을 맞추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불성 자리를 제대로 못 보고 모르면 알 수 없는 것이라 그렇답니다.
(원효대사가 중국으로부터 처음으로 금강경이 들어왔을 때 태풍으로 인해 금강경 책의 순서가 흩트리어졌을 때 스승인 대안 선사가 왕에게 권유하여 원효가 이것을 정확히 맞추고 강설까지 하고서 당대에 대 스타로 오른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깨닫지 못하고서는 언어의 순서를 맞출 수가 없답니다.)
불성 자리는 아무리 못 배우고 무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번 보고 알면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그렇답니다.
오늘 내용도 그렇답니다.
[존재의 화살이 꺾이고..]란
"내 마음에 고정되어 있는 깃대들을 내려놓고 버림으로 해서.."
로 해석하시면 되는데요.
쉽게 말해..
"존재의 화살이 꺾이고.."
즉
내 마음에 들고 있는 깃대들이 꺾이고..
또는 마음을 모두 비우고 버려서 완성에 이르게 되면..
(여기서 '완성'이란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버리고 나면 이란 뜻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지고..
갈애와 집착이 없어지고..
마음의 더러움이 없어진다는 뜻이랍니다.
이 내용 외에도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지만 지금 내용만 봐도 백 번 천 번 옳은 내용인데요.
왜냐하면
깨닫고 증득하는 순간 마음은 완전히 이런 마음으로 바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직접 체험하고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은 부처님 법을 안 믿으려야 안 믿을 수가 없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남대문을 가보지도 않고 이야기로만 듣고 아는 것과 직접 남대문을 보고 아는 것과의 차이점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부처님도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지만 직접 보고 증득하지 못하고선 수십 억겁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의 법을 이해하기란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모든 경전 내용들이 그 바뀐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이라 그렇답니다.
이 바뀐 마음을 한문으로
바라밀(波羅蜜) 또는 도피안(度彼岸)이라고도 하는데요.
이 뜻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즉
중생의 마음에서 불성의 마음으로 건너가는 것을 뜻한답니다.
그리고 불성의 마음으로 바뀌게 되면 이것이 마지막 몸이 된다는 것이고요..
한 번같이 뒤에 내용도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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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에 보내드릴 선문염송 108편인데요.♡
뜻을 아시는 분들은 요점만 간단히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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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08편)
20210604
4조 도신대사가 3조에게 묻되
"화상 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해탈 법문을 들려 주소서" 하니
3 조가 도리어
"누가 그대를 속박하는 일이 있는가?" 하니
4조가 대답하되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습니다" 하였다.
3조가 다시 묻되
"그런데 어찌 해탈을 구하는가?" 하니
4조가 즉석에서 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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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튜브 동영상 내용은 오랜만에 종범 스님 법문을 들어보겠습니다.
제목: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한 상태_ 종범스님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tFV5MBjgv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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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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