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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도서울 청와대 방향으로 굴진한 남침땅굴을 찾는데 분주했다. 이제 땅굴문제는 누구에게 알리고 정치권에 부탁하여 이를 해결 해주는 촉탁성 민원에 한계를 느끼고 나를 보고 치산자라 하여도 이는 주님이 내게 내려 주신 사명이라고 마음 깊숙하게 자리하면서 이제는 나에 구복이 해결 되면 나머지 정렬은 남참땅굴을 찾는데 주력하는 것이 살아있는 이유라 판단한다.
이는 연천땅굴을 발굴할때, 개인적 공명심과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위해 도래할 위험을 방지 하고자 연천땅굴을 찾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였으나,지금은 이나라를 지킬필요가 있나?하는 배반적인 마음도 요새는 든다.
내돈으로 내가 무엇때문에 이일에 내살아온 인생의 대부분을 솥아 낸것일까 ? 의문을 내스스로도 해본다.
2008년 7월25일 난 내가 그토록 믿고 의지한 내동료인 홍광락을 불렀다. 이는 내가 오피에서 근무할때 적지인 나곡에서 땅굴의 버럭을 처리하고 산속에서 수많은 발파음과 진동을 점진적으로 남하하는 징후를 포착 하였기에 그곳에 직접 근무를 한 홍중사의 조언을 받아 정확한 위치를 확인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나곡 광산동에서 출발한 징후와 귀순자 주성일의 "DMZ의봄"이란 책을 밤을 새워 읽고 대부이신 이종창신부님의 탐사자료와 그 증거들을 좁혀나갔다.
아직도 20년 전처럼 나를 친아들로 여기시며 내 전화에 80이 넘으신 노령에도 불구하시고 현장에 달려오시는 신부님... .
난 좁혀 나갔다. 나의 진실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 뒷말이 없겠금 처리 할수있는 사실과 안일한자들에게 친북좌파 세력들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을 명백한고도 과학적 자료들을 세우고 직접 들어가서 누구든 확인 할수 있겠금, 절개를 강행하여 보여줄것이란 결심을... .
난 연천땅굴과 군남면 진상리땅굴, 군하리 땅굴, 애기봉땅굴을 거쳐오면서 달련된 전술이 있다.
그 방법으로 나를 달련한것이다. 진실은 내가슴속에 있는것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아니다.
2008년 8월8일 물리탐사를 강행하여 남침땅굴의 징후를 포착하고 더 정밀하게 하기위하여 심도등을 토모그래피 탐사를 하여 3개의 남침땅굴을 찾아내었다.그리고 후방가까이 있는 탄현 기독교 묘지에 시추기를 3대를 불러 15공의 시추를 하여 난사했다.
총 6공이 땅굴과 관통이 되었으며, 그 관통구에 LPG까스 한통을 모두 집어넣고 불을 질렀다.
2008년 9월22일 나를 동생처럼 아끼는 통신전자 기술사인 최의수(KBS,SBS통신기술사로 근무) 형을 불러 직접 청음기를 만들게 하고 야밤에 나와 같이 차에 숙박을 한 의수형이 새벽 3시경 깜짝놀란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지금 발파소리가 났는데 이정도 발파소리가 났으면 땅굴속에서 인민군들도 철수 한것이 아니냐는 것이 었다.
이튿날 아침,찬바람이 올라오던 시추공에서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으며, 시추공 9구멍에서 서로 불규칙적으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우린 연천땅굴에 이어 탄현 땅굴 주선인 2개라인중 여러가지로 갈라진 주선1개를 무용지물화 시켰다.
최의수형은 이곳에서 "갱차소리,궤도차 굴러가는소리,역대책작업소음,발파소리"를 직접들었으며 자신이 만든 청음기에 녹음을 해두었다.
최의수형은 나와 탄현땅굴을 같이한 석달동안 제2의 김진철 목사님이 돼시었다.(최의수형은 KBS와 SBS방송국에 통진전자 기술사로 오랫동안 근무하고 유무선 통신에 전문가이며 최고 기술사자격증을 보유한 전자통신사입니다.)
이런 사실을 "왜 개인이 이렇게 하느냐?"와 국가가 가만이 있으면 않된다는 것들... . 이미 내가 추측하던 내용의,자주들어 왔던 의문을 내게 던지고, 한 18년전에내가 해왔던 민원제기와 각관청에 서면으로 아직도 호소하고 가슴으로 개탄하고 있다.
탄현땅굴은 주력선이 2개이다.
이미 한개는 연천땅굴 처럼 발파로 인해 수맥으로 체워 졌을테이고, 나머지 하나는 귀순자 주성일씨 말대로 트럭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탄현땅굴의 나머지 하나를 분쇄시키기 위하여 개활지를 찾는데 산이 비탈지고 시추를 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다시 아쿠아 랜드를 찾아 절개를 강행 할려고 하나 이미 남굴사 동지여러분에게 보고드렸듯이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2010년 3월경 멀리 부산에서 귀인 한분이 날 찾는다고 여러 인편으로 수소문을 하여 나를 찾는 분이 계셨다.
다름아닌, 대북전단지를 보내고 북한의 민주화와 괴뢰정권을 타도를 외치시는 부산대 철학과 교수이신 최우원 교수셨다.
수년전 부터 나를 수소문을 하셨다고 나를 찾았다고 하시었으며, 나의 인터넷상의 기사와 기록을 보셨다며, 연천땅굴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기를 원하셨다.
난 소상하게 내가 겪었던 일들을 교수님 부부에게 소주두병을 마시며 알려 드렸으며, 연천땅굴은 이미 분쇄시켰으니, 청와대 방향으로 향한, 탄현땅굴에 조력을 구하였다.
최교수님은 부산대 지질학과 김진섭교수님에게 연락하여 이정락사장님과 같이 아쿠아랜드 현장에 갔다.
당시, 현장에서 나는 여기서 부터 여기는 폭4미터가 돼는 땅굴이 있고 여기는 2미터 50인 2개의 땅굴이 있는데 이중 2미터 50인땅굴은 저넘어 탄현 문지리 기독교묘지에서 시추로 발각 되엇다는 나의 전공을 말하니, 웃었으며 우리가 이곳을 정밀 탐사하면 땅굴인지 아닌지 확연 하게 나옵니다.하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이말씀을 최교수님과 나는 분명하게 들었고 내후배박무상과 같이 동석한 배명주형님도 들었다.
심지어, 이정락 사장님은 우리 회사에 동굴탐사전문가가 5월2일경 작업이 끝나니 그이후 회사에 오니 탐사를 시키면 분명하게 알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정밀 탐사를 강행 하였다. 그리고 7일이 흘러 그 결과가 나왔다. 2008년8월8일 했던 물리탐사보다 더 정밀하게 수직 수평으로 했으며, 그 지역 주변의 지질도 알고자 비교하기위해 구 주변도 했다.
7일 후, 최교수님은 흥분을 감추시지못하고 기쁨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확연하게 나타났다고 이상대가 분명한게 2개가 나타 났다고 하시었다.
멜로 나도 확인 하니 한개는 다른 것보다 크게 나왔고, 작은 것은 푸른색으로 수맥에 체워진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난, 아쿠아랜드에 대형 시추로 이를 밝힐 예정이며, 허가 없이 강행 하려고 한다.
수맥으로 체워진 갱도를 뚫어 연천땅굴처럼 촬영을 하여 언론에 발표를 하는것이 안정적일까?
아님, 주선을 관통하여 직접 내려가 아직 갱도안에 있는 인민군하나를 잡아 올까?
그것도 아님 관통구에 LPG를 넣어 불을 질를까? 천안함사건을 보면 피가 역류한다. 맨 후자가 좋을 뜻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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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0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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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2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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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보고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