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오후 종일 기다림으로 멍든 날입니다. 오전에는 완이가 통 일어나질 않아서 우리끼리 아침밥을 먹었는데 11시 가까이 잠에서 깨더니 밥먹을 생각을 안합니다. 오늘의 야외활동 계획시간은 놓쳐버리고, 더우기 12시를 넘기면 우체국이 1시까지 문을 닫기 때문에 택배를 보낼 수가 없으니 1시까지 기다렸다가 나가야 합니다.
결국 12시가 다 되어서야 아침을 먹었으니 오늘은 영실까지 가서 한라산 설경을 보려던 계획 취소하고 더 간단히 할 수 있는 코스로 해야합니다. 마침 세화장날이니 장도 보고 근처나 걸을 요량으로 나섰으나 시간은 두시를 훌쩍 넘기고, 이미 세화장터는 파장 분위기입니다. 날씨는 눈부시게 밝고 바람도 별로 없어 겨울 속 부드러운 날씨입니다.
간단히 생선과 야채 정도 사고, 준이 겨울용 시장표 방한화와 바지까지 득템. 가격도 저렴한데 꽤 괜찮아 보입니다. 덤으로 태균이 겨울 기모밴딩 바지도 두 개나 사고. 태균이에게 맞는 사이즈 고르기 참으로 어려운데 그렇게 큰 사이즈도 팔다니, 세화장터에서 별 걸 다 사게 되었습니다. 녀석들, 한 겨울에 입을 바지를 졸지에 다 해결했습니다.
시간도 애매하고 이미 해가 기우는 시간이라 지미봉 둘레길 2.7키로만 걷기로 작정하고 나섰는데 오늘따라 태균이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지미봉 둘레길은 중간중간 길이 갈라지기도 해서 다른 길로 빠질새라 갈라지는 대목마다 태균이를 기다리는데 정말 하세월입니다.
걷다 기다리다가, 태균이 다가오면 또 걷다가 다시 기다리다가, 그런 과정을 한참 겪다가 만나게 된 드넓은 억새밭. 한참 때에는 꽤 장관이었겠다 싶은 광경입니다. 이런 장관들은 직접 걸어야만 만날 수 있으니 걷는다는 것의 의미가 이래저래 꽤 쏠쏠합니다.
완이녀석, 목도리 하고 5분도 안되서 벗어버리니, 오늘은 기온이 따뜻한 편이라 봐주기로 합니다. 대신 뒷부분 쪽으로 가까와지면서, 사진찍을 때 정면 응시하기 훈련을 시키니 제법 잘 합니다. 요즘 눈맞춤은 준이보다 훨씬 나아진 듯 합니다. 태균이가 연속으로 찍어준 사진 속에 점점 정면 응시하는 현장들이 다 담겨있습니다.
태균이 기다리는 동안 목덜미 간지러주었더니 거기에 재미들려 계속 목덜미 들이대며 간질어달라고 내내 달겨붙고, 잠시도 저를 혼자 놔두질 않습니다. 먹을 것 꺼내달라, 봉투나 뚜껑 열어달라, 자기몸 간질어달라 등등 요구도 많습니다.
며칠 생각 끝에 완이를 내년 1월부터 돌려보내면 어떨까 완이부모한테 제안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확인해보니 입학신청한 특수학교에서 입학이 되었다 합니다. 특수학교에 가면 40분 단위의 수업이 계속 진행될 것이기에, 40분은 착석할 준비가 좀 필요하지 싶습니다. 특수학교의 수업이란 것이 운동보다는 교실자리에 앉아서 수행할 것들이 더 많을 것이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소근육 언어 특체 등 개별수업을 통해 그 수업이 주는 효과보다도 착석과 40-50분 집중해 볼 수 있는 훈련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오늘 제 의견을 던졌고 완이부모가 제안대로 따른다고 하면, 이제 완이 훈련시킬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전두엽 성장을 시작하려는 행동들이 조금씩 나와서 이를 계속해서 자극하고 다듬어만 주면 발전가능성도
큰 녀석입니다. 지금까지 완이 가정에서 해왔던 것을 보면 기대감보다는 걱정되는 바가 많기는 하지만 돌려보내고 나서부터는 완이 운에 맡겨야죠.
정확히 2.7km 걸으니 대략 7400보가 나옵니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상에서 2.7km를 걸으라하면 지루하고 언제 다 걷나 하겠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둘레길은 발길 하나하나 모두 눈에 넣어두고 싶은 풍경들로 넘쳐납니다. 내일은 오전 일찍 서둘러야 되겠습니다.
첫댓글 아, 완이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길 진정 바랍니다.
그래도 시장에서 필요한걸 사셨으니 덜 섭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