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모이를 주면서 특별한 증상은 보이지 않았는데 아침에 가보니 구석에 죽어있었다.
원인을 알아보려고 둘러봐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몸 보신용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기르다가 벌써 여러 마리가 죽었는데 매번 마당에 묻는다.
짐승이 죽었으니 덤덤하게 받아들일 뿐 슬프지는 않다.
아마도 폭우와 폭염이 며칠간 반복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한 마리는 알을 품고 있고 또 한 마리는 어슬렁거리며 외롭게 돌아다닌다.
수탉이 없으니 유정란은 얻기 힘들 것 같아서 토종닭과 합사할 계획이다.
토종닭 5마리가 있는데 이번에 병아리 부화에 실패하여 모이만 축내고 있다.
교회 뒤편을 정리하면서 닭장을 뜯어낼 생각이다.
지금 백봉이 토종닭 대신 알을 품고 있는데 부화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구덩이를 파고 고이 묻어주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비록 갇혀있지만 먹을 걱정 없이 관상용 닭으로 사는 것도 복이라 느껴졌다.
살던 곳에서 수명을 다해 죽어 주인의 손에 묻히니 얼마나 큰 복인가?
말씀에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라면 죄인의 자리든 악인의 자리든 가릴 필요 없다.
이미 그 곳이 축복의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수탉의 생각을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편안하게 살다가 죽어서 원망은 없을 것 같다.
주님이 주신 땅이니 짐승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이나 다름없다.
시골교회에 성도도 떠나가지만 이렇게 짐승들도 때가 되어 사라지니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눅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