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로 돌아가신 故 윤용헌 열사의 부인 유영숙(루시아)씨가 지난 9월 12일 서대문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아직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남일당 현장이 정리된 후, 일상으로 돌아간 유족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반가운 소식을 빌미로 유영숙씨를 만나 근황을 들었다. 마침 이 날은 정동에서 생명평화미사가 있던 날이어서 미사 참례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사 후에는 대한문 앞 촛불기도회에 참석해야 한다면서 미사 전 인터뷰를 마치기로 했다.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근처 카페, 유영숙씨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남일당에서 봤던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카페 한쪽에 자리 잡은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용산참사로 알게 된 새로운 세상, 할 일이 너무 많아 착하게 잘 지내주는 아이들 덕에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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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지만 아직 감사할 일이 많다는 유영숙 루시아씨 (사진/정현진 기자) |
세례를 축하드린다는 말에, 그저 내 마음 편하자고 다니는 거라면서 조용히 웃는다. 분명 편안해진 건 사실인 듯 보였다. 인터뷰 요청으로 전화를 했을 때 생명평화미사에 갈거라는 말로 미루어 짐작컨대 편안하기는 하지만 조용한 일상은 아닐 것 같았다. 하긴, 아직도 용산은 진행중이니까.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으니, 유가협(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에 가입이 되어 있어서 그곳을 통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남일당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있고, 요즘 4대강으로 생명평화미사를 하고 있다기에 되도록 열심히 참여한다고 한다. 다들 일상으로 돌아간 후, 예전처럼 다른 유가족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용산범대위, 유가협 활동에서 종종 만난다고.
용산에서 다친 팔이 아직 낫지 않은 것이 걱정이라고 한다. 아직 아무것도 들지 못하는 상태라 생업에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라도 하려고 한다. 용산참사를 겪으면서 알게 된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가족끼리만 잘 살면 그게 행복이라고 여겼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남의 일을 제 일처럼 여기며 봉사하는 사람들, 생각지 못했던 아픈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 역시 너무 큰 사랑을 받았고 이제는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1인 시위나 집회, 미사가 있으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참여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세 가족이 서로 토닥이며 지냈는데 얼마 전, 덜컥 큰 아들의 입대영장이 나왔다. 11월이면 입대를 하게 된다고 한다. 별명이 ‘엄마 껌딱지’였는데, 엄마도 아들도 걱정이 크다. 아들 앞에서는 애써 담담하게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아직 마음이 힘든 아들이 엄마품까지 떠날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다행히 아이들이 너무 착하게 잘 자라준 것이 고맙다고 한다. 아빠를 일찍 떠나보낸 아이들이 어쩌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이들은 아직 아빠를 떠나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살아있을 때 워낙 잘 지냈고 사랑을 받았던 그 기억의 힘으로 잘 견딜 것이라 믿는다.
글을 좋아하는 큰 아이는 늘 일기를 쓰면서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던데, 엄마에게도 절대 비밀이다. "예쁘게 잘 커서 고맙다고, 우리 보물 단지들 앞으로도 이렇게 자라 줄거냐?"고 물어보면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이다. 다른 애들은 속도 많이 썩이던데 우린 안 그럴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단다. 다만 아직 아빠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산소라도 다녀오면 어쩐지 아이들 기운도 없어보이고 아직 상처가 깊은 것 같아서 되도록 산소도 혼자 다녀오게 된다. 혼자 가거나 지인들과 가서 풀도 뽑고, 나무도 심고. 벌초는 이미 하고 왔지만 추석이니 또 한 번 가봐야겠다고 한다. 혼자 있으니 많이 외롭지 않겠느냐고.
남일당에서의 시간, 기도로 견뎌 미사드릴 때 기쁘고 행복하다
이번에 세례를 받고 성당에 나가는 것을 두고 사람들이 이유를 많이 묻는단다. 그저 마음 편하려고 그런건데. 예전부터 마음은 있었지만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다니지 못했는데 용산일을 겪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용산 현장에서 하루하루 지옥같은 시간을 지내면서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많은 힘이 되어 주셨다. 그때부터 기도 힘으로 견뎠다. 용산이 빨리 해결되게 해 달라고, 진상규명 하게 해달라고, 장례 빨리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잘 할 줄도 모르는 기도였지만 아침 저녁, 몸이 솜뭉치가 되도 기도를 했고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다. 용산이 끝나고도 마음을 다잡기가 힘 들어 성당 생각이 났는데 혼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던 중, 박순희 천정연 전 대표가 손을 잡아 끌었다. 그렇게 서대문 성당에 다니면서 예비자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예비자 교리를 받으면서 정말 재밌었어요. 교리를 듣는데, 내가 겪은 일들이랑 연관이 지어지면서, 그렇게 머릿속에 잘 들어올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은 졸립다고 하고, 미사시간도 지루하다던데, 나는 오히려 미사시간이 너무 빨리 가더라구요. 성당 다니면서 정말 좋아요 마음도 좋고 평화를 얻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좋아 보인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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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중에 대모 김덕희 소피아씨를 만났다. 친자매 같은 모습이다. (사진/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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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님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당장 함박 웃음이다. “용산에서 계속 촛불봉사 했던 자매님이에요. 김덕희 소피아 자매님이라고. 든든한 가족이 하나 더 생겨서 너무 좋죠. 용산에서 계속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분인데, 그분을 내 대모님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만 한게 아니더라구요.”
사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천주교와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가톨릭재단 중학교에 다녔고, 무엇보다 둘째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 다들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다행히 위기를 넘기고 잘 살아줘서 퇴원 직전, 병원에서 아이에게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런 둘째 아이가 엄마와 함께 성당에 다니겠냐고 물어보니 아직은 아니라고 했다며 웃는다. 아직 잘 모르지만 아이들도 원해서 묵주 팔찌를 채워주고 나중에라도 성당에 다니라고 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고 싶고, 기도도 많이 하려고 한다. 예전 용산에서 참여했던 미사와 본당의 미사가 많이 다를 것이라고 주변에서 걱정도 했다지만 다 기우였다. 본당에서 용산참사 유족을 다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어떠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미 예비자 교리를 받을 때, 유족이라고 하니까 오히려 우리가 잘못한 거 아니냐고 말한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의 나도 그랬으니까요. 아직 잘 모르니까 그런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이야기하면 입장이 많이 좁혀지겠죠. 용산을 겪으면서 더 강해지고, 오히려 어떤 부분은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데 그 큰 일을 참으로 잘 감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용산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용산을 소재로 한 만화책 <내가 살던 용산>이 지난 수요일(15일) '2010 부천만화대상' 일반부문 우수만화상을 받았다고 한다. 만화책 치고는 상당히 호응이 좋고 또 최근 오두희 감독의 독립영화 <남일당 이야기>도 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용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일들이 많아서 아주 기쁘다고 한다. 요즘 문정현 신부님 기도 소식을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힘이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생하신다 싶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한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 하면서 지내는 지금, 걱정도 있지만 행복하다고 한다. 지금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 잘 크는 것. 가족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 그동안 받은 사랑을 다시 되돌려주면서 사는 것이다.
“세상에 눈을 뜨니까 행복해져요. 큰 사랑에 정말 감사드리고, 고통속에서 오히려 힘을 받는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한 많이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진상규명. 그거 꼭 하고 싶어요. 다리 부상으로 힘든 우리 총무님, 빨리 낫기를 바라구요. 그분 보면 우리 아이들 아빠가 생각나요. 아,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한다고 꼭 전해주세요.”
‘고통’이라고 똑같이 쓰지만 그 무게는 저마다 다르다. 너무 커서 상상하기 조차 힘든 고통을 겪은 이를 두고 공식처럼 간단히 ‘고통을 잘 겪어내면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마음으로 평화를 드러내는 유영숙씨를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또 한편으로 손을 내밀면서 더 큰 사랑을 살아내고 싶다는 유영숙 루시아. 평화로 가는 길을 찾은 그의 앞에 사랑의 빛, 평화의 빛이 늘 비추기를 바란다. 그리고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의 평화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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