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4 주일 (가해)
마포자루의 신세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마태오 복음 11장 25~26절의 이 말씀은 오늘의 성경 말씀을 압축해서 전해 주고 있습니다.
즉 가난하고 겸손한 자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기묘한 섭리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속적으로 보았을 때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들, 슬기와 재치가 넘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재주와 능력도 뛰어나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는 좋을지 몰라도 마음은 가나하고 겸손하지 못한 나머지 교만과 오만 불손으로 가득 차 있기에 모든 것이 시시해 보이고 우습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성서와 율법에 정통했고 기도와 단식을 철저히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앞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고 안식일과 율법을 어겨 가면서 선행과 기적을 베풀었던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어른스럽고 율법에 얽매어 있어서 율법을 초월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완고한 나머지 율법을 넘어선 경지에 이를 수 없었고 모든 것을 원칙대로만 생각하는 골수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너그러운 마음, 자비로운 마음은 하나의 사치였고 낭비였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어부 출신의 제자들, 세리 출신의 제자들이 못마땅했고, 죄인들과 어울려 다니는 예수라는 청년, 그것도 세리와 창녀와 병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비뚤어진 젊은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겉만 보고 사람들을 판단했던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심오하고 깊은 진리가 드러나지 않고, 비록 배운 것은 없고 율법을 잘 알지 못하고 죄 중에 살았던 자들이지만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 한 분만을 바라보며 그를 따라 다녔던 제자들과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병자들, 소외받은 자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밝혀진 것입니다.
러시아에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부잣집에 마포로 된 자루가 있었습니다.
누구의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하인들의 방에서
일용품을 담아두는 자루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때로는 수건이 없는 사람들이
쓱쓱 발을 닦는 발닦이로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읍내에 돈 받을 일이 있어 가려는데
이 마포자루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도적이 끓고 있어서
중요한 것을 옮기는 데는 위장이 필요했습니다.
주인은 '옳거니'하고 때에 절은 이 자루를
챙겨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이 마포자루에 금화를 가득 받아 넣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날부터입니다.
마포자루의 신분이 변한 것은
하루아침에 금화자루가 된 것입니다.
그것도 철제 금고 속에서 누구보다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주인이 금고를 열 때면
이 금화자루부터 어루만졌습니다.
행여 다른 사람이 만지기라도 하면
질겁을 하며 혼을 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금화자루를 바라보며
황홀해 했습니다.
자루는 서서히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뭇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고 으스댔으며
큰 기침을 했습니다.
주변의 사물들에게 간섭을 하기 시작했고
시비를 걸어 자기 식으로 고치려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냐"
"네가 무얼 안다고 그래."
"두고 봐, 주인은 내말대로 할 거야"
다들 멍청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누구하나 반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만 할 뿐이었습니다.
한 번은 은장도가 나서려고 하였으나
은수저가 이렇게 귓속말을 하는 통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저걸 마포자루라고 생각하면 안 돼, 금화자루란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이 집에 도둑이 들어와 금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금화자루를 훔쳐 가다가
금화를 다른 가죽 자루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마포자루를 길가 뻘 구덩이에 처박아 버렸습니다.
이후 한때 금화자루였던 마포자루의 소식이나 이름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혹시, 나를 금화자루라고 착각하며 살지는 않는지
조용히 반성해봅니다.
본래 아무것도 없던 핏덩어리인 내가
이 세상에 나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보다 아는 것이 좀 더 있다고
조그마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좀 더 얻었다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영원한 금화자루인줄 알고 말입니다.
사람이 없던 것이 갑자기 생기면
도와 분수를 모르고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그리하여 겸손의 미덕은 사라지고 오만불손하며
위선과 독선만이 가득 찬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진정한 실력과 인격으로 다듬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껍데기로 둘러싸인 사람이 되고 말아
본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인생무상과 허망함을 느끼며
후회를 하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내가 이 세상 나오기 이전 자리로 돌아가
재색명리가 주어지기 이전 자리로 돌아가서
참 나를 찾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한번쯤
가져봄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오늘도 본래 참 나는 누구인가? ......
오만하고 방자한 마포 자루의 모습,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교만하고 불손하게 구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까닭에 가나하고 힘없는 자들의 벗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 1 독서 즈가리야서의 말씀처럼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군마를 없애시고 오히려 나약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겸손하신 분, 나약하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나귀를 타고 오시면서도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기쁨과 환성을 외치시는 분입니다. 나귀를 타고 오시는 겸손한 분이시기에 모든 이를 껴안고 편히 쉬게 하시는 분이 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하시면서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라고 우리를 안심시키십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쉴 수 있는 사람은 그분의 성령을 모시면서 육체의 모든 행실을 죽여 버리고 그분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 기쁨은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우선적으로 바라고 구하는 가난한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멍에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실 그분의 품에 안길 때 우리는 모든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참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분 앞에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길 청하면서 주님의 이 사랑이 우리 안에 흘러 넘치도록 간구하고 그분의 뜻에 맞갖은 삶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