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바닥에 붙어 밤을 기다리다가 날 밝으면 하루 더 연명하려 했을 뿐 밤보다 더 검은 음모는 몰랐습니다 내가 바닥 생활을 하다가 목격자가 된 것에 대해 제발 입을 다물어 주시길 바랍니다 돈 욕심에 눈먼 남자의 욕망이 아내를 죽이는 것을 목격했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목을 조르고 물에 빠뜨리고 죽이고 그녀의 사망 보험금을 자기 친딸에게 준 것도 나는 몰랐습니다 그날 밤 내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이 된다면 나를 모른 척해주세요 그날 밤 내가 얼마나 간절히 하늘과 강을 바꾸고 싶었을지 짐작이 된다면 나를 모른 척해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의붓아빠에 의해 엄마가 죽었음을 알려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눈도 없이, 발도, 입도 없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딸 꿈에 나타나 엄마가 떠밀려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딸은 바닥을 기는 나보다 똑똑하고 영리했으니까요
나는 죄가 없습니다
◇고영서= 신춘문예 작가회 회장. 계간지 <한국디카시> 부회장. 용인문학회 아카데미 시 낭송반 책임 강사. 동인 활동 시인과 독자, 시그널, 시 공작소, 문장과 콘서트. 사람과 시, 솜다리 문학회, 시나무, 시나모에서 활동.
<해설> 사람이나 동물이 물에 빠져 죽었을 때 시신에 가장 먼저 달려드는 것이, 다슬기라고 한다. 강바닥을 어슬렁거리면서 다슬기는 몸의 흡반으로 강의 날씨와 일과를 낱낱이 기록한다. 그러고 보면 시 속의 끔찍한 사건 전모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 또한 다슬기가 아닐까. 홍전강 이라는 강의 이름이 주는 뉘앙스와 함께 다슬기가 하는 말을 고스란히 받아적은 시인은 어느새 자신이 망자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딸의 꿈속으로 온몸을 밀고 들어가는 다슬기가 되고 있다. “나는 목격자입니다” 와 “나는 죄가 없습니다” 사이의 사건 전모는 홍전강 다슬기만 알고 있는 비애일 것이므로.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