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선우의 패배
일축왕 진영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어제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자신감이 가득 찬, 삼백 부장 정돌식이 적 진영에 나아가 대결을 재촉해도 묵묵부답이다.
남 흉노측은 칠 주야 七 晝夜를 진영 문을 걸어 닫고 있는 조용한 모습을 보아하니,
지난 전투에서 대패한 충격이 큰 모양이다.
다음 날, 남쪽 방면에서 뿌연 흙먼지가 일어 나더니,
잠시 후 대규모의 병력이 초원에 새로이 나타났다.
세작들의 보고 내용이 한나라에서 2만 대군이 일축왕을 지원하러 왔다는 것이다.
포노 선우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꼴이다.
설상가상 雪上加霜이다.
일축왕의 오만 병력을 젊은 장수들의 투혼 쓰린 전과 戰果로 이제 겨우 4만여명으로 줄여 놓았는데,
한군이 2만 명을 동원하여 연합전선을 펴다니,
동쪽에는 일축왕의 4만 대군, 남쪽에는 한군의 2만 대군, 이제 6만 명 대 8천 명이 대치한 상황이다.
서북향 西北向의 뒤편은 험준한 헨티산맥으로 퇴로 退路가 막혀있고,
동쪽과 남쪽 들판은 수많은 적병으로 가득하다.
사면초가 四面楚歌다.
무원고립 無援孤立으로 포위가 되어 버린 상황이다.
병력은 비교조차 되지 않으며 도저히 승산 없는 전투로 보여진다.
또, 을지소왕과 혈창루 모용척이 힘들게 육성 育成 시킨 3기생, 스무 명 중의 열 명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그 들을 가르친 동방향기와 한준이 있는 일축왕 진영으로 넘어간 것 같다.
대세가 한쪽으로 기울어 가는 모양새이다.
이제는 도망을 가거나 항복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처지다.
그러나 이대로 전투를 포기하기에는 포노 선우 진영은 너무나 억울하다.
그래서 천부장들이 모여 대인 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과는 야간 夜間에 남쪽의 후한군 後漢軍을 치기로 결의하였다.
이유는 그래도 만만한 쪽이 병사수가 적은 한군 漢軍 쪽이며,
먼 거리를 이동하여 지원온 관계로 병사들이 지쳐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병력수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니 어둠을 이용하여 적을 기습공격한 후, 탈출하려는 전술이다.
그날 저녁,
모두 전투 채비를 단단히 갖추었다.
병문졸속 兵門拙速.
손무 孫武가 작성한 손자병법 孫子兵法에서 아주 중시 重視하게 여기는 전술중 하나이다.
이것저것 구색을 다 갖추고 난 후에 적을 공격하려면, 적도 이미 대비하고 있으니,
전투 준비가 미비하고 부족하더라도 적이 대비를 소홀히 한 틈을 포착 捕捉하여,
재빨리 출격 出擊하여 적을 치라는 뜻이다.
상대의 약점을 신속하게 공략하라는 의미다.
이왕 기습할 계획이라면 빠를수록 유리하다.
포노 선우 측은 을지 담열 소왕이 선봉대를 총괄하고, 선봉장을 이중부와 설태누차가 맡고,
포노 선우가 중군을 직접 이끌고 총 공격하기로 하였다.
후군은 우문무특 천부장과 기혁린, 천강선 우문청아가 맡았다.
저녁 무렵,
30리 남쪽 후한군 진영으로 이중부는 사로국 동료, 백 부장들을 이끌고, 설태누차와 함께 기세 좋게 진격하였다.
그런데 선봉대가 적진지 가까이 다가갔을 때, 선우가 이끄는 중군 中軍 대열을 양쪽에서 공격하는 무리가 있었다.
일축왕 진영에서는 미리 매복 埋伏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알지 못하는 이중부와 설태누차는 한군의 진영을 급습하니 적장들이 나와 제지 制止하였으나,
중부의 묵황도와 설태누차의 장창에 일 합도 견디지 못하고 낙마한다.
그 기세를 몰아 선봉대 2천 기병은 적 진영으로 성난 황소처럼 힘차게 들이밀며 쳐들어갔다.
그런데 선봉대의 기병들은 적을 짓밟고 불화살로 적 진영을 불태우며,
적진을 횡단하려 하였으나, 적들의 방어선이 만만찮다.
더구나 중군과 분리되어 허리가 이미 잘린 상태로 뒤를 받쳐주는 지원군이 없으니,
그 기세가 한풀 겪어 버려 힘이 없다.
상대방은 기습에 대비하여 이미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우의 중군 6천 명의 대열은 한준이 이끄는 1만 기병의 측면공격으로 진로가 막혀버리고
공격 대열이 두 동강으로 나누어져 버렸다.
기습 대장 한준의 양날 창이 종횡무진으로 선우측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포노선우 측은 선봉대와 중군이 분리되어 버리니 힘을 쓸 수가 없다,
이어서 보육고가 이끄는 일만 기병이 급습하여 중군과 후군을 또 분리시켜 버렸다.
머리와 꼬리가 잘린 뱀의 형국으로 기마병 대열이 서너 동강으로 분리되어 버린
선우의 중군 부대는 진형도 무너져 버리고, 우왕좌왕 右往左往하며 지리멸렬 支離滅裂이다.
앞선 선봉대 역시, 적진을 돌파하는데 악전고투 惡戰苦鬪 중이다.
수적으로 현격 懸隔한 열세 劣勢로, 중과부적 衆寡不敵이다
하는 수 없이 중부와 설태누차는 적진 돌파를 포기하고, 전투를 하면서도 아군이 있는 금성부와 사정 수련원이 있는 동쪽을 바라본다. 그러나 목책 木柵이 두텁고, 적병의 수가 너무 많아 다른 방향보다 방어벽이 더 두꺼워 보인다.
적은 이미 선우 무리의 진로 방향을 예측하고 그쪽 동향 東向에 집중적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있었다.
중부와 설태누차는 할 수 없이 비교적 병력이 적어 보이는 반대 방향, 서쪽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적의 공격이 거세지니, 선봉대의 후미가 갈수록 흐트러진다.
2천 명의 선봉대가 그사이 태반 太半으로 줄어들어 8백 여명에 불과하다.
하는 수 없이 설태누차가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후방을 단도리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2만여 명의 후한 군이 사방에서 에워싸고 공격하니, 소수의 선봉대로는 어떻게 대처할 수 없어 시간이 갈수록 그 피해가 막심하다.
혈전을 벌이는 도중에 이중부는 선봉장답게 선두에서 커다란 묵황도를 거칠게 휘두르며 혈로를 뚫고 있었고,
박지형과 사로국 출신 부장들은 이중부의 좌우에서 협력하여 적진을 어렵고
힘들게 겨우겨우 관통 貫通하고 있었다.
아니, 자발적인 힘으로 적진을 관통한다기보다는 수많은 적병들에게 떠밀려 가는 그 형세가
마치, 힘 없이 바람따라 이리저리 물 위를 떠다니는 갈잎 같은 위험한 양상이다.
설태누차와 을지 담열 소왕은 후미 後尾가 잘려버려,
어지러워진 선봉대의 후방을 수습 방어하며 뒤따르고 있었다.
전투 도중 을지담열 소왕의 애마가 적병의 갈고리 창에 앞다리를 다쳐 움직이기가 곤란하였다.
을지 소왕은 하는 수 없이 적병의 전마를 한 필 빼앗아 말을 갈아타면서까지 험난하게 악전고투 惡戰苦鬪하고 있었다.
소수의 병력으로 적 진영에 깊숙이 빠져버린 이제는 전략이고 전술이고, 아무런 필요가 없는 고립무원 孤立無援의 위험한 상황에 당면 當面한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무용뿐이다.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좌충우돌 左衝右突 식으로 천방지축 天方地軸으로 마구잡이로 싸우며,
그토록 어렵게 혈로를 뚫고 겨우 일부만 탈주할 수 있었다.
선봉대 2천 명 중, 겨우 2백여 명만이 탈신도주 脫身逃走하여 서쪽 항가이산맥 방면으로 달아났고,
중군은 전멸하였다.
후군도 대부분 전사하였고, 사로잡히거나 살아남은 자는 부상이 심각하였다.
초원에는 이제 흰 눈이 날리기 시작한다.
여름부터 시작한 전투가 가을을 지나 겨울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비록 전쟁에는 패하여 패잔병 신세지만, 상대와의 병력을 참작 參酌한다면 아주 잘 싸운 전투라고도 볼 수 있었다.
선봉대는 밤새 달려 적의 추격병이 보이지 않자 비로소 초원에 멈추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지역이 포노 선우 측에 우호적인 후막진 候莫陳 천부장의 진영이었다.
전투에 지원 나오지 않은 괘씸함은 있으나, 다급한 지금 상황은 이것저것 따질 계제 階梯가 아니다.
기세등등하게 출진하였던 2천 선봉대가 2백여 명의 패잔병 敗殘兵밖에 남지 않았고,
그나마 몸이 성한 병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더구나 선봉대의 총책임자 을지 담열 소왕의 부상이 심각하였다.
후방에서 백병전을 벌이며 한 명의 아군이라도 더 구출하고자 혈투를 벌이며,
도주하는 도중에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옆구리와 어깨의 창상 槍傷이 깊었고,
등에도 화살이 2대나 깊이 박혀 있었다.
선봉장 이중부와 설태누차의 몸도 성치 않았다. 여기저기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봉장 가까이에서 싸우며 따라온 사로국 출신 백부장들은 대부분 큰 부상은 모면 謀免하였다.
후미 後尾로 갈수록 병사들의 부상 상태가 더 심각하다.
화살 서너 대는 기본으로 등에 꽂혀있었다.
후막진 천부장이 기본의술을 갖춘 병사 30여 명과 도우미 병사 백여 명을 데려와 부상병들을 치료하느라
진영이 어수선하다.
중군은 전멸당하였고, 중군을 이끌던 포노 선우도 전투 도중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후군도 거의 전멸하다시피 풍비박산 風飛雹散으로 흩어져 버렸고,
우문 무특 천부장 부녀와 개인적인 무위가 뛰어난 뒤따르는 병사 칠십여 명만이
구사일생 九死一生으로 겨우 헨티산맥 북동 北東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대참패다.
전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일축왕 측은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섯 달 동안 치러진 전투의 대미 大尾를 장식한 승전의 주역 主役은 최근에 북 흉노에서 투항해 온 동방향기와 한준이다.
동방향기가 포노선우 측의 진격 방향과 시간을 미리 예측하고, 매복시킨 작전과 적의 중군 중심을 잘라버린,
한준의 무위 武威가 일등 공신으로 인정되었다.
두 사람 모두 이천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제 천부장 두 명이 자신의 휘하 소속으로 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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