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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22. 일이다 부여 백마강 옆의 사이드 길엔 코스모스 키가 낮아 졌다 왜냐고 재래종은 키가 커서 비 바람에 금방 쓰러 지지만 다시 개량종 으로 키가 낮아지고 꽃도 예쁘고 꽃의 색상이 다양해 졌다.향기도 좋고 구드레 강변 아래 길엔 끝없이 펼쳐져 있다. 부여를 찾아 오는 이들의 발거름에 포토 죤이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프레쉬를 터트 린다.삼삼 ~ 오오 짝들을 이루 어서 678녀년의 애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여읍 ( 사비 ) 소부리에 언제 부터인지 수륙 양육( 물로 육지로 ) 다는 차가 생겼다.부여 군민인 나도 모르고 있었다.사실 부여는 강화도와 같이 뚜껑없는 박물관이라 생각한다 전국 에서 열리는 문화제도 부여의 백제 문화제는 대한민국의 3대 문화제 중의 부여가 들어간다 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나는 모르고 살었다
그것도 부여군에서 사실 내 고향은 수원이고 낮설는 사람들이 내게 " 어디 살어요 ?, 하고 물어보면 나는 " 부여 살어요?, 라고 대답을 주면 그들은 한결 같이 내게 묻는다 .부여 산다니 그들은 관심을 같고 한다는 소리가 " 아~ 거기 의자왕의 삼천 궁녀가 빠져죽은 백마강 근처 거기 살어요 의자왕은 좋았겠어요 삼천궁녀랑 ㅋㅋㅋ 좋은데 사네요 ?, 하고는 내게 몇번씩 묻는다. 비꼬는 듣한 언어다. 사실 나는 듣기가 않좋다.모두들 백제의 마지막 임금님 의자왕을 한명 같이 비슷한 말들을 한다 .
1.4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백제 의자왕의 왜곡된 역사의 잘못으로 모든이 들이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을 못되게 생각하니 너무 않스럽고 안탑갑다 사실 1.400년이 짦은 세월은 아니지만 대한국민 대다수가 의자왕을 무능하고 여자.가무.술.이나 밝히고 그런 허송세월을 보내다 백제를 나 당에게 빼앗긴줄 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너무 슬프다 억울하신 백제 31대의 의자왕님 사실 나는 부여와 백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학창시절 역사.지리.사회.시간에 잠시 잠깐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와 수학 여행이 전부다 잠깐 배운것 이외는 부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내가 부여군. 면.리.단위가 고향인 촌 아저씨에게 시집 이라고 온지 삼십구년째 나는 어쩔수 없이 부여에 대해 잠시 혼자 역사 공부를 했다 .백마강 금강줄기 공주에서 부여로 익산으로 도읍을 옮긴것과 왜 부여가 나당에게 무너지고 삼천궁녀는 진짜 궁에 있었는지 치마를 뒤집어 쓰고 물살이 센 落花巖 ( 떨어질.낙. 꽃.화 바위.암 ☞ 낙화암 ) 에서의 나의 인생 여정의 부여가 내게 내 인생의 지팡이가 될줄은 몰랐다. 부여의 삼천궁녀와 마지막 비운의 의자왕을 를 많이 물어 보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조금 공부를 했다 사실 역사는 너무 광대하고 거대해서 뭐라고 건들이지를 못한다 . 더군다나 무식한 내겐 더욱 그렇다 .지금이라도 학생을 가르키시는 초. 중.고.대학교 .에서 역사를 바로 잡어야 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꼭 실천으로 옮겨 바로 잡어야 한다고 말하고싶다 .
사람들은 내가 부여 산다고 하면 그들은 나도 모르는 백제의 역사를 물어봐서 나를 당혹하게 만든다.정말 나는 너무 무식해서 모르는 것을 어쩌냐고 그러니 배워야 했다 .부여에 대해서 부여 역사는 678년 마지막으로 무너짐 의자왕은 수도 사비가 아니고 웅진성 에서 충복 장군 예식( 예석진 )과 660년7월 18일 항복을 했다 한다 웅진에서 미리 나 당군( 신라 당나라 )에 대항할 준비를 모두 갖추고 유리한 상황에서 기다리다 항복을 예식 때문에 어이 없게 당했다 악마 예식 때문에 사실 의자왕은 당시 당나라로 볼모로 아들.딸 13명 신하 백성등 1만 오천여명과 같이 하루에 오십리 길을 두달을 걸어서 잡혀같다.중국 낙양 어디엔가 죽어 묻혀 있다 한다.묘지도 지금까지 못찾고 있다 한다 그는 40살의 늦게 31대 의자왕이 되어 시 와 그림 서예 즉석 음유로 예술성이 뛰아 났다 한다.역사 책엔 김유신이 자기의 애첩 가희를 보내서 여색 으로 의자왕에게 접근하여 나.당나라 군사와( 소정방은 13만 대군과 1.900척의 배로 ) 어느날 갑자기 쳐 들어 왔다 한다 사실인지 궁굼해도 할수없다 .1.40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역사를 옮겨놓은 역사학 학자들을 믿어야 한다. 역사는 너무 길어서 ( 생략 ) 한다. 워낙 방대한 대 역사의 서사시 다.
그대 들이 이해하기 쉬운 부분만이 잠깐 옮겨 놓습니다.: 이름 ( 의자 義慈 ) 義慈王 의자왕의 .599~660 제위 :( 641년~ 660년 ) 백제 마지막 국왕이다 이름은 夫餘 의자왕 전임 무왕의 아들 이라함 망국의 군주 이기 때문에 시호를 못받음 당나라 낙양으로 의자왕과 태자들 .왕족 백성 등 당시 일만 오천명이 끌려 같다 한다 .의자는 부모에 효도에 동기간에 우애가 좋았다 그를 "해동증자" 라 불렀다 한다.그는 무왕의 아들로 용감하고 결단성이 있었다 한다 ( 632년 무왕 33에 ) 태자가 되었다 .초대 온조왕의 시작으로 이어오다 의자왕 대 에서 백제는 아주 멸망함 한번뿐인 목숨들 얼마나 어이 없을 까다 충복 장군 믿었던 예석진에 의해 적군에게 칼 한번 휘들리지 못하고 항복을 하다. 김유신은 신라인 이고 그는 15살에 화랑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킨 요주의 인물 이다. 신라 고구려 백제를 통일 시키신 그는 장수( 장 군 ) 을 했다 당시에 ( 595~673.7.1 김해 김씨 ) 여기서 왜 김유신이 등장 하냐구요 백제를 멸망시킨 원인 제공자다 그는 병법이 굉장히 뛰어 나고 또한 미인계를 쓸줄 알었다 사실 삼천궁녀는 없다 한다 부여인의 여인들 아녀자들 까지 모두 합친것 같다 당시 인구가 뭐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것 같다. 일것이다. 아직도 1.400년전의 백제의 궁터를 못찿고 있다. 그 당시 상황을 상상하면 얼마나 당나라 오랑캐들이 무시무시 했을까다. 오죽하면 계백 장군은 처 자식을 모두 목을 베어 죽이고 전쟁터로 같을 가다 어디 그뿐인가요 .그를 돕는 이름 없는 장군 이름 없는 병사 그외 조력자들 당시 인구도 많지 않던 그런 시대에 아 슬프다 .가신 님들이여 1.400녀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계백 장군을 이해한다 5.000명의 결사대로 어찌 인해 전술의 13만의 전투군과 1천9백 척의 전투배를 이기 겠는가다 .이글을 쓰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가족들 젊고 젊은 생 목숨들을 본인 손으로 모두 목을 베에 죽이고 전선으로 뛰어든 계백 장군님 그의 심정이 어때 었을까다. 아마도 본인 정신은 아니 일것이다 대단히 결심이 차돌 강철 쇠 같은 분이다 야 장미자 무슨소리를 하니?. 아니 1.400년전의 사건을 나는 막.막히 어떻게 표현을 할줄 몰라서다 계백님의 그 마음을 모르겠다 나라를 내몸같이 지극히 사랑 하시는 그맘 요즘 정치인에게 계백님의 마음이 좀 전해 졌으면 어떤 국회의원은 중요한 국정감사에 스마트 폰으로 오락을 하고 있다는 것이 뉴스 시간에 나온다 헐이다 .
그가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목을 베어 죽인것은 백제가 멸망하면 그의 가족을 모두 볼모로 나 당으로 잡혀 가서 종살이나 첩실 아니면 잔인하게 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슬프고 원통하다.계백 장군이 지금 이순간에 긴칼을 옆에 차시고 내 옆에 와서 앉아 계신것 같군요 .사실 역사를 깊이 들어가면 의자왕은 그를 믿고 의지했던 예석진의 의해 항복을 했다 한다 서기 660.7.13일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주근을 배신한 예석진 때문에 항복을 하게 된다. 그렇게 678녀년을 이어져온 찬란한 백제를 믿었던 한장수의 계획이된 악날한 배반으로 한순간에 나라를 잃었다. 억울하다 .백제의 31대 의자왕은 항전중에도 유리한 조건에도 한 장수의 계락으로 찬란한 678녀년을 이어온 이 나라 백제를 빼앗기고 귀향길을 떠난다 별의 별꼴을 인생별곡으로 겪고 살었다 .예석진은 614.태어나서 672.년까지 살었다 한다 백제를 멸망시킨 인물이다 그는 중국으로 의자왕이랑 같이 같다 사실그는 백제의 배반자다.그는 당나라 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고 살다 58세롤 살고 사망 했다 한다.예석진에게 당한 억울한 의자왕 그는 후세에 억울하게 문란한 왕 음주가문을 좋아해서 나라를 뻬앗긴 백제의 마지막 왕이 아니 었다 억울하게 믿었던 장군 신하에게 당한 비운의 의자왕 이다 믿을 인간 없다.옛날이나 지금이나 못 믿을건 인간이다 . 백제 문화제 때에는 항상 마지막 의자왕. 왕족.계백.충신.이름모를 장군.군사.백성들에게 항상 정성 지극히 부여군에서 제를 올려 드린다 백제 문화제란 백제의 그날을 잊지 말자의 의미와 백제를 재현하고 부여인이 단합으로 열심히 부흥하고 잘 살자는 그런 뜻인것 같다 글을 쓰는 이의 생각이다.
사실 의자왕는 문란한 왕이 아니였다 한다.삼천궁녀는 없다 한다.역사학자들의 말인즉 당시 궁녀들과 백제 주민 아녀자 분들 같다 한다. 백제의 31대 마지막 임금 비운의 임금 의자왕 당나라로 아들,딸 13명과 왕족.군사.백성들과 함께 끌려 갈때 얼마나 가슴에 한 恨 이 서리고 죽고 또 죽어도 못잊을 그런 마음이 었을까다. 한번 뿐인 목숨 그래도 끝을 볼라고 어떻하던 목숨을 유지해서 나라를 찿을라 모진 목숨을 유지 하고 있었을 것 같다 . 나는 부여에 살면서 백제를 좀 알고 있고 다시 배워서 내게 백제를 물어 보고 백제의 의자왕을 비하 하고 1.400년전의 그를 무능력한 군주로 알고 있는 모든이 에게 알리고 싶었다.조금 이나마 의자왕 그는 총명하고 똑똑한 군주였다 누구던 계획적으로 거짓말 시키는 인간에게는 못 당한다 .지금 옥살이 하시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평생 최순실 ( 개명 서원) 아버지와 그들에게 거짓 쇄뇌로 인생을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부분도 있는것 같다.나는 자세히는 그분에 대해서 모르지만 TV 에서의 대담자들의 대화인즉 그렇다고 한다 . 온국민이 다아는 이슈화된 부분이고 아휴 난모른다 정치는 골치가 띵 띵 아프다 .
나 또한 거짓말에 당하고 살은 불쌍하고 무식한 인간이다. 부여에 살면서 지금은 나도 부여의 주민이고 군민이다.역사를 읽으면 각 나라 마다 악날하고 못된 인간 군주들이 많다. 그들도 모두 짦은 생을 마감한다 .백년도 못살고 가는 인생 이것만 사실 옛날엔 60살만 살어도 장수 한다 하여 환갑이 생긴거라 한다. 그래서 환갑 잔치를 성대이 해주었다 요즘엔 없어 졌다.모두 의학의 발달로 오래 사니 그럴수 밖에 의자왕을 나쁘게 말하는 그들에게 1.400년의 지난 지금에도 의자왕은 믿었던 장군 예석진 에게 한방에 당한 비운의 왕이라 당당 하게 말한다 의자왕은 문란하고 ( 주지육림 酒池肉林 ) 의 임금이 아니 었다고 1.400년후의 백제인도 아니었던 내가 의자왕의 변호를 그들에게 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건 착한 남편이 조상이 백제인 이었다는 것이다 .나도 백제인이다. 경기도는. 고구려. 백제 . 신라.에서 백제권에 들어가니 그러고 보니 같은 백제인이다 .그래도 나는 나 살던 고향이 좋다 누구던 그런것이 아닌지요.나이가 들어 가니 고향이 더 그립고 어느날 훌쩍 떠나 가고 싶다. 흰머리를 날리는 친구도 보고싶고 죽었는지 이제 모든것을 잊고 사는 날까지 살어야 하건만 인생 별거냐 모든것이 사라져 가네 "친구들아 큰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좋은 부여땅이 어쩨냐고 헉 .........
인구감소로 앞으로 부여가 역사속 으로 사라 질수도 있다 한다.이게 부여 별곡 이구나 ! ,
장미자 수필가님(떠 오르는 해) 제목 백제의 이름없는 장군 그대의 함성이 !.............. *시 지은이 장미자
두들이는 와 ! 와! 의 한맺힌 함성들
와ㅡ와 ! 여기저기서 1400여년전의 백제의 이름없는 군사들의 함성이
나의 귓전을 강하게 두드둘이는 것은 그대가 적군과 싸워 이겨야만 했던 이름없는 장군 그대 !그대의 우렁차고 다급한 목소리
그토록 목숨걸고 노심 초사 찿아야만 했던 이 나라 백제와 백성들 우 우 우 .........
이제는 통일이 되어 그대의 후손들이 잘지키고 있다오 그대 이름없는 장군 이여! 무명용사들이여!
그대들의 후손들도 나라잃은 설음을 너무도 잘알고 있다오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백성들의 원한맺힌 아비규한 한서린 설움과 ...........
장군 그대의 마지막 숨결과 같이 이름없는그대를 따르던 무명용사들과
천사의 나팔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잘 지내시고 계시오 이름 없는 장군 ! 그대의 분신인 무명용사들이여 !
이제라도 내 늦었지만 이름없는 장군이여 ! 그대의 피끓은 용감무쌍한 장군 그대..........
무명용사들이여 그대들의 한맺힌 사연을 후손들에게 알려드리 겠소이다.
그대들이 맨몸으로 용감 무쌍하게 지킨 이 나라여~ 그대의 후손들이 어찌 못지킬까 ?
그대 이름없는장군 그대의 분신과도 같은 무명용사들여 그대들의 넋이 백제의 후손에게 길이 빛내리........... |
.장미자 수필가님(떠 오르는 해) 사비에서 부여로 가즈아 ! 지은이 * 장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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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그녀들의 넋이오!
1400여년이 지난지금도 그녀들의 이야기는 항상 후손에게 살아서
쉼쉬고 있다오 그녀들의 한맺혀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흰 백합꽃이여 ! 落花巖 낙화암 고란사 길 모퉁이를 지나면 한서린 그녀들의 울음소리가
여기 저기서 새벽에 피어나는 안개를 헤치고 가녀리게
한맺힌 울음소리가 우~우 ~우 숲속에서 메 아리 치는것 같구료.
그녀들의 가슴에 넋이 구슬프게 지나가는 오가는 이의 귓전에 들리는것 같구려 우~우~! ....................
한떨기 피지도 못하고 가버린 그녀들의 넋이 원한에
사무쳐서 새 소리와 함께 실려 날아 다니는 구료 ? 그녀들이여 !
그녀의 넋이여 아~ 아 ! 그대가 그대의 치마폭을 그대의 머리에 뒤집어 쓰고
낙화암에 가녀린 몸을 던지던날 그날 하늘도 우 ~ 우 소리를
내면서 한없이 울었 겠구려 그녀의 한떨기 피지도 못한 흰 백합꽃이여 !
그대 지금도 망국의 한을 품고 저세상 끝에서 구천을 맴도는 것은 아닐런지 ?
그녀들이여 한떨기 피지도 못한 힌 백합꽃이여 저 높은곳에서
그대의 후손들을 오늘도 한맺힌 마음으로 1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려다 보고 계시는지요 ? |
죄송합니다 커서가 안 올라가요 글에 간격이 뜨네요 컴푸터가 낮설은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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