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왕릉중 명당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세종대왕릉을 말할 수 밖에 없다. 용과 혈, 사격 그리고 물길이 모두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릉 자리에는 원래 한산이씨 이조판서를 지낸 이계전의 묘가 있었다. 이를 이장하고 세종대왕릉을 조성한 것인데, 후손의 발복과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 모습이다. 풍수에서 묘를 쓰고 태어난 자손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다고 한다. 세종릉의 천장은 1469(예종 1년)에 이루어졌고, 연산군은 1476년에 경복궁 교태전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세종대왕릉을 천장하고 7년후에 태어난 것이니,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 교동에서 31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있다. 물론 그의 아들들은 모두 같은날 사약을 받고 죽는다. 딸은 살아남았으나, 남편과 이혼을 당하고 재산을 모두 빼앗기는 등 삶이 편하지 않았다. 이를 어찌 설명해야 할지 여전히 미궁속을 헤매고 있다.
필자는 풍수를 30년 넘게 공부하고 대학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나름 풍수공부를 하였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풍수 발복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분야이고 우리가 밝혀내 정립해야만 하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