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음악 5월 22일(월)*
▲찔레꽃 정서
◾슬픔에서
이젠 기쁨으로!!
◀찔레꽃①
◼이연실
◼양하영
◀찔레꽃②
◼장사익
◼린
◀찔레꽃③
◼김다현
◀찔레꽃 피는 산길
◼김인혜(소프라노)
◉아카시아꽃이 피자마자
곧이어 찔레꽃이 여기저기서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두 하얀 꽃은
지금 숲 근처에 가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5월의 꽃입니다.
가는 봄의 끝자락을
잡고 피는 담백하고
깨끗한 찔레꽃은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초대해주는
반갑고도 아련한
꽃이기도 합니다.
◉찔레꽃 향기는
화려한 꽃술에서 나옵니다.
다섯 장 꽃잎이 열리면
그 가운데 노란색의 풍성한
꽃술이 나타납니다.
벌들이 열심히 드나드는
그 꽃술입니다.
장미꽃과 아카시아꽃도
한 향기를 하지만
찔레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찔레꽃은 한국 토종의
들장미입니다.
‘Oriental Wild Rose’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찔레꽃이란 이름이
훨씬 친근하고 정감 있습니다.
나무에 달린 가시 때문에
얻은 이름입니다.
찔레나무는 얼른 들으면
성깔 있는 이름처럼 들리지만
가시로 초식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부드러운 향기로는
곤충을 불러 먹여 살리는
지혜로운 식물입니다.
◉사람에게도 식재료가 되는
찔레꽃이라 민족의 슬픔과
애환을 담은 꽃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사포닌이 들어 있어
쌉싸름한 가운데 단맛이 나는
찔레순은 간식거리가 됩니다.
하얀 꽃잎 역시
아이들의 먹거리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아이도
찔레 순을 간식으로 먹거나
재미로 찔레꽃잎을 따 먹지
않습니다.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도 거의 없습니다.
배고프다고 그것을 먹는
아이는 더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 어렵던 시절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5월 중하순은 과거
보릿고개라고 불리던 때입니다.
가난한 시절 보리 수확 전에
쌀이 떨어지고
먹거리가 모자라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그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습니다.
그 초근목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찔레순, 찔레꽃입니다.
그래서 찔레꽃은 생존을
의미하는 슬픈 이력의
꽃이기도 합니다.
보릿고개 한창때
찔레꽃이 피기 시작하면
희한하게 때맞춰 뻐꾸기가
구슬프게 울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가 지나면서
보릿고개가 사라졌지만
지금도 이때쯤이 되면
어김없이 찔레꽃이 피고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1930년 이원수가 ‘신소년’에
발표한 ‘찔레꽃’에는
애달프고 슬픈 우리 정서가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가만히 먹어 봤다오.’
이원수가 이 동시(童詩)를 쓰던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는
춘궁기 식량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농가가
125만 호 정도로
전체 농가의 48%나
됐다고 합니다.
◉광산에 돌 깨는 일 나간
누나를 기다리는 배고픈 소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특히 ‘가만히’ 먹어봤다는
부사가 더욱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가난을 표시 내지 않으려고
주위를 둘러보며 먹을까 말까 하는
소년의 망설임이 보입니다.
어린 나이에 돌 깨는 일을 나간
누나도, 그 누나를 기다리는
배고픈 소년도 찔레꽃의
이미지 속에 들어있는
슬프고 가슴 아픈 과거입니다.
이 시 속의 누나를
엄마로 개사해서
1920년대 작곡가 박태준의
‘기러기’에 붙인 노래가 바로
이연실의 ‘찔레꽃’입니다.
◉올해 72살이 되는 이연실은
90년대 중반 이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맑고 청아한 음색의
그녀 노래를 더 이상 직접
들을 수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불렀던
그녀의 노래를 불러옵니다.
이연실은 가사를 개사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착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찔레꽃의 잎은 녹색이지만
노래 속에는
하얀 잎으로 나옵니다.
아마도 하얀 꽃잎을
잘못 적어넣은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https://youtu.be/IfKBEi4YJTE
◉찔레꽃을 떠올리는 이 노래는
나중에 찔레꽃보다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성격이 짙은 노래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도 찔레꽃이나 엄마가 지닌
정서가 다르지 않은 듯해
받아들이는 느낌은 비슷합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포크 가수인
양하영의 노래로 다시
만나봅니다.
현재 대학 방송 연예 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양하영입니다.
https://youtu.be/SFvZdNCB4Tc
◉슬픔과 한을 토해내는 듯한
또 다른 ‘찔레꽃’은
장사익의 노래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노래 가사를 보면
슬픈 이유도, 슬픈 사연도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노랫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노래를 슬픔과
한의 정서가 담긴 우리의
‘찔레꽃’으로 만들어낸 건
전적으로 장사익 특유의
한 서린 창법 때문입니다.
장사익은 이 노래를 만든 건
마흔네 살 때인
1994년이었습니다.
바로 가수로 데뷔하기
한해 전이었습니다.
◉40대 중반까지 10여 개의
직업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왔던 장사익입니다.
1994년 5월 어느 날
집 앞에서 좋은 향기가 나서
장미 향기인 줄 알고
따라가 보니 장미꽃 뒤에
숨어 있는 찔레꽃에서
나는 향기였다고 합니다.
그 찔레꽃이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자신의 처지와
같은 듯해서 목 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권유로
장사익은 40대 중반인
1995년 데뷔 앨범을 내고
가수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에
한해 전에 만들었던 노래
‘찔레꽃’을 담았습니다.
그 ‘찔레꽃’이 일흔세 살인
지금까지 장사익의 브랜드 송이
되면서 노래도 가수도
유명해졌습니다.
지난해 2월 ‘불후의 명곡’
특집 쇼 ‘봄날’에서 만나는
장사익의 ‘찔레꽃’입니다. https://youtu.be/tMyCMS5z0G4
◉감성 보컬 린은
장사익의 ‘찔레꽃’의
소박하고 애처로운 정서를
살려내기에 적합한 음색과
감성을 지닌 가수입니다.
국악 색깔이 짙은 이 노래를
특유의 소울 가득한
보컬로 풀어내는 린의 노래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찔레꽃’입니다.
https://youtu.be/KvUnTs8zAqE
◉1942년 일제 강점기에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은
한국인 가장 사랑하는
트롯 가운데 한 곡으로 꼽힙니다.
KBS 가요무대에서 가장 많이
신청받은 노래가 바로
이 노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찔레꽃은
떠나온 고향의 상징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만주로 시베리아로
유랑을 떠난 선인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조국 독립을 위해
독립군이 되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 초
북간도 위문공연을 다녀온
김영일 김교성 콤비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독립군을
몰래 만나보고 돌아와
만든 노래가 바로 ‘찔레꽃’입니다.
백난아가 부른 이 노래는
해방 후에 더 많은 인기를
얻으며 고향을 그리는
망향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데 노래 속에 등장하는
등장하는 찔레꽃은 붉은색입니다.
그래서 이 꽃은 찔레꽃이 아니라
해당화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해당화나 찔레꽃이나 모두
장미과의 꽃이나 넓게 해석해서
찔레꽃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색깔에 관련 없이 노래 속
찔레꽃은 고향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징의 꽃입니다.
이 노래는 ’가요무대‘에서
15살 국악 트롯 요정 김다현의
노래로 만나봅니다.
https://youtu.be/egOUCUwMh90
◉어린 시절과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찔레꽃과 관련된 가곡을
한 곡 들으며 마무리합니다.
소프라노 김인혜입니다.
https://youtu.be/B3iaKnf-z-0
◉앞의 가곡이 등장하는 찔레꽃은
더 이상 슬픔의 꽃,
한이 서린 꽃은 아닙니다.
고향을 떠올리는 추억의 꽃입니다.
마음을 설레게 하고
빙그레 웃음 짓는 님의 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찔레꽃을
소재로 한 노래들은 왜 하나같이
슬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