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재판 3부
人民裁判
People's Trial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에 인민군이 탱크를 몰고 기습적으로 남자 친구,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여 동안 남한의 우매한 젊은이들에게 붉은 완장을 채워서 죽창을 쥐어주고 할아버지 동무, 아주바이 동무 어쩌고 저쪼고 하면서 인민재판장에 앞 세워 죄 없는 사람을 악질 반동으로 몰아 죽창으로 찔러 죽이게 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게 하고 자기들은 뒤에서 팔짱을 끼고 거드름을 피우던 자들이 북한이 패망하게 되자 인민재판에 동조하던 자들을 데리고 월북한 줄 알았는데 이들을 데리고 담양 가마골로 잠적하여 빨치산 공비들이 되었던 것이다.
"6.25 동란 격전지 중 가장 치열하고 처참했던 곳 중 하나가 이곳 가마골이다. 1950년 가을 국군의 반격으로 후퇴하던 전남.북도에 주둔하던 인민군 패잔병들이 인공에 동조했던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집결하여 은거하면서 약 5년 동안 유격전을 펼쳤었다. 당시 이 빨치산들은 이곳 가마골에 노령지구 사령부를 세우고 3개 병단이 주둔하려면서
낮이면 곳곳에 숨어있다가 밤이면 민가로 내려와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고, 전투가 장기화 됨에 따라 병기 시설인 탄약 제조 창과 군사학교, 인민학교, 정치보위학교 및 정미소까지 설치해 놓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다가 국군과 경찰 합동작전에 일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955년 3월 완전히 섬멸되었다."
그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가끔 탄피, 수류탄, 무기제조에 쓰이는 야철, 화덕 등이 그날의 참화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 이모부(작고)도 담양 경찰서에 근무하다 이 소탕전에 참전해서 그때 왼쪽 어깨에 수류탄 파편을 맞아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다고 했다. "우리 동네서 인공 때 팔에 빨간 완장을 끼고 죽창과 낫을 들고 인만재판에 동조하며 설쳐 대던 빨갱이들이 인민군을 따라 이북으로 간 줄 알았더니 이곳 가마골에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었던 것이다.
북한에서도 버림받은 빨치산 공비들, 주사파 운운하면서 민주화 외치던 너희들일까 보냐. 아프카니스탄처럼 되기 전에 정신들 차리라고...
MinMooonSooo__________/////
💜다니엘 12:3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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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바흐 자클린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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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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