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역사문화연구회에서 여주 고달사지를 찾았습니다.
지난번 관외 탐방 때 시간이 부족해 그냥 지나쳤기에
이번에 다시 시간을 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고달사(高達寺)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진 후,
고려 광종 이후 큰 사찰로 성장하였습니다.
전성기였던 고려시대에는 사방 30리가 모두 절 땅이었고
수백 명의 스님들이 도량에 넘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2만 평에 달했던 큰 사찰은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이후 화마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온 힘을 바쳤다고 하는데,
절을 완성한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답니다.
고달은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었는데
이에 연유해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생겼다는 석불대좌(보물 제8호),
원종대사(元宗大師)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보물 제6호),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원종대사 부도(보물 제7호)와 함께
빼어난 균형미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도 둘러보았습니다.
그 옛날 찬란했던 역사의 현장을 가늠해 보며
돌아오는 길에 개군면 앙덕리 지석묘를 탐방했습니다.
지난 1974년 팔당댐 수몰 지구에 대한 문화재 조사시
7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이 중 1기는 그 당시에 발굴 조사되었고
최근 앙덕리 강변에 제방 공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4기가 추가로 조사되었습니다.
현재 앙덕리 마을회관 앞의 소공원에
당시 조사된 4기의 상석이 이전 복원되어 있으며,
양평군 향토유적 제 39호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강 건너편 대석리의 지석묘군(향토유적 제32호)과
양서면 양수리 지석묘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청동기 시대 이전부터 남한강 연안을 중심으로
양평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는 귀한 유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