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49]
목일신(睦一新, 1913-1986)②
목일신은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도 전시 동원체제가 되자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지도 있고 자기 자신도 일제에 부역하는 반민족행위를 하지 않고자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당시 유명한 동요 작가들이 일제를 위해 노래를 짓는 반민족행위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일제를 위해 선동하는 글을 쓰며 작가로 살아가느니 평범한 교사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그가 가르쳤던 학교들은 순천매산중, 목포여중, 이화여고, 배화여중고 등이었습니다. 그는 운동도 잘해서 우리나라를 대표한 탁구선수 위쌍숙과 위순자 자매의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47세 때부터는 경기도 부천에서 26년간 거주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사회와 교육 분야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해서 1978년 국민포장(國民褒章)을 받았고, 1986년에 사망하고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그는 삼 남매를 키우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검소하게 살았고, 구두를 10년 이상 신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전남 고흥에서는 목일신 동요제가 생겼고, 경기도 부천시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일신초등학교가 2003년에 세워졌고, 일신중학교도 그해 개교했습니다. 부천시는 재단법인 목일신문화재단과 함께 2024년 처음으로 전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목일신 시그림 공모전’을 개최했고, 전남 고흥에서는 지난 2010년 제1회 ‘고흥 목일신 동요제’를 전국적인 대회로 열기 시작했습니다. 『목일신 전집』에 장녀는 “우리 삼남매는 아버지의 시를 초등학교 국어시간과 음악시간에 배웠고 덕분에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은근히 글을 잘 쓸 거라는 기대와 관심을 받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기가 남겨주신 동요를 노래한다.”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참고>
전정희.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2019)
부천시티저널. "목일신 전집을 읽고.." (2018.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