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71/200125]돼지 멱따기와 역귀성逆歸省 풍경
# 1. 1월 22일(목) 오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동네 형님이 설을 맞아 170근쯤 되는 돼지 한 마리를 잡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하는 ‘행운’을 몇 십년만에 맛보았다. 비야 오든지말든지, 먼저 목을 따고, 쏟아지는 피를 받고(순대용), 가마솥에 데워진 뜨거운 물을 돼지의 몸 구석구석에 적신 후 털을 호미와 낫 등으로 빠아빡 긁어내고, 날카로운 회칼로 머리부분을 잘라내고, 머리 바로 밑의 목살을 뭉툭뭉툭 잘라내, 가마솥 뚜껑 위에 처억허니 얹은 후 굵은 소금을 차아착 뿌려 깡소주를 종이컵 하나 가득 따라(한 잔에 소주 반 병), 서로 한잔씩 주고받고(으흐흑, 흐미, 이 맛이라니?). 배를 1자로 쭈우욱 가른 후 하늘을 보게 해 엎어놓는다. 쏟아지는 엄청나게 굵은 내장이라니? 그 똥을 다 빼내고, 그 속에 돼지피를 집어넣어 삶는다. 갈비들을 일일이 빼내는 작업이 만만찮다. 동네 형님은 1년에 최소 두세 번은 해온 일이라 손놀림이 익숙하다. 요즘 세상에 백정白丁이 어디 있는가? 누구래도 ‘싹 다’ 백정이다. 칼의 종류도 여러 가지. 작은 도끼로 네 군데 발목을 자르고, 생고기들을 부분부분 쪼개 늘어놓는다. 어릴 적엔 어른들이 “‘옛다, 바람 불어 공 만들어 놀아라” 오줌보를 던져줬던 기억이 있다. 몇 년만에 돼지 분해작업을 본 것인가. 사람몸도 저렇게 생겼을까? 역시 고향을 내려오니, 이렇게 흔치 않는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구나. 무엇보다 잉걸불에 금세 구워지는 두툼한 목살은 한 조각, 한 조각, 목울대로 넘어가는데 꿀맛이 따로 없다. 인근 동네의 청년(모두 60대이다) 대여섯 명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걸쭉한 농담을 마구 뱉어내며, 빨간 뚜껑 소주 한 박스를 작설을 낸다. 명절은 역시 이 맛이다! 고향에 돌아오길 참말로 잘 했다. “형님, 서너 근 안파요?” “안되야. 우리집 팔남매가 다 모여, 쬐깨씩 노놔줘도 빠듯혀” “그리요. 알았어요. 할 수 없지요” 불콰해진 채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도 좋았다. 우라질, 이놈의 비라니? 눈은 안오고.
# 2. 23일(목) 오후 1시반. 오수역 대합실. 용산행 무궁화호를 기다리는 승객 10여명 가운데 늙으신 부부와 할아버지 한 분, 벤치에 앉아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한눈에 봐도 자식집에 설 쇠러 가는, 이른바 역귀성逆歸省이다. 나도 내 집으로 아들며느리와 손자 세배 받으러 가는 길이니 역귀성인가?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뜬 것인지 ‘홀로 할아버지’가 옆에 있는 노부부에게 듣거나말거나 혼잣말처럼 말을 건다. “참, 우리 어릴 적에는 설과 추석을 징허게 기다려는디 말이오. 그때나 되야 부모가 옷 한 벌 사중개.” “그러게요. 밥 세 끼 먹기도 힘든 땡개.” “시방은 명절만 돌아오면 심란히요잉” “근디, 머슬 싸갖고 가요?” “이거 뭐, 암것도 아니라우. 호박, 고사리 말린 것들. 갖고가바야 며느리가 좋아하지도 않을 것인디” “그리도 그게 부모 맴인디 어쩔 것이오?” 역귀성하는 어르신들의 푸념이기도 하고, 지나간 세월 추억의 한 자락이기도 할 것이다. 옆에서 가만히 듣자니, 듣지 않아도 다음에 무슨 내용의 말을 하실지 불보듯 뻔하다. 아들손자 자랑하는 것같다가도, 종당에는 며느리 흉을 보는 거다. “우리는 저그들 편히라고 이리 올라가는디, 가만히 보먼 눈치가 올라가는 것도 안좋아허는 것같혀” “어찌다 시상이 이렇게 획까닥 변혔는지 몰라” “다음부터는 아예 작파를 헐까 싶기도 허고” “우리 때는 차례를 안지내고 제사상에 음식 쬐깨 올리먼 무슨 큰 죄나 받는 줄 알고, 절절맸는디 말이여” “시상이 어찌 될라고 이런 줄 모르것어. 눈이 요만큼도 안오는 시한(겨울)은 내 생전에 처음인 것같혀. 올 농사는 글른 것같지요? 시한은 시한다워야 허는디” “어쩔 거시오? 차례도 안지내고 비행기 타고 놀로가는 사람들도 많다는디, 세월 따라 살아야지, 안그렇소잉?” “글지라우. 잘 댕겨오씨요잉” 어른들의 대화는 이렇게 중동무이 끝나고, 빠아앙, 열차가 들어온다. 저마다 보따리, 보따리를 챙겨들고 힘든 삭신을 간신히 일으켜 떠듬떠듬 걸으며 기차에 오른다. 영감, 용산역 가먼은 자식새끼들 마중은 나오것지? 손주들 복돈은 잘 챙겨놓았는겨? 아아,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20여년 전 과거모습이 오버랩되어,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오수역 플랫폼이다.
# 3. 24일(금) 섣달 그믐날 오후.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을 네 살짜리 손주가 다섯 살을 맞으러 우리집에 들어선다. 내일은 양지넣은 떡국 한 그릇을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리. 아내는 아들내외가 오기 전에 몇 차례 궁시렁거린다. “이것도 명절증후군인가 봐. 온몸이 쑤시고 골치가 지끈거리는 게” 부엌에서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아내에게 남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유구무언. 못들은 체 한다. 어느 집이라도 그러겠지만 ‘시집살이’라는 말은 저어기- 태평양 밖으로 물어난 지 너무도 오래. ‘상전 중의 상전’이야 물론 손주녀석(VVIP)이지만, 그 다음은 며느님(VIP)이 아닐 것인가. 흐흐, ‘손자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게 속설이지만, 오늘은 까치설날, 내일은 경자년 정월 초하루이므로, 거실에서 점잖게 앉아 세배歲拜를 받고 덕담德談도 나눠야 하리. “일년 365일내내 건강하고 좋은 일만 있어라. 우리 바람은 딱 그것뿐이다잉” “옙, 어머니 아버지도 건강하세요” 이렇게 넙죽 절하는 아들내외와 손자가 있어,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우리는 럭키맨Lucky man인 것을. 멀리 다른 나라에서 영주권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둘째아들 내외는 대체 잘 있는건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리라. 무슨 놈의 나라가 산불이 다섯 달째 타고 있다등만. 뭐, 우리나라 면적만큼 탔다고? 그것 참. 불난 데 부채질헌다고 인자는 홍수가 났다네. 이상기상이 어찌 남의 나라 얘기만 될까? 좌우당간, 너희도 새해 복 많이 받거라. 좋은 소식 있은 후 한번 다녀가라. 아부지 어무니가 고향집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마. 복돈을 넣은 봉투에 어찌 삐죽 신사임당 몇 장만 넣을 수 있나? ‘생활글 작가’ 다운 한마디를 써야지. 뭐라고 쓸까? <윤슬 아빠‧윤슬 엄마야!/새해 365일 내내/항상 건강하고 발전 있으라!!/고맙고/사랑한다!!!>. 우리 손주에게도 한 말씀. <우리 예쁜 아가야!/새해 아프지 말고/무럭무럭 자라나/엄마 아빠의 기쁨과 자랑이 되어다오!!/사랑한다!!!>. 우리 식구, 모두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다잉.
# 4. 정월 초하루. 확실히 설은 음력으로 쇠어야 진짜 설답다. 나는 꼭두새벽도 아닐 터, 2시 50분에 일어나 '멱따는 돼지와 역귀성 풍경'의 졸문을 쓴 후, 인터넷 바둑을 둔다. 신춘원단新春元旦 , 새해 새 아침, 명국名局을 남겨보자! 그나저나 올해는 우리 손주에게 바둑과 천자문(하늘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르황黃, 집우宇 집주宙, 넓을 홍洪 거칠 황荒!) 그리고 '추구推句'(천고일월명天高日月明이요, 지후초목생地厚草木生이로다! 할아버지 한번 따라히봐, 큰소리로 제발 낭랑하게!)를 가르쳐야 할텐데. 말을 잘 들을까몰라 걱정이다.
첫댓글 영록아 손자한테 바둑하고 천자문 가르칠 생각 접어라 꼰대소리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