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위대해 보이고 그분에게 가장 사랑스러웠을 때는 언제일까? 골리앗을 무찌르고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며 군사들에게 무등 태워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그 때일까? 아니면 나라를 평정하고 노년에 하나님께 성전을 짓기 위해 기도할 때였을까? 하나님께 다윗이 가장 사랑스럽고 위대해 보였을 때는 그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의기양양하게 백성들 앞에서 높임을 받을 때가 아니라 초라한 도망자로 생명을 위해 부르짖고 오직 여호와만을 피난처로 삼고 엎드려진 가장 약할 그때였다. 우리는 "약할 때 강"해진다.
(시 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시 25: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시 25:3)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시 25: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우리가 가장 위태 할 때는 모든 일이 좋은 결과를 얻고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그 때이다. 그때에 사람은 원수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교만한 말들이 절제되어야 할 입술의 문을 열고 나오고 사람들이 거기에 긍정적으로 응답해 줄때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자신만을 기억 할 가능성이 많다. 그때가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다. 다윗이 전쟁을 거의 끝내고 가장 높은 자리, 가장 높은 인생의 옥상을 거닐 때 그는 가장 나약한 한 욕망에 사로잡힌 남성으로 밧세바를 탐하게 되었다.
하지만 새 사냥꾼에게 쫓기는 한 마리 새처럼 도망가면서 외롭고 괴로운 처지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을 때 어쩌면 그때가 안전했고 그때가 위대했다.
현실의 삶은 위태해 보일지 모르나 그는 가장 안전한 철옹성벽에 둘러싸인 것인다.
(시 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 91: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가장 연약한 자가 가장 비천한 기도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가장 강한사람이 된다. 그 까닭은 그분이 강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나 그리스도인 개인들의 가장 큰 승리들은, 재능이나 교육이나 부나 인간의 호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열렬하고 번민하는 믿음이 능력의 강한 팔에 매달릴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기도의 밀실에서 얻어진다.”(화잇 주석, 창 32:24-32)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강한 군사가 된다. 우리가 아무리 용맹하고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오직 여호와만이 만군의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하나님이시다. 주를 의지하고 낭패를 당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기도는 하늘 천군을 움직이는 전능 하신 분의 수중에 든 열쇠와 같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연약하오나 주님은 강하십니다. (시 25:7)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이 기도가 저희들의 기도이오니 주의 선하심을 보여 주시옵소서 자신을 의지하는 꾀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를 바라봅니다. 주를 앙망하는 자들을 평강으로 지키시는 줄 아오니 주는 만대의 하나님이 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