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DMZ 평화의 길에서 돌아와 지나온 여정을 더듬어 본다. 언제나 가도 쓸쓸하면서도 생경한 풍경 휴전선, 그 중에서도 임진강가에 변함없이 서 있는 녹슨 기관차가 눈에 밟히는 것은 그 무슨 연유인가?
한국전쟁 때 파괴된 다리를 휴전 후 교환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다시 만든 다리로, 당시 북쪽에 포로로 잡혀 있던 12,773명이 돌아오면서 자유의 다리라고 명명된 그 다리를 건너 7킬로미터를 가면 판문점板門店에 이른다.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의 판문점은 널문으로 된 주막이 있어서 널문이라고 불렸던 마을이다. 1951년 10월 24일에 이 마을에 널빤지로 집 한 채를 지었고, 1953년 7월 27일에 이 집에서 휴전협상이 이루어졌다. 그때부터 이곳에선 소설가 이호철이 <판문점>이라는 소설 속에서 묘사한대로 “어지간히 익살맞고 납득이 잘 안 되는” 회담이 계속 이어졌고, 몇 년 전에는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이름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뒤 휴전선은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고, 남북화해 정책에 따라 열렸다가 닫혔다가를 계속 반복하면서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임진각에는 서울에서 장단을 거쳐 신의주까지 이어졌던 경의선 열차가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외치며 멈춰 서 있고, 시인 김지하(金芝河)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녹슨 기관차 가득히 꽃을
당신이 내게 올 수 있다면
고원에 만발한 한 아름 나리꽃 안고 산철쭉도 안고
그보다도 더 아리따운
환한 웃음 안고 내게 올 수 있다면
내가 나가 반겨
당신이 아닌, 당신 몸이 아닌
당신의 꽃들과 웃음을 껴안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내가 이렇게 원주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원주로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오락가락할 이유가 없겠지
낡아빠진 석탄 차
녹슬은 기관차
지금은 국민학생들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린 차
그 차
휴전선에 잘린 경의선
경의선 화통
그것을 타고 내가 당신에게 갈 수 있다면
그 기관차를
새파란 동백잎, 빛나는 유자 무더기. 향기 짙은 치자꽃으로,
무화과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리고 못난 내 얼굴에라도
함박꽃 같은, 달덩이 같은 째진 웃음지어 만나고 싶다
나 오늘 눈 내리는 원주 거리에 다시 서서
다시금 남쪽으로 돌아갈 자리에 서서
거리를 질주하는 영업용 택시를 보며
경의선 끊어진 철로 위에
홀로 남겨진 기관차 속에 홀로 남을
민족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소주 한 잔을 국토 위에 붓는다
아 아 꽃들이여
너희들의 영광은 언제 오려는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의선을 잇기 위해 첫 삽을 떴던 도라산道羅山 역이 있으며, 그 부근에 도라산 봉수가 있었다. 서쪽으로 개성부 송악산에서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동쪽으로 파주목 대산 봉수에 신호를 보냈던 곳이다.
임진각에서 김지하 시인의 절창 <녹슨 기관차 가득히 꽃을>을 낭독하고 소주 한 잔을 국토 위에 부었던 장상수 도반을 비롯 우리 땅 걷기 도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우리 모두 신의주까지 경의선 열차를 타고 살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릴 뿐이다.